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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번째 | 그러니까, 그녀는 기지혜.
느티나무 백인보 스물한번째 - 기지혜
인터뷰 · 글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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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녀는 기지혜.
어느 월요일, 퇴근길에 만난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매일같이 수다 떤 사이처럼 군다.
어디서 일을 할지 직장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할 때는 학부 때와는 달리 취직을 한 상태에서 졸업 가운을 입어보고 싶었어요. 몇 군데 원서를 넣었고, 그 때 입사한 곳을 아직 다니고 있고요, 대학 준비반 때는 기자 시험을 준비한다며 언론 고시반에 들어갔어요. 그런 기회들을 잘 살렸으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그 당시 압도당했어요 사회 문제에. 딴 생각을 많이 하면서 언론 고시를 준비했어요. 그러다가 졸업을 했죠. 그러다 통역대학원을 가겠다...생각을 했었고. 세계사회포럼을 갔었는데, 언어와 언어 사이의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게 좋아보였어요. 중고등학교 때, 왜 다른 것에 팔려 있으면 공부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연애를 불같이 했다거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세상 문제에 압도됐던 것 같아요. 약간 열병처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스물다섯, 스물여섯을 보냈고. 기자 시험도 안 됐고 통대 입학시험도 안 됐고.. 그런데 억울해하진 않아요. 열심히 안 했으니까. 제 요즘 고민은 왜 나는 열심히 하지 않을까. 그게 제일 고민이에요. <무릎팍 도사>에게 말할 수 있다면 저라면 이런 고민을... 그 프로를 보면 저게 정말 고민일까, 싶은 것을 고민이라고 말하잖아요. 사람들은 저를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보는데, 난 왜 욕심 있게 열심히 하지 않을까. 방금 ‘욕심’이란 단어를 썼는데, 욕심이 너무 많아서 찔러보는 게 많을 수도 있어요.
저는 그렇게 한 곳에 묵묵히 하는 것보단 여기저기 여러 곳 찔러보는 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전 반대로 생각해요. 저는 제가 우러러보는 모습이, 월화수목금금금 이라 해도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끈기 있게 연구하는 연구자 모습이에요.
그런 느낌인가? 마음이 먼저 앞서고, 그것을 내가 내 손으로 다 받아서, 꽉 쥔 채로 가져 간다기 보다는,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걔네를 계속 잡았다 놨다 하는...
그게 어떤 의미가 있나, 천천히 생각중이에요.
활동하면서 알게 된 네팔 분의 작은 음식점에서
네팔 만두 두 접시, 네팔 맥주 두 병.
한국인들이 무섭지 않으세요? 호전적인 게 몽골리안들에게 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인을 비롯해서. 라오스에도 ‘몽족’이라는 게 있는데, 몽골족들이거든요. 갔다 온 라오스도 참 좋았던 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안 느껴져서 좋았어요. 뭔가 조심해야 되고 긴장해야 되고, 어떤 나라를 가면 그런 게 있거든요. 해꼬지 당할까 봐. 라오스에 갔을 때는 무장해제가 됐었고, 라오스인들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아이들하고 같이 10시간 버스를 탔는데, 칭얼대는 소리를 제가 듣지를 못했어요. 애들이 소리를 안 내는 거예요. 뭔가 강박적인 게 없는 것 같아요. 기후가 따뜻한 것도 있고요.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날씨가 추우면 땔감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그게 없다 보니까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뭔가 해야 한다는 Must Item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적응하고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지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라오스에서 느꼈던 것은 ‘반드시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한 것에 매달리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리가 점점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라오스는 기후가 어떤가요? 제가 12월에 결혼을 하는데, 신혼여행지를 아직 못 구해서...
라오스는 좀 따뜻하고 드라이해요. 건조해요. 12월이면 진짜 날씨 좋을 때거든요. 라오스로 가요. 라오스로 가면 안 될까요? 라오스로 가주세요. 루앙프라방도 진짜 좋고...
……
어떻게 만나셨어요?
소개팅이요.
어떤 게.. 좋았어요?
그냥... 안전하단 느낌이 있었어요.
그거 진짜 중요해요!! 저도 그것 때문에 최근에 결혼을 결심하게 됐어요. 물론 결혼을 혼자 하는 건 아니지만. 결혼할 누가 있는 건 아닌데요...^^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ㅎㅎㅎ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에 있는 ‘안전에 대한 욕구’. 항상 자아실현만을 바라보면서 살았거든요. 내가 대학을 가는 것도, 누구랑 사귀는 것도, 자원봉사 하는 것도, 직업을 갖는 것도, 자아실현이다 생각했는데, 살아오면서 욕구가 밑 단계로 확 내려가더라고요. 안전에 대한 욕구가 1단계인가 2단계인가 그렇잖아요. 계속 내려가다 거의 ‘생명에 대한 욕구’를 원하게 되면서 결혼에 대한 욕구를 갖게 됐죠.
네팔 만두 두 접시, 네팔 맥주 두 병.
느닷없이 뜨개질은 왜...
저번에 참여연대에서 한 마디 하신 게 잊혀지지가 않는 거예요. 공동체 강의 마지막 시간에, 뜨개질 공동체 하시게 된 동기 이런 거 얘기하시다가, 이걸 하게 된 이유는,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서 한 게 뜨개질 공동체다.
