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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번째┃두 걸음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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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백인보 열두번째 - 수강생 조숙위
인터뷰 · 글 : 박현아 느티나무 시민기자
파티날... 난 그녀를 처음 보았다.
뭐, 드레스 코드에 맞춰 위아래로 쫙 빼입고 시내 유수 호텔의 분위기 뻑가는 라운지에서 벌이는 파티... 그런 거 절대 아니고(그런 파티도 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지만서두 ㅠㅠ), 참여연대의 축축한 지하공간에서 1년을 함께 공부한 느티나무 수강생들이 참석하는 조촐한 파티에서 말이다. 하긴 거기도 이름은 느티나무‘홀’이라고 붙어있으니 마땅히 파티를 벌이만한가 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짧은 말로 여백을 아주 많이 남겨두겠다. 그날 그 음습한 공간을 조금이나마 파티와 어울리는 장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동원된 노동의 양과 질에 대해서도 아주 길~게 여백을 남겨둔다.
음...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렇다, 난 뒤끝이 만리장성이다.
느티나무 수강생들이 그려낸 작은 그림들과 우쿨렐레의 앙증맞은 음악 때문이었을까. 상다리가 절대 부러질 리 없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잔치는 흥겨웠고 사람들의 표정은 가볍고 맑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타인들이었지만 그 공간 안에서는 스스럼없이 맘을 터놓아주고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들을 나누고 준비한 식순에 흥겹게 참여했다. 서먹하고 썰렁하면 어쩌나하던 걱정 속에 파티를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난 그날, 얼굴에 잔잔한 미소들을 머금고 느티나무홀을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심경이 좀 복잡했다. 이게 뭐지... 이런 지속적이지 않은 관계 안에서도 가슴이 깊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전에는 해 보지 못했다. 그런 경험도 또한 없다. 근데 어느 날 문득,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어떤 공간 안에서는 가슴이 함께 울리수도 있다는 걸... 꼭 서로 속속들이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받고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다음 만남에 대한 기약 없이 뒤돌아서는 등을 바라보는 것이 항상 서글픈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난 한동안‘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잡념들에 파묻혀 지냈다. 이렇게 삶은 엉뚱한 곳에 숨어서 질문을 던지고 그때마다 난 기다렸다는 듯 그 놈의 뒷덜미를 잡아채 내 앞에 앉힌다. 이마를 맞대고 앉아서, 숨을 고르고... 그 질문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 고민하는 순간들... 그 혼란의 시간들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가고 있음을...
질문과 잡념과 고민과 깨달음 속에서... 그렇게 나의 30대는 화려하게 지고 있다.
그리고 파티에서 만난 보석 같은 그녀,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날 미소짓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 숙위씨... 오늘은 그녀의 이야기다.
조숙위님
그녀의 오지랖 사이즈 - 엑스라쥐(XL)
우린 그날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매니저 역할을 맡은 터라 특히나 낯선 얼굴들을 잘 챙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똘똘 쌓인 채 앉아 있는 내게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그녀는... 말이 많았다. 말은 많은데 그 말들은 모두 상냥했다. 목소리는 크고 씩씩한데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 잘 웃고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서고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들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칭찬을 했다. 그런 그녀가 하도 신기해서 파티 내내 시선이 갔다. 호감형이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어느 누구와도 물 섞이듯 어울릴 사람... 살면서 드물게 만나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박노자 선생님 강의 첫날,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역시나 그날도 그녀가 내게 먼저 다가와서는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그 수다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날 강의가 끝나고 우리는 카페에 마주 앉아 함께 차를 마셨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밤이었다. 파티의 여운 때문인지 나도 한번 우클렐레를 배워볼까 하고 운을 떼자,
“우클렐레요? 저 이번에 일본 드로잉 워크샵에 동행하는 데... 제가 일본에서 사다드릴까요? 일본 게 좋다는 분들도 많아요. 아마 현지 가서 사면 가격이 좀 쌀 거예요. 자유시간 때 악기점에 한번 들러 볼께요. ^^” 아... 그래도 될까요? 들고 오시려면 다른 짐도 있을 테고... 번거로우실 텐데 초면에 그런 부탁을 드려도 될라나요?
“에이... 괜찮아요. 우클렐레는 작은데요 뭘. 시간이 안 나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사가지고 올께요. 인터넷에 들어가서 우클렐레 종류도 좀 보시구요 어떤 게 맘에 드는지만 알려주세요. 제가 괜찮은 우클렐레 카페 몇 군데 가르쳐 드릴께요. ^^”또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무한히 착하고 친절한 사람... 뭐지, 이런 사람이 낯설고 두드러져만 보이는 이유는... 내가 잘못된 건지, 세상이 잘못된 건지...
