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소식 l ※ 광고성 게시나 게시판 도배, 저작권 침해 게시글은 삭제됩니다.
네번째┃난시간을 낭비하면서 논다
- _pic 930.jpg [File Size:111.6KB]
- _pic 636.jpg [File Size:182.0KB]
- _사진 020.jpg [File Size:180.0KB]
- _pic 945.jpg [File Size:112.9KB]
- _IMG_1890.jpg [File Size:121.1KB]
느티나무 백인보 네 번째 인터뷰 : 수강생 김하나
인터뷰 · 글: 박현아 느티나무 시민기자
참여연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느티나무 백인보를 위한 인터뷰를 마치고 아는 간사들과 차 한 잔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까지 알차게 누린 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
이런 웬 차가 내 차 앞을 막고 서 있네... “띠--- 띠--- 차 좀 빼주세요.”
잠시 기다리니 골목 끝에서 차주로 보이는 이가 나타난다. 쏟아지는 빛을 하얀 얼굴로 온통 튕겨내며 걷고 있다. 반사되는 빛이 어지러워 잠시 판단의 초점을 잃은 찰나... 도둑주차의 주범이 잰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와락 껴안는다. 짧은 탄성과 함께 내 온몸이 그녀를 기억해낸다. 아! 하나씨...
언제나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로 다가왔던 그녀. 오늘도 실망시키지 않는군... 세 번째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돌아서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녀는 다음 인터뷰이에 대한 고민마저 그렇게 한방에 날려버렸다.
왼쪽이 김하나님(당연히 아시겠지만..)
주차장에서의 짧은 만남 뒤 급하게 잡은 인터뷰 약속. 남미로 긴 여행길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작년이었던가? 그녀와의 인연들을 생각하며 통인카페에 들어서니 두 번째 인터뷰이였던 헌엽씨가 떡하니 카페 주방을 지키고 서 있다. 통장 잔고는 안 늘어도 인연들은 나날이 새끼를 치며 부푼다. 오가는 인연들 사이로 약속 시간에 알맞게 나타나주는 그녀. 이로써 약속시간에 대한 민감도 내지 책임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몹쓸 버릇을 가진 내게 그녀는 또 합격점을 받는다. 여러모로 미더운 그대여, 그 긴 남미여행은 어떠셨는지?
그녀의 여행 이야기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6개월이 걸린 여행이었어요.” 와우, 스케일도 10점 만점에 10점!
“원래는 남미 쪽 둘러 본 후에 아는 동생하고 스웨덴으로 건너가려고 했는데 한 2개월 여행하다 보니 너무 매력적인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브라질로 갔지요. 그 다음엔 모로코에 있는 친구 좀 보러갔다가 다시 스페인을 둘러서 왔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걸린 여행이었어요.” 가서 잠시 집을 빌려 사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떠도는 여행으로만 6개월이라... 상상만으로도 여정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남미의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붙잡은 것일까?
“남미에 있으면서 삶의 질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보다 분명히 못 사는 사람들인 건 맞는데 삶은 더 여유로워 보이거든요. 아르헨티나 갔을 때 시민극장 같은 곳에서 현대무용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어요. 우리나라였다면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 몇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거예요. 근데 그곳에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단정히 차려입고 앉아 계신 거예요. 전반적으로 문화수준이 높다고 봐야죠. 우리나라에서 몇 십 만원을 호가하는 공연들이 그곳에선 거의 무료로 날마다 열려요.... 일하는 것으로만 보면 남미사람들은 무척 게을러요. 하지만 우리처럼 자신의 소득수준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거의 받지 않죠. 다 같이 궁핍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행복은 무척 단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해지는 것, 그것이 무척 어렵다고 덧붙였다. 맞다. 행복이 반드시 풍족함에서 오는 게 아니듯 불행도 결핍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다.
사실, 그녀의 여행이력에서 남미가 이렇게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건 첫 번째 직장이었던 광고회사를 3년 만에 때려치우고 떠난 첫 번째 여행, 그 기억 때문이다.
