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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문화] 4강, <활과 리라>
[인문학교]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문화와 역사, 3강(11/14)
옥타비오 파스 저/김홍근,김은중 공역 | 솔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라는 강의를 신청하고 커리큘럼에 나와 있는 도서들을 한꺼번에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 그래서『활과 리라』가 소설이나 혹은 시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도 않았다. 강의순서대로 책들을 읽고 책장 어느 구석엔가 놓여있던 『활과 리라』를 찾아 첫 장을 펼쳤을 때, 그 때의 당혹감이란...『활과 리라』는, '시론집'이었다. 시도 아니고 시론집이라, 과연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
물론, 읽어낼 수 없었다. 두 장 정도를 읽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책을 덮었다. 이건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구입한 모든 책을 읽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읽으면서 괴롭기만 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독서시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라고 변명하며... 근데 이렇게 책을 읽지 않고서도 강의를 듣는 데 무리가 없을까, 쪼게 걱정하며 느티나무홀에 들어섰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는 어려워!
느티나무홀에 들어서자마자 교안을 챙겨 읽었다. 책을 안 읽었으니 강의 시작 전 교안이라도 대충 훑어봐야했다. 그러다 빵 터졌다. 역시 구광렬 선생님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솔직하시다.
필자는 사실 파스의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지나치게 지적이고 관념적이어서 뼈다귀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듯해서다 …… 그의 시를 읽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의 시세계를 옳게 이해하지 못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시가 그만큼 철학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강의도 '왜 옥타비오 파스의 시는 어려운가?'라는 화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파스의 시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당시(1940년대) 유행하던 초현실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사상으로 주로 중국과 인도, 일본의 시나 그림 등이다.
강의는 먼저 초현실주의를 낳기까지 세계를 관통했던 사상사의 흐름을 훑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니카라과의 시인 루벤 다리오( 1867-1916)가 파리의 에펠탑을 보고 '예술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모더니즘. 하지만 당시는 '모던'하다고 할 만한 것들의 등장이 너무 뜸하게 이루어졌고 이러다보니 모던한 것들을 찾기 어려웠던 이들은 신비한 것, 지금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 고답주의를 낳았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이어지는 모더니즘 이후의 흐름. 이러한 모더니즘이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파괴되자 그 자리에 가장 먼저 허무주의가 등장했고 그 뒤를 이어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울트라이즘, 아방가르드 등등이 나타났다....
대강의 흐름만을 알면 된다고 자위하며 강의를 흐름을 숨 가쁘게 쫓는다. 어쨌든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초현실주의의 직격탄을 맞고 자란 파스는 어릴 적부터 그와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접했고 그래서 그런 詩作들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전기가 된 것은 동양에서의 외교관 생활이었다. 일본과 인도에서 머문 기간 동안 그는 탄트라 불교와 일본의 하이쿠(俳句)에 매료되었다.
결국 파스의 시가 어려운 이유는 가뜩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초현실주의적인 글쓰기(자동기술법)에 동양의 선사상까지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언어의 모호성'에 대해 비트겐슈타인만큼이나 고뇌했으니, 그는 자신의 시에서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를 찾고자 노력했다. 언어에 예속되어 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모두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철학의 개념들. 그 안에서 파스는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실체가 있음과 말로써만 표현될 수 있는 실재가 있음을 동시에 인정한다.
잃어버린 말을 찾아야 한다. 안으로든 밖으로든
또 그것을 꿈꿔야 한다.
밤의 문신을 읽어내고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면 또한 벗겨내야 한다.
햇볕으로 목욕하고 밤의 과실을 따먹으며
별과 강이 쓰는 글자를 해독해야 한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 '깨어진 항아리' 中
교안에는 파스의 시 세 편이 발췌되어 실려 있었다. 그 시들을 강의 시간에 함께 낭독해 가며 읽었다. 시낭독 후, 수강생들의 반응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였다. 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미의 해체와 의사소통을 거세한 기호들의 나열이라.... 음, 이렇게 되면 그의 시를 읽어보겠다는 생각은 점차 멀어져 가는군...
