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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감 - 나를 짓누른 껍데기를 한 겹 벗겨내다_나봉
해방감
by 나봉
이번 아카데미 느티에 참여하며 나를 꽉 짓누르고 있던 껍데기 한 겹을 벗겨낼 수 있었다. ‘정상성’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소수자들의 언어를 접하면서, 나를 더 확장시킬 수 있겠다는 해방감과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나를 부정하고 미워했던 이유들을 다시 파헤쳐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는 나의 섬세함을 예민함과 민감함, 연약함으로 치부했다. 사사건건 깊이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다. “생각 또 많아졌네~” “너무 깊게 생각 하지 마~”라는 가벼운 말들도 어느 순간부턴 나의 이야기를 외면당하고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한 번씩 어긋나는 대수롭지 않은 상황일 뿐인데, 내가 완전한 이해를 바라며 욕심내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내 자신도 그런 내 모습이 피곤했다. 늘상 내 이야기를 지루해 하거나 어려워 하진 않을까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에서 멈추고 혼자 도망쳤다.
자꾸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라도 나를 이해해보자는 일념으로 꿋꿋이 일기장에 나를 쏟아 냈다. 하지만 혼자만의 구역에 갇혀있는 일기는 점점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채워졌다. 한 켠에 쌓여버린 나에 대한 의심과 부정이, 끝내 내 자신을 어디에도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정상성’ 혹은 ‘일반적’ 범주에서 벗어나는 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대개 복잡한 것 보다는 명쾌하고 빠른 것을 선호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쫓아가기에 내가 가진 천성은 한참이나 부족했다. 난 대체로 더 많은 생각의 과정이 필요했고, 더 많은 이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남들이 봤을 때엔 큰 일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냐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내 스스로 이런 나를 온전히 인정하기 보다 계속해서 주변과 맞춰가야 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모습으로 여겨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나를 채찍질했다. 일상속에 맴돌고 있는 대중적 분위기가 나를 가둔 것이라 해야 할 지, 내가 지레 겁을 먹은 것이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다함께 공유된 분위기에서 도태되는 것이 두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마음 한 켠에서 내적 분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주변으로부터 난 충분히 사랑 받았고 인정 받아온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이런 울분을 이야기 하자니 나 스스로도 이질적이고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누가 직접적으로 강요한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겉으론 무난히 지냈지만 습관처럼 눈치를 보고 치열하게 주변을 살폈다. 에너지와 여유가 남아있을 때엔 분위기에 거뜬히 발을 맞췄지만 지속적으로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은 힘겨웠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나의 생각을 펼치기가 어려웠고 대중적으로 공유된 견고한 분위기 자체가 나에겐 억압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이해와 존중은 교묘하게 한정적이다. 소속되어 있는 세계를 습득하고 따르는 만큼 나는 인정받았고,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었다. 내가 속한 바운더리는 대체로 안정적이긴 했지만 넓은 품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 모습을 주변에 맞춰 축소시켜왔던 건 아닐까,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나의 다양한 감각을 소외시켰던 것은 아닐까 돌아봤다.
“변두리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각자 ‘차별’로 지목하는 것과
변두리스토리를 읽는 독자들이 ‘차별’로 읽어내는 것이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차별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일관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차별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막막하고 광대한 세상이지만
거기에서 불현듯 솟아오르는 어떤 사건들은 우리에게 실마리를 준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사건을 경험할 뿐이다.
‘사건’으로 기억할 만큼 소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배경이 된다.”
262p
6주동안 책속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나의 답답함은 틀을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외부적 벽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외부로부터 이해받고 함께 머무르기를 바라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울타리를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개인적 이야기가 사회적 이야기로 연결되었던 이 해방감을 잊지 않고 싶다. 지나친 자기부정을 멈추고 날 두렵게 만드는 실체를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적당히 타협하고 퉁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하더라도 내 감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구체적인 서사를 써나가고 싶다.
수업은 지난 주에 끝이 났는데 아직까지도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좋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관찰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더더 생겼다. 나를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조건 없는 존중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들을 찾아가고 싶다. 정말정말 좋았고 감사했다. 옥수수님(홍승은 작가님), 디디(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 담당자님)님을 비롯하여 나비, 하늘, 라마, 가을, 커피콩, 민들레, 사과나무, 연주, 망고, 썬, 선비, 토닥, 모래, 구름, 먼지님 모두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고, 정성스레 합평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이번 아카데미 느티 '사적인 이야기의 반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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