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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강좌... 몇가지 생각
박찬승선생님 강의 흥미롭게 잘 듣고 있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줄 정리해봤어요.
* 전체적인 소감
- 임시정부 활동에 대해 별의미를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을 거다. 나 또한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처럼 국내에서 활동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3.1운동 이후 임시정부, 그리고 해방까지의 임정활동에 대해 개관해본 것은 의미있고 귀한 시간이었다.
* 새롭게 알게 된 것
- 임시정부 수립안이 한성정부안, 상해에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동시에 이뤄지면서 서로 조율해갔다는 것
- 임시정부에 보낸 독립운동자금의 최대분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갔던 조선인들이었다는 것
* 새로 생긴 질문
- 임시정부 임시헌장 주요내용에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내부의 이견, 토론과정, 이 조항의 변화과정은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왜냐 하면, 조선왕실에 대한 입장은 양반귀족출신과 중인, 천민출신이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이 입장차이가 내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같다. 실제로 갑오농민전쟁과 농민의병에 대한 조선 사대부들의 입장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한성정부안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체는 민주제, 정체는 대의제, 국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 로 되어 있는데, 당시 임정 요인들이 이해하고 희망했던 민주제, 대의제, 그리고 공화제는 어떤 것이었을까?
- 집정관총재 대신 대통령 직함을 사용하겠다는 이승만에 대해 안창호, 신채호 등이 헌법위반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등 갈등이 심했는데도, 이승만의 독단적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와이에서의 독립운동자금이 가장 큰 이유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 상해와 미국의 공간적 거리는 상당히 멀다. 이때의 의사소통 방식은?
- 상해라는 공간의 당시의 역사적 성격은?
- 이동휘의 레닌자금사건 후, 조선공산당이 1925년 결성되면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진영간의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임정은 민족주의세력으로만 이뤄졌는지, 사회주의세력은 탈퇴하고 따로 활동한 것인가.
* 강좌진행에 대한 의견
- 대단히 많은 역사에 대한 정보를 강의시간에 강사의 전달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쉽다. 역사교과서는 아주 최소한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기본 텍스트가 되는 참고도서를 읽고 오거나, 강사의 강의안을 1주일 전에 받아가서 읽고 오면, 강사가 내용 전달에 급급하기 보다는, 전문강사와 좀더 심도있는 질문과 토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분야 최고의 강사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에 강의만 듣고 있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습니다.
물론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강의시간에 듣고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참여자들도 있을테니, 제 의견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가진 분들이 꽤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강의가 끝나고 원하는 분들이 30분 이상 강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시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강의후기 잘~~~~ 읽었습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에 관해 새롭게 공부한 시간이었고 그 의미들이 새론 질문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임정시절부터 걷돌던 이승만이 어떤 이유로 초대대통령이 되었는지 궁금하고 아쉽고...
강의안을 한주 미리 배부하는 것에 찬성 한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