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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인들과 함께 한 '바깥세상' 보기
의류매장을 찾아 쇼핑을 하는 이들의 지갑은 매장의 ‘조명’과 ‘거울’에 의해 열려질 때가 많다.
피부색이 너무 칙칙해 보이지는 않는지, 몸매의 약점은 제대로 커버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가’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명’과 ‘거울’은 ‘객관적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미 15도 정도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전신거울에는 당신의 하체가 실제보다 길게
비추어지고 있을 것이고, 조명 역시 당신을 더욱 생기 있어 보이게 하도록 설정되어 있을 테니까.
이렇게 공공연한 거짓말, 혹은 ‘내가 보고자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들은 도처에 숨어있다.
2002년 한국땅을 뒤흔들었던 “대~한민국!”. 당시 우리는 ‘한국’이라는 우리의 집단적인 자화상이
세계에 얼마나 멋지고 또 정열적으로 비춰지고 있는가에 스스로 환호를 보내며 ‘멋진 우리’라는
이미지에 도취되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정말 그렇게 멋지고 대단한가, 혹은 봐줄 만 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외신을 인용하고 바깥의 시각을 의식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가
이토록 어렵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타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렌즈, 어떤 거울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근대 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라는 박노자 선생님의 강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로만 인식되던 러시아가, 한편으로는 세계최고의 군사기술을
보유한 '열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남양 원주민들과도 같은 '오랑캐'로, 근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혁명을 꿈꾸게 하는 '세계의 중심'으로, 그리고 백계노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애수에는 ‘우리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는 다양한 면모를 가진 나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너무나 오랫동안 철저한 위계질서에 따라온 한국인의 세계관에 멋지게 균열을 일으켜준 러시아라는
나라를 통해 그렇듯 다양한 면모를 지닌 상대를 만나면서 근대 한국인들이 느꼈을 당황감, 우월감, 두려움
등의 감정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근대 지식인들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점에서도 수업을 듣는 재미가 각별했다.
미국 유학시절 노예들이 영어를 할 수 있으니 그들은 행복하겠다는 일기를 적었다는 윤치호의 일화나,
시베리아를 원시적인 공간으로 묘사한 백신혜와 이광수, 슬픔에 찬 백계노인들을 ‘유럽 안의 조선인’으로
묘사한 이효석, 러시아 여행 당시 지갑을 잃어버린 데다 형편없는 수준의 호텔에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적어도 러시아에선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고 회상한 의사 오금선, 그리고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을 동경한
수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실 때마다 떠오르던 박노자 선생님의 미소가 어찌나 귀여우셨는지
선생님이 선물보따리 대신 이야기 보따리를 짊어지고 오신 산타클로스로 보였을 정도다.
2강 중국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이름 때문에 독립운동과 큰 관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 <독립신문>의 특기가 ‘중국 때리기’라고 표현하신 부분이었다. <독립신문>이 말하는 ‘독립’은
아마도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선생님 말씀에는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우리 역사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가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계급갈등을 종족갈등으로 포장했던
동반작가들에 대한 말씀이나 중국의 혁명에서 조선의 미래를 보려고 했던 당시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혁명의 아지트이자 아시아의 영화산업의 작은 우주였다는 상해라는 공간을 상상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수업이 끝날 때가 되어있으니 2시간 반 남짓한 수업시간이 어찌나 짧게 느껴지든지,
이제 남은 산타클로스의 이야기보따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또 어찌나 아쉽게 느껴지는지.
하지만 선생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수많은 나라에서 보내온 가공되지 않은 유리로 가득한
스피노자의 다락방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렌즈를 연마해서, 그 렌즈를 통해 바깥세상을 보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왜곡 없이 너와 나, 우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면을 통해서라도 계속해서
선생님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멋진 강의를 준비해주신 박노자 선생님과 참여연대 느티나무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