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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번째┃어느 통역가의 노크 “Knock! Knock! Knock!"
이번 달부터 느티나무 ‘기자단’에서 활동하게 된 이은주입니다. 반갑습니다. 매번 멀리서나마 [백인보]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저 또한 동참하게 되어 무지 기쁘며 또 무지 부담스럽습니다. 워낙 기존 [백인보]가 훌륭하게 재밌었다 보니. 제 글에는 경고 딱지 하나 붙입니다. 제 글은 지나치게 ‘착합니다.’ 착해서, 죄송합니다. ^^ 뭐, 그래도, 조금 하다 보면 저도 깜찍한 도발 글을 유창하게 쓸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 노력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
“곱다.” 아랫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무례한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첫 느낌이, 그냥 곱더랬다. 그냥, 이~뻐! 그녀의 둥근 부드러운 눈매보다 사실 더 고운 건, ‘기다림의 미학’을 알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첫 인터뷰라 실제로 먼저 가서 준비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았고, 특히 조신하게 잠시 앉아서 내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해야 했었는데, 진작에 서두르지 않아 앞에서 부산떨고 있는 나를 덤덤히 지켜봐주고 잘 기다려주었다. (감사 ^^) 성격도 그러하셨다. 어떻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는지 묻자, “뭐, 인터뷰, 까짓것, 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라고 털털하게 답한다. 허 참.
이희라 수강생
느티나무 강좌는 곧 날 위해 기획된 것!
“이거, 완전히 내가 찾던 거다!”
올해 봄, 신문지면 광고에서 그녀는 <서울, 도시와 공간의 인문학>을 만났다. 오호라, 쾌재를 부르면서.
3~4년 전에 우연히 월북 작가 박태원의 <구보씨의 일일>을 읽었어요. 원래 그분이 지금의 무교동 쪽에 집이 있었고, 주로 그곳에서 활동하셨대요. 그 작품을 보니까 1920~1930년대 서울의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더라고요. 제 행동반경이 중구, 종로구 쪽이라 “아, 여기가 거기구나! 여기가 그 집이었겠네! 예전엔 모습이 이랬구나!” 하고 상상하면서 책을 읽었어요.
또 그분 작품 중에 <천변풍경>도 보았는데, 청계천 주변의 여러 군상을 그린 작품이거든요. 그 이후로 ‘한양-경성-서울’로 이어지는 1백여 년간의 역사와, 시대마다 변화된 서울의 모습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관련된 책들을 마구잡이로 사서 읽었어요.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나 <서울은 깊다> 등등요. 그래서 <서울, 도시와 공간의 인문학> 강좌 제목을 보자마자 “꼭 듣고야 말테다!” 생각하여 수강 신청을 했지요. 더구나 참여연대 회원이 되면 또 싸게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회원에도 가입하니까, 감사하다는 전화도 주시더라고요. 송구스럽게;;
아하, 강좌 그놈, 천천히 스리슬쩍 그녀에게로 다가갔구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약된’ 것이었음을! 살다보면 정말, 어떤 일이건 사람이건 책이건 영화건, 언젠가부터 내가 기다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벅찬 ‘은혜로움’으로 가득 차, 마치 내 자신이 하늘로부터 정해진 사람인 양 신과 가까워짐을 느낀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일들은 ‘서프라이즈’ 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온갖 촉수가 그리로 향해 있기 때문에, 그전 같았으면 안 보이고 안 들렸던 것들이 그 순간부터는 유난히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희라 선생님에게 참여연대 느티나무도 그런 존재였을 듯. 이렇듯 해가 지날수록 느티나무는 조금씩 조금씩 시민들의 촉수를 자극해 간다. 그게 참, 재밌다.
그런데 그 강좌에서 한 번 이영미 선생님이 ‘대중가요로 본 서울의 도시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셨는데, 참 말씀도 재밌게 하시고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라 좋았어요. 그날 옛날 노래를 참 많이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아는 노래가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예전에 저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할머니가 그때 들으시던 노래도 생각이 나고,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그분이 다음에 <대중가요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란 강의를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듣게 됐죠.
