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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번째┃고민 많은 청담동 여고생
느티나무 백인보 열다섯번째 - 수강생 안주영
인터뷰 · 글 : 김도형 아카데미 인턴
안주영씨,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아마도) 최연소 수강생이다. 물론, 느티나무에서 강좌를 듣는 데 나이제한 같은 건 없다. 당연히 연령도 성별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20대 초반, 즉 대학이든 직장이든 어느 정도 사회 맛(?)을 본 이들이어야 참여연대라는 이름이, 아카데미의 의미가 더 어필하기 쉽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적어도 제도권 교육 안에 있는 학생이 이곳을 찾아온다는 건 상상하기 쉽지 않다. 말하자면, 상한선은 없어도 하한선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셈이랄까.
수요일 저녁마다 단정한 여고 교복에 빨간 가방을 매고 느티나무 지하실로 걸어 내려오는 주영씨의 모습은 그래서 퍽 이색적이었다. 여느 집에 있을 법한 막내 여동생 같은 모습이지만, 항상 제일 먼저 와서 맨 앞자리를 뺏기지 않는 모습에서도, 아니면 아니다, 싫으면 싫다 또랑또랑하게 할 말 다 하는 모습에서도 비범함이 느껴졌던 건 꼭 선입견만은 아닐 게다.
그래서 흥미가 생겼다. 매일 수업시간보다 한 두 시간 먼저 와서 까페 통인 한구석에서 공부하던 요 냉랭한 아가씨. 툭툭 내뱉는 말투로 직접 구워온 쿠키를 회원들에게 내미는 알다가도 모를 여고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마침 백인보도 한 회 맡았겠다. 그렇게 안주영씨와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여고생, 느티나무를 두드리다.
뭐가 먹고 싶으냐는 말에 대뜸 고기!!를 부르짖은 주영씨와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중충한 소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물론, 뻘쭘한 질문들과 함께. 일단 시작은 자기소개부터, 어딘가 꿋꿋하고 시크한 엘리트 큰딸 같은 그 포스의 진원지가 궁금했는데. 나온 건 의외의 대답. 외동이란다.
“청담 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인 학생이고요. 외동딸입니다... (헐-_-) 근데 저 외동같이 안 보이나요? 완전 막내 같은 성격인데...... 사실 남들이 나한테 의지하는 거 싫어요. 나는 내가 남한테 의지하고 싶은데....”
아 이런, 첫마디부터 예상 밖이다. 하기야 겉으로 씩씩해 보이는 사람들이 속은 더 여린 건 한 두 번 보는 일도 아니지. 10대다운 솔직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딱 요즘아이가 어떻게 참여연대 아카데미 같은 데를 다 오게 되었을까?
“......엄청 많이 대답했던 질문이네요. 음... 엄마 친구 분이 참여연대 자원활동을 하셨어요. 그분이 팜플렛을 가져오셨었고 그걸 보다가... 아카데미 강좌란 게 있구나 싶었죠. 그리고 마음에 드는 강좌가 있어서 듣게 되었고..”
특별한 경로는 아니다. 하지만 반듯한 고등학생이 학원도 아닌, 학교 바깥 수업을 들으러 올 수 있었다는 건 부모님의 허락과 지원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특별한 분들은 아니에요. 아빠는 뭔지 잘 모르지만 일 하시고..아, 자랑은 아닌데 엄마는 좀 흔치않은 직업이에요. 파티셰, 그래서...제가 쿠키를 만들었...겠죠?? 허락은...그냥 뭐 회원이면 수강료가 반값이기도 하고, 어쨌든 학원보다는 싸고...그래도 내가 역사 쪽으로 가겠다는데. 또 대학교수님이 하시는 수업이니까.. 그렇게 들을 수 있었구요. 또 한 번 듣기 시작했는데 끝까지는 계속 들어야죠...하하.”
그러고 보니 안주영씨 하면 떠오르는 건 언젠가부터 직접 구워오던 수제 쿠키였다. 그것도 민짜 쿠키가 아니라 아몬드, 고구마 등등 얼핏 봐도 적잖은 정성이 들어간!! 근데 다른 수업 수강생들은 그녀의 특제 쿠키를 맛본 일이 없다. 주영씨. 다른 수업은 듣고 싶은 게 없었나요??
“다른 건 시간이 안 맞기도 해서...수요일에만 제가 시간이 맞더라구요. 그래서 역사 교과서만 들었어요. 다른 거 듣고 싶은 건 있는데, 복지국가랑... 영국소설, 심리학, 신화 같은 거?....그런 게 듣고 싶었어요. 음...복지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복지와 공정사회에 대한 건 궁금하기도 했고...”
