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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그냥 그녀는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다
2011. 1. 26. 수요일. 종로구청 앞 12시. 조은미씨.
수첩에 적힌 일정을 점검하고 출발. 약속한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
최저온도 -11℃. 추위 속 기다림은 더디다. 대충이라도 바람을 막고 햇빛을 쬐야 한다는 일념으로 구청 입구 계단 구석에 숨는다. 추워도 끼니는 챙겨야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 그 속에서 난 오늘 만나기로 한 조은미씨를 찾고 있다. 참, 얼굴을 모르지... 무모한 일인 줄 알면서도 내 눈은 여전히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응시한다. 둘러보니 이 계단엔 나 말고도 약속한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담 더더욱 얼굴도 모르는 나를 알아채기 위해 보낼 작은 신호를 놓쳐선 안 된다.
춥다.... 그러나 그 추위를 누르고 올라오는 이 흥분은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의 거리 약속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낯선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일. 기다림의 지루함을 무마시킬 따스한 차 한 잔 혹은 책 한 권 없이, 하필 이어폰도 안 챙겨 와 mp3도 물건너 가고... 어쩐다? 추위 속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이게 진짜 기다림이구나싶다. 딴 거 안 하고 오로지 기다리는 것만 하는 기다림. 저 인파 속에서 누군가 낯선 얼굴이 걸어 나와 내 이름을 불러 줄 그 한 순간만을 향하는 이 시간들이 나를 흥분시킨다.
“혹시... 박현아씨?....”
두 사람 사이에 펄펄 끊는 김치찌개가 놓인다. 태어나 처음 만나 곧바로 시뻘건 김치찌개를 함께 나누는 사이... 이런 인터뷰 자리가 아니었다면 평생 내게 없었을 그런 만남이다.
“죄송하지만 뭐하시는 분이시죠? ... 아, 그럼 그 전엔 무슨 일을? ... 아이는 있으시구요?”
조은미씨를 인터뷰하러 간 건 나인데 이런 질문들이 내게 쏟아진다. 서로 첨이다 보니 사실 양쪽이 다 서로에게 궁금하다. 서로의 신상정보가 소박하게 오간다. 식사 후 곧바로 이어질 인터뷰 시간을 생각하면 절실하기도 한 대화이다.
직업도 NGO, 취미도 NGO
국경없는 의사회 스위스 섹션 한국사무소 사무국장. 오늘 내가 만난 이의 공식 직함이다.
길다. 긴만큼 멋지다. 그 멋진 직함에 걸맞게 목소리마저 또랑또랑... 또랑한 목소리로 들려 주는 또박또박한 이야기들...
“NGO에서 일하기 전엔 평범한 직장생활도 했어요. 그러다가 국경없는 의사회에 들어와 일했고.. 그러다 또 일반직장으로 옮겨 일했는데 다시 국경없는 의사회에 재입사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죠.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한 건 다 합쳐 4년쯤 되는 것 같아요. 남들이 이런 제 경력이 좀 독특하다고들 하더라구요.”
![_eunmi2.jpg](https://pspd-www.s3.ap-northeast-2.amazonaws.com/Academy/Together/Together_6276fc14526d07.82033757.jpg)
가운데가 조은미님
내 눈에 독특한 건 그녀의 이런 직장 이력이 아니다. 직업이 NGO임에도 일과 외의 개인적인 시간들을 또 다른 NGO에서 보낸다는 것, 무척 남다른 여가 활동이다. 직업도 NGO, 취미도 NGO...
“환경운동연합에서 회원이자 자원활동가로 일한 건 한 15년 정도 됐어요, 주로 국제연대 관련 일들을 열심히 했구요. 제가 처음 환경운동연합에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갔을 땐 그 분들도 자원활동가들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잘 모르실 때였죠. 우리나라에 NGO라는 것도 무척 낯설 때였고... 새만금 관련 행정재판 때엔 관련 서류들을 번역하는 일도 하고 직접 재판을 방청해 보기도 했어요. 현장성이란 게 어떤 건지를 느낄 수 있었죠. 엠네스티 회원활동으로는 2-3년 정도 됐구요, 주로 외국인 그룹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죠.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무엇보다 보람된 건 좋은 사람들과 맺게 된 인연들이에요.”
자연의 혜택으로 가득찬 유년기
인터넷을 뒤져보니 환경운동연합의 설립연도가 1993년으로 나온다. 17년의 역사를 지닌 단체에 15년 경력의 자원활동가라... 놀랍다. 그녀의 고운 얼굴 어디에 선구자와 개척자의 흙내를 동시에 풍기는 강인함이 숨어있는 것인지... 엇비슷한 연배임에도 이제 막 자원활동가 경력 2년 정도인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녀의 활동사에 주눅이 든다. 늘 세상에는 앞서 걷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발자국을 되짚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앞서고 뒤섬이 뭐가 중요하겠느냐고 자위를 해 보지만 입맛은 텁텁하기만 하다.
