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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번째┃그 뜨거웠던 한 달
느티나무 백인보 스물세 번째 - 김주호
그 뜨거웠던 한 달
실로 오랜만에 백인보를 쓴다. 더군다나 20대 남자와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그동안 주로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을 상대해 와서 그런지 이번에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즉, 나보다 인생을 많이 산 분들을 만날 때는 한 수 배워야지 했었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인터뷰이를 만난다하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하며 눈을 지그시 아래로 깔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일정 정도 보수화 성향을 내포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뭐 그런 꼰대 차원의 문제도 아니고 그저 내가 찌질한 탓이다.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평등의 사상은 내 안에서 대체 언제쯤 구체화 되려나... 나이는 불혹이건만 늙기만 늙고, 수신하고 제가하여 치국에 힘쓰고 천하를 평화롭게 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태세다. 수신(修身)만으로도 모자라는 내 짧은 인생에서 귀한(?) 시간을 내어 스물세 번째 백인보 주인공을 만나러 간다.
@김주호
바야흐로 선거철입니다요
안철수의 사퇴로 빅 이슈가 없어진 선거판에 별 재미를 못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선거철이라고 해서 대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대학가도 한창 선거철이란다.
부정과 경품으로 물든 총학생회 선거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표 팔아 경품 받겠다고 길게 선 줄을 보니
내가 대학생이라는 게 부끄럽다.
이러려고 다들 피터지게 공부해서
비싼 돈 내고 부모님 등골 빼먹고 있었구나
오늘, 프로필에서 학력란 뺀다.
이렇게 써 넣고 보니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문구는 이번 인터뷰 주인공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이다. 그의 프로필을 살펴보니, ‘김주호/ 1985년 생/ 서울 출신/ 서울 거주/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에서 10기 인턴으로 근무했음/’이 전부다. 진짜로 학력란을 빼버렸다, 이 친구. 만나서 물어봐야 할 게 많군.
“1-2학년 때는 저도 과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군대 갔다 와서는 공부도 해야 해서, 이번 선거에는 제 후배들이 나갔죠. 문제는 후보가 양쪽으로 갈려 경쟁구도가 되었을 때는 경품을 주며 투표율을 높이는 게 아무 문제도 안 되는데, 이번처럼 후보가 하나 밖에 없는 경우는 좀 다르다고 봐요. 게다가 원래는 후보가 두 진영, 운동권과 비운동권 양쪽에서 나왔었는데 운동권 후보를 후보등록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등록 거부해놓고는, 이제 와서 투표율을 높이겠다고 학교에서 저러니...”
실제로 내야하는 서류를 다 갖추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의심하고 억울해하는 데는 사연이 좀 있었다. 이번에 탈락한 그 후배는 지난번 선거에서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했다. 런닝메이트를 이뤄서 함께 출마했던 이가 갑작스럽게 사퇴를 해버리는 바람에 선거에 나가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후배가 특정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사실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헉, 여기 대학 맞아? 니들이 진짜 정치를 하긴 하나부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에서도 비운동권 학생회가 당선되게 된 거죠, 작년처럼. 게다가 이젠 시쳇말로 ‘비권’이 아니라 거의 ‘반권(반운동권)’ 수준으로 가더라구요. 그들이 낸 공약을 봤는데 제일 첫 공약이 ‘저희는 정치하지 않겠습니다.’였어요.”
기존의 정치판을 보다보면 주먹을 쥐며 비분강개할 일이 태반이지만 때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을 때도 많다. 그리고 그렇게 웃는 웃음은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20대 청년들이 내걸었다는 선거공약을 듣고 있자니 또 다시 건강에 무지 해로운 웃음이 온몸 가득 넘쳐흐른다. 정치는 하지 않겠다.... 이건 또 뭔가요?
“운동권 총학생회처럼 밖으로 나돌며 정치적인 사안에 관여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거죠.” 그럼, 대학 사회 내부에는 정치적인 일들이 전혀 없다는 얘긴가요?
