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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정의란 무엇인가" 수강 후 궁굼한 몇가지..
정의론 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젊은 또는 아직은 나이어린 학생들이 많은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제 "유교의 정의론" 을 들었습니다. 많은 부분을 "맹자"에 대하여 이야기 하셨는데 몇가지 궁굼한 것이
있었는데, 제 성격적인 부분, 시간적인 제약으로 미쳐 질문을 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유치한 질문 일수 있으니, 이해해 주십시요.
1. 맹자 첫장에 맹자와 양혜왕 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양혜왕이 나라를 이롭게할 방책을 물었는데
맹자왈 나라의 이익만 취한다고 타박을 하였습니다. 배경이 전국시대이니, 나라의 존망과 백성의 생사가
달려 있는데, 나라의 이익을 찿고자 함은 당연할듯 합니다. 여기서 "利 " 가 다른뜻이 있는지요 ?
그리고, 경제학 근본은 각각 개인의 사익을 추구함이 결국은 사회 국가의 발전으로 연결 된다는 이론인데
(물론 적당한 사회 국가의 견제를 전제로 합니다만..) , 심성을 전제로한 "관계"를 중시한 맹자 와는 많이
차이가 있는데, 맹자의 다른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 한지요 ? 인간이 "利"를 취하고자 함도 분명히 "善"과 같이
본성 인데, 이것을 긍정적으로 설명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2. 맹자가 이야기한 "仁" 의 주 대상은 일반 백성이 아니고 그당시 일정정도 이상의 교양 또는 학습을 한 대상을
상대로 한것 인지요 ?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만드는 ? ) 방편을 위주로 한것 같아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나누어 놓고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3. 맹자는 백성 즉 "民"의 역활에 대하여 달리 이야기한 것이 있는지요 ? 어제 강의로는 백성의 역활, 권리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느끼지 못 했습니다. 물론 맹자는 하,은,주 의 뒤집기를 용인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백성의
민의라기 보다는 그들끼리의 리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조선은 유교의 국가 라는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유교의 해석 방법으로 인하여 치열한 논쟁들도
여러차례 있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거의 "仁" 이나 "禮" 에 대한 논쟁 이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유학자를 배출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교의 근본을 소통,관계,교감 으로 보았을때
조선의 유학 또는 논쟁은 그들 사대부만의 유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성을 위한 유교 또는 실천적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입니다. 물론, 500년을 이어온 왕조가 없었다, 또는 일부 토지개혁
시도등도 이야기 하나 이또한 "民"을 위함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차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를
겪게한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문제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어떤사람은 한비야와 같이 지구 밖으로 행군하고, 서울 한강 옆에서 살면서 낙동강 걱정도 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바다건너 다른 나라에 인권 또는 생존에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 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인간은 항상 부족 하지요. 특히 돈에 대해서는 한계효용이 체감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도 합니다.
내가족 (家) 를 충족하게 되면, 다음은 사회(社) 에 도움이 되게하고 사회가 충족되면 , 그다음이 국가 이런 단계라
하셨는데, 충족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고, 어떤 제도없이 다음 단계인 사회 국가로 갈지 의문 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가족 구성원 으로써의 인간, 사회인 으로써의 인간, 국민으로써의 인간 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맹자님께서 이런 시스템 제도적인 부분을 따로 말씀하신것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래 저래 글이 길어졌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강의 들의면서 궁굼했던 것을 정리해 봅니다.
강의를 수강하시면서 든 생각들도 나눠주시고, 또 이렇게 좋은 질문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을 정리해서 선생님께 보내드리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답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와 생각해 보지 못한 여러 지점들을 질문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답변도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