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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 오! 나의 미네르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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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백인보 스무 번째 - 수강생 박미경
오! 나의 미네르바여.....
“느린마을 막걸리 있나요?”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안주라면 몰라도 술을 시킬 땐 뭔가 평소와는 다른 포스를 띠는, 그게 내가 아는 그녀다. 왜 꼭 집어 느린마을 막걸리에요?
“술 만들 때 단맛 나라고 아스파탐을 넣는데, 느린마을 막걸린 그걸 넣지 않아서, 뭐랄까 막걸리 먹을 때 찐득한 뒷맛 같은 거? 그런 게 없어요.”
쌀과 물, 누룩만으로 빚어내는 술. 곡식 알갱이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막걸리의 색은 그렇게 완성된다. 그 단순함이 만들어내는 간결하면서도 깊은 맛을 음미할 줄 아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밤... 아! 나의 인터뷰는 행복하다.
술 이야기 :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
소싯적 술을 과하게 먹은 탓에 이젠 맥주 1000cc조차 버거운 위와 장을 지니고서도 여전히 난 술이,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다. 박미경,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 또한 ‘술’이었다. 2010년 여름, 수강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탄생한 맥주강좌, ‘삶과 문화가 있는 맥주이야기’. 그곳에 그녀가 나타났다. 팔에 깁스를 한 채... 이제 기억하는 힘이 많이 줄어 그녀가 왜 다쳤었는지는 생각이 안 나도 그날 그녀의 팔에 둘러진 붕대의 하얀색만은 여전히 생생하다. 우리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키워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술도 음식이니까 무슨 술이 더 맛있다, 뭐가 더 좋다는 말은 할 수 없죠. 자기 입맛과 취향에 맞는 게 제일 좋은 술이죠. 즐기는 맥주? 전 요즘은 호가든이 좋더라구요. 살짝 오렌지향이 나는 게...”
그녀는 술을 ‘마시기’만 하는 게 아니다. 술을 ‘담그기’도 한다. 느티나무에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녀가 무료로 공수해주는 술은,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맥주, 이름도 거룩한 하우스맥주다. 그녀가 늘 주장하듯, 수제맥주는 신선하기 때문에 효모가 살아있다. 고로 변비에 특효다. “이거 마시면 내일 화장실 가게 될 걸...” 하며 따라주던 그녀의 맥주 맛은 한번 경험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신천지, 바로 그것이다.
팔을 통째로 깁스하고도 술 강의에 꼬박꼬박 나오는 걸 봤을 때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와, 저런 상태를 하고서도 맥주 강의 들으러 온 걸 보면 틀림없이 굉장한 주당일 거야, 정도의 얄팍한 분석으로는 그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이 세계의 진정한 강자였다.
요즘도 술 담그세요?
“요즘은 안 만들어요. 제가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전에 살던 곳보다 공간이 협소해서 못 만들고 있어요. 짐 정리 좀 되면 다시 만들어야죠.”
느티나무의 모든 강의가 끝나고 학기가 마무리되는 종강파티 때마다 그녀의 수제맥주를 맛보는 즐거움은 파티의 또 다른 흥겨움이었다. 이번 파티 때도 친히 공수해 주겠다는 그녀의 약속에 다시 격하게 행복해진다. 느티나무 아래서 좋은 술과 좋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시간들을 떠올리자, 침이 꼴깍^^. 근데 술은 왜 담그시는 거예요?
“맥주를 많이 좋아하기도 했었고... 예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가 맥주 만드는 동호회를 하고 있었어요. 주기적으로 우울증이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친구가 한번은 자기 동호회 엠티에 함께 가자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술을 만들어 먹는다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더군다나 맥주를 말이죠. 예전엔 집에서 소주나 막걸리 정도는 만들어 먹기도 했잖아요. 근데 맥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생각는 꿈에도 해보지도 못 했었거든요.”
