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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대선 대화 모임'을 작당하는 1인이 되어보니
대선이 다가오며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후보 지지율만 원인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불편한 이유들을 까뒤집어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전화를 받았다. 답답한 마음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번 대선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제안이었다. 답답한 것에는 백배 공감하겠으나 몇 사람이 모인들, 돌아가는 판국을 푸념 한들, 뭐가 달라지나 싶은 마음이 절반이었다. 게다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참가만 해왔지 필요한 것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보기는 처음이라 모임이 제대로 잘 성사될 지 막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섯 명의 제안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맨 처음 제안한 분이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홍보 게시물 올리기, 수강 접수 및 회계, 줌 개설 및 운영을 나누어 맡았고, 나는 문구를 수정하고 진행에 따른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님이 맡았다. 역할을 분담하니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PPT를 만들고, 사전 질문을 받기로 했다. 처음엔 별 응답이 없다가 당일에 임박해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질문들을 읽으면서 이 대화 모임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만 답답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갑갑해하면서도 들춰보지 않던 지금의 정치 현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고심한 흔적이 배어 있는 질문들이었다. 다만 이 쟁쟁한 화두를 품은 질문들을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지 염려되었다.
대화 모임 강사로 참여한 김동춘 교수님은 질문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서도 종횡무진 우리 사회의 모습과 정치 현실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또렷하게 보여주셨다.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른 세계적인 불평등의 심화와 노동시장의 변화로 젊은 계층이 개인화, 파편화되고 있는 사회현상이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여야 구분없이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이해관계에 영합해서 남발하는 공약들은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어 간다는 증표이다. 또한 여야 양당 독점 구조를 벗어나 진보 정당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제 3당이 등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변화를 통해서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시민의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뜨거운 담론이 되어야 할 시대적 과제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자산 불평등을 극복한 삶의 질적 도약, 기후 위기 대처를 위한 산업 구조 개편, 디지털 문명에 대한 대처, 미중 패권 시대에 남북이 풀어나가야 할 길, 수도권 집중으로 나타나는 부동산, 저출산 문제 등등.
그렇지, 바로 그거였다.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를 쟁점화하지 않고 네거티브 공세로 피로감을 주며, 오직 기호 몇 번을 찍느냐만을 남겨 놓은 선거는 절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선거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촛불항쟁으로 정권을 바꾸었음에도 세상은 우리 바람대로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내 손으로 직접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보살핌과 노력이 필요하다. 진부하기까지 한 이 사실을 왜 잊고 있었을까?
제한된 시간이었음에도 교수님 말씀을 들으며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해소되는 듯했다. 중간에 조별로 소모임을 가졌는데 이야기를 충분히 주고 받기는 어려웠고 추가 질문과 다른 견해 등을 취합했다. 짧은 시간이 아쉽긴 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질문들을 남겨 놓은 채 끝났다. 줌이 종료 되고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교수님 말씀 중에 ‘정치적 효능감’이라는 단어가 익숙지 않아서 찾아보았다.
“개인이 정당이나 시민사회 등 정치과정에 참여하였을 때 자신의 의견이나 활동이 그 과정에 반영되어 실제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말한다. 이러한 효능감이 부재할 때 정치 과정에 참여하여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에 정치적 냉소주의나 무관심에 빠지게 될 수 있다.”
돌아보니 87년 6월 항쟁을 경험한 나는 정치적 효능감이 굉장히 높았을 테고, 그 긍지가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 믿으며 살아가게 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MZ세대는 세상에 태어나기나 했을까?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 지금은 기성세대가 되어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생각조차 기피하려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화 모임에 참여해서, 비록 스물 세 명이 참여한 비대면 온라인 진행이었음에도 정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나누며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가자가 제안하고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물론, 수고가 따르긴 했지만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선거와 코로나 국면을 접하면서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 더욱더 자신의 생각을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고, 들을 줄 아는 소소한 공론의 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계속해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몇 사람이 즐겁게 작당을 하고, 이에 손을 든 사람들이 합세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 프로그램 보기
2022 대선에서 촛불대항쟁의 정신을 이어가려면 : 김동춘 교수와 함께하는 대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