응? 복지를 별로 안 좋아한다구? 조금 의아해졌다. 이것은 혹시 강남 여고생의 마인드? 복지 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 그런 의미는 아니구요... 복지 물론 좋죠.. 좋은데, 솔직히 복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 좋아하세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막 이걸 파야겠다 싶은, 재미있다거나, 좋아서라기보다 뭔가 필요할 거 같아서 듣고 싶다는 거죠.”
그럼 그렇지. 질 낮은 오해는 역시나 틀렸다. 그럼 두 번이나 들은 역사교과서 강좌 소감은 어떤가요?
“일단은 재미있었죠...뭔가 사람들이 질문도 많고 얘기도 많아서 좀 어지럽기는 하지만...어쨋든 재밌었어요..특히 봄 강좌 보다는 가을 강좌가..... 전 두 번 다 들었는데 이번 수업이 훨씬 재밌었어요. 왜 선생님들 중에도 내내 수업만 하는 선생님이 있고, 농담도 좀 적절히 해주시는 선생님이 있잖아요. 가을학기는 확실히 후자였던 거죠. 가을학기는 진짜 한 번 도 안 졸았어요...김정인쌤도 이신철쌤도 완전 재밌게 하셔서!!”
역사 전공자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재미있었다. 역사교과서 강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나누다 보니 교수님이 두 분이었던 것도 이채롭다면 이채로운 일. 거의 개근한 주영씨는 교수님 두 분의 강의를 들은 셈인데, 두 분 스타일을 비교해 보자면?
“두 분 스타일은 글쎄...두 분 다 재밌게 하시는데 김정인 선생님은 본인이 쓰신 글을 자주 인용하시는 거 같고, 이신철 선생님은 교과서를 직접 쓰셔서 그런지 교과서에서 더 많이 인용하시는 거 같다..그 정도? 그러고 보니 답사 못 간 건 많이 아쉽네요. 가고 싶었는데...두번 째 답사는 뭔가 굉장히 바쁘겠다 싶어 보이긴 했어요. 코스를 보니까.”
비록 답사는 못 갔지만 주영씨는 수업을 참 열심히 들었다. 누가 봐도 티 나는 교복 입은 막내여서 그런지 이신철 교수님도 답사 때 막내 안 왔냐며 찾았을 정도. 그러고 보니 수업 때 친한 분들이 계시죠? 같이 앉아서 얘기하는 분들. 개인적인 에피소드 같은 거 있나요?
“음...친한 분들 있죠. 언니들?? 이모들?? 아 뭐라고 해야 되지. 언니라고 하기에는 좀 연세가 있으신 거 같구.. 근데 원래 여자 분들께는 한 단계 낮춰서 불러 드리고 남자 분들은 그대로 불러 드리는 게 예의래요. 사실 나이는 모르지만. 김민수 간사님도 되게 애매 했어요 처음에. 뭐라고 불러야 할지. 오빠? 간사님? 저기요? 근데 간사님도 비슷하신 거 같아요. 처음에 주영씨~ 주영씨~ 하다가 요즘은 주영~ 이렇게 부르구. 나름 절충?? 음... 아무튼 그분 들은 수업 같이 듣고, 집에 같이 가는 친구? 하교 친구? 뭐 그런 분들이에요. 근데 가면서 역사 얘기는 안하고 일상 얘기만 해요. 에피소드는 저는 보통 일찍 와서 앞에 앉아 있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은 딱 임박해서 오시니까 보통. 수업 듣고 있으면 은경언니가 옆에 앉으시면서 ‘야 가방 좀 치워 줘.’ 하시던 거랑, 이신철 쌤 첫 시간에 쉬는 시간 없이 두 시간 할 때 쌤이 ‘쉬는 시간 없어도 되죠?’ 라고 하셨을 때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네~~~!’하는 거 너무 짜증 났다구... 뭐 그런 얘기들.”
