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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선생님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수강소감
나의 놀이터이자 군불이 되어준 프로그램
이정명 선생님 워크샵은 내게는 재밌는 놀이같은 시간들이었다.
작년에는 선생님이 한달에 한번씩 참여할 수 있는 워크샵을 만들어주셨는데,
이번에 일주일에 한번씩 몸과 마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니 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시험을 앞두고 있는 내가 평일 오전을 비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게다가 오후 업무스케줄도 빠듯했다. 그런데 다행히 스케줄에 갑자기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배짱이 있어야 시험을 실력대로 볼텐데, 그럴려면 이 프로그램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중요한 건 지식을 쌓고 일하는 것만이 내인생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난 놀이가 필요하다.
흐흐흐 첫날 워크샵에 가는 발걸음이 무진장 가벼웠다.
낯선 얼굴의 여성들이 한 열댓명 모였다.
처음 와본 사람은 지난밤에 긴장되었다고 했다.
나도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게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분들도 나도,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서 차츰 차츰 친해지고, 재밌고 유익한 시간을 함께 만들어갈거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아침에 시작된 워크샵이어서인지 누워서 몸푸는 것으로 시작하는 날이 많았다.
지뿌둥한 내몸을 음악에 안겨서 마음가는 대로 흔들고, 부드럽게 만져주고 하다보면,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지고 내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갈비살들, 처음으로 움직여보는 듯한 U자 다리동작, 처음으로 연상해보는 듯한 진주목걸이 척추들, 처음으로 남에게 진지하고도 따뜻함을 나누는 듯한 손동작들, 사람들속에서는 처음으로 인정해주는 듯한 내몸의 부위들.
낯선 감촉, 낯선 동작, 낯선 이미지, 낯선 나눔, 낯선 지각...
그 새로움이 내게로와서 내 것이 되었다.
내 안에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좋은 감정들이 겉으로 드러났고, 나누고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그동안 했던 작업을 생각나는 대로 한번 적어본다.
[작업1]
마치 어린아이의 볼을 만지듯 내 두볼을 만지며 나의 사랑스러움을 실감하고, 마룻바닥을 뒹글뒹글하는 그 즐거움, 팔을 쭉 뻣어서 가슴을 활짝 펴고 마룻바닥을 쓸어내리듯 내 행복의 기운을 세상밖으로 쭉 쭉 뻣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호감을 전해주면 기꺼이 받아들고 내 호감을 나누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안에 고통과 괴로움, 두려움들이 꼭 필요한 감정들로 그 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작업2]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리며 스케치북을 청색으로 메워나갔다. 어느 순간 너무나 아름다운 청색의 매력을 느꼈다. ‘두려움이라는게 꼭 필요한 아름다운 감정이구나’ 하는 기특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 그걸 왜 몰랐지. 나의 예상이 만들어낸 감정이지. 스스로 하는 자기점검의 예리함, 때로는 지나친 인색함이 만들어낸 감정이지.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나의 판단력의 결과물이기도 하지. 두려움 앞에 겸손해져서 더 준비하고 노력하는게 필요하구나. 그 뒤에 찾아오는 결과를 내가 책임져 나가는게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
[작업3]
한 점에 시선과 동작을 집중하는 갈망작업. 갖고 싶은게 얼마나 많았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내 행동이 얼마나 단조롭고 폐쇄된 느낌을 주고 있는지 실감했다. 다양한 관심사를 존중하며, 갖고 싶은 것을 향해서 느긋하게 다가가고 픈 마음이 들게 했다.