“학내 복지문제 같은 거에만 신경 쓰겠다는 거겠죠.” 어허, ‘복지’ 문제야말로 현 정치상황에서 최대의 이슈인데 대체 뭔 말씀을. 수신에만 신경 써도 벅찬 이 인생에게 이분들이 또 나라의 미래까지 걱정하게 만드시네요.
“올해 같은 경우는 총선에 대선까지 있는데, 그런 해 같으면 대학생들이 좀 더 사회와 결부된 이슈를 만들어 내거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하는데 그런 게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죠.”
대학생 중심의 정치변혁을 꿈꾸던 시대는 지났다. 과거 우리나라의 사회운동이 대학생 중심의 엘리트운동이었다는 사실은, 그 안에 많은 공과 함께 또 다시 많은 과를 안고 있기도 하다고 느티나무 강의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김동춘 선생님의 말씀으로 기억됨).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사까지 들먹여가며 오늘날 대학생의 사회인식의 문제를 논할 깜냥이 내겐 없다. 88만원 세대니 청춘이라서 아프다니, 어쩌구 저쩌구 할 말도 많고 욕도 많이 먹고 있는 20대이지만,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반값등록금 문제만은 공약으로 나왔어야 하지 않나, 대학 내 문제가 뭐 등록금 하나인건 아니지만, 그것이야말로 대학생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니 그거 하나만은 니들이 당사자운동 차원에서 나서야지, 니들이 안 나서면 누가 하겠냐... ‘정치 안 하겠다’는 대학생들의 황당무계한 고백 앞에서 과거 반값등록금 1인 시위를 딱 한번 한 적 있는 꼰대의 속마음은 이랬다.
“반값등록금 문제만 해도 개개의 대학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더 큰 차원에서의 연대가 필요한데, 사실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한대련이 해 왔었는데 이번 통진당 사태를 겪으면서 한대련 이미지가 한층 더 나빠진 것도 사실이에요. 주위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그래도 이정희를 찍어야 한다는 애들도 있고 노동자후보로 나온 김순자 후보를 거론하는 애들도 있고... 근데 사실 전 대통령 선거 한번으로 나라가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시민운동에 뜻을 두고 있는 거죠. 어차피 변화는 서서히 오는 거니까...”
요즘 20대들 개념 없다고 사람들은 욕한다. 하지만 우리 20대가 이렇게 사는 건 다 니들 기성세대가 이런 개뼈다귀 같은 세상을 만들어 놔서라고, 그들이 맞짱을 뜬다. 너무 어렵게 꼬여서 설명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히든카드로 낼 수 있는 필살기가 있다. ‘구조의 문제’, 이렇게 말하면 웬만한 게임은 그 자리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지겹다. 구조는 쉽게 깨질 수 없는 속성 때문에 ‘구조’인 것이니, 어쩌구 저쩌구... 여기까지 생각이 나아가면 머릿속은 어느새 전쟁 통이다.
“20대가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죠. 지금의 문제가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제가 보기에 요즘 대학생들은 구조의 문제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노력으로 이 악조건들을 뛰어넘으려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자기 안에 고민이 없는 것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들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고나 할까요. 사실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 공간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할 수 없는 건 나중에 기업에 취업할 때 그런 것들이 혹시라도 감점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거든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결국 ‘체제가 승리한 것이다’이란 한탄 섞인 말도 하더라구요.”
목구멍을 움켜쥐고 있는 자본주의체제의 승리다. 거기다 개인마저 사찰하는 정부까지 맞닥뜨리면, 체제의 전복까진 아니더라도 체제를 느슨히 하고 유연하게 만들려는 노력들은 산산 조각나기 일쑤. 문득 얼마 전 읽은 슬라보예 지젝의 말이 생각났다. ‘시차적 관점’란 저서에서 지젝은 모든 고체를 대기 중에 녹여 버리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강조하며 원래는 공산주의 운동의 전유물이었던 ‘영구혁명’이란 개념을 자본주의 앞에 갖다 바친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모든 저항마저도 자본 안으로 녹여 기어이 상품으로 만들고야마는 자본주이야 말로 ‘영구혁명’의 당당한 주인이라고. 혁명과 저항의 상징인 체게바라마저 온갖 상품으로 재탄생되는 세상이 아니던가. ‘체제전복’이 ‘상품’이 되는 체제, ‘영구적인 자기혁명’을 거듭하고 있는 자본, 이 안에서 과연 ‘수신’은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지금 남 욕할 처지가 아니다.
