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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필요한 건 보다 민주적 대안
우리 사회는 한창 ‘가짜뉴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일부의 목적을 위해 생산·가공된 거짓과 그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의 진실을 향한 사회적 열망을 키워갔다. 최근 크게 논의됐던 ‘언론중재법’ 역시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명시된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사실을 말하는 이의 ‘표현의 자유’에 앞서 사실로 인해 피해받을 이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우리가 이번에 살펴본 판결문은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제기된 위헌확인 소송(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이다.
‘2017헌마1113’의 청구인 이모씨는 2017년 8월 반려견의 치료를 받았다. 이모씨는 자신의 반려견이 부당한 진료를 받아 불필요한 수술을 했고 그로인해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책이나 정보통신망 등을 통해 반려견을 치료했던 수의사의 실명과 잘못된 치료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였다. 그 결과 이모씨는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였기에 형사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이모씨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형법 제307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매체의 다양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명예훼손적 표현은 이전보다 빠르고 넓게 퍼져나간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간 정보는 완전히 삭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한번 명예가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려운 까닭이다.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기에 중요하고 지켜져야 할 개인의 권리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7조가 보호하는 인격권을 표현의 자유와 견주어 우열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했으나 최종적으로 ‘인격권’의 손을 들어줬다. 그 판단은 ‘만일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이 조항이 없다면 개인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형법 제310조에 의하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이러한 결정이 오히려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민사적 구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의 한계에 머문 데서 아쉬움을 느꼈다. 형법은 구속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고 낙인을 지울 수 있다는 데서 법익 보호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민사적 구제를 통해서 예방효과를 충분히 극대화할 수 있다면 부족한 구제방법을 보충하는 방식이 옳다. 상대의 명예를 침해한 이들에게 예방이 가능할 정도의 큰 책임을 물면 된다. 가령 디즈니의 치밀하고도 고액의 저작권 소송은 그 자체로 저작권을 지키게 만드는 예방책이 됐다. 우리 사회도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걸맞게 보다 강화한 구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능은 약했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는 민사적 구제수단이 존재한다.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문형배’의 반대의견에 따르면, 피해자는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 보도와 반론 보도 청구, 손해배상 청구와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민사적 구제방법들을 강화해, 형법이 아닌 방식으로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이야말로 헌법 정신에 부합하며 민주적인 방식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방향이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표현의 자유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없다’거나 ‘시기상조’라는 식의 답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논의 자체를 막는다. 결정문에 ‘사회적 합의가 없다’는 데에 대한 추가 근거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으로써 시민들에게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논의의 장을 제공한다. 이번 결정문은 ‘표현의 자유’가 갖는 무게에 대해 시민들이 논의해볼 기회를 다시 한번 미뤘다는 데서 한계가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범죄화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인 ‘입막음용 소송’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10조를 근거로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 비판을 보장한다고 봤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악용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공적인 목적으로 인해 위법성이 조각되더라도 형사절차가 진행되면 개인에게는 그 사실만으로 위축이고 압박일 수 있다. 결정문은 앞서 피해자가 민사 소송 과정을 겪으며 마주할 어려움을 결정 근거로 삼았으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악용 여지에 있어서 소송 과정에 대한 우려는 언급하지 않았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자연스레 시민들의 매체 문해력도 상승했다. 시민들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에 앞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은 변화한 매체 환경에서 시민들이 재정립해야 할 의식과 가치관을 지적하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적 방안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온라인 환경 속 무분별하게 떠도는 정보들에 대해 우리의 인격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운 발언을 지속해갈 수 있는 안전한 보호장치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김승연 (느티나무아카데미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2021> 강좌 수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