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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여성 예술가, 6가지 정체성] 종강 후기(멋진 시 한편^^)
<6인의 여성 예술가, 6가지 정체성> 종강후기
- 김다영
똑똑똑.
저 회색 벽 너머에서는 울림이 없다.
네모나고 차가운 은색 빛을 내는 공장 식 우리 속에,
꽉꽉 채워져 있는 차가운 딱딱함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답답하다.
켁켁, 애써 폐를 끌어올려, 숨을 토해내 보지만.
네모남이 그 안에 네모남을 가지고 불쑥불쑥 솟아있는 도시의 풍경이 턱, 가로막는다.
숨소리도 없다.
공기도 조차, 드나들지 않는다.
그래서 썩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약한 냄새의 흔적도 없다.
이제, 모두들, 똑똑똑, 두들기는 것마저도 멈추었다.
우린, 생명력이 제거된 통조림처럼 그렇게, 차가운 우리 속에,
하나의 이름이 달린 딱딱한 라벨을 붙이고 갇혀있는 것이다.
수많은 타의식에 의해 규정된 라벨.
이런, 라벨조차 네모나다.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질기고 끈적끈적한 라벨을 뜯고,
진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꿈속에서는 한, 번, 나직이 속삭여 본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나갈 수가 없다.
나갈 수가 없다?
때론, 알 수 없는 충동에 불 지르듯, 저지른, 정면공격이
험난한 마파람을 불게 했다.
무서운 세상의 맞공격은, 가늘게 이어가던 생존을 위해 나를, 다시 움츠려 들게 하고.
결국, 통조림 안이 안온하다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겁이 나 창백해져 있던 심장은, 어느새 또, 귀찮게, 빨갛게, 자꾸 뛴다.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내면의 일을 잊고 사는 것보다,
내면의 말을 듣고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드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심지어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자꾸 속닥, 속닥, 속삭입니다.
자꾸.
자꾸.
극복하기 vs 화해하기, vs가 아닐지 몰라?
때론, 울컥 치밀어 오르는 울음처럼 강한 자극.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 나의 새로운 숙제인 걸까?
두둥실 떠오르는 질문.
그래, 틈이라도 내보고 싶다.
하지만, 이번엔 비스듬히 공격해 볼까?
한번, 손을 잡아 본다.
올랑.
오노.
프리다.
아나.
신디.
바바라.
둥글게 진흙바닥에 앉는다.
끈적한 진흙을 움켜쥔다.
지렁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허벅지 위를 기어간다.
차갑고 끈적한 지나침에 소름이 돋아도, 한 번 들여다본다. 또 들여다본다.
지렁이는 긴 끈기 가득한 진흙 길을 우리 허벅지에 남긴다.
지렁이가 낸 구멍에 초록 풀이 돋아난다.
지렁이가 낸 허벅지 길에도 풀이 불쑥 돋아난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우리를 서로서로, 감싼다.
초록색 자궁 속에 있는 쌍둥이들처럼.
.............. 나는 우리다.
나는, 자연 속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나의 정체성.
너의 정체성.
교감.
공감대.
먹구름 속의, 파란 하늘처럼. 쁘띠 오브제 a가, 반짝반짝,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성에 의해 함부로 정의되지 않고,
이성과 감정 사이에 만나는 묘하지만 엉켜있는 숲같이,
감히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탐험심.
때론 혐오스럽고,
때론 역겹고,
때론 모호하지만,
착하고 아름다운 그녀들의 안전한 전형을 이젠 흉내 내진 않는다.
나는 변해간다.
옷은 잘려 나가고,
윤곽선은 점점 흐릿해진다.
그것이 외면하고 있던 실재인, 나.
내가 주도하는 나.
해가 떠오르고,
달에 간 우주인이 했다는 말,
‘달에 가서 보니 지구가 떠오르더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 가보지 못한 저쪽에 가봤다.
그리고 이제, 오늘 아침 자신의 본질을 맞대면하는 건, 벌거숭이 임금님 동화같이 심플한 우리.
하지만 라벨을 뜯고, 통조림에서 나온 벌거벗은 우리는, 겁이 난다.
하지만 숨은, 쉰다.
공기가 통한다.
네모와 네모로 이루어진 차가운 빌딩들이 이제 나를 가둘 수 없다.
한 마음에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솔직한 겁을 머금고,
하지만 다른 한 마음에는 자유를 만끽하며,
찰칵찰칵, 찍히는 사진 속에서
변신을 거듭해 본다.
아무도 나를 잡을 수 없다.
나도, 나를 잡을 수 없다.
사랑도 나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안다. 나의 발끝은 아주 작게나마 지구에 잡혀 있다는 걸.
그렇지만 마음을 흐르는, 멈추지 않는 시냇물.
나는 ‘나의 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