제가 정말 그렇게 얘기했어요?? 내가 외로워 죽을 것 같아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에 무슨 큰 계기가 있으셨나? 대체 뭔 일이지? 생각이 갈 데까지 간 거죠.
친구가 필요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나에게도 친구가 필요하다... 이걸 인정하기까지는, 친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나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한번은 일을 하면서 카피문구를 하나 만들어야하는데, 도저히 아이디어가 생각이 안 나서 메신저에 있던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마음을 나누세요’라는 문구를 넣어보라는 거예요. 많이 좀 놀랐던 게, ‘마음을 나눈다’는 말이 외국어처럼 들려가지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지? 외국어나 그리스어 보는 느낌? 이어서 들었던 느낌은, 화가 났던 거 같애. 이런, 내가 이런 말도 이해를 못 하다니... 짜증? 화? 대체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무언지 모르겠다고 메신저에서 계속 짜증을 막 냈던 것 같아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보라고. 그러니까 나는..그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던 거예요. 내가 직접 ‘마음을 나눈다’는 그런 말을 할 줄을 모르니까. 그 일이 저한테는 지금껏 일해 오면서 가장 큰 사건이었어요. 마음을 나눈다는 그 여섯 글자를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아,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딘가 하나 구멍이 있구나...
어쨌든 여태껏 외국인들을 만나면서 연대 활동을 해 왔던 것도 어떻게 보면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거와 좀 다르나요?
제 활동 안에 사람이 없었어요. 이슈가 있었어요. 그래서 한 분야가 오래 안 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사회복지, 노인복지 하다가, 지금은 또 다른... 사람을 가운데 두지 않으니까 뭐가 자꾸 비어있는 것 같아서... 근데 좀 억울한 건 있어요.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음, 했었나?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을 가장 가운데에 놓아야 한다고. 내가 그런 말을 지나쳐버리거나 안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일을 해 오면서도 계속 공허한 느낌이 과연 뭘까... SK 광고처럼, 사람을 향하지 않아서 그런가? 제가 갖고 가는 콤플렉스 중의 하나는, 사람, 공감에 대한. 세상은 계속 소통과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는 하면 할수록 그 능력이 없는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밖으로 다니기는 참 열심히 다녔는데, 제가 스스로 갖고 있는 생각이, 난 참 뭔가를 할 때, 열심히 안 해... 그거에 대해 혼자 속으로 뜨끔뜨끔 하는 게 있어요. 예리한 사람은 눈치 채겠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가지고 있고.
……
2012 봄 <공동체 그 매력과 두려움> 6강, 뜨개질 공동체를 꿈꾸는 기지혜님의 발표 모습
제가 이러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그런 말을 했다는 게 진짜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인정이 안 돼요. 용납이 안 돼요. 혹시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딴 사람한테?
근데 오히려 제가 참여연대에서 만난 기지혜 샘은 그런 이미지인데?! 절제가 있으면서도 약간 그런 식으로 자기 마음이나 상태를 솔직하고 가볍게 툭툭 터는 이런 느낌이 있어서, 저는 그 얘기가 전혀 낯설게 안 느껴졌고, 마음 상태를 되게 재밌게 표현하신다 이 정도로 받아들였거든요.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라고 이렇게 재밌게 표현하시는 분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힘들게 하나요?
그렇죠.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을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사람들 속으로 쑥 들어갔다가 내 감정 털어내고 그러고선 또 쑥 빠지고 그러니까. 이런 거죠.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니?’ 제가 제 감정에 충실해서, 그래서 손해를 본다는 거예요. 남자들한테 많이 듣는 얘기가, 과하게 그러지 말아라, 감정을 그렇게 흘리지 말아라. 그런 감정을 숨겨라.
근데 자기 감정에 충실한 거는 되게 중요한 건데, 그쵸? 그런데 그런 사람 많지 않잖아요? 남한테 밉보이거나 남이 불편할까 신경 쓰느라고 자기 감정은 잘 안 들여다보게 되고...
저는 그 반대... 그래서 문제인 것 같아요. 남의 감정을 더 많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 남을 잘 못보는 것. 그리고 뒤늦게 아차차.
근데 마음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세요?
네.
그런 거 관련한 책도 막 사서 보실 것 같아요.
마음이나 심리 작용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요. 연구 과제로 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 걸 연구할 파트너를 찾고 있어요.
……
약간 인터뷰를 도망 다녔던 이유는, 저는 준비가 안 됐는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 은주씨를 만나면서 좀 알게 되네요. 아, 내가 숨기고 있는 얘기가 많구나... 그러니까 잊고 지내던 것들, 그냥 묻어두고 갔던 것들이 있구나... 밝고 희망적인 얘기를 하면 좋을 텐데.. 그래도 이게 우리 둘만의 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일종의 좋은 기운을 주는 게 좋잖아요. 너무 힘들고 살기 싫다 해서, ‘그래 그럼 우리 같이 다 물에 빠지자’ 할 수 없잖아요.
그때도 이런 식으로 한마디 던지신 거라고요!