그녀와 난 같이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다. 시대정신이라는 놈이 시쳇말로 개고생하던 그 시절, 그녀는 운동권학생도 아니었단다.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벅찬 나날들, 먹고사는 문제만 도드라지던 스물 살 언저리의 이야기들 안에서 그녀는 어떻게 걸어 나와 사람들과 세상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아들 지우와 함께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요. 제 유년기는 자연의 혜택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운동연합이라는 단체를 찾아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문제에 허덕이는 일상들이지만 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도 내 안에 있으니까요. 환경이라는 이슈가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도 참여하는 데 부담이 좀 적었구요.”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평소 소신을 지닌 나로선 과연 환경문제가 정치에서 얼마나 빗겨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주위 시선 때문에 월간 <참여사회> 수령지를 회사에서 집으로 바꿨다는 솔직한 대목에 이르자 난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삶의 많은 부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삐걱거려서 우리의 정체성은 사람이다.
“가끔 아들과 함께 가는 제주도는 이제 제게도 방문지 같은 곳이 되어버렸어요. 자연들도 예전과는 같지 않지요. 가도 주로 제주시의 아파트에 머무르게 되고... 근데 살짝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 건 사실이에요.”하면서 그녀가 내놓는 얘기는 제주사람이라면 잊힐 리 없는 4.3. 이야기이다.
"저와 함께 제주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박사 논문 주제로 제주 4.3.을 쓰더라구요. 그 글을 읽으며 과거의 일이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고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 슬프고도 질긴 것들을 보게 되었어요.”
공부를 통해 세상을 향한 더 예민한 촉수를 갖는다
현직으로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조직 내규 상 직무에 관한 일들을 얘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에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직업이자 취미생활인 NGO 활동만으로 바쁠 텐데 참여연대 느티나무 강의로도 그녀의 일상은 꽉 차 있다.
“아카데미에서 여러 강의들을 들었죠. 최근에는 비극의 이해를 들었구요... 주로 인문학 강의였어요. 느티나무 강의는 몇몇의 카테고리에 치우치지 않고 넓게 분포되어 있어 수강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 준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제가 인문 쪽으로 편식하는 경향이 없진 않지만 앞으로도 계속 인문학 강의들이 이어지면 좋겠어요.”
워킹맘으로서도 팍팍한 하루하루들일 텐데 강의까지 들으러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우문에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 욕심은 참으로 부지런한 욕심이다. 한 주 스케줄을 짜며 강의를 저녁 시간에 배치해 넣을 때 꼭 아들의 의사를 묻는다는 그녀, 엄마로서의 욕심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바쁜 와중에도 굳이 강의를 듣는 건 배우는 것이 정말로 즐겁기 때문이에요. 이번 비극 강의만 해도 들으면서 너무 즐거워 바쁘게 사는 친구 한 명도 데려다가 참여연대 회원 가입도 시키고 강의도 듣게 했죠. 언젠가 저한테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건 뭐랄까... 나의 삶과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더 잘 느끼기 위한 성감대를 예민하게 하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이런 공부들을 통해 더 예민해진 촉수를 가지고 세상에 나갈 때 내 삶에서 뭔가 변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비극강좌 마지막 시간, 뒷풀이에서 진영종 교수님과 함께 머리에 상추를 꼽고 찰칵!
그녀는 이 대목에서 인문학이 지닌 우회의 힘을 이야기한다.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것, 사회참여라는 시민의식을 키우는 것은 거창한 구호들이나 정치적 캠페인들 혹은 관련된 분야의 지식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이럴 때 인문학은 꼭 변기 속에 붙여놓은 파리 스티커의 모습이다. 우리의 굳어진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인문학...
그렇다면 느티나무의 인문학은 그녀의 어디를 슬쩍 찔렀을까?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그런데 NGO활동 하면서 성격이 서서히 바뀌더라구요. 저번에 느티나무에서 강의를 들을 때는 서포터즈 역할까지 맡게 되었어요. 남들하고 소통을 잘 할 것 같다면서....”라는 답변을 들으니 인문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대견하다.
느티나무 공식 질문이 하나 더 남았다. 많은 시민교육 강좌들 속에서 느티나무만의 차별성이라는 건 과연 뭘까?
