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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곡선은 과연 하향일까?
평소에 갖고 있던 의문점들을 몇가지 적어보았읍니다.
밑에서 존칭은 생략하였읍니다.
궁금한 것이 많다 보니 글도 길어졌네요. 죄송^^
1.수요곡선은 하향이라는 주장에 대한 의문
a) 수요곡선의 존재
우선 한 시각에서 개인별 수요곡선이 존재한다는 논리가 상식에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상품의 가격들이 변하면 그 가격들에 대해서도 나의 수요가 변할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나 자신은 그 가격들에 대한 나의 수요를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다. 나도 나의 수요 곡선을 모른다. 현재 모바일 가격이 50만원이면 1개 , 10만원이면 2개라고 나의 수요곡선이 있단 말인가?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러므로 수요 곡선이란 개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b) 개인 수요곡선은 하향이다
위의 논의를 차치하고 개인의 수요곡선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개인의 수요곡선이 하향일까? 즉 한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비싸지면 , 내가 그것을 구매하려는 의사가 없어지는 것일까?
물론 이런 경우도 왕왕 있다. 가격이 내려가면 하나만 사던 것을 2,3개 사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집을 사려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집을 사는 것이 돈을 버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값은 positive feedback 작용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올라갈수록 집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났고 , 수요가 더 늘어날수록 집값은 상승했다.
값이 내려가면 그것의 질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 그것을 구매하려는 의욕이 삭 없어지는 경우를 왕왕 경험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를까?
또한 값이 내려가면 , 그것을 구매하는 나도 “인격(품격)”이 덩달아 내려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친구는 비싼 시계를 차고 다니면 , 저렴한 시계를 구매하려던 충동이 찬물 세례를 받은 것처럼 사라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c) 시장 (사회) 수요 곡선은 하향이다?
개인들의 수요 곡선은 전부 다 하향이라고 가정한다고 하여 시장 수요 곡선이 하향이라는 결과가 이론적으로 도출되는 것일까?
전체=부분들의 합이라는 명제가 이 경우에 과연 참일까?
사회적 수요는 개인 수요처럼 하향곡선일까? 부분들인 개인 수요들은 하향인데 , 전체인 사회 수요도 하향일까? 전체인 사회 수요는 각 부분들인 개인 수요들이 갖고 있는 성질과 전혀 다른 그런 성질을 발현시킬 수 있을까?
즉 사회적 수요곡선은 그 사회의 대표자의 수요 곡선과 같은 모양일까?
SMD정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이 문제는 SMD(Sonnenshein -Mantel-D듁뎌) 정리에 의해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 결론은
“첫째, 선호들이 상사(homothetic)이고 소득분포가 가격에 독립적이면, 시장 수요 곡선은 소비자 수요 곡선의 모든 성질들을 갖는다. 2번째로 , 일반적(특히 비상사적인) 선호들에서는 소득분포가 고정되어 있더라도 , 시장 수요 곡선은 소비자 수요 곡선들을 특징짓는 고전적 제한 조건들을 결코 갖지 않는다. 위 결과들의 함의는 분명하다: 시장 수요 함수가 한 소비자 수요 함수의 특성들을 갖기 위해서는 강한 제한조건들이 필요하다. 특별한 경우에만 경제는 ”이상적 소비자“처럼 행동할 것으로 기대된다. 효용 가설은 추가적인 조건들이 없으면 시장 수요에 관하여 우리에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Shafer& Sonnenschein)
여기서 “강한 제한조건”이란 똑같은 클론들이 상품들을 소비하는 사회를 말한다.
“ 합(aggregation)의 가능성으로 이끄는 2가지 기준들이 고려된다.:1)동일한 선호들(그러므로 동일한 수요 함수들) 2)비례적인 소득들”(Chipman1974)
이 가정들은 SMD(Sonnenshein-Mantel-Debreu) 조건이라고 불린다.
사회의 모든 개인들은 똑같은 클론들(스타워즈? 아이 로봇?)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한 , 수요 곡선은 하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d) 현실에서는 수요곡선은 하향일까?
다음 기사(nakedcapitalism 의 Yves )(http://www.nakedcapitalism.com/2011/07/the-sorrow-and-pity-of-economists-not-learning-from-their-mistakes.html )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부를 번역하면
“그러나, 경제학에서 무엇이든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실제로는 어렵다. 사실상, 몇몇 근본적인 구성물들은 믿음 위에 취해진다. 경제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이미지: 하향하는 수요곡선과 상향하는 공급곡선를 보자. Deidre McCloskey는 그 관계를 증명하려는 통계적 시도들은 혼합된 결과들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낮은 가격이 더 많은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만이 아니라, 더 높은 가격이 더 많은 수요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질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
But it is actually difficult to prove anything conclusively in economics. In fact, some fundamental constructs are taken on what amounts to faith. Consider the most basic image in economics: a chart with a downward sloping demand curve and the upward sloping supply curve, the same sort found in Krugman’s diagram. Deidre McCloskey points out that the statistical attempts to prove the relationship have had mixed results. That is actually not surprising, since one can think of lower prices leading to more purchases (the obvious example of sales) but also higher prices leading to more demand. Price can be seen as a proxy for quality.)
e) 개별 공급자에게는 자신이 공급을 늘리거나 줄여도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한 공급자가 공급하는 물량은 전체에 비해 무한소라고 생각할 수 있음으로 , 그 가격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임의적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 공급량이 적다고 하더라도 가격도 그만큼 적게 변해야 한다. 다음과 같다.