제가 이런 식의 화법을 갖게 된 거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친구의 죽음이 너무 커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놓아버린 것도 있어요. 아냐, 변명일 수도 있어요. 친구의 죽음 얘기를 또 꺼내는 거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는 이유에 대한 변명을 찾는 것일 수도 있죠. 슬퍼지고 싶으니까 슬퍼질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2007년에 그 사건이 벌어져서, 그 사건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사는 거야.. 이런 명분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친구 죽음이 슬픈 거... 그것보다 더 큰 뭔가가 있다고는 생각을 해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고 있지 못하는 그런 뭔가 근본적인 사건이나 뭔가가 있을 텐데, 가장 가깝게는 2007년에 그 친구의 죽음으로 찾는 건데, 사실 그것보다 더 논리적으로 찾는다면... 2004년 2005년에도 내 인생에 대해 무책임하게, 나몰라라 하고 살았으니까 2007년 그 전에 그보다 큰 무엇이 있다 라는 거죠.
근데 그거보다 더 전에 사건이 있던 거죠.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해서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때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어요. 각 지역에서 중학교 때 상위권인 애들만 한 군데에 모여서 한 학년에 120명이 같이 살았던 거예요. 거기 가서 3월에 첫 번째로 봤던 수능 모의고사를, 그러니까 고1때 첫 수능을 망쳤어요. 2교시 수리영역 시간에 잤어요. 한 10번인가 까지 풀고 잤어요. 세상에 대한 원망이 거기서 나왔던 것 같은데, 원망이라고 나는 표현을 하는데, 또 다르게 표현을 하면 세상일에 대해 오로지 자기 자신이 온전히 져야 하는 책임감? 아무도 너를 챙겨주지 않는다, 그런 걸 거기서 배웠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지금도 종종 그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들이 시험 감독을 하잖아. 그럼 깨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깨우지 않고 놔뒀건 거야. 거기다 제가 자리 제일 끝에 앉아 있었는데, 그럼 선생님들이 가다가 툭 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배신감이나, 나를 케어 하지 않았다는, 거기서 엄청난 실망감이 왔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학교에 대한 존중감을 완전히 상실했어요. 학교가 학생으로부터 바라는 것에 대한 어떤 기대도 충족시켜주지 않았고, 저는 사실 이 얘기 처음 하는 거거든요. 저는 지금도 좀 놀라는 게, 그게 무의식적으로 크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모의고사 점수는 되게 안 좋게 나왔고, 내가 나 자신에게 기대할 수가 없어졌고. 나한테 실망을 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한 번 있었던 그 일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뭐였을까 하고 생각을 해요. 비록 그런 일은 이미 벌어졌긴 했지만, 그걸 다시 좋게 풀어갈 방법, 사실 좋다 라는 것도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일단은 거기서 마음에 굉장히 스크래치가 갔던 것 같아요.
그렇겠네요. 약간 버려졌다는 느낌 아니에요?
그렇죠. 시험 시간에 자고 있는데, 거기다가 그 학교가 시험 시간에 잘 수도 있다는 게 용인되는 그런 분위기의 학교도 아니었고. 심지어 수업 받다가 졸리면 수업내용 안 놓치려고, 졸지 않으려고, 자기 교과서 들고 뒤로 나가 서서 수업 듣고 하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학교가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점수가 중요했고, 모의고사를 보면 전국에서 우리학교가 몇 등을 했고, 전국 석차 상위권에 누가 들어갔고 그런 것을 수업시간에 공유하는, 어쨌든 입시 위주의 학교였는데, 그러면 지금 와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다들 대학을 잘 가기 위해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성취도를 살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걸 그렇게 방치를 해버리나...
약간 피해의식도 있으실 것 같아요. 내가 피해 받은 것에 대해서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채 그게 계속 왔다면...
점수도 점수인데, 내가 선생님이었어도 그랬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한편 어떤 선생님으로서는 쟤가 반항하나?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교대, 사대,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주어진다면, 아무리 학생이 괘씸하더라도 거기서 선생님이 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좀 더 괜찮은 선생님이라면, 그걸 염두에 두었다가 나중에 불러서, 니가 한 행동을 봐라, 하고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바탕에 깔린 그런 조언들이 들어가야 되는데, 일단 선생님이 시험시간에 엎드려 자는 제가 괘씸해서 그렇게 놔뒀다는 차후의 문제이고, 어찌 보면 무관심인 것 같아요.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일 수 있는 거고. 제가 그때부터 사람 한 명 한 명에 대한 관심보다, 사회 전체에 대한 문제, 인류에 대한 문제, 손에 잡히지 않는 큰 문제에 대해 집중했던 이유가, 인간 대 인간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뭔가 바랄 게 없다 라는 거를 그때 안 것 같아요. 인간관계라는 게 뭐지? 누가 누구를 챙기고 신경 쓴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그러면서 사회 문제들? 혼자만 짱돌을 들어서는 좀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큰 문제들에 오히려 집중해 들어가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맺는 관계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별로...
좀 공허하실 것 같으네요.