그렇게 동호회 사람들과 급격히 친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맥주 만들기는 너무 쉬웠다.
“20리터짜리 큰 물통하고 효모만 있으면 돼요. 교육을 받고 집에서 혼자 만들어보니까 진짜로 술이 되더라구요. 내가 만든 술이라서 그런지 애착도 가고 맛도 더 있는 것 같고...”
[2012.6.22 봄학기 종강파티에서 시상품으로 수제맥주 증정중]
냉장고 한가득, 술이, 맥주가, 과일로 만든 와인들이 그득할 거라 상상하니 광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남자들이 맥주로 가득한 방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그 광고 말이다. 진심으로 할레루야다!
집에 술에 관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니 혹시 노상 술을 드시는 건 아닌지?
“원래 혼자는 잘 안 마셨는데,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집에서 혼자 마시는 일이 늘어났죠.”
우리 둘을 연결시켜주었던 술이라는 키워드는 이렇게 다시 ‘정치’이야기로 접어든다. 러시아에서는 남자들 서넛만 모여도 보드카를 마시며 정치를 논한다 했던가? 흥, 조선의 여인네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마!
정치 이야기 : 그녀 집에 TV가 없는 까닭
“직장에 다니니까 평일엔 집회에 못가고 주로 주말에 많이 갔죠. 근데 나갈 때마다 비가 오는 거예요. 전 주로 혼자 다녔는데, 프라자호텔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희망에 부풀다가도,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우리가 이렇게 모여 목소리를 높여도 이게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집회 끝나고 비에 젖은 채로 터벅터벅 걸어 집에 돌아오면 우울하고, 외롭고... 그때 마침 딸기로 담근 와인이 한 30병정도 집에 있었어요. 술이 달달하니 맛있기도 하고, 기분도 울적하고 그래서 혼자 꺼내 마시다가 어떤 날은 울기도 하고.... 그랬죠.”
어디 뭐 남자한테 차여서 운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아프셔도 운 것도 아니다. 나라가 옳은 길로 가지 못하는 걸 보며 안타까움에 흘린 눈물들이었다. 이 정도면 옛 선비들의 기개와 우국충정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대장부란 호칭이 더 이상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이다.
[혼자 눈물 지으며 마시던 문제의 딸기 와인]
그녀의 인생에 정치와 관련된 비사는 이뿐이 아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며 다니던 곳도 ‘정치적’ 발언(?)이 사단이 되어 최근 그만 두었다.
“회사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미네르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평소에 제 소신을 잘 밝히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어찌어찌 하다가 그만 미네르바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게 되었죠. 근데 그 순간 사장님 눈빛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그 다음날부터 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구요. 회사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인터넷 하는 것조차 눈치 보이고 괜히 신경 쓰이고... 몇 년 동안 고민도 많이 하고, 이젠 더 버티기도 힘들고 그래서 얼마 전에 그만 두었어요.”
또 있다. 20년 지기 친구와도 정치 이야기를 하다 사이가 틀어져 이젠 만나지도 않는단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이었는데, 그때가 총선을 앞둔 시기라 자연스럽게 대화가 그런 쪽으로 흘러갔어요. 근데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가 저더러 섭섭하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정치 이야기는 그만 좀 하자고 했는데도 내가 계속 그런 얘기들만 했다면서. 근데 그땐 저도 좀 힘들 때였거든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엄청난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4대강이다 FTA다 정신이 없을 때라 총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데...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되레 내가 더 속상하고 섭섭하더라구요. 이렇게 날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치란 놈은 그녀의 일상 속, 더 깊숙한 곳을 파고들기도 한다.
“전 집에 TV가 없어요.” 왜요?
