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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 읽기 2강의 질의에 대한 배병삼 선생님의 답변입니다.
지난 1월 27일 진행된 <정의론 읽기> 두번째 강의(유교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관련해서
수강생 한 분이 못다한 질문을 올려주셨습니다. 질문 보기>>
올려주신 질문에 대해서 강의를 해 주셨던 영산대 배병삼 선생님께서
아래와 같이 답변을 보내주셨습니다. 수강생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1.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질문이 몇 개 되지는 않지만, 각각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짚고 있어서 이에 답하기 위해선,
아마도 유교사상 전반에 대한 해설이 필요할 듯합니다. 글로써 낱낱이 답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강좌를 담당하는 정세윤 간사에 따르면 여름쯤에 유교사상에 대한 강의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는데,
혹 인연이 닿으면 그런 때에 유교사상의 전반을 논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거칠지만 간단하게 답하고, 급한 대로 몇 가지 텍스트를 추천하겠습니다.
(1) 폭력과 이익은 ‘근대-시장-국가’의 기본틀입니다.
공자/맹자는 바로 이런, 폭력과 이익의 추구가 끝내 인간세계를 짐승의 상태로 야만화하는 첩경으로서 우려합니다.
공자/맹자의 기획은 이른바 현실주의를 넘는 세계관과 인간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이 같은 우려와 기획은, 오늘날 서구근대에 대한 반성으로 제기되는 여성주의.
생태주의의 포스트모던적 사유패턴과 일정부분 공유하는 점이 있습니다.
질문하신 이익(利)의 문제, 특히 맹자 제1장의 ‘何必曰利 vs. 仁義’와 관련된 구체적인 해설은
저의 글, “위민은 없다”(녹색평론 109호. 2009년 11/12월호)를 참고하면 혹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2) 공자와 맹자의 시대는 계급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학교를 모든 계급(아니 노예로 팔려온 집단)에게도 문을 열었다는 사실과
맹자가 모든 인간의 평등성을 강하게 주장한 점들은(모든 인간은 선하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유교의 탈계급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다만 유교의 인간은 오로지 ‘學’의 여부에서 갈립니다.
그러니까 귀족이든, 양반이든 배우려 들지 않는 자는, 소인 나아가 짐승으로 추락하고,
반면 천민이라도 배우려 드는 인간은 군자요 성인이 되는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3) 그렇습니다. 맹자는 특히, 民의 주도적 역할을 군데군데서 논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위망할 때, 그 나라를 살릴 것인가, 말 것인가의 최후의 선택은 인민에게 있다든지,
군주를 선택하는 데서도 인민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민이 귀하다(民爲貴)는 맹자의 언명은 결코 군주들에게 ‘정치를 잘하라’는 경고로서가 아니라,
실제 맹자의 나라는 인민의 주도로 구성됩니다.
다만 구체적인 선거방식, 대의제와 같은 선출방식이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4) 조선시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솔직하게 털어놓으셨군요.
그런데 조선시대 유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논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내 걸었다고 해서, 그 정부가 민주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듯 말입니다. 조선시대 역시 유교(문명)의 명목과 실질 간의 투쟁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백성을 위한 유교”가 없었겠습니까? 다만 근대 서양의 인민주권의 인민정부가 없었고,
또 민주주의가 없었지요. 그런 꿈은 유교 속에는 부재합니다.
(5) 제가 한비야 씨의 행동을 언급한 것은, 사상적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 박애와 달리 유교적 사랑(仁義)의 특징은, 내 주변의 실존적이고 촉감적인 사랑의 실천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아. 물론 개개인이 한비야식의, 아니 땅 끝에서부터 사랑을 역순으로 전파할 수도 있겠지요.
‘내 털끝으로 남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해도 베풀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는 판인데,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야 반대할 게 있겠습니까?
그러나 유교는 내 부모, 내 형제의 아픔을 타인의 아픔과 동일시하는 생각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로부터 점점차차 주변으로 사랑이 번져가는 ‘差別愛’를 진리로 파악합니다. 이건 인간 몸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요.
2. 도움이 될 만한, 유교사상에 대한 텍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유교의 전반을 쉽게 이해하려면,
(1) 배병삼,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사계절)과 푸페이룽, <맹자 교양 강의>(돌베개)를 권하고 싶습니다.
유교의 역사가 2500년에 이르고, 또 그 영역은 중국과 베트남, 조선과 일본을 아우르지만, 그 기본 틀은 <논어>와 <맹자>에서 비롯됩니다. 이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을 때, 가령 현대 한국과 유교를 비교할 근거를 갖출 수 있고, 또 서양 근대와 유교를 비교할 잣대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또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위한 청사진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두 책은 그 입문서로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습니다.
(2) 주자학과 서양 근대의 ‘자유’라는 개념의 접점을 검토한 것으로는, 드 베리, 표정훈 역, <중국의 ‘자유’ 전통>(이산)가 있습니다.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유교사상과 근대서양의 대표적인 개념인 ‘자유’를 둘러싼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는 대단히 계발적인 책입니다.
샌델의 ‘정의’론으로 촉발된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열의가
좀더 깊은 독서와 이해를 북돋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2011. 02.06
배병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