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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선생님의 <근대 한국인의 바깥세상 보기> 강의 후기 입니다
아직 가장 기대되는 3강이 남아있지만, 이번주 목요일까지 올려야 한다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써봅니다.
1, 2강을 들으면서,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국사교과서에선 도대체 왜 이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지 않았었나,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역사인식도 깊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적어도 국사시간에 엎드려 조는 경우는 줄어들었을 텐데요. 아무튼 100여년을 거슬러올라가는 재밌는 강의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처럼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일본 3.11지진이후 사회지도층이 주도하는 내셔널리즘과 이슬람세력을 적대적 세력으로 놓는 배외주의적인 정책이 만연하는 현 상황에서, 타자의 설정이 여전히 국민정체성을 가름하는 주요한 요소임은 틀립없는 것 같습니다. 또 그것이 쉽게 군사화 논리로 빠져드는 것을 목격하고 있고요.
몇 달전 <한겨레 21>에서 읽었던 기사가 기억나네요. '황해'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글이었는데요, 관련한 대목이 있어서요.
"1990년대 초반까지 만주는 고대사의 영지나 독립운동의 본영으로 인식되는 민족주의적 상상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이 밀려 들어오면서 만주는 '누군가 실제로 살고 있는'현실의 공간이 되었다. 중국동포에 대한 감정도 초기엔 동포애를 투사하는 이가 많았지만, 국내 노동시장의 일정 하부를 점하고 2007년 방문취업제 실시 뒤 이주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동포에 대한 오리엔탈리즘과 인종 혐오가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인구통계에서 보면 전세계적으로 이민과 이주가 매해 급증하고 있다고 하고, 또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와 민족통합, 탈민족 이데올로기가 담론화 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경쟁'이라는 이해관계를 기초로 한 배타적 인식구조의 틀은 여전히 대상과 내용을 바꿔가며 존속하고 있네요. 철저하게 자본주의 '국민화'된 이래, 혈통주의에 근거한 '민족'마저 철저한 타자화되는 익숙한 장면으로 보입니다.
1. 타국에 대한 인식은 자국, 자민족의 특수한 삶의 모습 속에서 사회적,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을 비교하는데서 자연스럽게 출발하지않나요, 그런데 근대 한반도인들이 당시 처한 정치적 환경속에서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강대국들의 전쟁과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인한 배타적, 군사적 민족주의와 식민정책 아래 이루어진 의식화 교육은, 실제로 식민조선인들이 타국의 사정에 밝던 밝지않던 자율적 시각으로 외부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고요. 즉 정치적 주체로 스스로를 상정하고, 타자에 비춰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며 집단적/민족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계기(단지 민족에 대한 강한 귀속성을 넘어서)로 갖기엔 그 시야와 경험이 식민-피식민의 구도속에서 크게 한계지어졌던 조건도 분명 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2. 문학작품 혹은 기행형식의 소개서에 드러난 조선 지식인의 특정국가의 인상, 이미지는 선망과 생경함, 낭만화라는 직관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적 차원에서는, 그들의 주된 관심이 조선의 항로과 관련된 새로운 사회체제나 대안 정치질서에 대한 모색이었기에, 조금 더 객관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외부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간의 위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자국의 정치적 지위를 상정하는 세계질서관은 무엇보다도 불평등한 '국력'이라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조선의 생존과 국가로의 성장을 위한 외교적 관점이 타자와의 관계설정에서 중요한 잣대로 등장했을테지요. 개화와 개방은 한편으론 강요된 것이었지만, 민족과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독자적인 힘을 갖추기 위한 일환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어쩌면 타자가 속한 공간, 시선에서 자기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외부세력인 타자에 대한 존중과 진정한 수용와는 별개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동학, 갑오농민전쟁 등 사회주의적 성격의 혁명과 봉기의 시도는 자율적으로 사회체제를 재구성하려는 아래로부터의 근대적 시도였는데, 이러한 민중적이고 자주적인 근대 지향성이 대한제국말기와 식민지를 거치며 추진체와 방향을 둘 다 잃고 단절된 건 왜일까요? '러시아'관에서 설명들었듯이 전근대의 야만적, 후진성과 서양문명을 대비시키는 사대적 인식을 기초로, 식민모국에서의 경험들을 통해 근대 세계에 대한 관념이 고착되었고, 민족어와 애국심이 국민적 정체성의 핵심을 차지하면서 계급담론이 형성될 기초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20세기 초의 러시아, 중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지식인 외에 접할 기회가 없었고, 사회주의가 항일독립운동과 결합되어 조선인들의 주권과 독립의 문제를 보다 혁명적으로 이끌어가기위해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계급모순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들과의 연대(특히 대중적 차원)는 다소 요원했던 것처럼 생각됩니다. '연대'라는 것이 실질적인 교류를 통한 상호인식의 교차점을 확인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힘을 갖는 단어라는 점을 상기하면 말입니다.
4. 2강에서 받은 참고자료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국제주의적, 연대주의적 접근의 시도들도 우리가 새로운 동아시아적 연대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상호 타자화 극복, 탈 경계적 연대를 모색하는 이들에게는 지금도 1920-30년 좌파들의 국제주의적 시도들이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국가들의 연대는 이 국가들의 공통기반(결국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역사적 시공간을 뛰어넘어 참 어려운일처럼 보입니다,. 특히 식민지시절 이식된 일제의 잔재는 한국사회의 언어와 지식, 학술의 전통, 헌법, 사회조직까지 깊이 박혀, 반일감정과 함께 사회문화적 친화성이 공존하고 있지만, 일본은 가장 타자화된 타자로 존재하기도 하고...민족은 실제로 불명확하고 허구적인 관념이지만, 역사속에서 실재했던 '민족구분'의 관념이 뿌리깊기 때문일까요.
'타자화'라는 개념이 현실과 마주치는 구체적 언어로 다가오기엔, 아직 저에겐 감이 좀 멀고,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얇은지식으로 따라가기에 약간 어려운 주제기도 하지만, 2시간이 훌쩍지나가는 재밌는(좀 더 적합한 단어가 생각이 안나네요) 강의가 이제 한번 남았네요. 3강이 무척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