“아, 처음 얘기하게 된 과정이 좀 뜬금없었어요. 집에 갈 때 지하철에 앉았는데 양옆에 두 분(김은경 선생님, 박미경 선생님)이 앉아계셨던 거예요. 서로 모르는 상태로. 근데 보니까 셋 다 수업 듣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자리 바꿔 드리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하셔서, 결국 셋이 얘기하면서 집에 갔죠. 막 요즘 연예인 누가 잘 나가냐구. 니네가 무슨 얘기 하나 궁금해서 그런다구... 뭐 이런 얘기 하시구... 언젠가는 두 분이 치맥 달리신다고 닭 먹고 가라고 하시구....가진 않았지만. 그런데 그렇다고 또 귀여움 받는 막내...같은 건 또 아니에요. 언니들은 나를 너무 괴롭혀요.(ㅠㅠ) 직접 얘기도 했어요. 심지어. ‘왜 난 너 만 보면 괴롭히고 싶지??’ 막 이런 얘기 하시고..하아. 뭐 같이 수다 떨고 집에 같이 가는 언니들이죠. 좋죠. 근데 써포터즈 하신다고 했을 때는 좀 놀랐어요.”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영화든 드라마든 대중문화 컨텐츠 분석 또 했으면 좋겠어요. 왜 예전에 사극 분석하는 강좌가 있었잖아요. 저 진짜 그거 너무 듣고 싶었어요. 내가 고1 때 여길 알았어야 했어 진짜. 그러니까 아무래도 교과서를 까는 거 보다는 사극을 까는 게 더 재미있겠죠. 사극 고증 제대로 안 된 거 까고 그런 거 좋아요. 그런 거 듣고 알면 어디 가서 아는 척도 좀 할 수 있고. 흐흐.”
“만화도 굉장히 좋아해요. 정확히는 만화책! 저 만화 진짜 많이 봐요. 어디를 이사 가도 그 동네 만화책방 언니나 오빠들이랑 항상 친해졌어요. 일종의 우량고객? 막 저 가면 먹을 거 시켜주고, 돈 없을 때도 외상으로 빌려가라고 해주고. 언젠가는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두 달 정도 대여 기록을 봤는데 그게 막 몇 천권이 넘게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그래도 솔직히 스스로 좀 자부하고 있어요. 아무튼 만화책 이야기 하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
만화책의, 만화책에 의한, 만화책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주영씨의 이미지가 하나하나 만들어 져 간다. 역사를 좋아하고 만화책도 좋아하는 여고생. 여전히 범상치는 않은 조합이다. 역사와 만화책의 공통분모는 이야기, 서사, 그렇다면 역사소설, 삼국지 같은 것도 좋아 할 법 한데...... 삼국지 만화로 독자적인 고전 반열에 들어간 요코야마 미쓰테루의《전략 삼국지 60권》이 생각났다. 주영씨, 혹시 읽어봤나요?
“아, 삼국지는 안 읽어 봤어요.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 봐서 아는데, 긴 책으로 제대로 읽지는 않았어요. 근데 딱히 또 취향은 없어서 호러랑 너무 심한 소년만화 빼고는 다 봐요. 근데 공포물은 진짜 싫어해요. 이토준지 같은 거. 호러물은 진짜 책을 만지기도 싫어요. 만지면 저주받을 거 같고 막. 근데 또 호기심은 있어서 친구한테 “야 니가 넘겨봐” 이러면서 한 장 한 장 보고 그래요. 호기심 때문에 초딩 때 약간 무서운 책 (무서운 게 딱 좋아 씨리즈)을 산적이 있는데 보지는 못하고 책꽂이 위쪽에 올려놨어요. ‘이걸 여기 두면 내가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겠지?’ 라고 생각 한거죠. 근데 그러고 그걸 내가 잊어먹나 안 잊어먹나 오히려 매일 생각나는 거예요. 완전 바보 같죠. 결국 못 참고 다른 책이랑 바꿨어요.“
만화 이야기가 나오니 대화가 활기를 띤다. 만화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 친구... 경험 상 뭔가 깊숙한 취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천을 부탁해 보는 편이 좋다. 음...주영씨 내 인생에 단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만화책 하나 추천해 줄 수 있나요?
“그건..불가능해요.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요. 저는 친구들한테도 딱 뭘 추천하거나 이런 게 아니라 같이 책방을 가거나 하면 꽂혀 있는 거 같이 좍 보면서 이거 괜찮아 저거 괜찮아 하면서 하나하나 권해주는 식이에요. 좋아하는 작가도 너무 많아서. 기본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나 작품들 좋고요. 아, <기생수> 재미있어요. 무서운 거 진짜 못 보는데 다들 너무 명작이라고 해서 봤어요. 사실 되게 힘들었어요. 막 첫 장면부터 괴물 나오고 사람 죽어서 결국 보다가 덮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궁금해서 또 보고... 그러다 세 번 만에 간신히 1권을 다 읽었는데... 이게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머지를 다 봤죠.”
역시 호기심은 공포를 이긴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공포물은 싫다지만 사실 재미있으면 크게 상관없는 얘기 같기도 하다. 그러면 만화 말고 영화는?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추천할 만한 작품을 물어보았다.
