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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공부했던 엄윤섭씨, 삼가 조의를 표하며
슬픈 소식입니다.
엄윤섭씨.
2009년 3월,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문을 열고나서
주로 역사, 문학 등 인문학 공부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분.
어느날 강좌에서 우연히
자신의 중학교시절 선생님을 같은 참여자로 만나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분.
특히
남자분들이 소수로 참여하는 셰익스피어, 그리스비극, 영국문학 읽기 수업에서
신선한 질문을 하며 분위기를 이끌어주셨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몇년전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피해자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주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관련기사 링크
민노당 후보로 총선 나선뒤 감시받아 정부가 잘못 인정 안해 ‘고통의 나날’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이 있습니다.
며칠 전
이번 가을학기 10월말에 개강하는 <문학으로 읽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 수강신청을 하시며
아래와 같이 메시지까지 남기셨지요.
"한동안 힘들고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다가
희망 찾아 떠나는 길에 문학이라는 벗이 생각나서
느티나무 강좌 보니까 마침 듣고 싶은 강좌가 눈에 띄어서
강좌 신청 했습니다.
강좌 때 뵈요...^^*
다들 홧팅!!!"
마음안에 얼마나 갈등이 많으셨을까
그 고통에 아무 힘도 되지 못했던 것 또한 마음아프네요.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함께 공부했던 느티나무 강좌 참가자 여러분,
덧글로 조의를 표하시면 어떨까요.
아카데미 강좌에서 만나뵌적은 없지만, 참여연대 1층 사무공간이 카페통인으로 단장될 당시에 재능을 기꺼이 나눠 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도 카페통인의 공간을 가득채워주는 음악이 선생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수제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엄윤섭씨 영전에.
세상을 뜨기 불과 며칠전,
가을학기 <남미문학>을 신청하고 위의 메시지까지 남기신 걸 보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느티나무에서 함께 공부하는 분들,
모두가 자신의 삶과 이 사회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노력을 하는 분들이죠.
그 삶에는 각자의 무늬와 기쁨과 어려움이 있을테구요.
엄윤섭씨도 그런 분 중의 한분이었죠.
사찰의 경험에 대해 뒷풀이자리에서 잠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심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당사자와 마주했을 때 그 사람에 대해 깊이 헤아리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조문을 못한 것도 죄송합니다.
느티나무에 참여하는 분들께 더욱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대신하겠습니다...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엄윤섭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한겨레 신문의 박현철 기자 관련 보도 기사를 검색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유알림판에 8편의 글을 남기셨으니 고인의 글을 검색해 보시면서
그 분의 명복을 빌어 주시길 간청해 봅니다.
선생님의 죽음 앞에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도 참여연대 아카데미에서는 항상 웃으시며
밝은 모습 보여주셨는데 참 가슴이 먹먹합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이럴 수가 없다. 세상일은 늘 이모양이다. 알고나면 너무 늦다. 전화번호를 줬건만 엄윤섭이 한번도 전화하지 않아서 좀 머쓱했던가. 아니 섭섭했던가. 그가 민간인 사찰을 받았고 그 때문에 괴로와했으며 휴대폰에 입력해둔 번호를 전부 지웠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혀 모를 수 없을 일을 전혀 몰랐던 나의 무관심과 무신경이 ....무참하고 참혹하다.
지금 가장 크게 떠오르는 건 엄윤섭의 귀여운 주근깨다. 주근깨 때문에 더 총명해보이는 소년이었다. 맨앞자리에 앉아 새로 부임한 국어선생인 나를 또랑또랑하게 올려다봤었다. 눈이 동그랗고 수줍음이 많고 공부를 썩 잘했던 까까머리 소년, 그 엄윤섭을 참여연대 느티나무 우크렐레 반에서 근 30년만에 다시 만났었다. 그새 어른이 되고 슬쩍 머리까지 벗겨진 그를 나는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엄윤섭>이라고 가슴에 붙인 명찰을 보자말자 30년이란 시간이 착착 접히면서 얼굴에 까만딱지가 잔뜩 앉은, 수줍게 생글생글 웃던 귀여운 중학생의 얼굴이 떠올랐었다. 마흔 중반이던 엄윤섭의 얼굴위로 어린 중학생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 신기하고 통쾌해서 나는 그날 엄윤섭을 잡고 무척 웃어댔다. 엄윤섭도 똑같이 많이 아주 많이 웃었던 것같다. 그런 그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아무튼 우린 참 사나운 시절을 견디고 있다. 내 주변엔 어찌 이리도 높은데서 아래로 추락하면서 세상을 하직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이냐!!오죽 힘들었으면, 오죽 세상이 무섭고 숨이 막혔으면 , 오죽 출구가 보이지 않았으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게다가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남아있는 이는 정말로 아무 할 말이 없다. 유구무언이다. 무슨 말을 하든 다 의미없는 소음일 뿐이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건 최근 만난 엄윤섭이 아니라 얼굴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붙은, 눈을 동그랗게 뜬 중학생 엄윤섭의 얼굴 뿐이다. 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드는 얼굴, 손을 내밀어 까까머리를 쓰다듬고 싶게 만드는 얼굴...지금 내가 할 일이 그 사랑스런 소년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란 말이냐!! 기가 막힌 일을 한두번 겪은 것도 아니건만 이건 도무지 면역도 생기지 않는다..... 답답하고 울적한 세상이구나. 미안하고 면목없다....잘가라 엄윤섭. 여기서 고생많았으니 거기서는 부디 편하게!!! 다 잊고 우주속으로 잘 스며들거라. 아무 한도 남기지 말고 투명하게 깨끗하게 창공 속에 흩어지거라!!!!!!
글을 읽다보니 30여년만의 만남자리에 저도 있었네요. 그분의 정겨운 사투리가 기억나 더욱 맘이 아픕니다.
오죽 했으면 그 힘든길을 선택했을까 생각하니 ...
마음만 먹먹합니다.
사찰없는 그곳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