파티날, 우리 테이블은 유독 남자가 많았다. 느티나무의 특성상 남자 수강생들이 많지 않아서 보통 테이블마다 한두 명이 고작이었는데 우리만 네 명의 남자가 있었다. 우리 테이블의 유일한 남자 수강생이 자신의 동료들(남2, 여1)을 함께 파티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더 재밌는 건, 몇 년 동안 온라인 상에서만 알고 지내던 분까지도(남1) 초대해서 번개 모임을 그날 그 자리에서 했다는 것. 이러니 우리 테이블만 남자들이 득실거리고 준비한 의자도 모자르고... 이건 뭐 수강생들 파티가 아니라 진짜 생초면의 사람들이 벼락같이 만나는 번개의 자리가 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화 주제도 느티나무 이야기나 강의 중심으로 흐르지 않고 중구남방, 화제만발. 근데 그게 사실 더 재미었다능... ㅎㅎㅎ
여기서도 그녀의 오지랖은 영역을 확장한다. 그날 파티에서 서로 인터뷰를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때 파트너였던 아가씨(그 남자 수강생를 따라 오셨던 분)와 그 이후로 친구 사이가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그 아가씨가 속한 ‘다함께’라는 맑시즘 단체에도 회원으로 가입해 주었단다. 와우~ 정말이지 숙위씨는 친화력의 종결자네요^^
“파티 이후로 전화도 주고받고 페이스북에서도 친구하고 그러다 친해졌어요.‘다함께’에 가입하고 세미나에도 몇 번 나갔는데, 요즘은 사진 수업 땜에 좀 뜸했죠.”
이 정도면 그녀의 오지랖 사이즈는 엑스라쥐 쯤 될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녀의 선의를 오지랖으로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선의라는 것, 남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건 무릇 용기가 필요한 일...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 지를 이리저리 재느라 정작 마음을 열어 친절을 베푸는 일에는 젬병인 우리들 아니던가. 나 또한 남에게 끼치는 민폐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인생을 꾸리고 있는 용기 없는 1인인 것이고... 아이를 둔 엄마들이 흔히 교육철학으로 들먹이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는 삶’이란 어찌 보면 찌질하기 그지없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손... 그것만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 안에 무언가 아직도 선하고 따스한 기운이 남아 있다면 부끄럽더라도 밖으로 꺼내야 한다는 걸... 그녀는 내게 온몸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근데요 숙위씨, 내게 약속했던 일본 브랜드의 우클렐레는요.......?
아망토 공동체
일본에서 돌아오고 일주일 후,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우클렐레 못 샀었어요 ㅠㅠ...” 그러더니 끝내 악기를 사지 못했던 자신의 서러운(?) 상황에 대해 길게 늘어놓는다. 괜찮아요, 숙위씨... (토닥토닥) 그럴 수도 있죠...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그 얘기부터 꺼내든다.
“아이고, 그게... 저는 자유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여행 내내 통역만 하느라 아무것도 못 했었어요. 미안해요^^”내 일본산 우클렐레를 날려버린 진범은 바로‘아망토 공동체’였다. 그럼 제 우클렐레를 날려버린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 지 얘기나 한번 들어볼까요?
“(노란 봉투 하나를 꺼내 들며) 그 친구들이 이런 걸 보내왔더라구요. 자랑하려고 가져왔어요.” 그게 다 뭐예요?
아망토에서 보낸 우편물
온통 일본말이라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네요. 번역 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분이 이 공동체의 대표인데, 준씨라고. 음...(번역 중) 여러분하고 만나서 정말 좋았다고, 앞으로도 재미있는 일들을 같이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다른 사진을 가리키며) 아.. 이 친구는 사실 엄청 과묵하고 순진하고 질문 하나하면 몇 분씩 생각한 후 대답하는 친군데, 배우래요. 배우치곤 너무 소심해 보였는데 이런 사진을 찍어서 보냈네요. 그리고 이 사진은...”노인분의 사진이다. 그 공동체에 노인분들도 계신가 봐요?
“아니 그 지역주민 분이신데... 아망토 공동체의 청년들은 지역주민들하고 굉장히 잘 지내더라구요. 한번은 그 공동체와 상관없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저희보고 어디에 묵고 있는지 묻더라구요. 아망토 공동체에 머물고 있다했더니 그분 말씀이 그 공동체는 노인분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 청년들은 노인들한테 무언가를 해드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뭔가를 배운다는 자세인 거 같아요.”