“저는........영화도 드라마도 미드도 좀 후하게 쳐주는 편이에요. 근데 수사물은 안 보고, <뱀파이어 다이어리> 같이 하이틴 멜로 같은 거 좋아해요. 좋아하는 작품도 분야도 너무 많아서 고를 수는 없을 거 같아요. 혹시 영화 <세 얼간이> 보셨어요? 전 그 영화가 너무 슬픈 거예요. 안 그럴 거 같은데 제가 의외로 감수성이 풍부한가 봐요. 해리포터 보고 운적도 있어요. 다른 사람 우는 거 보면 같이 울기도 하고. 영화도 그렇지만 만화도 소재가 깊고 세계관 특이한 게 좋아요. 그리고 옛날 만화 되게 좋아해요. <유리가면>,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거. 의외로 옛날 만화에 막장이 되게 많아요. 완전 충격적인 스토리들. 사실 옛날 그림체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보면 또 좋아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데 진지한 만화, 직업물 같은 게 좋아요. 의학 만화나 요리만화, 발레만화... 그리고 심리묘사 치밀한, 머리 쓰는 만화도 좋고. <도박 묵시록 카이지> 보다보면 막 사람이 무서워 져요. 뭐 만화 얘기 하면 끝이 없어요. 근데 옛날 만화도 <북두의 권>같이 완전 마초물은 싫어요,... 근데 <슬램덩크>는 또 본 게 신기해요.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꿨는데 그게 어울리고 또 성공한 것도 신기하고... 웹툰은 많이 안 보는데 다음 쪽이 더 진지하고 좋아요. 네이버는 조금 가볍고. 그래도 만화 ‘책’이 제일 좋아요. 애니메이션도 별로... 제 친구들은 안 그런데, 전 원작을 봐야 한다는 생각도 좀 있고요. 연재속도도 만화책이 더 빠르고, 애니는 마음대로 떼고 붙이고 하기도 하고. 성우 때문에 환상이 깨지는 것도 싫어요. 그리고 책은 되게 빨리 보는데 애니메이션은 최소한 편당 20분은 투자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또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성우도 있고 그래요.”
이런이런 물어본 건 영화 이야기였는데, 결국 만화로 돌아갔다. 깔대기도 아니고 정말 끝이 없는 만화이야기. 사실은, 이것도 필자가 줄인답시고 줄인 내용이다. 이제까지의 대화 중에 제일 생기 넘치는 주영씨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럼 역시 본인의 궁극적인 취미는 만화책 뿐?
“글쎄요. 만화도 좋지만 어지간한 건 다 좋아하는 거 같아요. 영화도 좋고 책도 보고.. 세계명작 전집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있어요. 그런데 소설은 많이 보는 건 아니구요. 인상 깊게 읽은 걸 다시 읽어보는 타입이에요.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들은 별로... 김동인 작품도 많이 읽었는데 안 좋아해요. 여자를 너무 이상하게 그려서 기분이 안 좋아요, 김동인은 아니지만 ‘무정’도 비슷한 이유로 싫어요. 그거 알아요? 중3말 교과서 문학사에 나오는 작가들은 다 친일파잖아요. 그런 것도 보면 신기하고 그래요.”
주영씨의 꿈, 역사 +선생님 = 역사 선생님
드디어 학교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학교에서 만화책을 가르치지는 않으니까. 역사 교과서 수업을 느티나무까지 와서 들을 정도의 열정적인 역사학도. 꿈도 역사 선생님이다. 과연 안주영씨에게 고등학교 역사 시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중학교 때 까지는 문학을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올라오고 나서는 사회나 역사과목이 더 좋아요.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중학교 때는 국어선생님들이 3년 동안 내내 좋았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역사 선생님들이 더 좋았어요.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단...은 우선 수업이 재미있어야 좋지만,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과목은 수업 재미없어도 잘 들어요 또. 중3 때 세계사 있잖아요. 세계사 과목은 따로 없지만 사회 과목 안에 세계사가 들어 있는, 거기 나오는 전쟁 같은 거 다 외우고 다녔어요. 수업은 그냥 그랬는데 그 내용 자체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서.......이제 3학년에 세계사 듣는데 세계사 선생님이 좋은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과목과 좋은 선생님의 상관관계. 분명히 있다. 사실 이거 진짜 무시 못 한다. 그래서 주영씨가 꿈을 교사로 정하게 되었을까. 누군가 영향을 준 선생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개인적으로 친한 선생님도 있나요? 그리고 본인은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나요?