바로 또 <집의 인문학> 강좌를 듣게 된 건, 이것도 몇 년 전 한창 ‘서울’ ‘도시’에 관해 알아가던 중에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읽으면서 시작된 거예요. 평소에 우리나라 아파트들이 굉장히 흉물스럽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때 또 <사랑해, 파리>라는 옴니버스 영화를 봤어요. 그 영화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무어냐면, 아랍계 이민 여성이 우는 자기 아기를 옆집에 맡기고 일을 가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여성은 아파트에 살아요. 마치 닭장 같은, 성냥갑 같은 교외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서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고 도심에 나가서는 굉장히 옛스러운 모습의 거리를 지나 오래된 건물들이 모인 곳의 어떤 집에 들어가요.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거죠. 그곳에 나온 아파트 단지들은 사실 우리나라 강남 모습과 비슷한데, 프랑스에서는 이민자와 하층민들이 사는 곳이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때 “우리나라는 왜 다르지?”라는 질문이 생기면서 이 강좌를 신청했죠.
그리하야 2011년 느티나무에서 몸담으신 강좌가 벌써 다섯 가지다. 별 다섯 개다.
제가 특별히 관심사가 많아서라기보다, 이러저러하게 자연스럽게 연결이 돼서 계속 수강하게 된 것 같아요. 한 강좌를 들으면 심화된 궁금증도 생기고 또 연관된 관심사도 생기고. 그럼 다음 학기에 그걸 충족시켜줄 강좌가 또 생기더라고요. ^^ 일단 한 번 왔을 때 2시간 반 이상 하니까 굉장히 알차다고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라 지루할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제가 다섯 강좌를 들으면서 “지루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유익한 정보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걸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잘 까먹게 돼서 아쉬운데, 참 몰랐던 사실을 알고 간다는 점에 충족감이 커요.
그렇게 느티나무와 1년을 동행해 온 ‘별 다섯 개’ 그녀가 어느 새 느티나무에 평점 별 다섯 개를 꽉 채워 매기고 있었다. 무지 재밌는 강좌가 너무 많고, 또 가격 대비 질이 높다며.ㅋㅋ 그러던 그녀에게서 참으로 귀한 칭찬의 말씀이 나왔다.
따뜻한 느티나무, 참 배려심 많은 느티나무
여기 운영이요. 뭐랄까... 단지 형식적인 강의가 아니라, 여기 와서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가시라고 느티나무에서 분위기를 참 잘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담당하시는 분이 많지 않은데도 매주 각 강좌, 각 꼭지 할 때마다 어떤 이야 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점을 사전에 강사님과 충분히 많은 협의를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또 수강생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때그때 분위기를 봐서 진행 방식을 바꾸기도 하고, 말하자면 의자 배열도 바꾸기도 하고 발표 형식도 바꾸고. 사실 소소하지만, 굳이 안 해도 될 것이지만, 함으로써 굉장히 효율적인 진행이 되고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배려심? 참여연대 느티나무를 보면 굉장히 ‘배려심’이 많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따뜻하고요.
<교과서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들을 때도, 서로 토론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셨어요. 옆 사람과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전체에게 나누고, 근데 사람들이 그게 익숙지가 않은 거예요. 사실 평소에는 서로 눈인사도 하나 말까잖아요. 모르는 사람하고, 그것도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통성명도 안 한 상태에서 하는 게 서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참 어려운데, 그래도 억지로라도 쏟아내고 생각이 있든 없든 의문이 들든 안 들든 일단 공유할 수 있다는 거.