“MB 대통령 되고 나서 없앴어요.” 네? 아니, 왜요? 그래도 땡전뉴스 정도 까진 아닌데...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TV를 틀어 놓는 경우가 많아요, 아침에도 알람에 맞춰 켜지게 해 놓고. 근데 뉴스라는 게 1시간 간격으로 방송된다 해도 비슷한 내용들이 계속 반복되거든요. 드라마 잘 안 봐서 어쩔 수 없이 뉴스 채널만 틀어놓게 되는데 그러니까 좋든 싫든 계속 MB를 봐야 되는 거죠. 그게 너무 싫었어요.”
아... 그랬구나. 이쯤 되니 대체 그녀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회와 정치 문제에 민감하게 되었는지가 몹시 궁금해진다. 혹시 피내림?
“스무 살 때쯤 연애를 했었어요...”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인생의 대서사시를 쓰는데 사랑이 빠져서야 되겠는가.
술에서 정치로, 그리고 이어 사랑으로, 우리의 인터뷰는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이 얼마나 조화로운 하모니란 말인가, 술과 정치 그리고 사랑...
사랑 이야기 : 문제의 서울행 막차표
“그때가 89년도 90년도 때니까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죠. 친한 친구랑 어떤 단체에 가입했다가 거기서 한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 남자가 날 좋아한다고... 그렇게 시작된 거였죠.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남자, 규모가 꽤 큰 회사의 노조 간부였더라구요.”
그 남자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쉽사리 죽어나가는 걸 보며 유년기를 보냈고 그런 힘없는 이들이 뭉쳐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대의로 가득한 시절들이었다.
“한번은 그 남자가 수배를 당해서 도망 다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땐, 삐삐도 없을 때니까 만나기가 무척 어려웠죠. 그가 숨어 지내던 지방의 한 도시로 만나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려고 터미널로 향했는데, 그가 무척 화를 내는 거예요.” 왜요???
“그날이 토요일이었는데, 그는 제가 하룻밤 정도 함께 머물다가 올 줄 알았나 봐요. 근데 전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그날 서울로 오는 막차표를 먼저 끊어놓았었거든요. 그때 난 어렸고... 무서웠어요, 순진하기도 했고...”
아니, 대체 왜 그런 만행을 저지르신 거여요? 피 끊는 청춘들이 만나서 손만 잡았다는 괴담을 지금 하시려는 거여욧!... 하고 흥분해서 따지려던 순간,
“아! 인생은 사건․사고와 함께 완성되는 것이거늘...”이라며 내 대신 안타깝게 외치는 이가 있었다. 미경 씨와 함께 드로잉 수업을 들었던 사이이기도 한 그녀는 바로 김은경이었다. 그날 어찌어찌해서 인터뷰 길에 동행하게 된 그녀는 마침 사진 찍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우리의 주인공이, ‘그럼 사진 대신 크로키는 어떠냐?’고 제안하는 바람에 그렇게 사진기자의 운명을 떠맡게 되었고, 술상 앞에서 내내 술잔 대신 펜을 들어야했더랬다.(괴담은 여기에도 있구나!)
백인보는 이렇게 꾸려진다. 수강생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그 이야기를 옮기고 그려내는 것도 수강생이다. 아! 새삼 감격스럽다. 우리의 능력이, 조선의 여인네들이, 느티나무의 맨파워가 말이다.
[김은경님이 수다 떨며 완성한 박미경님의 캐리커쳐]
어디까지 떠들다가 이런대? ㅋㅋ
아, 청춘남녀가 만나 그 좋은 타이밍을 뻥 차버리고 ‘기냥’ 돌아왔다는 괴담을 듣다가 흥분하고 있었지... 그럼 그래서 여적 혼자이신 건가요? 여전히 넘 순진하셔서?
“그건 아니고, 난 비혼주의자도 독신주의자도 아니에요. 지금 만약 그런 상황이 또 생긴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죠!”
지금이라면 막차표를 갈기갈기 찢어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어 놓겠죠, 하하하!