사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나자 이번엔 먹으로 그린 종이 몇 장을 꺼내놓는다.
“공동체에서 지낼 때, 거기에서 서예교실에도 참여를 했었어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들이 있었는데 일정 때문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건 그때 서예교실에서 한 작업인데, 극장 바닥에 큰 종이랑 먹이랑 다 있더라구요. 한국사람들 온다고 그날 주제가 되는 글자도 다 한국말로 번역해 놓고... 붓을 쥐고 정식으로 쓰고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내 맘대로 하는 거예요. 오른손 왼손도 모두 사용하고 주먹을 쥔 채 혹은 춤을 추며 쓸 수도 있고... 큰 종이 하나를 놓고 여럿이 함께 그리는데, 자기에게 주어진 종이의 구역을 벗어나 남의 그림에 먹이 튀거나 그래도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아망토에서 한 서예작업 그림
달떠서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 작업이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근데 왜 이렇게 종이들이 조각조각이죠?
“그날 서예 수업이 10주차의 마지막 수업이라 그동안 한 작품들을 전시한다고 그랬는데,
그 전시회 끝나고 작품들을 찢어서 모두 나눠 갖을 거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찢어서 보냈나 봐요. 나눠가지라고...” 수업이 끝나고 나중에 작품을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는 설마 했었다. 근데 이렇게 바다를 건너 눈앞에 놓인 종이들을 보자 이런 사소한 것까지도 세세하게 챙기는 그들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 서예 교실이 천연예술연구소라는 극장에서 열렸는데, 그 극장 주인이 정말 지장보살 같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서예교실 니가 기획해서 하는 거지? 니가 서예선생님한테 먼저 수업하자고 한 거지?’하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서예 선생님이 먼저 제안을 하셨다고... 좀 뜻밖이었고 그 사실이 놀라웠어요.”
서예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놀란 건. 장애인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건 언제나 비장애인들이라는 통념... 거기서 그녀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선생님이 본인 스스로가 서예를 통해서 새로운 자유를 맛보았는데 그런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며 먼저 찾아오셨다고 그러더라구요. 제 안에 아직도 장애인이란 내가 뭔가를 베풀어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구요....”
그녀에게도 삶이란 녀석은 엉뚱한 곳에서 질문을 던져대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맞는 거냐고... 그게 최선인 거냐고... 그럴 때마다 우린 멍 때려 가며 삶의 속도를 늦춘다. 다른 사람들이 그 옆을 바쁜 걸음으로 지난다 해서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자리를 깔고 앉아 생각에만 몰두하는 시간들이 갑갑한 인생에 바람구멍들을 내 줄 터이니 말이다.
근데 아망토 공동체가 정확이 어떤 거예요?
“아망토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 보면 성미산 마을하고도 비슷해요. 성미산 마을이 그렇듯 아망토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런 식으로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그곳에 준이씨가 먼저 카페를 열었고, 점차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카페들 하고 연대를 하고... 그 연대의 과정 안에서 수익을 공유하기도 하고 그것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작업들을 공동으로 하는... 그런 것이지요. 사실 그 공동체 구성원들은 사업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서 다들 가난한데, 그래서 더욱 지역주민들과 밀착된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렇다고 그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실제로 그 지역에 거주하거나 그러지도 않아요.”
그녀의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난 ‘공동체’하면 떠오르는 몇몇의 우울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구속할 것 같고, 너무 가까워 그 관계의 친밀함이 내 숨통을 조여 올 것만 같고,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공동체 일원 모두가 공유해야하는 공공의 무엇이 될 것만 같고... 내가 일하기 싫을 때도 일 시킬 것 같고... 이런런..
하긴, 이건 진짜 내가 공동체가 뭔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공간에서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서, 즉 무식해서 지껄이는 소리일 게다. 그녀의 설명을 더 들어봐야겠다.
전 그곳이 예술인 공동체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봐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실제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그곳과 많이 연계되어 있기도 하구요. 사실 그전에 준이씨가 실패의 경험이 있던 사람이라... 처음에는 일본 부동산 거품이 꺼졌을 때 아는 사람이 빈 빌딩이 있는데 그 공간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빌딩에 임대료를 절반으로 하고 모두 예술가들을 들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공간의 자유로움을 약속받은 예술가들은 얌전히 있지 않았다. 서로의 결과물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함께 다양하고 새로운 이벤트들을 만들어 내며 각자의 공간을 섞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어가던 빌딩은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차올랐다.
