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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 놀이학교 '감우산방' 온라인 수다방 열리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창조성 놀이학교’는 놀이본색 공동체이다. 의식주의 일상 속에서 주눅 들고 소외된 예술성을 다양한 손놀이 작업을 통해 흔들어 깨워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기를 소망하는 생활창작 공동체이다. (창조성 놀이학교의 안내문에서 인용) 창조성 놀이학교의 후속모임 ‘감우산방’은 그 놀.이.터.이다. 부암동 산장(?)이 아닌 산.방.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예술놀이”와 “독서나눔”을 한다. 조각보를 이어 이불을 짓는가 하더니 흙을 빚고 술을 담그고, 염색으로 물드는가 하면 밀납의 불을 밝혀 시와 음악과 춤으로, 산방은 축제의 시간과 공간이 된다.
코로나로 기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지, 먹을거리를 나누지 못한 지 3년이다.이 봄이 지나면, 가을이 오면, 또 봄이 오면 반갑게 얼굴 마주할 줄 알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들의 삶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갔다.
손을 맞잡거나 준비해온 먹거리를 나눌 수 없는 온라인 모임이지만 이 봄, 오랜만에 창조성 놀이학교, 감우산방의 문이 열렸다. 아지트인 부암동을 기점으로 전라남북도, 경상도까지, 심지어 바다 건너 캐나다에 흩어져있는 친구도 온라인으로 모였다. 코로나의 또 다른 축복이다.
우리는 세 번의 봄을 어찌 살아왔는지 시와 노래로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너는 그랬구나, 나는 이랬어’,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어.’ 각자가 준비한 시와 노래는 단박에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주었다. 그동안 쉬지 않고 꼼지락거렸던 손작업의 결실을 나누면서 창조성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코로나의 피폐함에도 아름다운 사계절을 수채화로 옮기고 , 그림 도구를 보관할 주머니를 바느질했다. 코로나의 제한 없이 여행했던 나라의 오래된 기념품을 재활용하여 차받침을 만들고 , 마당 한 켠의 수세미를 거실로 들여놓아 그 어떤 디자이너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오브제로 재창조했다. 쓰고 남은 실타래로 걸개를 꼬았다. 흙을 빚어 자화상을 구워냈다. 간절함과 염원을 담은 탱화를 그려보았다. 코로나 속에서도 아니 코로나와 함께 각자의 일상을, 삶을 예술로 일구고 있다. 부지런히 부지런히 세월을 충만히 채운 친구들이다. 우리 안에 흐르는 창조성의 강물을 온라인에서조차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독서나눔>은 메리 파이터의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이다. 그는 나이듦의 여행이 비록 쉽진 않을지라도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건너자고 말한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듦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우정으로 기쁘게 맞이하자고 한다. 그래서 놀이학교 감우산방의 친구들은 씁쓸함과 달콤함의 인생으로 우•정•한다.(꼭 동사로 쓰고 싶다)
산방 친구들은 소꼽친구와도, 여고 친구와도 다른 친구들이다. 단짝 친구와는 분명히 결이 다른데 그것이 또 우정이 아닌 말로는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다. 우리의 우정은 건강한 경계가 있지만,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닮은 친구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나누며 함께 눈물 지었지만, 그 눈물로 색깔을 입히고, 그 뜨거움으로 밀랍을 녹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메리파이터의 이야기가 창조성 놀이학교 감우산방에서 꽃핀다. 산방 올라가는 초입은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의 속삭임으로 가득하다. 삶의 쓴 맛은 달콤함으로 새로 태어나, 나는 크고 행복한 눈물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산방에만 올라가면 슬쩍슬쩍 밀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터무니 없는 일을 벌일 용기를 얻고 더 근사해진 나와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고 외칠 수 있게 해주는 우정은 산방에 가득하다. 부암동이라는 장소든, 온라인이든! 우리는 ‘삶을 예술로, 삶을 축제로' 함께 우정한다. ‘거친 물살과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통나무, 아찔한 폭포’야 어서 오너라, 산방의 우정하는 친구들과 함께 맞이할테다!
( 저의 이야기를 포함해 모임에 참여한 친구들의 이야기도 함께 녹여낸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