“친구 비용까지 대가며 떠난 첫 번째 여행지가 유럽이었어요. 여러 나라를 가봤지만 지금도 그 여행을 생각하면 스페인만 떠올라요. 지중해 특유의 날씨, 사람들의 말투, 건물 벽체의 느낌, 그 사이로 난 골목길들...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풍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열정적인 분위기.. 음악...”
스페인하면 달랑 플라멩코와 투우만 떠오르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래도 그녀가 아련한 시선 너머로 내뱉는 단어들 사이사이의 숨결을 읽는다. 허니문 빼고는 한반도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나무꾼 부인마냥 양팔에 아이 하나씩 끼우고 다리 사이엔 커다란 남편을 데리고 그렇게 내 나라 땅에 두 다리가 붙박인 양 살아가는 내게 지중해의 바람은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무엇이다.
“그렇게 스페인에 꽂혔죠. 돌아와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스페인 음악과 문학 같은 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페인문화권인 남미까지 흥미의 영역이 넓어지게 되더군요.” 스페인에 대한 그녀의 유난스러운 기억은 그렇게 남미를 그녀의 로망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두 번째 여행은 생애 두 번째 직장을 다시 때려치우면서 이어진다. 일하고 여행하고 일하고 여행하고... 매력적인 스케줄이다.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이래저래 추웠던 겨울, 지금 이곳이 아닌 따듯한 어딘가를 꿈꾸던 무렵. 아는 선배가 쿠바를 제안했다.
“쿠바같은 세계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깊숙이 들어가 생각하자면 많은 고민들을 안겨주는 곳이죠. 하지만 전 그저 쉬러 갔던 것뿐이니까요. 쿠바에 가는 건 환상적인 궁핍의 세계를 보러 가는 거예요. 낡아 빠진 건물들 앞으로 1920년대 만들어진 차들이 돌아다니고 쿠바풍 음악이 거리에 넘치고... 길가엔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안락의자에 앉아 시가를 피워대는 노인들이 있어요. 평생을 두고 겪었을 가난이 그 노인들의 깊게 팬 주름, 하얗게 샌 머리카락에 묻어 나와요, 마치 철학자처럼... 우리가 주식과 집값 등을 논할 때 그들은 달과 시간과 사랑과 술 따위를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쿠바에서 그녀가 보고 싶어 한 낭만만 보고 왔다고 자백한다. 궁핍이란 단어 앞에 갖다 붙인 ‘환상적인’이란 말이 좀 불편하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질책할 명분이 내겐 없다. 삶의 터전을 잠시 저버리고 떠난 여행지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자격으로 서있어야 하는가...
그녀의 철학 이야기
여행 이야기 막바지에 그녀가 토해낸 것은 나라의 철학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철학은 먹고사는 것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안타까움이다. 그 안타까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풍요로움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파이만 키울 것인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함만으로 풀리지 않는, 삶의 바닥 가까이 닿는 문제들이 있다. 이것을 그녀는 돈의 구름 뒤에 가려진 것들이라고 표현한다. 카피라이터답다.
최근에 멕시코 혁명가 마르코스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하나씨와의 인터뷰를 기대했다. 유난히 게릴라들이 많았고 혁명이 많았던 대륙... 그 점에 대해 묻고 싶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무브먼트는 어떤 체제에 맞서는 게 아니라 그 체제에 승복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삶이 곁에서 좋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할 거고 그런 식으로 큰 흐름이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결혼제도나 자식문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아는 게 중요하겠죠.”
혁명 이야기에 이어서 다시 남미사람들의 삶에 대한 철학을 예찬하던 우리는 다시 ‘성실’과 ‘게으름’을 절대 도덕으로 양분하는 세태를 씹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철학적으로도 남미풍이다. 성실함의 지옥에서 재미없게 사는 한국 사람들과 게으름의 천국에서 느긋하게 사는 남미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완연히 후자의 모습이다.
“예전에 느티나무에서 수강할 때 손호철 교수님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남미의 웨이터들은 월급을 주면 그 다음날 출근 안 한다고... 라틴적 삶이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 것이에요.”
추상속의 내일을 위해 구체적인 오늘을 희생하지 않았던 그녀는 최근에 잔고가 0이 된 적도 있었단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열심히 논 만큼, 딱 그 만큼만 다시 일하면 되니까. 놀이와 일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법 없이, 다만 놀이와 일이 서로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그녀의 일상들은 균형을 잡아간다. 그녀가 지닌 이런 유연한 사고는 8할이 엄마 덕분이다.