아, 우리가 이런 데에 참 익숙지가 않구나. 우리가 받던 교육은 참 주입식이었고, 강좌 같은 데 가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 혼자만 단물 쪽 빨아먹고 나가면 되는 느낌이었는데, 여긴 참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배경으로 이 강좌를 들으러 왔는지 듣는 것도 재미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는 것도 좋고, 특히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것도 좋았어요. 사실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잖아요.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한편으론 그냥 내버려 두면 그냥 그대로 가버리거든요. 그래서 소통하고 생각을 공유하여 각자의 배움에 머물러 있던 지식들이 한 곳에 모이면 더 큰 깨달음이 생기잖아요. 그래도 느티나무에서 워낙 따뜻하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이희라 선생님. 같이 수강하는 입장에서 항상 그게 조금 궁금했었어요. 여기처럼 둥글게 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강좌를 듣고,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옆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그게 일종의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얼만큼인지, 아니라면 또 어떤 방식들을 더 다듬어 가면서 강좌에서 사용해 가면 좋겠다 생각하시는지 궁금했답니다. 그러더니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는 점’을 굉장히 크게 부각시켜 이야기하신다.
전 통번역을 하고 있는데, 대학원 졸업 후에 일본에 가서 5년 반 동안 살면서 직장을 다녔어요.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한 가지는 내셔널리즘, 국수주의 관련된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애국가 불러야 하고, 당연히 우리나라가 최고라 생각해야 하고, 한국 사람이면 뭐든지 감싸줘야 하고. 그런 생각들을 ‘당연히’ 의심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런데 일본에 가보니까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모습이 참 다르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일본에 대해 특히 좀 격하게, 반감부터, 대부분 곱게 안 보잖아요. 그런데 같은 행동을 우리가 하면 괜찮고 일본 사람이 하면 그 순간 잣대가 달라진다는 것. 그게 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만일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일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을 거예요. 전 그곳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들어봤고,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사람들도 만나봤거든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는 정말 많은 시각들이 존재하고, 그런 시각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존중해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다른 것’이 나쁜 건 아니거든요. 다른 건 다른 거고, 그게 내 기호와 맞아서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지만, 그게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거죠. 나름 역사가 있고 이유와 배경이 있어서 그런 건데, 단지 겉모습만 보고 처음부터 단정 짓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항상 그렇게 생각해봐야 해요.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쉽게 단정 짓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아 정말 많이 경계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특히 참여연대 와서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느티나무에서 매우 다양한 시각과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같아서 상당히 만족스러워요.
솔직히 말해,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고,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많이도 들어 왔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무수히 다양한 사람들과 사는 사람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보편 도덕률이니,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경험하신 일이라곤 하지만, 뭐 그리 놀라운 이야기 같진 않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듣고 있던 중, 아, 아뿔싸! 뭔가 갑자기 뒷골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분은 지금 자신이 깨달은 점을 본인의 어떤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그냥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맞으니까’ 하고 생각하여 그 룰에 따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란 말이다! 그래서 어쩌다 정신줄 놓고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으면 온갖 자신의 얕은 지식과 협소한 시각으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듣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한 꺼풀 씌우고 비꼬아서 생각하여 단정해버리고 만다. 이건 순전히 그 룰을 “글로 배운” 탓이다. 아직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껴서 깨달아본 적이 없어서 그럴 테다. 흠. 나도 일본에서 살다 와야겠군.
이희라는 팔짱끼고 놀러 다니면 좋겠을 ‘아는 언니’ 같은 사람!
이희라 수강생
지난 <서울, 도시와 공간의 인문학>에서 강의하신 안창모 선생님이 이번 <집의 인문학> 강의에서 자신이 골목 답사를 하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 재밌겠다! 하고 생각하여 알아보았죠. 저도 아는 친구들하고 카메라 들고 얼마 있으면 없어질 지도 모르는 곳들 다니면서 사진을 찍거든요. 자주는 못 가지만, 그런 걸 되게 좋아해요. 무지 재미있는 공간들이 많아요. 말하자면 ‘생활감’이 느껴지는 곳들. 엉뚱하게, 화단 옆에 거울이 달려 있거나 시계나 빗도 걸려 있어요. 알고 보니 동네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 하시면서 보고 머리도 빗으려고 걸어놓으신 거예요. 되게 재밌잖아요. 안창모 선생님은 새건축사협회 회원이신데, 한 달에 한 번씩 답사 투어를 하시더라고요. 문의해봤더니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 하여 9월에 가봤어요. 다음 달에도 갈 거예요.