“2001년 이후 저희 학교에서는 운동권 학생회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전에 있었던 운동권 학생회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시라는 생각도 들어요. 대학생들의 낮은 정치의식을 비판하기 이전에 학생운동권 차원에서 왜 대학생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됐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자기반성이 먼저 있어야겠죠.”
역사를 공부하며
이제 딴 얘기하죠. 정치는 정말로 어렵네요. 근데 전공이 사학과? 재밌겠다^^
“대부분 2학년이 돼서야 전공을 정하는데, 전 입학하기 전부터 사학과를 정해놓고 들어갔어요. 어렸을 적부터 그냥 역사가 좋았어요. 역사책을 들고 살다시피 했고 여기저기 다니기도 많이 했죠. 책을 보다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 싶은 곳을 발견하면 어떻게든 부모님을 졸라서 기필코 가보았죠. 한국은 진짜 안 다닌 데가 없을 정도로 다 가본 것 같아요. 일 년에 4번 정도는 전국을 돌며 가족여행을 했었어요. 지금도 사학과다 보니 학기별로 답사도 많이 다니죠.”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태백산이요. 태백산 정상에 올라서면 산들이 쭉 늘어선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요. 도시의 산들 정상에 서면 야경 밖에 안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힘껏 뻗어있는 산맥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다 뻥 뚫려요. 석굴암도 무척 좋았어요. 한 서너 번 갔었는데, 한번은 반나절 정도 그 앞에 서 있던 적도 있어요.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장엄함? 그런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그도 석굴암 앞을 막아선 그 거대한 유리벽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단다. 이상하다, 그 안에 불전함 있던데. 돈 내고 절한다고 하면 들여보내 주는 거 아닐까. 으이구 이 의심병. 역사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 같은 거 없어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거...
“역사적 감수성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이 순간이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가끔 부모님에게 묻곤 해요. 87년 민주항쟁 때 무엇을 하셨는지, 5.18 민주화운동 때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지. 근데 제 부모님들은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으셨는지 별 말씀을 안 해 주시더라구요. 전 제 아이가 생기면 제가 겪었던 시대의 일들을 재밌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내가 사는 지금도 언젠가 ‘역사’가 된다. 유한한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내가 살았던 시대만큼은, 자신의 시대를 눈으로 적고 입으로 옮기는 역사가가 되어 다음 세대에게 생생히 전해주고 욕심, 그런 사명감이 그에겐 있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였어요. 시장 선거 이후에 총선이 있을 예정이었고 또 그 다음을 이어 대선도 있고, 연달아 세 번의 큰 선거가 있는 때라 처음 시장선거 때부터 밀리면 그 다음 선거들도 어려워지겠다는 생각,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들더군요.”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한창 공부 중이던 그는 제 발로 박원순 선거캠프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훗날, 그의 아이가 커서 그에게 2011년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해줄 이야기가 참으로 많은, 행복한 아빠가 될 것이다.
@김주호
변화
세상에 대해 원래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어요? 공부만 하기도 바쁜 20대잖아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타입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성적은 더 떨어져 바닥을 치게 되었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게다가 학교가 분당에 있어서 그런지 학부형들이 치맛바람 일으키며 아이들을 이렇게 저렇게 패를 짓게 만드는 것도 맘에 안 들었어요.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사람대접 받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모두 루저 취급하는 것도 싫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아이들을 배려해 주지 않는 세상이었죠.”