“유전적으로는 아빠를 닮았지만 전 엄마를 굉장히 존경해요. 제가 자유롭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그렇게 길러주신 것 모두 엄마의 힘이죠. 결혼에 관한 제 입장을 얘기했을 때도 흔쾌히 제 생각을 지지해주시고 이해해 주셨어요.”
엄마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를 부산 사투리로 재연해내는 그녀가 귀엽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를 걸어와 따님이 여태까지 결혼 안 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하면 어쩔거냐고 묻더란다. 어머님이 답하시길 “전화거신 분은 결혼하셨나요? 그러면 결혼 하고 후회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있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어차피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일! 하나뿐인 인생 지가 선택해야지.. 그게 강요한다고 되나요?”
요즘 재미있게 보는 신문 지면이 있다. 그림으로 읽는 철학이라는 코너인데 얼마 전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라는 그림을 철학적으로 소개하던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갖춰야할 가장 큰 능력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 탕자의 등에 얹힌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보라 / 저런 품에 안겨봐야 생을 알게 된다 / 생이란 잘못을 하지 않고 낭비하지는 않는 게 목적임 아님을... 방황하지 않는 게 좋은 게 아님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마다 야단치는 것으로 사랑을 대신하는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 실수하고 낭비하고 방황하다가 기진맥진해졌을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그런 넉넉한 품을 가진 부모. 그녀는 그런 품에 안겨본 듯하다. 그래서 생을 알게 된 듯하다. 그 품 안에서 따스했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가 무엇을 해주어서 가 아니라 부모가 무엇만은 안 했기에 행복한 유년이 있다.
그녀는 올해 36살이 되었다. 아직 미혼이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광고의 카피를 쓴다. 그런 딸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엄마... 어째 평범한 분 같지는 않다.
“굉장히 똑똑한 분이세요. 책을 무척 많이 읽으시죠. 오히려 학문을 업으로 하시는 아빠보다 더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폭넓은 독서 속에서 열린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해요.” 오가는 수다 속에 잃어버렸던 맥락을 드디어 만났다. 인문학!
이제 느티나무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다.
그녀의 느티나무 이야기
준비된 느티나무 공식질문을 길게 던졌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그녀의 철학만큼이나 쿨하고 짧다.
“무슨 특별한 계기나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의식으로 강의를 들었던 건 아니에요. 집이 이 근처라 지나가다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맥주 강의를 하더라구요. 아... 참여연대에서 이런 강의도 하는구나하고 듣게 되었죠. 무척 신선했어요.”
강의를 듣고 좋았던 점, 나빴던 점 혹은 느티나무만의 차별성을 물으니 “특별히 좋고 나쁘고 할 건 없는데... 전반적으로 재미있었어요. 차별성은 다른 기관에서 하는 강의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구요.” 공식적인 질문인데 이래선 안돼요, 하나씨 ㅠㅠ
“전에 느티나무 광고, 홍보 때문에도 여기 관련된 분들과 얘기를 나누어서 그런지 제 스스로가 느티나무 내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음... 저는 일단 그 안에 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맥주 강의나 남미 혹은 커피나 우크렐레처럼 제 관심을 끄는 무언가가 없었다면 참여연대 혹은 느티나무랑은 상관없는 삶을 살았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보면 킬러 아이템이 무척 중요하죠. 그렇게 끌리는 아이템 때문에 듣게 된 강의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강의가 재미있는지 소개도 받고 그러면서 확장되는 것 아닐까요?” 광고쟁이다운 사고방식이다.
이것이 마지막 공식질문 ‘느티나무에 바라는 것’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다. 사람들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편한 주제를 놓치지 말고 가라는 것. 그렇게 사람들을 은근히 불러들이라는 것. 옆구리를 살짝 찌르는 파리 스티커 여기서 또 만나네... 아무래도 ‘넛지’라는 놈 사서 읽어봐야겠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논다
노는 데 고수였던 두 분의 인터뷰이를 만났던 기억도 있고, 더욱이 하나씨의 여행 이야기를 쭉 들어오며 주눅이 든 것도 있고 해서 사실 ‘뭐하고 노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기가 쉽지 않았다. 대답을 듣기 전에 마음의 준비부터 해야 했다.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리라...
