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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선생님 강의 후기...
1. 정말 듣던 대로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으시고 언어구사력도 뛰어나셔서 듣는 내내 부끄럽고 민망하고 주눅들고 그렇습니다. 강의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번뜩이는 위트들, 특히 살짝 안타까운 듯 말 꼬리를 흘리시며 언급하고자 하는 사람의 인간적 약점을 짚으실 때를 보면, 역시 웃음의 코드는 유럽이나 우리나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2. 역사를 몇몇 위인들의 행위, 정책, 정치적 언사들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의 역사보기가 이렇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지식인들의 대외 관념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담론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쳤는지가 시대를 더욱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3. 담론이 현실을 구성한다는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지식인들의 짧은 견문과 풍문들을 통해 구성된 담론이지만 100년의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은 것을 보면 이쯤되면 우리에겐 현실이다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그렇지만 거꾸로 그런 담론이 현실적 요구에 대한 반영으로 구성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100년도 훨씬 전의 사람들의 절실한 요구가 그런 담론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구한말이나 대한민국이나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본이라 여기는 것은 여전히 근대국가, 선진국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20세기에 살고 있고요.
4. 그럼 우리는 어떤 관점에 따라서 러시아, 중국의 역사, 사회를 보아야 하는 걸까요? 지금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는 프레임이 20세기적 유물이고, 어떻게 보면 강대국들의 침략적 진출의 근본이 되었던 관념들이라 이제는 폐기처분 되어야 할 것들이라면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가 평화, 반전, 자유, 평등, 생태, 생명 등이라면 이런 가치에 비춰본 러시아와 중국은 어떤 가요? 그런데 이렇게 따져도 러시아나 중국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러시아나 중국은 정말로 부정적인 것들만 잔뜩 있는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구한말, 식민지 지식인들처럼 그들이 세계 문명사에 남긴 큰 족적을 찬양해야 할까요? 이 둘을 절충할까요? 그런데 진짜 그들이 어떤 모습이란 걸 과연 알 수는 있을까요? 오로지 담론만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