[작업4]
집에서 4절지나 되는 큰 스케치북에 그림일기를 그려보라는 숙제를 받았다. 뭔 도화지가 저렇게 클까 싶었다. 천천히 색깔을 채워나가다 보면 내 감정과 욕구가 분명하게 자각되고, 내 행동도 되돌아보게 된다. 한번은 내 생일날이었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배려해주는 척하다가, 자신들 욕구대로 밀고 나갈까 싶어서 실망, 배신감에 눈물이 핑돌고 화가 엄청 났었다. 도화지 가득 색깔이 칠해졌다. 덫칠하고 덫칠하고... 감정의 크기가 엄청 컸다. 그러다가 문득 내 욕구에 부모님이 맞추지 않았다고 화내는 것 역시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길로 가서 부모님과 화해를 했다. 이후로 상대방의 욕구를 존중해주는 마음이 전보다 훨씬 선명해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낯선 것들을 낯선 사람들과 똑같이 해보고, 같이 나누다가 보니
조원들이 친근해지고, 나눔이 익숙해지는 연습이 되었다.
[작업5]
눈을 감은 파트너의 손을 내 손바닥위에 살짝 얹어놓고, 움직임을 안내하고 춤을 춰보았다. 파트너가 나를 충분히 믿지 않는 건 아닌가 하며 섭섭해했다. 반대역할이 되었을 때 파트너를 덜컥 믿어버리지 못하는 나의 인색함이 비집고 올라왔다. 또한 내 머릿속 잔상에 끄달려서 안전함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미련함이 정체를 드러냈다. 한편 그런 것들을 떨쳐냈을 때 얼마나 재밌는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작업6]
눈을 감고서 조원들이 내몸의 한 부분에 손을 대고 따뜻한 보살핌의 손길을 주었다. 따뜻한 그 손길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조원의 몸에 필요한게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관심있게 바라봐야했다. 그리고 순전히 감으로 선택을 했다. 전체 나눔시간에 내가 준 것을 기뻐하던 조원이 있었다. 캬. 감격적이고 뿌뜻했다.
프로그램은 역시나 재밌었다.
ㅋㅋㅋ 그래 이정명 선생님 수업은 바로 이 맛이야.
8주가 다 지나갔다. 아! 내 놀이터!!!!! 빈자리가 클 것 같았다.
그동안 '이번주에는 어떤 것들을 해야하나'를 생각하다가 목요일 오전 워크샵이 떠오르면 두손을 맞잡고 야심찬 미소를 짓게 만들던 그 즐거움이 이제 끝났다니.
그렇지만 끝나는 아쉬움은 1월의 2차 워크샵으로 이어진다는 말에 안심했다.
8주간의 참여를 마치고 보니,
몸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일상생활을 읽어간 것 같다.
여성인 나의 몸에 담겨있는 지혜를 소리를 듣고, 그것을 일상 생활로 넓혀가는 느낌이다.
요즘 일상적인 사람들과 얘기가 편하고 재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마지막날 조원들의 소감도 마음이 편해지고, 남과 주고받음이 자연스러워 지고 많아졌다는 얘기들을 들었다.
음... 이정명 선생님 수업에 뭐가 있길래 그런 걸 만들었을까. 다음엔 좀 관찰을 하면서 참여해야 겠다. 선생님께 얼핏 들은 바로는, 음악, 미술, 동작들이 자기 자원이 된다고 하셨다. 아마도 자신의 특성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서 가마솥이 달구어지듯이 서서히 자신감을 올려주고, 자기정체를 세상에 드러내게 해주는 그런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혼자 있으면 자신감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가끔은 그 커다란 4절지 도화지 앞에 앉아서 나의 뭔가를 꺼내서 들여다 본다. 그럼 뭔가가 정리되고 편해진다. 앞으로도 군불을 지피는 작업을 계속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기획해주신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 좋은 프로그램 이끌어주신 이정명 선생님 감사!
이 세상이 여성의 지혜로 가득차는 그날까지 영원하라~
연평도 참사를 애도하며...
아. 글을 읽으면서 1-8강까지 리뷰를 하는 느낌이네요. 강좌가 진행되는 동안, 집에서 혼자도 해보았는데 늘 그럴 수 있게 하는 데 이 글이 큰 도움이 되겠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