“전 시간을 낭비하면서 놀아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일 것이라는 카피, 그거 이제 내꺼다.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별로 심심하지 않아요. tv도 거의 안 보구요. 키우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우크렐레를 한두 곡 치거나 그러는데... 사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건 아니구요, 주로 친구들하고 만나서 술 마시고 얘기하고 놀긴 하는데... 날씨가 좋을 땐 소풍가는 거 정말 좋아해요. 와인하고 담요 챙겨서 친구들하고 공원 같은데 가서 놀아요. 잔디밭에 누워서 책도 보고 졸리면 자기도 하고...” 여기까진 평범하기도 하고 공감도 가고 따라하기도 쉬운데 이 다음이 문제인거다, 내겐.“시간을 낭비하면서 노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품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아껴 쓰고 그렇게 해서 도대체 무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거나 고양이를 바라보거나 친구랑 같이 그냥 시간을 나른하게 보내는 것... 이런 것들이 인생에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하나씨?
“전 어렸을 적부터 쭉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아왔어요.”
뭐하고 노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상처만 받는다. 돌아오는 답변들이 점점 더 강력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자전거 여행이나 영화 만들기는 흉내라도 내 볼 수 있지... 시간을 낭비하면서 노는 건 도대체 어떻게 흉내를 내야하는 걸까? 난 그냥 흘려보낸 시간에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반성도 많이 한다. 그런 시간들이 대책 없이 쌓이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그러면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무언가를 반드시 한다. 그렇게 하는 작업이 독서다. 책이라도 손에 들지 않으면 내 존재와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을 이겨낼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이 아가씨 반응이,
“책을 한 권 사면 대체로 끝까지 다 읽어요. 그런데 책을 여러 권 사면 거의 한 권도 읽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시원하게 웃는다. 예상컨대 그러고도 그녀는 그 책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나라면 눈알이 빨개지도록 읽고 앉아 있겠지... 나완 너무나 다른 무늬를 지닌 그녀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전 그냥 되는대로 살아요.”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은 그래서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녀가 노는 방법과 꿈을 절대로 흉내낼 수 없기에 내게 그녀는 무척 아름답다.
여행할 권리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쯤, 배경음악으로 마침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카페 안에 흘렀다.
나뭇잎은 모두 다 시들고 하늘도 잿빛으로 흐린데
한참이나 거리를 걸었지 어느 겨울날에
평화롭고 따스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L.A.에 있다면 말이야 캘리포니아를 그리네
이 추운 겨울날
그녀는 추운 겨울날 쿠바로 떠났다고 했다. 난 이 추운 겨울날 서울을 떠나 일산 집으로 왔다. 요 며칠 다행히 날씨도 풀리고 해서 더는 캘리포니아도 쿠바도 애태우며 그리지 않았다. 가끔씩 ‘시간을 낭비하면서 논다’는 카피가 관자놀이를 텅텅 쳐댔을 뿐...
연꽃 하荷 아름다울 나娜... 그렇게 또 예상을 벗어나 한글이 아닌 이름, 하나.
차엔 탱고와 보사노바 음악이 흐를 것 같고, 자신이 보고 싶은 건 돈의 구름 너머에 있는 말간 햇님의 얼굴이라는 철학을 지닌,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연애라고 말하는 그녀.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흘려지는 시간 속에 누워 그 흘러감을 그냥 그대로 놔둘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삶을 떠올리며 화장실에 들어가 신문을 펼쳐 든다.
그곳에선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나와 ‘월경할 권리’를 외치고 있다. 생리할 권리가 아니라 여행할 권리를 말하는 거다. ‘그것이 존재의 한계든 국경이든 대기권을 뚫는 로켓의 폭발력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관통해 지난다. 난 그동안 어떤 식의 담이든 벽이든 국경이든 넘어가 본 적이 있는가...