저희 기수가 굉장히 가장 경쟁률이 높았었고, 가장 지기 싫어하는 애들만 모였었고, 유별난 집단이어서 선생님들이 신경이 굉장히 곤두서 있었어요. 저희 1학년 때 선생님들하고 기싸움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저희를 한 명 한 명 살폈던 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모인 집합소. 지금도 고등학교 때 애들이 뭉치질 못해요. 굉장히 다들 트라우마가 있어서, 자기 안에 다들 상처가 있더라고요. 저는 이런 상처가 있는 거고, 다들 수능 점수도 굉장히 높고 대학도 잘 갔다고 생각을 하는데, 서로 안 만나요. 그때 선생님들을 회상을 해도, 선생님들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모였었고, 저도 그런 상태에서 갔었고, 사실 아쉬운 점이 많아요. 자습실 좌석을 등수로 가르고 공부시킬 생각만 했지, 어떻게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고, 어떻게 하면 애들이 자기 성취감 맛보면서 반가움과 기쁨과 해보겠다는 희망을 갖게 할까 그런 거 없이 굉장히 기계적으로 서로 채찍질 하면서만 지냈었고. 참 단순하고 기름칠이 없던 시절들 같다는 생각이에요. 다들 각자 나름 상처가 있어선지 저희 과 애들이 서로 잘 안 만나요. 그런 것들이 참 아쉬운데, 저는 그런 원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감을 쌓을 경험이 부족해서 그러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까 제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일단 첫 번째는 그렇게 상처 입은 마음을 어떻게 하면 달래고 회복을 시킬 수 있을까 그런 데 관심이 있고 연구도 하고 싶은 거고,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은 거고요. 그래서 정신적인 걸 다루는 교육이나 강좌를 듣고 다니는 걸 수도 있어요.
저도 그런 측면이 많았어요. 어떤 강좌를 듣든 자기 문제에 계속 파고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상처에 눈물 흘릴 시간을 조금 더 줄이고, 아니 뭐 눈물을 흘릴 시간이 충분히 흘리는 시간도 필요는 하니까, 그런데 그런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자꾸 증폭이 되고 쌓이면서 사람을 우울한 지경까지 갖고 가잖아요. 그 지경으로 계속 가니까 그 파장도 만만찮고, 주변 사람한테 바이러스 같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우울감이, 서로를 감싸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그런...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지, 서로가 서로를 발굴해주면서, 고고학자처럼. 야, 너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면서,
아~ 표현 제대로다~ ‘고고학자처럼’
좀 모종삽을 들고 파헤친다 할까? 야, 너한테 이런 게 있었어! 라고 알려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을 텐데, 각자의 동굴에 들어가서, 그렇게 축축하고 차가운 데서 있다가 어떤 사람 같은 경우는 그것에 압도돼서 파묻히기도 하고 숨을 멈추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 기어 나오기는 했는데, 그 스크래치와 그런 흙과 피범벅과 땀범벅을 되돌리는데, 그게 참 지난한 작업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세상에 왔으니까 좀, 서로가 좀 섬세하게 봐주면서, 야, 너에게 이런 게 있구나, 이런 걸 발견해주는 관계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제가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 ‘트러스트’ 연구인데. 신뢰. 기업의 조직도 그렇고 일상생활도 그렇고, 남아있는 게 결국엔, 사람을 살게 해주는 근본적인 씨앗이 바로 믿음인 것 같아요.
2012봄학기 <문명안으로> 종강 뒤풀이 자리에서
자기 문제라...
저는 꼬마 때부터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셔서, 꼬마 때부터 안에 악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아빠가 아무것도 안 드시고 소주만 드셨어요, 집에서 누워가지고. 그 꼴만 보다 보니까 정말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어떻게 어른이라는 게, 하나도 제대로 된 어른이 주변에 하나도 없고, 세상도 온전하지 못한 것 같고, 이 생각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해오다가, 결국엔 아버지는 술에 못 이겨서 돌아가셨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선생님들하고 맨날 싸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을 했었는데, 저는 뭔가 친구들을 대신해서 불의에 대항해 싸워야 했었어요. 정의의 사도가 돼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어요. 어떤 선생님이 학생에게 욕했다거나 때렸다는 소리가 들리면 당장 교무실에 가서 막 덤볐어요. 그 짓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때도 했어요. 대학 때는 수업을 날로 먹는 교수들 있으면 가서 따지고, 주로 어른들하고 많이 싸웠죠. 친척들하고도 싸웠죠. 지금은 제가 커서 알지만, 정말 한 치의 실수도 없고 바른 생활만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런데 내 눈에는 전부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고쳐야 하는 사람들이 전부였고, 친척 어른들도 다들, 뭔가 이상한 짓을 하면 가서 싸우는 거예요.
아빠는 술하고 싸우시고 딸은 사회의 불의와 싸우고?
되게 그래서 악에 받쳐서 살았어요. 지금은 많이 풀렸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악이 아니었어요. 사회 맞서서도 진짜 많이 싸웠죠. 평생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어쨌든 방향이 틀어졌죠.
사람들이 보면서 궁금해 했을 것 같아요. 저렇게 계속 싸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날까?
진짜 ‘원망’이었어요. 원망 덩어리. 나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하는 게 꼬마 때부터 머리에 각인이 돼서, 어른은 이렇게 해야 된다, 그런 의무감들이 막 생긴 거예요. 그래서 가령 가정 형편 어려운 애들 보면, 두 종류인 것 같아요. 아예 나가떨어져서 패배자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세상에 맞서 싸우는 것 같은데...
나의 존재와 싸우는 거죠. 내 존재를 걸고.
아빠가 망가졌다는 것이 곧 세상이 망가진 걸로 보이잖아요. 꼬마 때는 정말 싸움꾼이었어요.
아빠가 하루 종일 소주를 마셨던 얘기를 그렇게 웃으면서...