"사실, 최근 4년 정도만 빼놓곤 줄곧 연애를 했었어요. 제가 육남매 중에 다섯째거든요, 근데 위의 언니들이 다 일찍 결혼들을 했어요. 딸들은 살림밑천이라고들 하는데 아버지 입장에선 딸들이 죄다 일찍들 시집을 가니 좀 서운하셨나 봐요. 저한테 시집 늦게 가라는 소릴 자주 하셨죠.”
지금이라도 인연이 나타나 준다면 결혼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그녀.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 늙어갈 경우의 수도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서른 넘어서부터 친구들에게 땅 보러 다니자는 말을 자주 했었어요. 농사를 짓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집 한 채와 작은 텃밭 정도를 가꾸며 그냥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꾸는 거죠.”
그게 꿈인가요?
“음.... 계속 꿈을 찾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최근에 회사를 그만 둔 것도 사실 계획에 없던 일이고, 적어도 내년까지는 회사를 다니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앞당겨져서... 요즘 고민이 좀 되네요.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 계약이 1년 남았는데, 그 1년 동안 이제 어떻게 미래를 꾸려야할지 계획을 세우려고 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계획 중 하나는, 진짜 이참에 산골로 들어가서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살아 보는 것이구요. 또 다른 계획 하나는...”
그녀의 버킷리스트.... 대박!
그녀의 플랜B는 전 재산을 챙겨들고 친구가 사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어떻게 되든지 간에 한번 살아보는 것이다. 새로운 땅에서 펼쳐지는 이방인의 삶이라... 난 무조건 두 번째 계획에 찬성표를 던졌다. 아, 산골이야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프랑스는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가야.... (그래야 다리 힘 풀리기 전에 프랑스 남자랑 연애도 하고 신나게 놀기도 하고 그럴 게 아녜요, 거기 와인도 좋은데 말이죠.^^)
“사실 계획이 하나 더 있긴 해요.” 아, 플랜C까지 구상해 놓으셨구나!
“지금처럼 사는 거예요. 비정규직으로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일 하면서, 최저임금 받아가며... 대신 서울에서 살며 문화생활을 누릴 순 있겠죠.” 플랜C는 좀 우울하네요. 그럼 미래계획 같은 거창한 거 말고 꼭 해보고 싶은 거, 그런 건 뭐가 있나요?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정몽준이에요. 저번 총선 때도 정몽준이 당선되었죠. FTA 비준에도 책임이 있고 해서 이번엔 진짜 안 될 줄 알았는데... 회사를 다닐 때부터 생각해 둔 게 있어요. 회사 그만 두면 머리를 빡빡 밀고 정몽준 사무실 앞에 가서 일인시위를 하는 거! 그게 정말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어요. 이렇게 바로 다시 일을 하게 되지만 않았어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이 언니가, 증말... 굳이 버킷리스트까지도 이렇게 정치적일 필요가...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말로 하실 거예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할 꺼에요.” 와우, 대박!
사랑에서 꿈으로 바통이 넘어왔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다분히 정치적인 버킷리스트 땜시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정치’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렇게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살고자 하는 그녀에게 느티나무는 어떤 곳이었을까?
“사장한테 정치적 핍박을 받으며 힘들게 회사생활을 할 때라, 느티나무에서 강의를 듣는 시간들이 내겐 위안이 되었어요. 전 제가 이 세상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제 주위 사람들은 제가 그러면 그럴수록 절 불편하게 생각하더라구요. 근데 느티나무에 오면 그런 저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없고 제가 거품을 무는 일에 그들도 함께 같이 거품을 무니까, 그게 편하고 좋았지요.”
촛불집회 때 그녀를 혼자 술 마시게 하고 혼자 울게도 만들었던 그 우울증도 느티나무에 나와 강의를 듣게 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같이 강의를 듣는 이들에 대해 사적으로 아는 게 거의 없어도, 함께 세익스피어 대해 이야기 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는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충만함을 느꼈다.
“자신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내가 그동안 정말이지 세상 좁게 살았구나, 배워야 할 게 너무 많구나, 내가 봐야할 게 너무도 많구나....”