불교의 선사상 그리고 시간 개념
파스에게 가장 감명적이었던 동양사상은 불교였다. 특히 서양의 직선적인 시간 개념과는 사뭇 다른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 개념, 과거와 미래, 현재가 혼재하는 시간관, 찰라와 선불교의 '여기 그리고 지금'의 개념.
그런데 여기서, 구광렬 선생님이 파스에게 강한 태클을 거신다. 자신의 박사 논문으로 옥타비오 파스의 시들을 연구했던 지라 그의 시세계에 나타난 동양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불교관련 책들을 엄청 읽으셨다면서, 과연 그가 동양사상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시를 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러면서 다시 동양의 불교 역사에 대한 기나긴 설명에 들어가신다.
불교는 크게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고 교종은 텍스트 중심의 공부와 그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반면 선종은 명상과 선 중심의 깨달음을 추구한다. 선종의 1祖는 달마이고 그 뒤를 이어 2조, 3조 쭉 내려오다가 6조인 혜능에까지 이어진 이야기, 그리고 그 뒤를 이는 임제종과 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임제종 이야기까지. 일본인에 의해 서구에 널리 알려진 '젠' 사상은 결국 우리나라의 임제종 영향을 받은 것인데, 파스는 그런 것들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도 없이 동양사상에 대해 떠들고 글에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다는.... 강력한 태클!!! 실제로 고광렬 선생님은 파스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에 대해 물었다 한다.
인터뷰 말미에 한국의 정토불교나 화엄사상 그리고 이조의 성리학 등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그에게 필자가 뼈있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께서는 중국, 일본, 인도 등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시지만 좀처럼 한국에 관해선 말씀하지 않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 무엇보다 한국문화가 서양에 소개되어있질 않아요. 제가 의도적으로 한국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 관해 알고 싶어도 번역된 책들이 없었습니다."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하는 찰나, 그 밑에 그가 덧붙인 부분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故 김남주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을 읽기 위해 옥중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근 5개 국어를 하던 파스에게 김남주 선생의 열정의 반 정도만 있었더라면, 아마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에휴, 작가가 되기란 참 어렵네요... 쩝~
파스여, 안녕~
파스의 시라면 꼭 알아두어야 한다며 구광렬 샘이 'Blanco(흰색)'을 추천해 주셨다. 음양오행 사상을 소재로 삼아 쓴 시란다. 왼쪽에는 음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오른쪽에는 양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쭉 나열한 시. 그러다보니 시가 엄청 길어져 보통의 책과는 다른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온 시집의 모양은 아코디언처럼 주름이 잡혀 있는 모양새란다. 여러모로 독특하구나, 파스는. 그러시면서 그 시를 읽어보면 파스가 잘못 적어놓은 단어들이 무척 많다며 동양사상에 대한 그의 이해의 폭과 질에 대해 또 다시 성토의 말씀을... ㅋㅋㅋ
이제 다음 주면 마지막 강의다. 함께 공부하기로 예고돼 있던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특급열차』가 절판이어서 강의는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중남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반적이고도 총체적인 강의를 해 주실 계획이라고...
수강생들의 반응이 뜨겁다. 나처럼 모두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중남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리라. 다음 주 강의가 무척 기대된다. 그러나 혹 강의에 못 오시거나 강의를 듣지 못한 다른 분들을 위하여 중남미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강좌지기를 맡은 내가 질문했다(기특해^^).
『메스티조의 나라들』(단국대 출판부)
『중남미사』(김창환, 송산출판사)
근데 어째 이 책들도 쉽게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흑!
글 : 자원활동가 박현아
이날 "시는 잉크 냄새보다, 가슴의 땀냄새가 나야한다"는 구광렬 선생님의 맨발 태클이 기억에 남습니다.
<활과 리라>의 서문에 나열된 시에 대한 파스의 정의가 너무 멋있어서 밑줄로 도배했어요.
강좌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