그런 악이 저한테도 에너지라고 생각을 해요. 그것을 충분히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제가 지금 일하는 단체 대표님도, 평화 운동을 국제적으로 많이 해 오신 분인데, 그분도 알고 보니까 어릴 때 아버님이 알코올 중독이셨대요. 그래서 이 분도 악이 많았더라고요. 아빠는 알코올 중독이고 엄마도 자기를 케어 하지 않고, 이런 상황이셨대요. 방황을 많이 했고, 이분도 이제 와서는 어딜 가서도 부모님 이야기를 잘 하시고, 자긴 어릴 때부터 세상이 지옥 같았다,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러시더라고요. 인간의 감정은 굉장히 말도 못하게 큰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분은 그 에너지를 자기가 평화 운동이나 이쪽으로 전환해서 쓰시는 거죠.
인간의 감정이 말도 못하게 큰 에너지다?
‘가장 큰 에너지’다. 그게 에너지의 원천이래요, 그 인간의 감정이. 그 어느 것과도 비할 수 없고, 그게 전부, 에너지의 원천.
마음이 삐뚤어진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삐뚤어지면... 손을 쓸 수 없는 건가? 하하. 마음이 한 번 삐뚤어지면 손을 쓸 수 없나?
전환을 하는 거죠. 저희 단체가 갈등 해결이나 회복적 서클 등을 하는 게, 폭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평화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훈련하고. 되게 어려운 작업인데, 체계적으로는 많이들 노력하고 있는 분야에요. 평화를 이야기할 때 당위적인 평화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내면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문화가 형성이 된다면, 언젠가는 곳곳에서 평화가 깃들지 않을까... 제가 그 말에 되게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되게 에너지가 큰 사람이고, 전에는 아, 난 너무 악에 받쳤어, 여기까지밖에 생각이 안 미쳤는데, 내가 되게 그만큼 에너지가 크고 강한 사람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에 대해서, 내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게 됐고, 내 에너지를 내가 사용하고 싶은 곳에 사용하고 싶은 만큼, 내가 나를 요리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까 되게, 앞으로의 삶이 좀 더 재밌어졌어요.
……
근데 힘이 진짜 대단하네요. 견뎌냈다니까.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네. 저는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살아내고야 마는 그 힘이 인간한테 가장 놀라운 힘인 것 같아요. 살아내는 것. 어떤 일이 있어도... 살면서 모멸감이나 모욕이나, 어디에도 댈 수 없는 부끄러움이나 온 몸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이나, 심지어 그게 얼마나 강했으면 꿈에서까지 나타나서, 꿈에서도 내가 현실에서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똑같이, 이를테면 자존심 상한다라든지 얼굴을 들 수 없다라든지 내가 왜 그랬을까라든지, 꿈에서까지 재생하는 그런 강렬한 에너지가 우리 몸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당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 아침 맞아서 산다는 게, 그게 저는 경이로운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가수나 아티스트는 망각이라는 걸로 노래를 하던데... 저는요, 엄청나게 강한 건 기억에서 지운다고 하잖아요. 자기가 지우려고 지우는 게 아닌데, 너무 끔찍해서 지우잖아요. 저는 고3때 제가 반장이었던 게 사실 실감이 안 나거든요. 애들이 저한테 모두 반장이었다고 알려줘요. 저한테는 고등학교 때가 되게 끔찍한 기억인데, 애들한테서 제가 고3때 반장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그때 인간이 가진 분노라든지 그런 내 속에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강렬한 건지 알았어요. 반장이었던 사실을 그걸 지워버리는 거잖아요. 그게 어떤 페인트보다 더 강할 수 있다는 거를 그때 동창회 가서 느낀 게 아직도 몸에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걸 연구해보고 싶다는 이유가, 저는 기억에 없는데, 예전에 드라마에서도 나왔는데, 나는 기억에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카이스트>였나? 까뮈의 <실종>을 봐도, 사람들이 다 나한테 이러이러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순되는 상황? 그걸 보면서, 나는 애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나를 놀린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고3 시절을 얼마나 지우고 싶었으면, 저는 그 시절을 뛰어넘고, 대학 장면으로 훌쩍 넘어 온 느낌이에요. 제가 그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의 에너지가...
현실도 거짓처럼 만들고, 거짓도 현실처럼 만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 있어서 어떨 때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는 거는, 내가 어떤 한 부분에 엄청난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요. 사랑이 그런 감정의 하나이기도 한 것 같아요. 굉장히 강렬한 감정이잖아요. 서로가 생각하는 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서로가 생각이 다르거나 어떤 접점이 찾아지지 않거나 어떤 지점이 만나지지 않을 때는 잘 들여다봐야 하는 게, 어떤 팩트나 정보나 자료가 아니고, 감정인 것 같아요. 어떤 감정과 어떤 감정이 치대고 있길래. 어떤 접점이 찾아지지 않고, 서로 정말 우린 너무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라고 할 때, 그때 필요한 작업이 감정 들여다보기인 것 같아요. 연인이 서로가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서로 말다툼을 하고, 어쩜 너는 이리 다를 수 있니 라고 생각하고, 그때 그거는 되게 강렬 감정에 휩싸여있기 때문에 못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잖아요. 어떤 미친 감정이라고, 사랑에 빠졌다는 거는. 또 누구는 사랑이란 감정을 분노의 감정이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죽이고 싶은 감정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사랑이 굉장히 고귀하고 상대를 감싸 안고 그런 거라기보다 빛과 그림자같은. 상대를 어떻게든 해치고 싶은 그 마음을 억누르는 게 상대를 끔찍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발현하는 거다....음..서로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뜨개질 하고 사는 게 편하게 사는 거인가요?
