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노년서클 책읽기 번개모임 이야기 <죽은 자의 집 청소>
느티나무 소모임 <노년서클>. 정확한 이름은 <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서클>이다. 줄여서 노년서클.
1달 전이었나? 노년서클 몇 사람이 모여 의견을 모았다. 다시 매월 독서모임을 하자고. 그러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계획을 바꿨다. 대면모임이 어려우니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자. 그리고 오늘 오전 10시 노트북을 켰다. 반가운 얼굴들.
# 모임은 <여는 시>로 시작했다.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이 시가 어떻게 다가왔나요?” 느낌을 나누는 시간. 지난 일요일 아침, 밤새 내린 눈이 우리에게 지금 얼마나 축복인지, 지금 이만큼 건강해서 눈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 다음엔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 감사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9순의 어머니가 매일 오전 오후 1시간씩 기도하는 모습을 ccTV로 본다. 엄마의 기도가 늘 가족들과 우리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맺는 걸 보면서 내가 엄마를 돌보는 줄 알았더니, 엄마가 우리를 돌보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 0숙 선생님.
“얼마 전 어머님과 이별하게 됐어요. 아픔이 컸지만 어머니가 연명치료를 안하신 건 다행이에요. 나는 늘 지갑에 사전연명거부의향서와 장기조직기증희망 등록증을 써서 갖고 다닙니다.” - 0원 선생님.
"코로나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집 근처 자연의 변화에 훨씬 다가가는 시간이 좋아요." - 0동샘.
# 이렇게 각자의 근황을 나눈 다음, 책 이야기로 들어갔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기사를 보고 나도 찜해두었지만, 딱히 손이 가지 않았다. 이 독서모임 덕분에 끝까지 봤지만 책 읽기는 쉽지 않았다. 고독사, 사람의 죽음이 방치됐을 때 생겨나는 일에 대해 막연히 생각했던 나는, 현장을 목격하며 나오는 치밀한 묘사와 시인의 감수성으로 써내려간 작가의 필체 앞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어떤 부분은 너무 리얼해서 건너뛰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고독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도 가장 고독한 현실. 그것이 어쩌면 남의 일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인용해보자.
“김완씨는 자신의 일이 죽음학(Thana-tology) 연구의 실마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면 강연이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고독사는 제대로 된 공식 통계조차 없다. 김씨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사례는 통념을 반박한다. 고독사는 노인 세대만의 문제로 요약하기 어려웠다. 숨진 지 몇 개월 만에 발견되는 시신은 연령도 성별도 다양했다. 그래서 관련 연구자가 사례 수집차 연락이 올 때 가장 반갑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도 그렇게 만났다. 그 인연으로 2017년 서울시 고독사 TF 자문위원에도 합류했다.” 시사인 667호 ‘죽은 자의 집’ 청소하며, 제(祭)를 올린다 기사에서
그리고 책의 구절도.
P65.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해 불가의 쓰레기를 수습하러 온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곳에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고, 지금 나는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는가? ...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P101.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다음엔 각자 이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다가왔던 것,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 것을 나누었다.
“이 책은 정말 외롭고 가난한 분들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처절한가 보여주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생각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을 보면서 내 집안의 물건들을 생각했어요. 수집벽이 있어서 물건을 싸안고 살고 있지만, 가능한 만큼 조금씩 치우며 살아가려구요.”
“이 책을 쓴 김완 작가와 직접 통화한 적이 있어요. 내가 90세 노인 후견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돌아가신 후 애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려고. 그때 김완 작가가 내게 아주 귀한 일 하신다고 칭찬을 해줘서 기분 좋았어요.”
# 이렇게 책 이야기를 마친 후, 다음 모임을 정했다.
23일 오전 10시 내년 새로운 분들과 함께 하는 독서서클을 계획하기 위해. “늙어감, 취약함에 대한 성찰에 도움을 주는 책”을 각자 조사해오기로 하고.
# 모임이 끝난 후 나는 최근에 푹 빠진 jtbc <싱 어게인>의 45호 윤설하 가수가 부른 <가시나무새>의 영상을 단톡방에 올렸다. 다음 모임은 이 노래로 시작하자고 제안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늘 좋은 기운을 주는 친구들이 있는 노년서클. 오늘 모임에 참석한 0원, 0자, 0동, 0숙, 0경, 0종, 연결이 잘 안돼 얼굴만 봤던 0열, 그리고 느티나무 0숙. 모두 반가웠어요. 특히 모임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데 힘써주시고 오늘 진행을 맡아주신 0숙샘. 고마워요.
노년서클은 12월 16일 2020년 마지막 모임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엄근진' 인증샷도 남겼다. 소모임 노년서클 >> 보기 클릭
ps. 온라인으로 이런 깊은 공감을 나누는 독서모임과 시모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 때문에 모임을 진행했던 순서대로 글을 써봤습니다.
끝으로 오늘 함께 읽은 여는 시를 첨부합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