이분은 이뿐 아니라 페이스북도 하시고, 악기도 배우시고, 인문학 강좌도 쫓아가 들으시고, 문화예술인 모임에서 총무도 하신다. 업으로 통역도 하시고. (뭐, 원래 이런 인터뷰 같은 거 하면, 본의 아니게 ‘깔대기’를 자초하시게 될 수도...^^ 대환영이다!) 느티나무가 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여기 오시는 숱한 ‘깔때기’들을 자꾸만 집에 그냥 보내드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래서 이분도 놓칠 세라 바로 들이밀었다. 지금 느티나무에서 수강생들이 강의하는 <나는 강사다!>를 추진 중이니 기회를 엿봐 나중에 한번 모시겠다고. 뭐, 어떤 소재로라도~
사회를 향하던 시선이, 점차 내게로 오다
<집의 인문학> 강좌는 들으시고 나서 처음과 어떤 변화가 있으셨냐고 물었더니, 뭔가 어떤 고민을 자신 안으로 더 가져가신 듯하다.
처음에 막연히 ‘서울, 대도시, 역사’ 이었다가 ‘아파트, 내가 사는 곳, 주택’ 같은 것으로 관심이 옮겨져 마지막에 가서는 ‘나’로 점점 좁혀졌어요. <집의 인문학> 마지막 강의 “누구랑 살 것인가?” 때 완전히 내 안으로 주제가 좁혀졌어요. 저는 지금 부모님과 살고 있는데,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혼자 살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거든요.
정말 “나는 누구랑 살 것인가?”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가족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거리가 먼 존재가 또 가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친구 문제나 일상 문제들, 고민 같은 건 부모에게 잘 이야기 안 하잖아요. 오히려 친구와 논의하고. 그냥 뜻 맞는 후배? 약간 사생활은 배려하고 거리를 두면서 공간을 공유하는,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아는 친구나 선후배와 살 수도 있다 생각해요. 이 생각을 한 7~8년 전부터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얽매이지 않고, 그냥 같이 걸어가는 사람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더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 이제 정말 내 문제로 오는 거죠. 10년, 20년 후에 나는 누구와 살고 있을까.
그렇게 보면, 느티나무 강좌는 우리 일상생활에 기반하여 우리 삶과 굉장히 밀착해 있는 주제들이라서 참 좋아요. 살면서 일상에만 쫓기다 보면 자기 생활을 되짚어보는 경우가 많이 없잖아요. 그런데 여태껏 제가 들었던 강좌만 보더라도, 나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나, 서울 시민으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만일 옆집 사람과 집 문제로 트러블이 생기면, 말하자면 실질적인 문제들이요. 나와 밀접하게 연관된 주변에 대해 살펴보는 기회, 다양한 각도에서 그런 시야를 발견해주었단 점에서 느티나무에 매우 만족해요.
그렇다. 우린 두 시간 내내 ‘본의 아니게’ 느티나무 격찬만 늘어놓았다.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든, 어떤 이야기로 전개되든, 모든 칭찬과 덕은 다 느티나무에게로 수렴되었다. 하하. 의도치 않았다.
