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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전시회를 기억하며
이번 박근혜 한나라당후보의 발언으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혁당 사건.
지난 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49문화재단 주최로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옛날 서대문형무소...
저는 인혁당사건에 대해 책이나 기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그 전시에 대해 별 기대 없이 무심코 들러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현장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형무소 긴 복도의 각 방들 입구와 방에
억울하게 사법살인당한 분들의 사진과 약력 소개,
그리고 이분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며 가족들과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
결혼식 사진, 나들이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 가족들과 밥먹고 놀러가고 아이들과 이야기나누며 일상을 누릴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평범하지 않았다면,
당시 박정희군사독재에 저항하려 했고
민청학련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고 교통비 정도의 돈을 도왔다는 것 정도입니다.
저는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평범한 일상이 권력자 마음 하나로 뿌리뽑히고
그 부인과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나라의 역적이 되어 살아야했던 그 시절이
그 전시를 통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는 걸 말하려는 겁니다.
전시품 중에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이 있습니다.
어느 사형수의 부인이 남편이 붙잡혀가고 나서
그 황망한 당시마음을 작은 수첩에 깨알같이 적어내려간 낡고낡은 수첩이었습니다.
"여보! 단 한순간만 살아서 내게 와 주세요.
악마도 내 이 슬픔을 안다면 울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197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우홍선 씨의
미망인 강순희 씨가 한 달이 지난 1975년 5월 10일 자신의 일기장에 남긴 글 중 일부입니다.
슬픔에 가득차 있으나 저에겐 그 글씨체가
아주 힘있고 당차게 써내려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당시 두려움 속에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랴,
자식들 보살피랴
아무리 힘들어도 두눈 부릅뜨고 정면으로 삶을 헤쳐가야 했던
한 여인의 슬픔과 분노의 눈물이 글자 하나하나에서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수첩의 글씨가 그 존재 전체로 말하는 바, 그리고
그 일상의 사진들이 표현하는 그 생생한 느낌에
전율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의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는 발언.
역사에 맡기자 하면, 품위있게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트위터에 이렇게 말했다죠?
그녀가 말하는 역사에 맡기자는 "뉴라이트에 맡기자"는 것일 거라고...
그녀는 이런 역사적 문제만 나오면
훗날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고 하는데.
역사는 누가 맡는 것입니까?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
그건 아마도
어떤 미래를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사는 것,
지금 이 순간순간이 역사가 된다는 걸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각하는 것 아닐까요?
민주주의사회에서 저항은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프랑스의 초등학생 교과서에서는 이것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더군요)
그 저항의 행동 때문에 이 분들은 말도안되는 사법살인을 당했습니다.
일상의 행복을 송두리채 빼앗겼습니다.
...............
오늘하루 작은 일상의 행복에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말해주던 사진전시...
지금 그 전시가 다시 주목을 받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