여름 강좌, 아, 저항의 노래요? 음... 살짝 피하고 있어요. 그동안 너무 저항하면서 살아서. 아하하하... 약간 느낌이, 농활과 빈활의 느낌이 나면서... 20대를 지나버린 사람한테서는 약간 식상한 주제... 제가 자신이 없어서 여름강좌는 좀 피해야겠다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강의 타이틀을 보는 순간. 살짝 음... 뭔가 건드린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콤플렉스 같단 생각도..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그러는데, 이렇게 살자고 권유를 하니까. 그러니까 이런 거죠. 그런 쪽의 세계에서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자기 삶을 만들어 가잖아요. 그럴 때 간혹 툭툭 건드려지는 게 있단 말이에요. 자기가 놓고 온 거라든지 외면하고 온 거라든지. 그런데 여전히 계속 그쪽에서 그런 얘기를 해가면서 그런 언어와 단어들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아 좀 이제 편하게 지내고 싶다, 그거거든요. 그런데 과연 편하게 산다는 게 뭔지 그것도 요새 많이 생각해보고 있는 것 중의 하나에요. 편하게 산다는 게 뭘까... 사람들이 말하는, 쉽게 살아라, 편하게 살아라... 뜨개질 하면서 사는 게 편하게 사는 건지... 과연 그래서 거기에 거리를 두면서 편해졌나, 이런 생각도 해요. 편하게 살겠다고 거기서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더 뭔가 그 커다란 힘에 승복하고 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편하게 살자고 그곳을 떠나 왔는데, 음... 큰 틀에서 봤더니 그것은 결국 편한 게 아니라 나를 더 옥죄고 있는 거지. 서서히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 일단 눈앞에서 그런 불편함 감정이라든지, 보면 용산 참사 같은 거 눈에 안 보이고, 문구나 찌라시 그런 거 안 보고 사니까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음... 세상은 내가 불편하다고 여겼던 그 판으로 프로그래밍이 계속 되고 있을지도요.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은 아니에요.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 문제에 분노해야 되고 반대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그 문제가 나한테 안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 어떻게 보면 상황에 따라서 그런 일이 이제는 안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 어떤 구석에서는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공부할 때요. 임상 사회복지 시간에 사회복지 개입 과정을 설계를 하면서, 그때도 제가 말을 툭 던지는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제가 다녔던 학교가 그런 걸 허용하는 학교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서구적인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너 되게 특이한 애였다고... 제가 첫 수업 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걸 기억을 해요. 근데 그게 또 쪽팔림으로 다가와서 기억을 하는 건데, 어떤 교통사고 당한 환자한테 개입을 하는데, 그 환자가 사고를 당함으로 해서 기존에 누려왔던 거나, 직장에도 못 나가고 하니까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데, 선생님이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이 사람에게 사회복지적인 개입을 우리가, 왜 해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왜 지역 사회라든지 주민들이라든지 옆집 이웃이라든지 사회복지사들은, 왜 신경을 쓰고 왜 케어를 해야 할까? 그 얘기를 했고, 또 사회복지사들은 왜 이것에 대해서, 또는 나라는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책을 세워야 할까? 왜라는 질문을 계속 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런데 제가 거기에 대고,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던졌음 좋았을 텐데, 제가 그게 나한테도, 우리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신경을 써야 되고 관련 정책을 만들어야 된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때 저한테, 그렇게 저차원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고차원적으로 사고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는 거예요. 그 선생님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 때의 제 답변이, 그런 생각이 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한테도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구호단체가 뭐 우리도 예전에 그랬기 때문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라는 이 논리 구조가 저는, 지루해 죽겠어요. 단순하고 너무 지루하고 그들이 우릴 도와줬으니 우리도 도와야 한다는 논리구조. 지겹지 않나...
용산을 바라보는 거는요?
저요? 저는요... 집 없는 세입자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용산 참사는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거를 직접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 촉발되는 무언가 있어야 하나요? 무어라도. 뭐 목소리를 낸다거나,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을 한다든가, 투쟁 기금을 계속 보낸다거나... 저도 안 하고 있어서.
그래서 <두개의 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50%는 저는 그런 건 있어요. 용산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내가 확실하게 잘 이해를 못하겠는데, 일단 친구들하고 온라인 쇼핑몰이나 그런 얘기를 하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또래들이 더 많고 그런 데 관심이 더 쏠려 있고, 그러다 보니 용산 문제를 곁가지로든 돌려서든 내가 하는 말 속에 예로 등장하는 게 더 빈번해지는데, 50 대 50으로, 용산 문제를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고 들어온 것도 있고요, 실제로 저의 성향 때문에. 용산 문제에서, 유족들이 시신 문제 때문에 사고가 난 건물 1층에서 분향소 만들고 계속 그랬잖아요. 저도 그래서 가보기도 하고, 거기 뒤에서 미디어 카페 같은 거 열렸을 때 무서워 죽겠는데 벌벌 떨면서 가보기도 했어요. 직접 눈으로 가서 봐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 사람들 표정이 어떤지 직접 가서 봐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얘기하기에는 제 의견이 좀 가벼운 것 같아요. 그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게 제 존재가 거기다 더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제가 거기 갔다 와서도 제가 뭘 나눠서 목소리를 내거나, 그런 거 한두 번 있기는 한데요, 페북이나 블로그에서... 그런데 그 문제가 어떤 그림자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빛이기도 하고... 음... 근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까 이야기하실 때, 처음에 참여연대에서 ‘저항의 노래’로 시작을 하셨다가, 거기서 약간의 콤플렉스로 얘기가 갔다가, 또 인제 운동에서 멀어지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하셨고, 그런 와중에 용산 문제가 자기한테 다가왔고, 거기서 그림자까지라고 이야기를 하신 거잖아요. 저도, 좀 마찬가지라서. 저도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운동에서 멀어지고 싶단 생각도 있고, 그렇지만 항상 좀 찝찝하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할 마땅한 것도 없고, 내가 시간을 들여서 할 그것도 사실 발견이 안 돼요. 내가 용산이 중요하니까 목소리라도 내야지! 라고 생각하고 중요하다고는 생각은 하지만, 사실 행동으로 안 옮겨진다는 거예요. 지금 다들 그런 상황인 건가, 싶은 거예요. 이건 사실 무기력이라고 얘기할 순 없는 것 같고, 나는 좀 편하게 살고 싶은 그런 욕구에 비춰서 얘기를 해보고 싶은 건데...