“근데 그렇게 해서 성공하니까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고 결국 예술가들은 쫓겨나게 된 거죠. 그때 깨달았데요. 자본을 끼고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구나...”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준이씨는 새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 쓰러져가는 가게를 얻어 혼자 힘으로 공사를 했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사람들이 호기심에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도대체 뭐하는 거예요?’... 그렇게 관계의 물꼬가 트이자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준 씨의 작업을 사심 없이 돕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섞여들었다. 그리고 그 살가운 과정들이 쌓여 결국‘아망토’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엔 억지스러움도 일방적 통행도 없었다. 단지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만들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었을 뿐... 누가 앞에 나서서 ‘공동체를 만들자’고 외쳐대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노인과 어린이와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시간들을 엮어가고 서로의 공간들을 나누자... 그 경계의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가리켜 ‘공동체’라 칭했을 뿐이다. 그러니 ‘공동체’라는 무거운 말은 어쩌면 정치적사회적 구호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동체라 일컫는 것의 실체는 그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 가장 자연의 얼굴을 닮은 생활의 모습일 뿐이다.
”아망토라는 말이 한문으로 쓰면 천인(天人)이에요. 자기 안에 있는 본성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이 담긴 말이죠.”
그녀는 인터뷰 시간의 절반 이상을 아망토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 그만큼 사람들에게서 받은 감동은 깊었다. 앞으로 그녀의 인생이 갈라질 때마다 그 때의 감동이, 사람들이 채워준 가슴 한켠의 따스함이 그 틈들을 메우고 그녀를 다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선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이 타고난 본성 그대로를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 용기를 가지고 주머니 밖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녀는 그렇게 그녀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망토와 너무도 많이 닮아있었다.
엄마의 기도
일어 동시통역사로 일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출중한 그녀. 그 실력 덕분에 이번 일본 여행에도 동행하게 된 거고, 착하고 예쁜 아망토 사람들도 만나게 된 거고... 음, 혹시 일본어를 잘 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나요?
“일어요? 사실.. 그 사람 때문에 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거죠.”그녀가 망설인다. 거침없이 아망토를 얘기할 때와는 사뭇 다른... 그녀가 주저하는 이야기.....
“전남편이 일본사람이었어요. 한국에 여행왔다가... 길을 헤매고 있는 그를 우연히 도와주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됐죠.”일본에 사는 남자와 한국에 사는 여자가 길거리에서 만나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는 사건을 인연이라는 말 말고 달리 표현할 길이 있을까... 무슨 멜로 영화같아요, 숙위씨... 부러워 부러워...
“그 남자는 당시 아시아 일주 중이었는데 한국이 마지막 여행지였고, 하도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현지에서 친구들을 만들어 살아가는 지혜를 벌써부터 터득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제 전화번호도 받아가고...”여기서 그녀의 오지랖, 아니 아니 그녀의 용기 있는 선의가 또 발동을 건다. 찰나로 끝날 인연을 지속적인 만남으로 이끌어낸 힘은 그녀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해한 거였는데, 전 사실 그 남자가 돈도 별로 없고 한국친구한테서 도움도 별로 받지 못해서 사정이 딱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가 묶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로 찾아갔지요. 만나서 서울시내구경도 시켜주고 차 사주고 밥 사주고...”역쉬! 친절함의 종결자! 이제 아셨겠지만, 그녀의 친절은 결코 짧게 끝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일본식당도 소개해 주고... 요리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어서 금세 취직도 되고, 그렇게 한 3개월 한국에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시작이 된 거죠.” 1년쯤 남자친구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한국에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4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갔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을 떠나 남자의 땅으로 갔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자기와 살기 위해 나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떠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주지 않는 남편이 서운했어요.... 그 남자, 얼마 있다 다시 결혼했어요. 우리 둘 사이의 아이 말고 다시 아이도 낳고... 근데 새로 결혼한 그 부인이 제 아이를 못 만나게 하네요.”
많이 좋아했고, 열심히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과의 관계는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동네에 있는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어요. 한동안은 조카들도 만나지 않았고... 아이를 놓고 왔다는 생각에 이불도 깔고 잘 수 없었죠. 편하게 잠을 자서는 안 될 것 같단 바보 같은 생각에... 당시엔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여서, 이런 상태라면 아이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던 건데... 그리고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야지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가끔 거기를 벗어난 지금 내가 그때의 생각만큼, 그때의 각오만큼 잘살고 있는 건가 그런 회의가 들기도 해요. 돌아오고 나서도 아이문제 때문에 여러 생각이 들고 고민도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남자가 지녔던 장점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더라구요, 이젠 아이아빠를 좀 믿어보려구요.”
