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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2강, 네루다 자서전
[인문학교]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문화와 역사, 2강(11/07)
두 번째 강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중 ‘스무 번째 사랑의 시’>라는 시로 강의를 시작했다.
사랑했던 연인을 그리며 쓴 감성적인 시였다. 네루다가 스무 살 때 냈다는 이 시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체가 전장에서도 이 시를 자주 읽었다는데 그만큼 네루다의 시를 사랑했다.
네루다는 체게바라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며 세계적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이지만 중남미의 정치, 경제가 연관된 사람이다.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정치가이기도 한 그는 혁명투사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시인이었다.
칠레의 민중시인인 네루다의 삶을 구광렬 강사님의 유쾌한 강의로 들었다.
‘네루다’ (1904~1973)는 원래 필명이었다고 한다.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아버지가 시인이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탄압을 피하고자 처음엔 필명을 썼다.
필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찾아보니 체코의 작가 얀 네루다의 성을 빌리고,
파울로에서 영감을 얻은 듯 한 파블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네루다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라는 선생을 만나서 그의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고 발전시켰다.
놀라웠던 점은 네루다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두 사람 모두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거였다.
네루다는 여성편력이 심했다고 한다. 부인도 여러 명이라고 한다.
작가의 개인사를 접하니,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네루다에 대해 너무 많이 포장 돼있는데 그 부분을 지적하고싶다(?)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 네루다의 첫 번째 결혼식 사진
칠레에 민중 시인이자 세계적인 시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포스티노>라는 영화로 유명한 네루다의 삶을 강사님의 유쾌한 강의로 들여다 본 기분이다.
체가 너무나도 존경했던 네루다. 민중 시인이지만 ‘사랑’을 화두로 한 시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는 저항의식이 가득한 민중시도 집필했다.
네루다의 시를 몇 편 찾아본 결과 <시>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체게바라로 시작해서 네루다까지 온 강의를 들으면서 중남미 역사와 문화를 훑는 기분이다. 앞으로의 강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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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時) - 파블로 네루다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흩어지고
열리는 것을
행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들쑤셔진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 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