“전 선생님들하고는 거의 다 친해요. 막 교무실 놀러가는 그런 애들 있잖아요. 음...아무튼 선생님들이랑 막 이런저런 얘기 다 해요. 좀 연상인 분 들 과 붙임성이 좋다는 얘기 많이 듣고. 스스로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해요. 담임선생님도 참 좋구요. 다 좋은데 융통성이 좀 없는 건 아쉬워요. 학교에서 하라고 하는 거 다 해야 되구. 지각 아슬아슬하게 하거나 할 때, 그게 내신에 들어가잖아요. 그거 담임재량으로 지각처리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봐주시는 법이 없어요.”
“그래도 전 지금 담임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다만 좀 융통성도 있는, 친구같이 친한 관계가 좋아요. 그리고 전 지금 선생님들이랑 친한데. 지금 이 관계가 좋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나중에 선생님 입장으로도 갖고 싶어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니까요. 역사교육과 가고 싶은 것도 역사학자보다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거죠. 물론 돈도 벌고 싶지만, 무엇보다 학교가 좋아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 지금같이 학생들이랑 노는 게 좋구요. 제가 선생님이 되고 나서도 지금 저처럼 적극적인 학생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근데 사실 선생님들은 그렇게 교무실 놀러오고 그러는 거 싫어한데요. 그리고 아는 범위 안에서는 나름 가르치는 것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친구들한테 모르는 거 가르쳐 주고 그러는 거 보면.”
“그런데 말하다 생각해 보니까 너무...막 말한 거 같네요. 뭐 알아서 순화시켜 주시겠지만... 근데 저는 교사가 꿈인데 그..적성검사? 커리어 넷 같은데서 하는 그런 거 보면 한 번도 교사가 나온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이타심이 매우 낮아서. 근데 그래도 나는 나 때문에 어떤 다른 학생이 역사를 좋아하게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교과서 편찬? 문제 출제자? 검정위원? 그런 것들도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교사가 되고 싶은 건 진짜 맞는데, 그런 검사 같은 거 하면 보통 교사가 봉사 쪽 직업군에 있데요. 그래서 내가 검사 하면 무슨 CEO이런 거 나와요. 막 야망 높은 거.”
“그리고 역사가 좋은 이유는, 저는 역사에는 모든 게 다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문학사도 역사잖아요. 저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고 싶고, 어디 가서 말할 때 지고 싶지 않은데... 그런 걸 다 통틀어서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시대가 좋구요. 야사가 많은 시대니까요. 이야기가 많은 시대.”
이러니저러니 해도 뭐랄까. 역시 모범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지 않지만 똑바른 생각. 하지만 모든 주영씨 또래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교사-학생 간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한 법이니까. 혹시 주변에 그런 친구는 없을까? 선생님이랑 관계가 좋지 않은 친구.
“음...저는 그런 거는 선생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막 애들 다 싫어하는 이상한 선생님들의 경우나 그렇지....그 외에는 애들이 아무 이유 없이 선생님들이랑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으니까요. 막 히스테리컬한 선생님, 그리고 일종의 성희롱 같은 거, 음담패설 같은 거 여자애들한테 하거나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선생님들도 있고...그런 사람들 아니면 다 잘 지내는 거 같아요.”
맞다. 갈등은 곳곳에 존재한다.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선생님과 학생 간의 갈등도 어느 한쪽만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예의 없는 학생들만 나무란다고 해결될 일도 물론 아니다. 바꾸어야할 세상의 스펙트럼은 언제나 다양하다.
세상보기, 그리고 세상에 살기
고등학교 바깥에도 세상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학교 밖 세상에 대한 관심을 종종 금지 당한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따르는 건 아니다. 적어도 지금 여기서 인터뷰 중인 주영씨는 그저 복종하고 싶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주영씨는 대학에 가면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
“그건 별 이유는 없고 같이 있었던 분들이니까. 기왕 내가 자원봉사 같은 걸 한다면 여기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사실 자원활동 보다는 돈 받고 하는 게 더 좋죠. 사실 참여연대 아직도 잘 몰라요. 그냥 시민단체라는 거 정도? 박원순씨가 만들었다는 것도 선거 때 알았어요.”
솔직한 대답. 하지만 싫지는 않다. 틀린 말도 아니다. 어찌보면 지극히 평균적인 이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주변사람들 생각이 또 어땠을지는 조금 다른 문제다. 나름 ‘색깔’있는 시민단체에 학생이 가겠다는데 주변에서 뭐라고 했을지도 궁금해졌다. 어쨌거나 소위 ‘청담동 여고생’ 아닌가.