인터뷰이, 인터뷰어, 사진기자. 여자 셋이 모여 한밤의 수강생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 자리. 그러고 보니 느티나무 수강생이라는 정체성 말고도 우리 셋의 공통점이 또 하나 보인다. 영화. 둘은 영화를 겁나 좋아하고 한명은 심지어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그녀에겐 나름의 룰이 있다. 절대 리뷰를 보지 않고 가야한다는 것. 다른 누구의 견해에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주로 시사회나 개봉일에 본다. 그런 그녀에게 기억에 남는 영화를 묻자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답이 돌아온다. 내가 유일하게 대사를 기억하고 있는 영화여서 잠시 놀랬다.
“부모는 자식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아들을 잃는 아버지가 장례식에서 추도사로 했던 말이다. 돌이켜보니 줄거리 전부가 기억나진 않아도 천천히 흐르던 강물과 그 강물위에 서서 느리게 낚싯대를 던지던 두 남자주인공이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이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면, 남는 건 완벽하게든 아니든 ‘사랑하는 것’뿐일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녀에게 나중에 정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져댔지만, 그녀는 이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어떻게든 사랑해보고자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는 걸, 이 글을 쓰는 순간에야 느리게 깨닫는다.
오! 나의 미네르바여...
글을 쓰는 내내 제목과 마무리 땜에 고민이 깊었다. 나의 인터뷰가 늘 그래왔듯, 마지막 장은 인터뷰이에 대한 나의 감상이 덧붙여져야 한다. 일상의 정치성을 놓지 않고 꿋꿋이 가고 있는 그녀에게 전쟁과 지혜의 여신을 일컫는 ‘미네르바’라는 애칭을 붙이며 끝낼까 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곤 곧 그녀와 어울릴만한 시 한 편을 찾아내고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내게, 그녀도 그렇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일지라도 사랑하려는 자세를 끝내 버리지 않는, 나라 걱정에 혼자 훌쩍이며 술을 마셔도 그 외로움을 딛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길을 잃지 않는 그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풀꽃처럼, 꽃밭이 아닌 곳에서 피어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들꽃처럼, 그녀도 그렇다. 대의와 담론의 시대도 사실 그 안에 있는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되 일상에 잠식당하지 않고, 세상에 대해 소리쳐대는 것을 잊지 않는 그녀는 그렇게 작은 생명의 아름다움 따윈 잊어버린 세상에서도 꽃을 피우는 풀꽃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올 겨울은 제주도로 내려가 감귤이나 따며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그녀가 말한다. 우리의 사진기자 아가씨는 오늘의 이 자리를 스케치하느라 열심이다. 난 강물 위를 우아하게 가르던 낚싯대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녀가 좋아하는 ‘느린마을’ 막걸리를 잔 위에 기울인다.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여자 셋이 모여 정치를 논하는 여름밤이다.
스케치도 보여주세요, (보여죠 보여죠ㅎㅎ)
ㅎㅎ 그 스케치라는 게 미경씨 얼굴 스케치....
허나, 다음에도 은경씨가 사진 대신, 케리커처 재능기부하신다고 하셨으니,
차기작을 기대해 주세여^^
아름다운 사람
잘 봤습니다
단장님 ^^
단장님. ㅎㅎㅎ
은경언니 그림 대박이야 너무 예뻐
요렇게 요렇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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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영윤씨는 왜 사진이 뜨는 거지....? 궁금 궁금
" 오 ! 나의 미네르바여 "
박 미경님 과 박 현아님,
지금 - 여기를 살며 옛날도 열어보고,
앞날도 가늠해 보는 진솔한 이야기들
진진하게 읽었어요
미경샘 생각하면서 시도하는 힘, 부럽구요
현아샘, 늘 깔끔한한 멘트 멋져요
늘 격려해주시는 댓글에 저도 감사드려요,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