“강의의 내용보다도 강의를 이끌어 가는 방식에 참여연대만의 독특함이 있는 거 같아요. 강의에 오는 수강생들을 맞아들이는 방식이라든가 강의의 시작과 끝맺음의 방법도 열린 형식이구요... 강의가 끝난 이후에 수강생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자세도 보이고... 이렇게 수강생들 인터뷰도 하고... 전체적으로 느티나무는 강의별로 분절되어 있다는 느낌보다 서로 섞이고 소통하고 통섭을 추구한다는 느낌이 강해요. 시민들 속으로 더 깊고 가깝게 다가가려 한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 차별성이 아닐까요?” 직장인들을 위해 굿모닝강좌로 기획된 강의들이 오후에도 개설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이제 진짜 내 차례다. 앞으로 수강생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내가 꼭 물어보겠다고 다짐한 그것! “뭐하고 노세요?”
뭐하고 노세요?
6mm영화를 만들었다, 친구들 하고.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이름을 빌려 와 제목은 ‘에밀리를 위한 장미’. 지인들을 불러 놓고 보여주고 싶어 환경운동연합 마당을 빌리고 초대장도 직접 만들어 보냈다. 그녀는 이렇게 논다.
아! 영화를 만들며 노는구나했더니 손사래를 치는 그녀. 그래서 영화도 만들며 노는구나로 정정한다. 어째서 난 내가 따를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들만 줄줄이 인터뷰하는 것인지. 저번 인터뷰이는 직접 조립한 자전거로 일본 여행을 다녀오며 노시더니...
이런, 나도 이제 좀 더 열성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놀아야겠다.
꿈이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물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는 답을 들으며 찻집을 나왔다. 문 밖은 여전히 춥다. 겨울을 좋아하는 계절로 꼽는 사람들이 자주하는 말은 차가움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이다. 그 말이 오늘 인터뷰이와 닮았다. 나이 들어감과 상관없이 전체적인 삶이 적당한 탄력으로 꾸려진다. 눈도 오지 않고 너무 추운 날의 겨울 하늘들은 대체로 맑고 끝까지 투명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가 내게 보인 눈빛도 그러했다.
준비해간 질문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녀의 대답들도 차례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난 그 답들과 상관없이 그냥 그녀가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바람을 피해 계단의 구석으로 찾아들던 나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겨울 거리를 동동거리며 지나던 사람들처럼 그녀도 그렇게 자신의 삶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사는 거라고... 인생의 어느 지점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거듭해서 묻고 알고자 했던 내가 좀 한심했다. 자연이 가득 채워준 유년기를 보내 삶을 긍정하는 에너지가 다시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넘치는 그런 본능적인 삶을 살아왔을 그녀... 굳이 계기 따윈 없어도 좋았을 것이다.
추위에 몸이 또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빨리 택시를 타야한다. 그 따스한 공간 안에서라면 그녀가 말해준 너른 들판에 만발한 제비꽃들, 그 위를 뒹굴며 누렸던 늦은 오후 낮잠을 나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의 남루함까지도 뒤덮는 자연의 위대함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모두가 다 같이 가난한 게 낫다는 그녀의 말에도 더 진한 공감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난 지금 너무 춥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시민기자로 위촉한 박현아씨의 인터뷰기사가 2월부터 한달에 두번 정기적으로 실릴 예정입니다. 박현아씨는 2009년 3월 느티나무가 새로 오픈할 무렵부터 자원활동가로 여러 교육의 진행을 도왔습니다. 그밖에도 다른 느티나무 교육에 수강한 동시에 느티나무 교육에 대한 모니터에도 열심히 활동해왔습니다. 예쁜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박현아씨. 그의 글솜씨에 반해 느티나무 실무진은 박현아씨에게 시민기자로 활동을 부탁드렸습니다. |
수석 자원활동가에 이어 시민기자란 타이틀^^멋지네요.
느티나무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인터뷰이구요.
같은 목적지를 다른 방법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재미도 있고 가슴도 울립니다.
"뭐하고 노세요" 라는 질문은 평범하고 식상해보이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라 생각됩니다.
도착점도 잘 모르고 질주하는 우리들에게 속도를 줄일 순간을 줄수 있으니까요
계속 이어질 인터뷰가 기대됩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시공간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P.S. 방해되지 않으면 인터뷰할때 현아씨 핸드백 들어주면 안될까?? 현장이 궁금하거든요 ㅋㅋ
역시 댓글 달아주시는 데는 맘이 넉넉한 우리 쿨한 인생님 밖에 없어요 ㅠㅠ
헉.. 근데 그럼 제게도 조수가 생기는 건가요...
이건 너무 초고속 승진인데요..ㅋㅋㅋ
근데 어쩌나... 전 핸드백이 없는데...호호호^^
수석에 기자까지.. 겸직으로 바쁘시겠습니다.
축하드려야 할 일이죠? 그나저나. 김치찌개가 인상적입니다. ㅎㅎ
푸하하하하하 빵 터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에는 김치찌개 먹으러 가요! ^^
축하 인사 정식으로 접수합니다.
겸직해서 바쁘긴 한데 쩝~~ 쌀독에 쌓이는 건 없네요 ㅎㅎ
명함 나오면 일빠로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