“...일단 학교가 청담동에 있는 거지. 저희 집이 청담동인거는 아니구요. 사실 걱정하는 말은 못 들었어요. 아, 선생님이 딱 하나 걱정하긴 했네요. 그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진학에 불이익 갈까봐 여기서 아카데미 수강하는 걸 생활기록부에 올릴까 말까 저한테 물어보셨죠. 그 외에는 딱히 느낀 불이익이나 걱정 같은 건 없네요.”
“다만 제가 좀 불안한 건 있어요. 아무래도 참여연대에서 하는 역사 강좌니까 선생님들 성향이 좌익계열일거고. 아직 학교 진도도 안 나간 근현대사를 처음 배우면서 이렇게 백지상태에 그쪽부터 들으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편견이라든가 그런 면에서. 사실 전 스스로는 굳이 말하자면 중도라고 생각하거든요. 내 생각에는. 근데 선생님들은 제가 역사 공부한다 그러면 넌 나중에 시민운동할거 같다 그러고. 말할 때 하도 잘 따져서 그런가..... 근데 그런 건 또 싫어요. 사실 전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거든요. 어느 사건을 두고 양쪽 다 그리 맘에 들게 얘기하는 걸 아직 못 봤어요. 너무 극단적인 표현만 해서 싫고요. 그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옳고 그름만 구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좌든 우든 극단은 나쁘다. 어쩐 일인지 젊은이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그냥 정치는 다 똑같고 싫다는 인식보다 몇 배는 더 설득력이 있다. 충분히 생각하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말인 셈이니. 특히나 요즘 같은 때에는.
그러고 보니 이번에 두 번이나 있었던 큰 투표(무상급식, 서울시장) 생각이 났다. 서울 시 고등학생이 보는 투표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 투표 두 개는 사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나 싶어요. 결국 둘 중 하나 고르는 거고 굳이 둘 중에 고르자면 사실 답이 나와 있지 않나..... 무상급식은 뭐 애들 무상으로 먹으면 좋죠. 어차피 세금 들어가는데 이상한데 쓰는 거 보다야 그런데 쓰는 게 낫다고 봐요. 있는 세금 쓰는데... 그리고 어차피 할 거면 뭐 하러 단계적으로 하나 싶기도 하고. 글은 여기저기서 봤는데, 주변 애들 얘기는 똑같아요. 둘 다 정치인이니까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 그래도 나쁜 짓 더 많이 한쪽이 더 싫다는 거죠. 그리고 나경원은 얼굴이 아깝다. 뭐 이런 식? 두 사람 다 정치를 하면서 설마 한 번도 나쁜 짓을 안 했겠어요. 잘 모르겠지만. 나경원 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어요??”
“근데 사실 참여연대도 다 박원순 지지자는 아니었을 텐데 왜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분위기였는지 그건 좀 의아했어요. 우리 엄마도 뽑았다고는 하시지만, 사실 나도 모르게 이쪽으로 쏠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보수라서 나쁜 게 아니라 나쁜 짓을 했는데 그 사람이 보수인거고, 진보도 딱히 착한 일만 하는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분법적으로 봐요. 근데 그나마 착한 쪽을 뽑고 싶고, 그걸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배경지식도 쌓고 싶고, 그래서 역사공부를 하는 거고...”
치우치지 않은 지식과 안목, 학생으로서 균형 잡힌 자세다. 그런데 이게 안주영씨의 인식일까? 아니면 요즘 고등학생들의 인식일까? 평소에 친구들이랑은 이런 얘기를 할까?
“못해요 전혀. 그렇다고 너무 어른들이랑 얘기하기는 어렵고...엄마랑은 말이 잘 안 통하고...학교 친구들... 걔네는 너무 관심이 없어요. 물론 같은 학생이지만, 그래도 저는 이거라도 듣는데 걔들은 이런 것도 안 듣고.... 사실 역사에서 배우는 옛날 좌파 우파랑 지금의 좌파 우파랑은 또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역사 배운다고 지금 정치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저도 잘 모르니까 선거나 이런 거 얘기할 때는 담임선생님이랑 하게 되요. 하긴 굳이 친구들이랑 이런 얘길 할 필요가 없기도 하죠.”
“사회활동은 별로 막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아요. 메리트 없이 일하는 거 별로 안 좋아 해서요. 내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뭐 할 수 도 있고. 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전 귀찮은 걸 너무나 싫어해요. 주말에도 집에만 있고. 집에 만화책 100권 넘게 있어요. 만화책방 폐업할 때마다 찾아다니면서 모아요. 뭐, 오덕 맞긴 맞아요. 원래 나쁜 뜻은 아니니까.”