이 변기가 최신형 로켓이 아닌 한 난 당분간 한반도에 있을 것이다. 그게 최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꿈꿀 차례라는 것, 그것만은 확실하다.
P.S.
인터뷰 기사에 ‘추신’이 붙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뒷말을 붙인다. 보통 인터뷰 기사를 마무리 지으면 인터뷰이한테 내용의 적절성을 검열받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하나씨의 의견들대로 다시 글을 고치려다 보니 이 부분만은 수정할 수가 없었다. 아니 수정하기 싫었다. 그 부분이 뭐냐면,
그녀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전 그냥 되는대로 살아요.”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은 그래서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녀가 노는 방법과 꿈을 절대로 흉내낼 수 없기에 내게 그녀는 무척 아름답다.
이 부분을 지워야하는데... 지워내고 다시 써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사실 하나씨가 수정해서 알려준 자신의 꿈은 이거다. “제 꿈은 확고해요.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불행한데 저만 행복하다면 그건 '진짜 행복'이 아니겠죠.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요즘 대세인 마이크 샌델 교수가 말하는 ‘좋은 삶’이 떠오른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건 올바른 삶이 아니라 좋은 삶이다. 하지만 툭 까놓고 말해보자. 올바른 삶도 어렵지만 좋은 삶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옳은 것도 좋은 것도 아우트라인이 분명치 않다는 건 확실하지 않은가? 하여 난 수정 전 그녀의 꿈이 더 좋다. 첫 번째 꿈이 더 쉬크하고 멋지다. 쉬크의 사전적 의미들은 이렇다.
도시적이고........ 쿨하고....... 세련되고....... 모던하고........ 멋지고....... 스타일리쉬하고.....
내 생각엔 이렇게 사는 게 더 어렵다.
그녀는 넉넉한 품에 안겨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살아도 그 삶이 좋은 삶,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을 거라는 걸... 난 믿는다.
민수님~ '고민들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밑의 사진,
하나씨가 공룡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시츄에이션 ㅋㅋㅋ
와우~ 너무 절묘해서 낄낄겨렸어요...
으이구 이 센스쟁이~~~
사진으로 뵈니까 다른분 같으세요...
그리구 첫번째 사진 캡션 성함이 잘못들어간거 아닌가요?
항상 좋은 인터뷰글 고맙습니다 박수석님..
하하 오타가 ^^;
항상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큰곰대장님...
큰 웃음이아니라 키득키득 거리게 만든 영화보느라 인터뷰자리에 깍두기로 못간것 아주 아쉽네여.
남미여행가기전에 우연히 합석할 기회가있어 여행계획듣고 나른한 봄날의 강아지처럼 침만 꼴깍꼴깍 삼켰었는데... 여행후기를 듣고 보니 보헤미안같은 삶이 더 부럽습니다. 인터뷰내용을 읽으며 내가 삶에 대해 어떤 생각과자세로 아이들을 키워내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박수석이 인용한 기사^ 저도 가슴깊이 새겼던 대목이거든요. 하나씨 어머님의 결혼정보회사직원에 대한 맞춤형 대답을 보니 역시 평소에 많은 독서를 통한 수양이 빛을 발하더군요.
나뭇꾼부인 박여사^우리도 느티나무 드나들다보면 내공을 쌓을 수 있겠죠. 수많은 다양한 학인들의 기를 듬뿍받아.... 포기하지 말고 가봅시다. 나만의 삶의 빛깔을 내기위해서...어깨동무하고...
쿨한 인생님... 박여사는 또 뭡니까 ? 안그래도 호칭이 너무 많아 정리 좀 해야할 듯..ㅋㅋㅋ
어깨동무 하고 가자는 말 너무 좋아요^^ 넘어지지 말고 그렇게 천천히 가요!
세계를 <여행의 권리>로 품은 김하나 양
멋지게 연계해 주신 박현아 기자님
두 분 짱이요
일하는 긴장 그리고 시간 낭비의 묘미
훌륭한 철학과 실행에 박수
나무꾼부인의 행복을 향한 노력에 박수
우리 모두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날 수 있어서 감사
저도 선생님을 느티나무에서 뵐 수 있어서 감사해요.
언제나 저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세요.
근데 저도 선생님처럼 나이 먹을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