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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만나는 삶의 이야기들 4강
*지난 3주간에 걸쳐 여성 신화로 만나는 삶의 이야기들을 펼쳐 놓으신 김융희 선생님은 드디어 남성 서사를 풀어놓았다. 서양에서는 <아버지와 싸우는 아들>이라는 담론이 공식화 되어 있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많이 억압되어 있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태초에 무엇이 있었을까? 성서는 '한 처음에 땅과 하늘이 있었다'로 시작한다. '있음' 이전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과학의 이론을 따라가자면 가스나 먼지 같은 것들이 떠돌다 엉키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아볼 수 없는 상태, 이것저것이 마구잡이로 뒤엉킨 상태였을 것이다. 질서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정형이 없는 덩어리며 만물의 본래 상태 즉 카오스다. 이것은 아주 객관화 된 과학적 이론이다. 김융희 선생님은 이 카오스의 개념을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곤죽'의 개념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끓고 있다는 것은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태초의 에로스로 보았다. 솥에서 끓고 있는 혼합된 물질은 하나로 뒤섞이다가 분리가 일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가이아 여신이다. 원초적 상상력에 의한 솥의 이미지가 여성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탄생의 신화다. 가이아는 물질로서 생겨나고 그 바깥 세계로 분리된 것 중에 나머지가 우라노스라는 것이다. 즉 카오스에서 가이아를 뺀 나머지가 Uranos라는 것이다. 이처럼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애초 하나에서 둘로 분화되었으니 그들은 합쳐지기를 갈망할 수밖에. 둘은 결합하여 여러 명의 티탄들을 낳았다. 티탄은 지각변동의 이미지이며 인간의 영역을 가진 관념의 의미가 함께 있다. 우라노스는 매일 밤 가이아를 찾아와 임신 시켰으나 자식들이 태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이아는 대지위에 떠다니는 쇠붙이를 끌어 모아 거대한 낫을 만들어 막내아들 크로노스(Kronos)손에 쥐어주어 우라노스 아버지를 거세시킨다. 이렇게 해서 하늘과 땅이 갈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태초의 소통이던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땅과 하늘로 갈라진다. 그 뒤 크로노스는 레아를 배우자로 삼아 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하데스·포세이돈을 낳았는데 이들을 모두 잡아먹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태어나자 레아는 제우스를 크레타에 숨기고 제우스 대신 돌로 남편을 속인다. 제우스는 안전하게 성장해서 아버지로 하여금 삼켜버렸던 형제 자매들을 토해내게 하고 싸워 이긴다. 싸움에서 진 크로노스는 타르타로스에 있는 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제거한 사건이 되물림 된 제우스는 태어날 아들에 대한 공포로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메티스 여신이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아예 여신을 집어 삼켜 버린다. 메티스 여신의 딸이 전쟁의 여신인 아테네이며 아테네는 남성을 모르는 지옥의 시기로 표현되기도 한다.
기록을 잘 하는 영국의 신화서는 유럽과는 다른 서구문명의 기준이 되고 있는 원시부족의 주술적 관념이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암투를 이렇게 해석한다. 원시시대의 왕은 강력한 마나를 지닌 자로 주술적 능력이 발휘되는 자이다. 자연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과 집단의 길흉화복을 왕이 가진 마나로 여겼던 것이다. 마나는 charisma와 같다. 프레이저는 주술의 주요 형태를 둘로 나누었는데 공감주술과 접촉주술이 그것이다. 공감 주술은 유사한 것을 산출하는 모방의 힘을 믿는 행위에 의존한다. 접촉주술은 어떤 사물이 닿는 순간 옮겨오는 염력을 말한다. 공감주술은 공감 작용에 의해서 멀리 떨어진 곳의 사물과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주술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 대상과 유사한 물체를 사용한다. 왕이 권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을 대체하는 사람이나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모든 삼라만상이 어떠한 보이지 않는 초인적인 힘에 의하여 지배되고 운행되는 것으로 믿었으며 그러한 초인 적인 힘을 유도, 조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이 등장해서 인간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생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와 아들간의 갈등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틀로 해석했으며 그가 주목한 부분은 권력암투에서 움직이고 잇는 에로스의 힘이었다. 아들들이 욕망하는 것, 빼앗고자 원하는 것, 영구히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은 잃어버린 어머니의 사랑이다. 애초에 어머니의 사랑은 물화되지 않는 따뜻함, 배려, 친근함 이었으나 그러한 감정들은 그 감정을 연상시키는 사람이나 사물로 전이되며 그것이 아버지의 욕망을 계승하고,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제 속에서 욕망의 대상은 독점 되어야 한다. 때문에 경쟁을 통한 승리만이 욕망충족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메커니즘이 생겨나는 것이며 이 메커니즘 속에서 패배는 죽음과 동일한 것이다.
왜 이처럼 연이은 권력투쟁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원형적인 이야기는 계속 되는 것일까?
과거에 자연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은 여성적인 것으로 상상되었고 모든 살아있는 것이 향유하는 힘들은 모두 여신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말하자면 원래 아버지와 아들의 것이 아닌 여성의 힘을 남성으로 바꿔 가면서 생겨난 이야기들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오래된 권력투쟁의 드라마는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힘을 다시 가이아에게 되돌려줄 때 종식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의 서남부 윈난성(운남성) 루그호의 모수오족 모계사회를 TV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수오족 사람들에겐 남자는 있고 아버지는 없다.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와 주혼(모수오족 풍습) 관계가 성립된 후에도 자기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 다시 말해 남자는 혼인관계 후에도 따로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 모수오족의 주혼 풍속은 나름대로 엄격한 격식을 가지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13세가 되는 해에 성례를 하고, 19세가 되면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잠자리를 할 수 있게 되는데,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간다. 여자네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 밤 12시를 넘어야 하고 나올 때는 새벽 5시를 넘겨서는 안 된다. 남자는 여자의 가족 누구의 눈에도 띄면 안 되고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비밀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둘 사이가 각별해지면 마침내 주혼의 관계를 맺게 된다. 남자가 친구와 함께 여자네 집으로 정식 방문을 하여 승낙을 받아야 한다. 여자네 집에서 승낙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여자네 집으로 드나드는데 자유로워진다. 여자네 가족과 밥을 같이 먹을 수도 있고 한밤중이 아니라 늦은 저녁에 여자의 방으로 들어 갈 수 있으며 해가 뜬 아침에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평생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함께 산다. 주혼 관계를 청산하는 것도 여자에 의해서 행해지며, 그 방법은 여자가 남자에게 방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이다. 여성 중심의 사회로 집안의 어른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가장' 인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아버지들이 가지는, 권력으로 비치는 가족에 대한 '지배와 통제' 의 모습이 아니다. 때문에 모수오족의 아들과 아버지의 권력투쟁이란 애초에 없다.
말, 말, 말.
*호랑이가 포효를 해야 지하의 것들이 움직여서 地氣가 강해진다고 한다.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적 마음자리를 살펴라.
*자신을 판단하고 예단하기 전에 자기 긍정부터 하자.
*감정에 대해 지켜보고 수용하는 것이 가짜 그물에서 해방되는 출발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