아이를 두고 보살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을 가득 메우고도 넘쳐흐르는 근심들에 대해 그녀가 길게 이야기한다. 일본을 덮친, 원전을 부셔버린 쓰나미는 그녀의 가슴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아이문제는, 이제는 좀 길게 보려 해요. 어찌됐든 내가 잘 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은 내가 잘 살아야... 아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늘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요. 그리고 언제가 아이가 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내가 줄 수 있기를 바라죠.”
어쩔 수 없이 아이의 모국어가 되어버린 일본어. 아이와의 소통을 염려하는 엄마는 일본어를 더 잘 하기 위해 대학원에도 들어갔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림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도 생각 중이다. 혹여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기에 직업도 시간을 유동적으로 꾸릴 수 있는 프리랜서를 택했다. 아이를 놓고 왔다 말했지만 그녀의 아이는 늘 그녀의 가슴 위에 있다.
“얼마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 남자의 부인이 이미 짜여진 그 사람들 관계 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 여자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있고 나와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뭔가 불안한 요소가 있는 거구나... 그걸 깨닫기까지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조금씩 치유의 길을 가고 있는 거겠죠.”바로 옆에 나란히 앉았다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난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녀가 인내하고 버텨내야 했던 모든 것들을 생각했다. 그 생각에 그저 가슴만 쓰렸다.
“일어만 해도 남자친구 땜에 배우게 된 거고... 여태껏 수동적으로만 살아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내가 좋고 너무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상황이 그렇다보니 거기에,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한 삶을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선택한 사람과 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쉽지 않은 결정들을 내렸다. 그리고 꿋꿋이 실행에 옮겼다. 낯선 언어를 배웠고, 낯선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 낯선 하루하루들을 이어갔다. 그 긴 여정 안에 어디서도 수동적인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그 명백한 증거를 두고도 자신의 삶이 수동적이었다 자평하는 그녀의 눈에 회한의 빛이 겹겹이 쌓인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같은 선택을 내리고 같은 길을 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내 일을 가지고, 내 중심을 가지고 그 사람과 중간에서 만나는 점을 찾지 못했던 것... 그게 후회가 되네요...”
결혼 생활을 끝내고, 아이를 남겨 둔 채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그 후로도 자국처럼 이어지는 시간들... 그 시간들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지는 것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 해도 내가 알 수 없는 것... 그런 것일 게다.
전철에서 구두 밑창이 떨어졌을 때, 그 밑창을 바라보다 그게 꼭 자신 모습 같아 왈칵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 그 눈물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이어졌다는 이야기, 집에 와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야기... 를 덤덤하게 나열하는 그녀가 있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있을 뿐... 많이 사랑했어도 그 사랑이 이렇게 구두밑창처럼 어이없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내 울며 돌아와야 했던 그녀의 귀가길 앞에... 난 너무 쉬운 위로의 제스처를 취할 수 없었을 뿐이다.
감히 안다고도, 얼마나 힘들었겠냐는 말조차도 쉬이 건넬 수 없는 시간들... 그 위로 아이를 가슴에 두어야 하는 엄마의 기도 소리가 나지막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 걸음 반
지나간 시간을 얘기하는 동안 그녀는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눈길을 그녀에게 둘 수 없었다. 서로 눈빛을 피하며 나누어야 하는 이야기들, 눈을 부릅뜨고 직면하기엔 무릎이 시려오는 이야기들... 숨을 고르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하는 일은 어때요?
“통역도 하고 번역도 하고 하는데, 일은 대중이 없어요. 어떤 때는 일이 몰려서 일을 다 받지 못할 때도 있고 한가한 때는 또 한가하고...” 일 안 할 때는 뭐 해요?
“일본에 있을 땐 전업주부로서만 살아서인지, 공부에 대한 욕심이 컸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부터는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죠. 와인공부고 하고 우클레레도 배우고 ... 그동안 진짜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 그런 것들이 해 보고 싶었어요. 대학원에 가서 2년은 진짜 빡세게 공부했구요, 대학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김상봉 교수님 강의도 열심히 들으러 다녔죠.”
그녀는 또박또박 걷고 있다. 그 길이 치유를 향한 것이든, 내가 잘 살아야하기 위함이든, 언젠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한 아이 때문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길에 가끔 느티나무도 동행이 된다.
