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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배움 독서서클] 퓨즈만이 희망이다
‘노년배움 독서서클’ 10월에 읽은 책
<퓨즈만이 희망이다>, 신영전, 한겨레출판, 2020
토론일 : 2021.10.06. (수) 10:00-12:00 (zoom 토론)
참여자 : 김수동(진행), 고현숙, 안미성, 정애자, 정헌원, 주은경, 황미정
오랜만에 아카데미느티나무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에 가입을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더니 서클에서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이곳저곳에서 줌(zoom)을 통해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는 있지만 참여자들이 삼사십 대 여성이 주류인지라 일에서 은퇴하고 육십이 넘어가는 나로서는 생각의 밀도나 방향에서 뭔가 착 달라붙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에도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겠지만 노년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고민을 하는 구성원이 많이 있을 것 같아 가입하게 되었다.
이번 달에는 건강정치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는 신영전 교수의 <퓨즈만이 희망이다>를 읽었다.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성찰, 책임, 자본, 건강, 평화, 경계, 싸움, 희망이다. 첫 장의 ‘성찰 : 우리가 놓친 것들’에 있는 ‘없다’ 시리즈의 글은 우리의 인식에 잘못 덮인 껍질을 여지없이 깨준다. 우월한 생은 없다, 건강은 없다, 노인은 없다, 자살은 없다, 아픔은 없다 등등. 좋은 유전자와 건강과 젊음을 욕망하는 잘못된 신화에 도전하여 본질을 가로막고 있는 뿌연 막을 걷어내고 문제의 핵심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없다’ 시리즈의 글이 이 책의 핵심이며 이 시리즈의 글로 깨우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재인식이 우리를 새로운 희망으로 끌어간다고 생각한다.
이후의 장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방만한 의료기관 이용 실태와 관련된 것이다. 이 부분은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나 개선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서울시 자치구에서 의료급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때 정부에서 국민기초수급권자의 부양의무자 재산 조회를 더욱 철저하게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전산시스템을 도입했다. 국민기초수급자로 책정되면 생계비 지원과 의료급여서비스를 받게 되는데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의료급여일수 과다사용자 명단이 구청으로 전송되고 이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의료급여관리사 인력을 채용하게 되는 일까지 진행되었다. 결국은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의료급여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을 범죄자처럼, 문제아처럼 명단 관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구절처럼 ‘낭비도 줄이지 못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아프게만 하는 정책’에 말단으로나마 복무했던 한 사람으로 정부의 의료와 복지 분야 정책에 대한 저자의 뼈아픈 지적에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을 통해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의료와 복지 분야의 개선 방향에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개인적 경험은 의료비와 관련한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을 늘리고 주치의 등록제, 총액계약제 등 지출구조를 합리화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p.320)
이 글을 용하면서 빠진 주어는 ‘1년 의료비 100만원의 개혁’이다. 1년 의료비 100만원의 개혁이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2006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오랫동안 앓다 돌아가셨는데, 90년대 중반부터 12년간 엄청난 진료비를 병원에 쏟아 부었다. 90년대 중반, 연말에 소득증명서를 받아보니 연소득이 1800만원 정도였는데 그해 의료비로 나간 금액이 1,400만원 정도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억대에 달했던 의료비의 짐이 순전히 개인의 불운이라고만 생각했다. 책 속에 나오는 10대의 아들처럼 내가 자살하지 않고 어머니의 임종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볼모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료비 부담에 따라 늘어나는 빚과 간병으로 인한 직장에서의 배제와 차별, 간병했던 가족의 삶까지 위협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1년 의료비 100만원의 개혁’이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니!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개혁이 아직도 실행되지 않고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이 책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예방접종 지원이 끊긴 것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났던 부분이다. 방송매체에서도 언론 지면에서도 잘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 이 책에 저자의 소망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인도적 지원은 무기가 아니다.”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묵직하게 울렸다.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독립적인 개체라기보다는 생래적인 취약성과 개방성, 유한성, 불완전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역설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아픔들과 고통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서로 연대하며 삶을 확장해 가기를 희망한다. 책을 덮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박경리 작가의 <토지>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서러운 사램이 많으면 위로를 받은께. 나보담도 서런 사램이 많은께 세상을 좀 고맙기 생각허게도 되제요. 조선에 남았이면 그 더런 놈의 왜놈우 새끼 똥닦개나 됐일 거이요. 누가 뭐라 뭐라 혀도 여기(간도) 온 사람들, 나쁜 놈 보담이사 좋은 사람이 많질 않더라고? 이 주갑이야 본시부터 사람도 재물도 없는 혈혈단신, 잃을 것이 개뿔이나 있었간디? 사람 잃고 재물 내버리감시로 설한풍 모진 바람 마시가며 내 동포 내 나라 생각허고 마지막 늙은 목숨 바친 어른들 생각허면······ 목이 메어 강가에서 울 적에도 별도 크고오 물살 소리도 크고 아하아 내가 살아 있었고나, 목이 메이면 메일수록 뼈다귀에 사무치는 설움, 그런 것이 있인께 사는 것이 소중허게 생각되더라 그 말 아니더라고?”(12권 p.121-122)
아픔과 고통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 어둠과 눈물을 뚫고 길을 만들어나갈 때에야 진짜 소중한 삶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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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서클'을 소개합니다!
2015년 봄, 느티나무에서는 <푸른 시니어학교 - 새로운 노년 시대를 만들자>를 시작했습니다. 그후 매 학기 참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2017년 이 서클을 만들었습니다. 줄여서 노년서클.
새로운 노년시대를 만드는 데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이 참여합니다. 이름과 달리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더 보기(클릭)
[노년배움 독서서클] 노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두려움 너머 희망을 찾다 >>보기
“존엄한 노년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년의 시간. 세상 가득한 두려움 속 가려진 노년의 삶을 찾아 보려 합니다.
다양한 시선을 통한 우리의 탐험은 계속 됩니다.
노년배움 독서서클은 매월 정해진 책을 읽고 생각과 질문을 함께 나눕니다. 2021년 가을학기에는 책과 영화, 그리고 회원의 활동 이야기까지 더욱 풍성한 소재를 가지고 만나려 합니다.
- 11월 모임 : 11. 10(수) 오전 10시. 딸에 대하여 + PTC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