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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4강 이것이 궁금합니다.
4강은 [고려, 전쟁과 귀족의 시대]로 김인호 광운대 교수님께서 강좌를 진행해 주십니다.
4강 강의 때 다뤄주셨으면 하는 부분은 이 글 아래 댓글을 달아주세요.
김인호 교수님께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역사 교과서 3강 질의 응답 시간에 다하지 못했던 질문에
전덕재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답변 입니다.
Q. 백제와 왜의 관계에 대한 연역과 발전을 설명해 주세요.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 멸망 이후 왜가 백제부흥에 군을 두기 위해 파병하였다는데?)
A. 백제가 멸망한 뒤에 백제유민들이 상당히 왜로 이주하였습니다. 이것은 백제와 왜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백제인이 왜의 조정에 나아가 관리로 지내기도 하고, 왜인이 백제의 관리로 활동한 기록이 일본서기 등에 보이고 있습니다.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멸망하자, 왜는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여 구주지역에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백제부흥세력을 돕기 위하여 663년에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백강(금강)하구에서 당군에 의하여 격파됩니다. 이것이 바로 백강전투입니다. 그 이후로 백제부흥운동은 거의 종식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왜와의 연합을 모색하였고, 가야를 매개로 하여 두나라가 외교관계를 맺은 367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369년에 칠지도를 만들어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후 두 나라는 고구려의 남진에 공동으로 대처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그 결과 백제 멸망 이후 왜가 군대를 파견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Q. 석굴암 건축 기술을 신라는 동로마 제국에서 직수입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751년 이전에 인도나 중국에는 돔지붕의 건축물이 없다고 합니다.)
A. 두번 째 질문은 제가 그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답변을 드리리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칠지도에 대해 일본과의 견해 차이가 있는데 우리가 준 하사품이라면 그 근거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