“사진 꼭 배우고 싶었었는데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느티나무에 개설된 걸 보고, 강사가 임종진 선생님이란 걸 알고는 결심을 굳히고 지난 학기에 들었어요. 수업도 너무 좋았고 그때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지금 다시 그 멤버들하고 목요일마다 후속모임도 해요. 후속강의라고 해야 하나? 우리끼리 느티나무가 아니라 선생님 작업실에 모여서 강의를 듣는 거죠.” 그 후속강의 모임 이름이 ‘두 걸음’반(班)이다. 두 번째 혹은 2단계란 뜻이다. 그걸 잘못 이해한 난‘와우 이름 멋진데요, 두 걸음 하고 반(半)이라...’라며 엉뚱한 소릴 지껄여댔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지고 왔던 돈도 대학원 학비다 뭐다 해서 다 써버리고... 그땐 그 돈을 병원비라고 생각했어요. 돈을 벌고 모으고 하는 것보다 지금은 치유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근데 요즘은 나도 좀 정신을 차려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어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서 문득, 너무 가볍게 사는 건 아닐까... 너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건 아닐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건 가슴에 넣어둔 아이의 존재다.
“돈과 물질적 풍요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그래서 한동안은 수녀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어요.”그런 희망도 또 다시 아이 때문에 접었다. 아이가 돌아온다면... 함께 해 주어야 하기에, 함께 하고 싶기에 말이다. 그러나 나만 잘 먹고 잘 지내는 삶에 대한 회의는 여전하다. 재능기부도 그래서 생각한 것이고 그래서 이번 드로잉반의 오사카 일정(아망토 방문)에도 따라나선 것이다.
“사진 강의 들을 때, 사진을 예쁘게 찍는 기술 그걸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선생님 수업이 사진 작업에서‘관계’를 중시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동안 회피만 해왔던 내 안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성찰해보고, 치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사진 강의를 들을 때 구두밑창 사건이 벌어졌었다. 길고 긴 울음을 울어내며 떨어진 구두의 밑창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해냈던 치유의 경험...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하던 여자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던 그 꿈... 모두 그 시절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이다. 배움은, 정말이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이런 귀한 경험과 지혜들을 알게 해 주는 공부들이 세상에는 있다.
“느티나무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아 좀 편한 면도 있고, 강의가 끝나고 수강생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보면, 아! 정말 다 큰 어른들도 자신의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듣고 그렇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구나... 근데 느티나무가 그런 감정들을 배려해 주고 또 그런 공간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그래서 다시 오게 되는 것 같구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거...” 저도 느티나무를 통해 숙위씨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답니다 ^^
“얼마 전 느티나무에서 신영복 선생님 특강을 들었는데, 뒷풀이에 참석한 젊은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게 됐어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망설임들... 근데 난 이 나이가 되어서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이 통번역대학원 나온 사람들 중엔 자기 앞가림들 착착 잘 해나가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난 여전히 여기저기 한눈이나 팔고 엉뚱한데 기웃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
자꾸 기웃거리고 한눈을 팔며 한 걸음 한걸음 느리게 걸어왔다.‘나’에만 집중하는 밀도 높은 삶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그녀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행복’이란 단어는 그렇게 1인칭으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란 걸... 때론 그 한 걸음이 너무 무거웠던 적도, 그래서 집으로의 귀가가 멀고 힘겨웠던 적도 있었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고 걸음의 속도를 높일 생각일랑 없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여전히 주위를 살피며 ‘희망 버스’에도 오르고 느티나무에도 오른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녀는 한 걸음을 걷고 또 한 걸음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질 한 걸음을 위해 다시 반 걸음을 내딛는다. 관성으로 흐르는 삶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녀는 그렇게 바닥을 딛고 다시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중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녀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제가 약속 못 지켜서요, 아이들이 많이 기다렸을 텐데... 악기 사기 전까지 이걸로 아이들하고 연습하면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요. 마음 놓고 쓰세요. ^^” 자신의 우클렐레를 들고 온 것이다. 그 옆에는 내게 빌려주려고 가져온 교본도 있다. 단지 한두 번 마주친 사람들뿐임에도 서슴지 않고 선의를 나누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 그리고 그녀가 자꾸 웃음으로 가리려고만 하는, 채 아물지 않은 발간 상처들...
소설가 이태준이 쓴 글에 그림을 덧붙인‘엄마 마중’이라는 동화가 있다.
작은 아이가, 전차가 서는 정류장에서 하늘이 꺼무룩해질 때까지, 내내 엄마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아이는, 세 번째... 네 번째 전차에서도 엄마가 내리지 않자, ‘우리 엄마 안 와요?’라는 물음을 이젠 더 묻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서서, 기다릴 뿐이다. 그 정류장에서 하나둘 사람들 모습이 사라지고, 해는 기울고, 하늘은 컴컴해지고... 눈이 내린다. 빨개진 코를 들어 하늘을 응시하는 아이의 서러운 눈, 눈망울 그리고 하늘 가득 내리는 눈.