존경, 사랑, 우정, 관계, 그리고 미래
현실적으로 고등학생의 지상목표는 어쨌든 대학이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주영씨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요즘 대학생들이 그렇게 세상일에 관심이 많지만은 않다는 걸 알기에 선뜻 희망적인 얘기를 해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멘토나 존경하는 사람은 혹시 없을까? 주변 사람들 중에.
“별로 없어요....그냥 학교 선생님들? 저는 따로 멘토는 없고, 그런 거 묻는 질문 받거나 하면 역사 선생님이라고 얘기해요. 왜 꼭 누굴 존경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난 나를 존경한다고 생각해도 되고... 언젠가 제가 다른 사람의 멘토가 되고 싶기는 해요. 전 사실 신도 안 믿고요. 무신론자에요. 솔직히 신이 어딨어요. 그래서 신앙심 넘치는 애들 보면 신기해요. 눈 감고 기도하는 거,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눈 감으라고 하는 것도 싫고.... 어릴 때 교회에 갔었는데 전 눈 감으면 자요. 그렇다고 딱히 진화론자는 아니고. 창조론은 더 안 믿고...... 근데 둘 다 아니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전 그냥 스스로를 믿어요. 부모님도 무교에요. 근데 그래서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커가면서 제 성격에 따라 그렇게 된 거겠죠. 굳이 정하자면 종교 중에는 카톨릭 쪽이 좀 나은 거 같아요. 막 교회 홍보하는 거 너무 싫구요. 세상에 하느님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귀찮게 하라고 시켰냐고요. 그 분들 말씀대로라면 기도하면 뭐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은데 창조고 뭐고 설도 여러 가지고, 기도해도 인생 망치는 사람들도 있고...... 하여튼 전 운명론적인 거 싫고 안 믿어요. 사람이 자기가 하기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어야죠.”
뭐랄까. 냉소적인 듯 하면서 묘하게 또 진취적이다. 다시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친구관계나 연애는 어때요? 남자친구나 친구에 대한 생각은?
“일단, 지금 남자친구는 없습니다. 사귄 적은 있고요. 학교 사람도 있긴 있었는데 이제껏 사귄 친구들은 소개 받거나 남고 축제 가서 적은 방명록 보고 연락이 오거나 했어요. 아, 그거 몰랐어요? 원래 축제 방명록이 그런 용도로 쓰여요. 근데 막상 직접 번호를 따여 보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네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난 외모가 안 되는 건가..... 축제에서 보고 연락 온 어떤 남자애는 저를 청순? 뭐 이런 이미지로 기억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좀 아닌 거 같고...... 지금 연락 오는 남자가 셋이고 그 중 둘이 연하인데, 전 연하는 싫어요. 왜 남자는 정신연령이 어리다는 말이 있잖아요. 진짜 좀 그런 거 같아요. 다른 친구들처럼 알콩달콩 잘 사귀고 싶은데 별로 길게 사귄 적은 없는 거 같네요. 누굴 진지하게 좋아해 본 거 같지도 않고. 아무튼 지금 연락 오는 3명은 다 맘에 안 들어요. 두 명은 연하라 싫고, 한명은 전에 사귄 앤데 별로 안 좋게 헤어져서 싫어요.”
“전 대학 가면 많은 인맥을 쌓고 싶어요. 친구 사귀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뭔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걸 좋아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데, 그래서 뭔가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학교를 직장으로 택하고 싶은 거고요. 근데 고민인 게 막상 지금 친구관계가 그렇게 깊은 거 같지는 않아요. 왜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친구라고 하는데 정작 고등학교 친구들이랑은 깊지가 않고 중학교 때 친구가 더 친하고.... 중학교 동창들이 저랑 다른 학교가 되니까 멀어졌는데 고등학교 친구들을 새로 만나서 그런 거 같아요. 약간 정이 없는 느낌도 좀 있어요. 서로 생일도 잘 안 챙겨주고, 매점이고 화장실이고 같이 안 다니고. 여자애들은 그런데 같이 가주잖아요. 사실 별건 아닌데 전 그게 너무 서운한 거예요. 뭔가 중학교 때보다 친구로 나눌 추억도 더 없는 거 같고. 친구...는 참 좋은데 이런저런 거 생각하면 좀 기분 나쁘기도 하고 그래요. 학원은 전에 다녔는데, 다녀도 별로 친구 만날 시간은 없었어요. 쉬는 시간이라고 있어 봐야 5분도 안 되고, 얘기 좀 하던 애들도 한동안 안 보면 또 아는 척 안 하고... 중학교 때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많이 해서 온라인 친구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 쪽도 별로 연락 안 해요. 아무튼 고등학교 와서 친구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좀 깨진 거 같아요. 그리고 중학교 때 친구들은 다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지금 친구들은 안 그래서 좀 걱정이기도 해요. 자퇴해서 알바하면서 음악 하는 친구도 있고....근데 그게 공부보다 어려운 길이잖아요. 그래서 걱정이고... 어쨌든 결론은 중학교 때 친구들이 더 좋았다는 그런 거? 안 그런 애들도 있는 거 같은데 왜 나는 이런지...... 그게 고민이죠 뭐.”
