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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동글동글한 사람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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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먹는 행위가 불편해졌다. 비건 친구와 만나는 날이 잦아지면서 식사를 함께할 때마다 내가 먹는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눌러왔던 내 안의 불편함들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온 마음을 덮쳤다. 어린 시절 축산에 관한 영상을 보고 끔찍함을 느꼈던 순간들, 털이 다 뽑혀 발가벗겨진 닭은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치킨은 잘 뜯어 먹으면서 느꼈던 모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경제동물’을 설명하고 축산의 현실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급식을 골고루 먹으라고 지도해야 하는 괴리. 이 모든 감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었다. 육식에 대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던 육식을 끊고 살아갈 수 있을지. 부지런해져야 할 것만 같았다. 채식은, 비건은 나에게 너무 먼 듯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끼 정도 고기 없는 식단으로 먹는 것을 목표로 해 보았다. 그러나 일주일의 죄책감을 하루에 미룬 꼴이 되었을 뿐,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편해지고 싶어서, 내 죄책감을 내려놓고 싶어서, 괴롭지 않으려고, 2021년 4월 1일 채식을 시작했다. 학교 급식을 중단하고 도시락을 싸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즈음 친구가 동물권 독서클럽을 함께 나가지 않겠냐고 추천했고 그렇게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해, 동글동글 독서클럽>을 만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총 네 번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었다. 나의 비건생활은 이 독서클럽과 함께 시작되었다.
2021 봄 학기 <독서클럽 동글동글>에서 읽은 책
첫 번째 책, <고기로 태어나서>는 가히 노골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축산 공장의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어 읽는 내내 머릿속에 상상되는 상황들을 애써 지우느라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물성 식품들을 차례로 끊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중단하게 되었다. 살이든 젖이든 알이든 비인간동물들을 먹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단호한 결정을 할 수 있음에 놀라기도 했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더욱 독서클럽 모임이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첫 모임은 1:1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덕분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는 어떤 선택들을 쌓아갈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다.
두 번째 책, <동물복지 시대가 열렸다>에서는 농장동물뿐만 아니라 전시동물 등 다양한 곳에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현실이라 함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뿐이지만.) 더불어 이 ‘현실’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동물복지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고 있었다. 음식으로 소비되는 동물이 가장 먼저 와 닿아서인지 다르게 소비되고 있는 동물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강사님의 저서인 만큼 동물복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기에 음식으로 소비되는 동물들에 국한되어 있던 나의 시각이 또 다른 곳에서 인간에게 소비되는 동물들에게까지 넓어질 수 있었다.
세 번째 책, <동물 안의 인간>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비인간동물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고 인간도 결국 같은 ‘동물’의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책은 허무함을 주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기 위해 인간의 기준에 의해 실험을 당하고 많은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게 허탈했다. 독서클럽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고른 구절들은 그런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책,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는 동물윤리를 가장 심도 깊게 논한 책이다. 규범윤리학 측면에서 쓰인 책인 만큼 굉장히 어려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직 동물윤리에 대해 명확히 정리된 개념은 없다는 것이고, 이러한 책들이 늘어나고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인 다른 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혼자서는 난해하다고 느꼈을 주제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마지막 자리인 만큼 책에 대한 논의에서 나아가 동물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각자의 삶에 비추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뜻 깊었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네 달이 지나 끝이 난 독서클럽을 돌아보니 더욱 감회가 새롭다. 처음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나의 비건 생활은 아주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착취에 일조하지 않는다는 해방감 덕에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워졌다. 또한 식성이 좋았음에도 내가 먹고 있는 게 무엇인지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매번 성분표를 살피고 스스로 식단을 꾸리다보니 생활에 체계가 생겼고 나를 더 아끼고 보살피게 되었다. 먹는 재료들은 신선해졌고, 간혹 있던 소화불량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비건은 생활 전반에 걸쳐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것인 만큼 다른 방면에서도 변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모든 게 귀찮고 어렵고 힘들며 육식이 그리울 줄 알았는데, 나의 기우였을 뿐 오히려 이 삶은 나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이 완벽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마주할 수도, 지치거나 조금은 쉬어갈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힘을 얻고 공부하면서 스스로 단단하게 다시금 나아가고 싶다. 끝으로 나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준 독서클럽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