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산 문제,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아까 제가 이 얘길 두 번이나 했는데, 그 ‘중요하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사실 그게 한편으로는 굉장히 불편한 관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고, 어떤 점에 있어서는 내가 알겠다고 먼저 몸이 간 게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어떤 문제를 이야기를 할 때, 본인이 그 주제에 막 감동을 받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 감동을 끌어내질 못하잖아요. 대학원 때 알게 된 한 친구가 자기 지도교수 얘길 해 줬는데 그런 얘길 했어요. 어떤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그 논문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잖아요. 자기가 쓰는 논문이 제일 중요하고, 너 요즘 뭘 쓰냐 라고 물어오면, 어떤 면에서는 할 말이 하나도 없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밤을 새도 모자랄 정도로 그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그 지도교수가 제일 경계하라는 게 그런 거였어요. 니 주제에 니가 감동을 받아가지고 논문을 얘기하지 말라고. 뉴튼인가도 그런 얘길 했다잖아요. 만유인력이라든지 엄청난 법칙을 발견한 사람인데도, 내가 하는 학문은 바다 모래사장의 모래알이다. 뉴튼도 이렇게 얘기했는데, 니가 석사 과정 논문을 쓰면서, 그 주제에 니가 감동을 받아 얘기하는 순간, 그 감동과 핵심은 사라지고 만다. 어떤 사회 문제가 중요하다 당위성을 이야기할 때도, 사회 운동가들, 환경 운동가들이 빠지는 프레임이, 중요하니까 중요하다는 거거든요. 사실 시민들하고 소통이 안 되는 이유가, 시민들은 사실 벙 쪄 있거든요. 사실 무한도전에서 더 재미를 느끼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뭐가 오늘 할인 품목으로 떴고, 이번에 누가 해외 간다 하면 면세점에서 뭐 좀 사달라고 할까 그런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활동가들이 나서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부산 근처에 고리, 월성 원자력 발전소가 한번 후쿠시마 급으로 사고가 날 우려가 있다는 건데, 수명이 30년이 된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수명을 연장을 시켜서 가동을 하겠다 라는 비용 효율의 발상이 문제이거든요, 이것 때문에 지금 올해만도 원전이 가동을 멈추는 긴급 사고가 몇 번 있었는데 그걸 모두 은폐를 했잖아요.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면서, 고로 원자력 발전은 위험하다, 앞으로 하지 말자,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거죠. 굉장히 크리티컬한 이슈고 중요한 문제고 생명의 문제인데, 동시에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게 이런 것 같아요. 중요하니까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해버리는 순간, 사람들한테는 그게 어떤 공감이라든지 행동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든지, 하다못해 서명을 받는 것도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거잖아요. 인간이 이렇게 나의 이름을 적고 주소를 적는 게 사실 큰 일이잖아요. 자기 인적사항을 쓴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서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건데, 우리가 자꾸 쓰는 말이, 중요하니까 중요하다, 그러니까 당신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면 피곤하다는 거지요.
사회 이슈가, 뜬금없다는 거거든요.
우리 이런 사회 활동가들이 많이 하는 말이, 그러니까 우리가 잘 다뤄야 하는 감정 중의 하나가 뜬금없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맥락을 타는 일, 그리고 강요가 아니라 설득을 해서 동의를 구하는 일이 굉장히 지난한 작업이더라도, 그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후원을 하는 거고, 그게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빨리 이 사안을 알려가지고 빨리 사람들로 하여금 동참하게 하는 게 목표일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그 맥락에 동의를 구하기까지 그 절차가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길을 함께 걸어 갈 사람들이 필요한 거고, 그래서 연대 작업을 하는 것 같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면, 아까 편하게 살고 싶다 라는 감정 중의 하나가,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데 즉, 불편한데 이끌려서 가게 되는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가기는 가되, 나만의 명분 작업이 필요한 거야. 내가 내 마음으로서 준비가 안 되니까, 함께 몸은 있되 혼자 있거나 집에 있을 때 항상 끊임없이 명분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하고 내가 이걸 왜 해야 되고, 그래서 마음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다 보니까, 아까처럼,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니까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게 되고, 그러면서 남하고 소통할 여지는 더 줄어들고, 왜냐하면 내가 이거를 아무 생각 없이 하지 않았다는 거를 연막을 쳐야 하니까. 그래서 활동가들이 더 남들하고 얘기할 여지가, 자기 성 안에 굉장히 견고하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론을 모으는 게 굉장히 힘들고, 활동가와 활동가끼리 굉장히 말이 안 통하고. 그런데 사실 말이 굉장히 통하고 싶을 거예요. 통하고 싶을 텐데, 이를테면 아까도 이런 거였어요. 아까 편해지고 싶다, 그런데 과연 편하다는 게 뭘까, 사회문제에 핏대 올리는 일에 좀 거리를 두면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이 자기를 옥죄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하면서 용산 문제가 왔는데, 거기서 어떤 쪽팔림이 있었냐면, 전 용산 문제, 잘 모르겠어요. 음... 그 일에 대해서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들려오는 말들과 신문 기사와 영화, 폐허가 된 용산 거리에서 내가 본 것들..뭔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 그게 나한테 어떤 것인지. 결국 개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그것보다 주말에 애기랑 안 놀아주는 소파에 늘어진 신랑 문제가 나한테는 더 큰 문제다, 그게 나한테는 용산 문제다’, 이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다들 노력을 하잖아요. 그게 좀 단절된 느낌이 들면서, 어떤 방법으로 공유할 방식이 있나...