좀 더 활동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 ‘희라 언니’
<드로잉> 강좌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 신청할 예정이고, <우쿨렐레>도 올 여름에 일본인 친구가 우쿨렐레와 교본을 모두 선물로 주어서 모집 기간만 기다리고 계시단다. 처음 느티나무에 왔을 때는 마치 ‘교회’ 같으셨단다. 간사님들은 너무 친절하시고 싹싹하시고 배려심 많으시고 정중하시고, 수강생들은 암암리에 ‘우리는 하나의 공유된 어떤 걸로 뭉쳐진 사람들이다’ 하고 생각하며 느티나무에 나오시는 것 같다고.
그런 점에 있어서 내가 그간 놓쳤던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참여연대 강좌 들으러 가자.”라고 말하는데, 이희라 선생님은 “인문학 강좌 들으러 가자.”라고 하신단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여연대 느티나무에는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마치 주님의 뜻 아래 하나로 뭉치는 ‘교회’를 다니는 신도처럼 그간 전도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핵심은, 강좌 내용이었다. 나는 느티나무를 소개하기를, 강좌 내용이 어떻든 ‘참여연대’에 모이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니까 뭐든 재밌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러니 근 3년간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단 한 명의 발걸음도 이끌지 못했던 게 아닌가!
사람들이 좋아했던 건 무엇보다 느티나무에 개설된 ‘민주주의’ ‘인문학’ ‘생활문화’ 강좌였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3년 다닌 나보다 1년 다니신 ‘희라 언니’가 더 먼저 지인을 데려오실 듯하다. 두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작 묻고 싶었던 일본 생활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녀 안에 분명 깜짝 놀랄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들이 수북이 쌓여 있을 것이다. 이후 다른 자리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줄로 알고, 이희라 선생님의 [백인보] 인터뷰는 여기까지 전한다. 적지 말라 하셔서 애써 머릿속에서 잊으려 노력했는데, 원래 그런 게 더 안 잊혀진다. 글 쓰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한 번 ‘고자질’하고 후다닥 자리를 뜨련다. 이희라 선생님이 그랬다. 처음에 [백인보]가 ‘백인보’라는 사람이 연재하는 칼럼인 줄 알았다고!ㅋㅋ 솔직히 이렇게 생각하신 분 많으시죠? 그랬던 분, 손~!!
박수... 짝짝짝
새로운 기자의 탄생 축하합니다. 글 참 느낌있게 잘~~ 쓰시네요.
이희라님, 인터뷰 내용도 참 따뜻하고 잔잔하고...
저도 한번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두분 모두
리얼리 리얼리 나이스 미팅 유!!
읽어보니 '착한글'은 아니구먼..
부드러운 빵속에 들어있는 달콤한 슈크림처럼, 맛난 글이구먼요.
새론 기자로 섭외하신분의 눈이 날카로움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느티나무가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잎도 무성하여 우리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고 있다 생각됩니다.
희라님! 느티나무지기 아니시던가요?
뵙고 싶네요
이은주 샘 ..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뵈요 ^^
우왕~~~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은주샘 이뿌고 착하기만 한줄 알았더니 글도 참 예뿌게 쓰시네요
음... 한동안 백인보 칼럼을 담당해왔던..... 백.인.보.입니다. ㅋㅋ
그니까 저만 그런 사실을 몰랐던 거군요.
하긴, 백인보가 쓰는 칼럼이면 뭐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많이만 읽어주신다면야...
(성을 백씨로 개명해야할까 봐요 ㅠㅠ)
앞으로 수강생들 만나면 백인보라 먼저 소개해야 할까봐요... ㅎㅎ
이젠 저 말고도 두 분이나 백인보칼럼에 더 합류해 주셨으니
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빵 속 슈크림, 이은주입니다. ㅎㅎ
여러분의 격려와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하고요.
인터뷰 글은 처음이라, 몇 번 더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더한 깊이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기자단에 합류하게 된 제가 영광이네요.~
오호~ 느티나무엔 정말 매력적인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전 생활문화학교 강좌만 들었는데 담엔 공부하는, 강좌를 들어봐야겠어요. 호홍
강좌에서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_<ㅎㅎ
새로운 기자님의 탄생 축하축하!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