그걸로 동화가 끝이 나자, 둘째 녀석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서럽게 울어댄다. 아이를 가슴에 안고 한동안 먹먹했다. 그리고 숙위씨...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내내 그 동화를, 동화 속의 아이를... 그리고 하염없는 시간 속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아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 동화를 처음 펼쳐든 날, 내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동화 속에 숨겨진 마지막 얘기를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다.
동화 <엄마마중>
아이는 결국 엄마를 만났다. 어둠속에서 둘은 다정히 손을 잡고 눈 쌓인 골목을 오른다. 아이의 손엔, 엄마를 기다렸을 그 마음을 헤아린, 엄마의 작은 선물이 들려있다. 그 마지막 장을 다시 오래 바라보며 난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 아이를 향해 뜨겁게 내밀 그녀의 다정한 손도 떠올린다. 그러면서 젊은날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소설의 제목이, 생의 반을 살아낸 이 순간 내 가슴을 후비며 박히는 것을 느낀다.
우리네 인생에 꼭 한번은 내려가야 할 바닥들이 있다면,
그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날개가 있기를...
그 바닥에 온몸을 던져 부셔져야 하는 날들이 이 생애에 준비되어 있다면,
마침내 그 서늘한 바닥을 딛고 다시 차오를 비상의 힘도 그 안에 깃들어 있길...
하여, 추락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 작은 날개 안에 한줌의 바람을 그러안을 수 있기를...
그렇게 그녀가 언제나 추락의 끝에서도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은 비상에 있었음을 기억해내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하였으므로...
우왕~~~ 숙위씨 사진 대박!!!
넘 예쁘게 나왔어요. 물론 실물도 그 못지 않게 예쁘답니당~~ 호호
넹~~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을 거여요 으흐흐흐
현아 씨~~
저 사진은 '정말' 잘 나온 사진은 아닌데요, 뭘^^;;;;;(세월이 무상하죠~)
아마 워낙 친한 언니가 찍어준 사진이라 애정이 묻어나서 더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살이 좀 찌면서 얼굴선이 확 달라진 건 인정^^ 인정^^
인터뷰하고 글을 정리했던 그 긴 시간 동안 현아 씨 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 많이 했어요. 그리고 그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다듬어냈을까 신기했구요.
여러 번 하는 이야기지만~~ 백인보 계속 쓰면서 '자기 글'도 꼬옥 써보시길~
더 긴 글들, 더 깊은 글들, 현아 씨 속의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어요.
인터뷰 끝내고 제 스스로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후회도 많이 했지만
이 글로 또 한 번 치유를 받는 느낌이에요.
함께 아파해줘서 정말정말 고마워요, 현아 씨.
앞으로 사이좋게 잘~ 지내 봅시다!!!
눈웃음이 유난히 예쁜 숙위씨^
그 웃음넘어에 진한 슬픔이 숨어있었군요. 아파서 신화강좌에 2주 결석해서 궁금했는데..
옆모습이나마 보게되어 반갑네요.
지금처럼만 자신에게 ,주변에게 충실하면 아이가 내민 손을 언제나 꼬옥 잡아줄 수 있을거야요.
담주 신화종강파티에 함께 할 수 있기를...
쿨하신 분은 아마도 황반장님이 아니실까요??^^
으흐흠,,,, 진한~ 슬픔이라기엔 뭣하고, 쪼콤 슬픈 여인네란 말이 맞겠네요^___^
그나저나 저도 2주나 못 뵈어서 정말 서운했어욤,,,
담주엔 꼬옥 종강파티 함께 할게요~
주말 잘 보내시구요!!
너무 예쁜 모리님~
항상 웃는 그 모습, 너무 예쁘고 계속 '함께' 웃으면 좋겠어요~
초록민들레님은 누구실까 했는데^^ 간사님이셨군요!!!
너무 예쁘,다고 해주셔서 정말 기쁘네요^ㅇ^ 홍홍~~
저도 앞으로 더 예쁘게, 더 많이 웃을 일들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내가 모리님 예쁜 사진 찍어둔 거 있는데. 그거 올릴 걸. ^^
그리고 쿨한 인생은 황반장님이 아니랍니다.
모리님, 건강해지도록 이재형 원장님께 배운 명문자세 전수해드릴께요.