만일 공급곡선이 상향이라면, 예를 들어 f(x)=1/x (x:수량 , f:가격)이라면 , Δx 만큼 수량이 변하면 가격은 Δy 만큼 변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대의 가격곡선은 Δy/Δx 만큼의 기울기를 갖는 직선으로 보이게 된다. 그런데 Δx 가 무한소(infinitesimally small)라고 가정했음으로 , 공급자에게 그 가격곡선은 정확히 접선으로 보인다.(제1차 선형 근사)
f) 한계 비용 곡선은 상향이다 ? 그러므로 평균 비용 곡선은 U-자 형이다?
Steve Keen ( http://en.wikipedia.org/wiki/Steve_Keen )의 주장에 따르면, 한계비용곡선은 U-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도 실제 경험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책(“debunking economics” , http://www.amazon.com/Debunking-Economics-Revised-Expanded-Dethroned/dp/1848139926/ref=sr_1_2?s=baby-products&ie=UTF8&qid=1310103425&sr=1-2 )dp 나온 경제학자의 농부와 스라파 농부를 보면
**스라파의 주장
:회사들은 한계수확이 체감하기 시작하기 전까지인 최대 생산성에서 생산할 것이다.
:가변 인풋이 어떤 아웃풋 규모에서 한계 수익이 증가한다면 , 농장 또는 공장 주인은 몇몇 고정 자원들은 놀리고 , 고정 자본의 일부에서만 가변 인풋을 최대 효율로 가동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 100 에이커의 밀밭
1헥타르 당 노동자 1명은 1헥타르 당 1부셀의 밀 아웃풋
1헥타르 당 노동자 2명은 1헥타르 당 3부셀의 밀 아웃풋
1헥타르 당 노동자 3명은 1헥타르 당 6부셀의 밀 아웃풋
1헥타르 당 노동자 4명은 1헥타르 당 10부셀의 밀 아웃풋
1헥타르 당 노동자 5명은 1헥타르 당 12부셀의 밀 아웃풋
100명의 일꾼에 대해
경제학자의 농부:
100명을 각자 1에이커씩 할당하여 100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
스라파의 농부: 25에이커의 밭에 1헥타르 당 4명씩 배치하여 총 250 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75에이커의 밭은 놀린다.
200명의 일꾼에 대해
경제학자의 농부:
200명을 각 2면씩 1에이커씩 할당하여 300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
스라파의 농부: 50에이커의 밭에 1헥타르 당 4명씩 배치하여 총 500 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50 에이커의 밭은 놀린다.
400명의 일꾼에 대해
경제학자의 농부:
400명을 4명씩 1에이커씩 할당하여 1000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
스라파의 농부: 100 에이커의 밭에 1헥타르 당 4명씩 배치하여 총 1000 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75에이커의 밭은 놀린다.
이 경우는 같은 산출량이다.
500명의 일꾼에 대해
경제학자의 농부:
500명을 5명씩 1에이커씩 할당하여 1200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
스라파의 농부: 100 에이커의 밭에 1헥타르 당 4명씩 배치하여 총 1000 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25에이커의 밭은 임대하든지 새로 매입하여 나머지 100명을 25 에이커의 밭에 배치하여 추가로 250 부셀의 밀을 생산한다.
결론: 경제학자 농부는 한계 수익이 체감하여 한계비용과 같아질 때가지 생산한다. 경제학자 농부의 한계비용은 U자 모양이 된다. 한계 생산은 증가하다가 감소한다. 그러므로 한계비용은 감소하다가 증가하는 U자가 된다.
반면에 스라파 농부의 한계 비용은 일정하다
스라파 농부는 한계수확이 최대가 되는 점까지 생산한다.
항상 스라파 농부가 더 많은 이익을 낸다.
2. 민주주의는 공공재이다?
민주주의나 시장 경제는 그 안에서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교환되는 하나의 틀(프레임)이 아닐까?
인간 사회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간에 조직되어야 하는데. 시장과 민주주의는 그런 틀이 아닐까?
즉 재화와 서비스는 시장과 민주주의보다 하위 개념이고 , 그 틀 안에서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 분배되는 것이 아닐까?
공공재란 개념은 그러므로 시장과 민주주의 같은 상위개념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일 아닐까?
민주주의는 재화도 서비스도 아니고, 그러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이 아닐까?
3. 시장의 기원은 물물교환이다?
독일의 역사학파는 시장과 돈은 물물교환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의 돈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money )의 일부를 보면
“비-화폐 교환 :물물교환과 선물
통속적인 관념과는 반대로, 물물교환에 주로 의존했던 사회나 경제에 대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 않고, 비-화폐 사회들은 주로 선물 경제학 원리를 따라서 운영되었다. 물물교환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그것은 보통 완전한 낯선 자들 또는 잠재적인 적들 사이에서였다.
.......돈의 출현
교환수단의 부재했기 때문에 , 비-화폐 사회들은 주로 선물경제학 원리 위에서 작동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상품경제에 기초한 대규모 경제를 발전시켰다. 바빌로니아와 그 이웃 도시국가들은 빚, 법적 계약에 관한 규칙들 그리고 사업과 사유재산에 관련된 법 코드들의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초기의 경제학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화요일(5일)시작된 정태인의 착한 경제학 강의에 대한 질문을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 강의에서 답변이 될 수 있도록 선생님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