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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 글쓰기] 시키지 않은 6주차 과제와 뒤늦은 고백
다시는 글쓰기 강의 근처를 기웃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내 발걸음은 매주 월요일 7시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글쓰기를 헤어진 연인쯤으로 여기고 내게 남은 미련을 확인하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매주 과제가 있고, 소리 내어 함께 읽는 시간도 갖겠다고 하셨다. 아차. 글쓰기 과제는 예상했지만 직접 읽을 줄은 몰랐는데. 이제 와서 강의실에 몸을 실은 나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김유신은 애꿎은 말 목을 베었지만 나는 뚜벅이 신세라 베어낼 거라곤 내 발목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열심히 듣는 수밖에.
사실 트림 한 번 했습니다
카프카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문장을 모티브로 하여, 나의 독서가 생각을 확장하는 게 아니라, 편견을 강화하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글을 써서 첫 과제로 제출했다. 그다음 과제는 이 글을 수정해오는 거였는데, 카프카를 도끼를 파는 직장인으로, 나는 도끼를 사놓고 바다를 두드려보지도 않은 블랙컨슈머로 등장하는 짧은 소설을 썼다. 카프카의 사유서와 나의 고객만족도 조사표를 첨부하여 책을 읽고도 나의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책이 아니라 나의 독서법의 문제였음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 했다.
써놓고 보니 장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소설의 개연성도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분들이 내 글을 읽고 '아무래도 얘는 좀 이상한 애가 아닌가?' 생각하시진 않을까. 선생님께서 '열심히 하셨지만... 이건 좋은 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시진 않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자 회피 본능이 쑤욱 올라와 '뭘 고민하고 있어~수업 안 가면 되는데~' 하고 속삭였다. 유혹은 강력했으나 내 속에는 만만치 않은 라이벌이 하나 있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강박'인데, '강의실에 갈 수 없을 정도의 질병이나 직계가족의 조사가 아닌 경우 수업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력 주장한 덕분에 나는 강의실에 다시 도착했다.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속이 답답했다. 급히 먹은 저녁이 문제였나. 물을 몇 모금 마셔봤지만 그때뿐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빠지고, 시야가 좁아졌다. 팔과 다리가 뜨거워지는 동시에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해봤지만 불안은 더 심해졌다. 이런. 이 기분 전에도 몇 번 느껴본 적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공황 증상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의실을 뛰쳐나가기 직전에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글을 읽어 내렸다. 다행히(당연히)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고, 선생님께서도 표를 사용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였고 소설의 캐릭터에 개성과 핍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보라는 피드백을 남겨주셨다.
글을 읽고 나니 공황 증상은 온데간데없고 막힌 것 같던 속도 싸악 내려갔다. 얼마나 시-원했는지 체증이 올라와서 몰래 속으로 트림 한 번 했다.
얼어붙은 바다에 금이 간 거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 강의가 끝났다. 빙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다른 분들의 말씀과 질문에 묻어나는 삶의 무게와 깊이를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이번 강의 참 좋았는데. 집 가서 글로 정리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이 이야기를 꼭 글로 써야 할까? 말로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속으로 손을 들었다 내렸다 들썩들썩거렸다. 근데 내가 정리되지 않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근데 지금 말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손을 들었다.
"이전에 글쓰기 수업을 몇 번 들었는데요. 문장 간의 논리를 찾거나, 문단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강의에서는 글쓰기 스킬이나 테크닉보다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게 신선했습니다. 나쁜 점을 지적하는 글은 되도록 쓰지 말라는 말씀에 몇 주간 끙끙 앓았기도 했고요. 저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부족한 점을 찾으려 애쓰는 편이었으니깐요."
"에세이를 주로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에 '나'를 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논리만 중요하게 여겼던 글에 균형도 조금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하나는, 다들 부족한 글이라며 수줍게 내놓으셨지만 그 글들에서 삶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이름을 빼놓고 읽어도 어느 분이 쓰셨겠다 하는 느낌이 올 정도로 개성이 있었고요.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간사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께서 나의 글이 좋았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이번 주에는 어떤 글을 썼을지 기대하면서 기다리셨다는 말씀에는 안경 밖으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칭찬이 한없이 어색해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간신히 감사인사를 드렸다. 집에 오는 길에는 수업을 함께 들은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칭찬을 들으면 온 몸이 간지러워지고, 몸이 흐느적거리고 뇌의 활동이 멈추는 증상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총총)
나는 내 글의 부족한 점을 개선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피드백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글쓰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거 같다. 완벽을 기본으로 생각해서 항상 좌절하고 실망하길 반복했으니 말이다.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잘못된 방식의 글쓰기 동력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조금 더 써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내 마음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말 관심이 없었으면 '나는 글쓰기 강연을 다시는 안 들을 거야'라는 말을 했을까? 관심이 있으니깐 주변을 기웃거리며 엣헴, 엣헴 헛기침을 했던 것 같다. 안에서 소리를 들은 누군가 나타나서 '나으리, 여긴 어인 일이신지요?'하고 말 걸어주면 '어허, 내가 여길 오려던 건 아니고 날이 좋아 마실 나온 길에 어디서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 경사라도 났나 지켜보던 차인데...' 하며 체면을 차리려던 거다. '오신 김에 들어와서 탁주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요' 하면 엄지와 검지로 수염을 두 번 정도 쓸어내리며 '어허..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거늘...'하면서 마지못해 문지방을 넘었을 것이고 말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고 살았다. 쓰고 싶지 않다는 거짓말은 그만 해야겠다. 사실 난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는데 부족한 글을 보여줬을 때 돌아 올 비난이 두려웠던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그 글을 통해 내가 단단해지려면 대장간의 달궈진 쇠처럼 탕탕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무진장 두드려 맞는 수밖에는 없을 거다. 근데 두드려 맞을 용기는 어디서 생기나. 모르겠다 뜨겁게 두드려 맞다보면 생기겠지.
그리하여 씌여진 첫 번째 글은 바로 이것.
아무도 시키지 않은 6주차 마지막 과제를 남긴다.
* 글쓴이 브런치 다면 @foodb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