저는 그게 그래서 왜 막힐까, 왜 그러할까... 그런 분석 작업도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대중과 더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그 연구 작업도 필요한데, 동시에 왜 설득이 잘 안 될까 그것도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문제 이전에 그것도 좀 아리송해요. 왜 사람들이 모두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그것도 퀘스천인데, 예전엔 내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회 문제가 너무 많은 거예요. 여성, 인권, 환경... 아, 이걸 언제 다 하지? 대체 세상은 왜 문제가 이렇게 많은 거야? 헥헥대다가, 그런데, 운동을 이걸 왜 다하고 있지? 직업 운동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깔끔하게, 당사자, 당장 자기 삶의 급선무이기 때문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보니 운동가가 된 거지 직업 운동가, 자기는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되는가?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문제가 더 원활하게 풀리는 건 맞아요. 여론이 형성되면서...
용산 문제나 이라크 문제를 얘기하기가 낯 뜨겁고, 제가 아까 얘기가 잘 나가다가 용산 문제 얘기가 나왔을 때 ‘헉’ 한 거는, 음... 아까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래요. 당사자가 아니고, 그게 쉽게 말하면, 끼워 맞추려면 어디까지 끼워 맞출 수 있냐면, 내가 사는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것도 좀 억지스러운 게, 나는 건물 세입자로 살아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돌아서 맞춰보면 저도 지금 월세를 내고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점에서는 만나요. 그래서 그거를 스무스하게 연결시켜주는 작업을 하는 사회 활동가나 운동가가 있다면, 또는 교사가 있다면 가족이 있다면 친구가 있다면, 그런 작업들이 용산 문제가 이렇게까지 큰 문제라든지, 나 용산 문제 몰라, 이렇게까지 안 갈 것 같아요. 근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연결을 지을 수 있는 지점이 사회 곳곳에 있거나 내 삶의 곳곳에 있다면 이게 이렇게 뜬금없이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아요. 남자친구와 싸우는 문제가, 물론 운동 하는 친구들도 때로는 그 문제 가지고 다툼을 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부부싸움이나 연인 간의 싸움이 뭐 아프가니스탄 문제나 이라크 전쟁 그런 걸로 싸우지 않잖아요. 굉장히 서로의 감정에서 사소한 문제로 싸우는 거잖아. 근데 저는 사회문제도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해? 그 질문은... 이 질문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여성 문제, 아동, 이주노동자 문제 이런 문제들 있잖아요. 아까 중요한 말이, 당사자, 이게 내 문제나 아니냐, 그 문제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맞다고 보고, 그래서 여성 운동에서 나온 말이, 개인적인 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다라고 하잖아요. 아까 은주 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로 있다는 거 그거는 개인 가정사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거 사회 의제화 돼요.
물론 그렇죠. 그래서 소파에 누워 자는 신랑이 걱정인 저희 언니에게도 여성주의를 얘기할 여지가 충분히 많죠.
그런데 왜 사회 운동이 왜 폭발력을 갖지 못하는가? 왜 사람들을 더 설득하지 못하는가? 왜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나, 그 부분을 생각하자면, 그 일을 결국 개인화시키지 못하면 폭발력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촛불이 광우병으로 나왔던 이유는 그걸 사람들이 개인화시켰기 때문에 나온 거잖아요. <모욕 사회>라는 그 강의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모욕이라는 그것에 대해서 개인화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직장 다 끝나고 나서도, 월요일이었나요? 피곤할 텐데도 다들 나왔잖아요. 강좌의 기획의도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여기까지. 그러니까, 그녀는 ‘기지혜’.
은주님, 참으로 열심히 쓰셨습니다. 담에 만나면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께요^^
두분의 생생토크, 신나고 즐겁네요^^
오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후루룩~ 읽어 내렸음!!
기지혜님 진짜 재밌는 양반인듯^^
인터뷰어나 뷰이나 모두 솔직담백진중한 이야기 잘 읽었어요.
두분이 아주 찐한 대화를 하셨군요. 음미해볼 이야기...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참 멋있다.^^
감사합니다. ^^
인터뷰를 할 때도 그렇지만, 더욱이 인터뷰글을 쓰고 나서 보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
그리고 함께 거울 앞에 서보는 작업!
잘 읽어 보았습니다 ^^
두분의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가 잘 보입니다.
행복한 가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