그녀의 매력에 빠져 연락 오는 남자가 셋......역시 주영씨는 인기녀였다. 하지만 아직은 친구가 더 좋은 거 같아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민도 추억도 다 친구와 함께 이루어지는 시기가 10대니까. 하지만 친구 고민 말고 다른 고민은 없을까?. 아, 진로고민도 빼고.
“음... 일단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그거 말고는 빨리 느티나무에서 다른 강좌가 열렸으면 좋겠다? 뭔가 생산적인, 내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요. 그래서 대회 나가는 거 좋아해요 논술, 토론대회.. 꽤 많이 나갔어요. 중학교 때는 토론, 고등학교 때는 논술 쪽으로... 근데 말은 잘 못해요. 그냥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거지. 그래서 토론팀에서 항상 맡는 게 입론이랑 반박.... 뭐든 공격하는 투로 말하니까 그런가 보죠. 아무튼 1년에 한 번 이상은 있으니까 중학교 때는 서울시 2위도 하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오니까 정보도 별로 없고 학교에서 팀을 짜서 나가야 되는데 팀이 안 짜져요. 아무도 안 하려고 해. 교내 토론대회에 개요서와 입론서를 내라고 했는데 지원자가 저밖에 없어서 나갈 수가 없었어요. 논술은 나름대로 제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 하거든요? 학교에서 방과 후 논술시간에 제일 잘한 첨삭본을 복사해서 나눠주는데 항상 제가 쓴 게 뽑혀요. 교내 논술대회도 작년, 올해 전부 전 학년 1등 했어요. 근데 막상 전국대회만 나가면 외고 애들한테 발려요. 그래서 그런 거 많이 느끼죠. 아 내 실력은 전국구가 아니구나. 좌절하다가 교내 대회에서는 너무 졸려서 자다 깼는데 시간이 없어서 30분 남기고 막 쓴 걸로 1등하고, 그러면 다시 자신감 생기고 계속 그런 식이에요. 이번에 고대에서 동아일보랑 하는 논술대회 나갔었는데 결과가 이제 나와요. 작년에 87점으로 2등급을 받았고 올해 1등급이 목표인데....논술을 어느 정도 믿고는 있는데 아주 최고 실력은 또 아닌 거 같고, 난 과연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지....그러고 보니 이게 진로고민이네요.”
진로고민이라지만 고민이라기에는 그녀는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생각도 공부도 활동도 모두. 지금 하고 있는 고민도, 앞으로 할 고민도 많겠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아하는 만화책 만큼이나 다채로운 미래가 아직 그녀에게는 충분히 남아 있으니.
주영씨와 인터뷰 하면서 2008년 촛불집회에 처음 나갔을 때가 생각났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자유발언대에 올라 어설프나마 자기 생각을 부르짖던 모습들. 물론, 틀릴 수도 있고 치기 어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뭘 위해 공부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주영씨도 앞으로 더 넓고 깊게 생각하고 또 행동할 수 있을게다. 이제 갓 열일곱인, 아직은 어린 나이임을 감안 하면 더욱더. 그럼 이제 암울한 고3 시대를 지나. 원하는 대학에서 역사 선생님의 꿈을 향해 걸어갈 그녀를 다시 느티나무에서 만날 날을 기다려 보자. 물론 직접구운 쿠키와 함께.
마지막으로 주영씨가 참여연대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없어요... 빨리 새로운 강좌를 만들어 주세요.”
쪼맨하게 창 줄여놓고 업무시간에 눈치 봐가면서 끝까지 다 읽었어요 ^^
생각했던거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여학생인거 같아서 기분 좋아요
게다가 똑똑하고 당차고
하교친구 - 박미경 ~~
주영아 난 너만 보면 괴롭히고 싶어......
(난 좋아하는 사람만 괴롭힌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