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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헌법> 막강을 향해 달리던 길목에서..
안녕하세요. 수강생 이은주입니다.
벌써 다섯 번의 강좌를 들었네요.
며칠 전 강의가 끝난 후 준비팀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었죠.
ㅡ "내가 새로 배운 것"과 "의문"에 관해 키워드로 이야기하기 ㅡ
참으로 여러 분이 흥미로운 이야기 많이 던져주셔서 흥분된 시간이었습니다.
여지껏 강의 후 진행되었던 질의응답 시간에는 사실 ‘시간 관계상’ 한두 가지 질의응답만 하게 되니
선뜻 질문하기가 그리 쉽진 않았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번 시간에는 질문뿐만 아니라 자신이 강의를 들으면서 새로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었던 내용을 이야기해보자고 하셔서 모두에게 편안한 시간이었던 듯합니다.
저 또한 무언가 핵심을 ‘콕’ 집은 질문이 아니라
나름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라 머릿속으로 얼개를 막 짜던 찰나에 순서가 지나서 이야기를 못했는데요,
그 아쉬움을 덜어보고자 몇 자 적으려 합니다.
학부 때 근대 사회를 기획한 홉스, 로크, 루소의 이야기,
‘사회계약설’을 수업하시던 선생님께서 근대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ㅡ"우리에겐 굶어 죽을 자유가 있습니다."ㅡ
당시 그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뇌리에 꽂혔던 말입니다.
농노로 살면서 자신이 노동한 산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던 봉건 사회를 벗어던지고
신체와 노동,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한 근대 사회는 분명 당시에는 엄청난 진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극심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점철된 지금의 체제에서
최갑수 교수님 말씀대로 '근대의 탈을 쓴 봉건'이 또 다시 고개를 든 것이지요.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배-피지배로 나뉘는 사회, 무계급 사회를 향한 또 한 번의 진보를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학부 때 기존의 학생회 질서를 붕괴하고
‘평의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학생회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벌였었는데요.
토대가 되는 기본 철학은 ‘직접민주주의 실현’이었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학생회 만들기’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어느 조직에 소속돼 있지 않은 개인 자격이라도 얼마든지 평의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치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체계였습니다. 평의회에서는 예산 분배 정도를 하고, 몇 명이 모인 집행부가 꼭 해야 할 최소한의 실무 정도를 맡았었죠. 제가 속해 있던 ‘평의회준비모임’은 대의제로 작동되던 기존의 학생회 틀을 폐기하고 회칙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긴 시간 준비한 끝에 총회 자리에서 비준을 받아 2년간 평의회 체제를 유지하였고, 그 뒤에는 예전 학생회 체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지요.
아무튼 그때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학생 사회의 틀을 만드는 회칙 제정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였는지 모릅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도 학생 사회를 새로 수립하려는 건설 철학과 이념이 들어가야 했었고, 직접민주주의 정신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몇날 며칠을 치열히 논쟁하고는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예전 일이라 세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의결권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의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대의할 수 없는 자격인데
평의회가 모두가 낸 학생회비를 어떻게 분배해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평의회에 의견을 내지 않거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는 것이라 해석되는 것이었지요.
더구나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학생과 어느 조직을 대표하여 참석한 학생이 모두 1인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거라 수적으로 평등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는지도 문제였고요. 그래서 학생회비를 걷는 것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었지만, 학생들에게 공동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었고 꼭 해야 할 행사나 처리해야 할 일들 정도는 필요하더라고요. 국가로 말하자면, 세금이 필요한 이유 같은 거였겠지요.
그리고 결정 자체를 ‘공익을 위한’ 방향으로 하는 게 보통 기준이었으니, 대체 모두의 이익은 무엇이며
‘모두’라는 그 학생들은 과연 어떤 학생을 상정해 두는 것인지도 문제였으며, 무릇 대학생이라면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노동 문제나 국제적 평화를 위한 역사적 과업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권 학생들의 목소리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운동권에게 학생회는 학생 운동 조직을 위한 집행부였으니까요.
강좌를 통해 프랑스와 미국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학부 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사실 사회를 새로 건설하려다 보니 완벽에 가깝도록 모든 사안을 짜 놓아야 하는 게 과제였는데, 역시나 머릿속에서 그린 체제와 현실에서 굴러가는 체제에는 갭이 존재하더라고요. 중간 중간 체제에 문제가 생기거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곤 했지요. 그럼 큰 틀인 회칙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세칙만을 만지거나 편이적인 유권해석으로 근근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체계는 틈새 없이 완벽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해주기 위해 못 본 척하고 무시한 문제도 있었고, 우리 쪽에 유리하도록 해석해버리기도 했었고. 평의회를 준비했던 우리에게 권력이 생기는 체제는 분명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일종의 제정 의회였던 평의회준비모임이 표면적으로는 공식 해체하고 평의회를 작동시켰지만 그 뒤로도 계속 의회를 주도하게 되고 실무를 끌고 나갔더니 처음 꿈꾸었던 사회를 완벽히 그려내진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답니다.
이번 <혁명과 헌법의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먼저,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위임하고 양도하는’ 원리를 다시금 따져보고 싶더군요. 그게 얼마나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계급에 따른 대표성이 아닌 지역 단위로 묶이는 지금의 대표성 체계로 인민의 권리가 얼마나 실현될 수 있는가?
가장 궁금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종의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는 헌법은 어떠해야 할까?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를 기획한 역사적 인물들 덕에 기존 봉건제 사회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민주적인 사회가 되었지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광풍처럼 몰아닥치는 현대 사회에서 또 한 번 생겨난 계급 구조가 만들어낸 ‘근대의 탈을 쓴 봉건 사회’를 또 어떻게 뒤엎을 것인가가 과제이겠지요. 생산 수단을 공유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혁명, 혁명이 성공했을 때에는 새 사회 헌법은 어때야 할지?
간단히 적으려다 구구절절 말이 많았습니다.
이번 주가 벌써 마지막인데, 대한민국 제헌 헌법을 보지요. 이번 강의의 꽃이자 열매일 마지막 수업 때 뵙겠습니다.
그날 흥미로운 이야기들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