아이공,,, /쿨한 인생'님이 황반장님이 아니셨군요 ㅠ.ㅠ
이런 실수를~~
그나저나 얼른 명문자세 배우러 가야겠어요!!!
'산벚꽃'이란 닉넴을 쓰시는 군요. 은경 쌤 맞으시죠??
저도 산벚꽃 참 좋아해요. 지금은 꽃잎 모양새도 가물가물하지만요.
요즘 너무 경황이 없어 뵐 수 있는 건수도 놓치고, 에효~
그치만 담주 신화반 종강파티 기대하고 있답니다^^
현아님 백인보가 언제 업데이트될까 한번씩 아카데미 홈피를 찾곤하는데 이번엔 모리님인 걸 보고 와락, 반가웠어요. 모리님이 지난번에 '모리'가 숲이라고 알려주셨잖아요. 전 숲속에 들어가는 거 무지 좋아하는데, 숲속에서 무성하게 덮힌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한줄기, 두줄기씩 들어오면 그게 그렇게 반짝반짝 이쁠 수가 없어요. 모리님의 아픈 이야기를 읽다가 그런 숲이 떠올랐어요. 깊은 숲에 들어오는 반짝이는 햇빛. 모리님의 밝고 따뜻한 기운은 어둠과 아픔을 품을 줄 알아서 그렇게 따뜻한가, 이런 저런 생각에 아마 숲이 떠올랐나봐요. 앞으로 모리님에게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가득 채워졌음 좋겠어요. 사진도 계속 올려주세요. 모리님 사진을 보면서 '아, 나도 사진 배워볼까' 요러고 있다능~
-현정
아녜요~~
저야말로 한밤중에 댓글을 달아서 너무 진지해진 건 아닌가 시포요^^;;;;;
다시 보니 이건 그냥 센 척, 허세를 부린 거구나 싶기도 하구요.
흠흠~~ 그래서 쫌 쑥스럽습니다~~
오늘 저녁엔 치킨 반반~~ 맛난 녀석으로 한 마리 주문해 먹을 듯 싶습니다~
고마워요, 비버님!!!
치킨도 반반, 인생도 반반! 누구나 기쁨도 슬픔도 골고루 품고 살아간다고 저 역시 생각해요.
그러니 너무 염려할까봐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되어요. ㅎㅎ 한밤중에 댓글을 달아서 너무 진지하게 썼나봐요. ;
그나저나, 밑에서 두번째 문단, 정말 멋져요!! ^ ㅁ^
댓글이 늦어져 정말 죄송해요, 비버님~~
바비킴의 노래도 좋지만, 비버킴님의 노래도 언젠가 더 넓은 세상에서 빛을 보시리라 믿고 있답니당!!!
누구나 조금씩 아픈 이야기들을 품고 살아간다고 저는 믿고 있는데
(아님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참 고마운 한편,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답니다^^
너무 염려를 끼쳐드린 건 아닌가 하구요.
오랜 세월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그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버님 말씀처럼 슬픔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늘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요. 이미 행복할 때는 참 행복하고,
즐거울 때는 또 참 즐겁게 지내는 것, 알고 계시죠?
힘들었던 일본 생활 속에서도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참 많았어요.
앞으로 제가 찾아나갈 행복과 즐거움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지금까지 제게 특별히 적은 행복이나 기쁨이 주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아픔들이 눈녹듯 사라진 건 아니겠지요.
저도 이걸 어떻게 잘 달래줄까 고민중이랍니다.
쓰고 보니 어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댓글이 다 있을까 싶지만,
지금 심정은 그렇답니다^^;;;;
사진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기쁘네요.
임쌤 수업을 강추합니다~~~
살짝 읽고 가려다가..
좋은 글과 얘기에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
행복한 겨울 되세요 ~
어떤 답글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몇 달이 흘렀네요^^;;;;;;;
두서 없는 제 얘기에(정말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현아 씨가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
축복해주신 덕분에 이 겨울은 제게 '결과적으로' 아주 행복한 계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수강생' 님도^^ 행복한 봄 맞으시길 빕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별별 유혹 물리치고 " 그 만남 "을 선택하는
뿌듯함과 당당함, 그리고 감사.
모리님과 현아님, 짧은 시간 속 깊은 이야기
백인보에서 만나는 감동
만남이 계속 되기를....
몇 번의 만남이지만~
정애자 선생님을 만나게 된 인연에 감사하고 있어요.
선생님 속에 품으신 시간들, 깊이들~
앞으로 오랜 만남 속에서 조금씩 나누어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