쉽게 말해 제도권 교육의 줄 세우기식 공부에 대한 반감이었을 것이다. 썩 훌륭하지 않은 성적도 세상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을 테고 더군다나 한참 민감한 사춘기까지 겹쳤으니 쓰리고에 양박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어야 오히려 세상의 균형은 바로 서는 법.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안에도 진실은 깃든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꽃동네에 갔어요. 거기서 5살 난 여자아이를 만났는데... 아직까지도 이름이 기억나네요, 오보름. 진짜 천사처럼 예쁜 아이였어요. 목 밑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아이라 밥 먹일 땐 의자에 묶어 몸을 고정시켜야 했는데 그래도 자꾸 앞으로 넘어지는 거예요.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자꾸 기침하며 토해내고...”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음에도 그는 그날 펑펑 울고야 말았다. 그 만남 이후 4년 동안 그는 충북 음성에 위치한 그곳을 버스를 타고 혼자 다녔다. 어떨 때는 삼사일씩 머무르며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았다. 줄곧 곧은 선만을 그려가던 그의 인생길이 확 비틀어진 날이라고, 그는 그날을 그렇게 기억한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하나 이상씩의 장애를 가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과 함께 하며 좋은 사람들도 무척 많이 만났어요. 학교에서 보는 내 친구들, 좋은 부모 만나서 많은 것을 누리며 서로를 밟고 올라서겠다고 진흙탕 싸움을 멈추지 않는 친구들 하고는 참 다른 사람들이죠. 물론 그런 학교친구들 모두 지금 소위 잘나가는 사람이 돼 있죠. 의대 가고 법대 다니고...”
세상에 대한 미움과 반감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가슴은 보름이를 만나고 난후 다시 죄책감과 부채감으로 물들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애초에 내 것이 맞나... 가난과 부가 혼재해 있는 이 세상을 감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학 갈 때부터 기업에 취직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일을 겪으며 그런 생각이 더 굳건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 이유에서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구요, 기회만 된다면 참여연대에서 일해 보고도 싶어요.”
어떻게 내가 힘 좀 써볼까?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총각 꼭 참여연대에서 일하게 하고 싶네 그려. 누가 좀 도와주세요. ^^
간혹 변호 일도 하는 의경출신의 시민운동가
으응? 한 때 사법고시 공부도 했었다고? 왜?
“말하자면 긴데, 제가 예전에 학교에서 학생회할 때 후배 녀석들에게 집회 가자고 말하기가 부담스럽더라구요. 잘못하면 연행될 수도 있고 또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그걸 제가 모두 책임져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법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하, 변호사가 돼서 그들을 변호해 주려고 사시를...?
“네, 그러면 후배들한테 떳떳이 너네들 집회 나가서 잘못되면 내가 변호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회 나가라고 말 할 수 있잖아요.”
참, 속이 깊은 선배구나, 주호씨는... 근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후배들을 집회에 나가게 하려던 분이 일부러 의경에 지원해서 갔다구요?
“1-2학년 때 집회 나가서 의경들을 마주하면 쟤네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기 서 있을까 그게 너무 궁금했어요.”
자꾸 웃음이 난다. 궁금하면 바로 손과 발이 움직이는 세 살 또래의 아이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의경이 되어서 그분들 생각을 알아냈나요?
“걔네들도 똑같더라구요. 아무 생각 없이 거기 서 있는 거예요. 거창하게 무슨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아니고 저 빨갱이들을 모조리 잡아버려야지 하는 적의나 사명감 같은 걸 갖고 있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그저 피곤하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고, 내가 왜 저 사람들이랑 여기서 싸우고 있어야 되나... 뭐 그런 거죠.”
그래도 한때는 맞서는 자로, 또 한때는 그들을 막는 자로 서 있던 극단적 경험을 한 건데, 기분이 묘했겠어요.
“실제로 의경이 되어 집회 현장에 나갔을 때 집회 행렬 가운데 있는 선배, 후배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재밌었다구요?
“네, 재밌던데요. 그렇게라도 거기서 만나니까 되게 반갑기도 하구요.”
영화나 소설을 보면 이런 주인공들은 대체로 분열감 내지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던데, 주호씨는 재밌었구나. 역쉬 현실은 영화가 아냐 ㅋㅋㅋ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참여 현장사진 2012.12.03
느티나무에 놀러 오세요
참여연대 인턴에 지원하려고 들어왔던 홈피에서 느티나무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고 후다닥 지원했던 그. 그런 그를 지난 봄학기 종강파티에서 처음 봤다.
ㅎㅎ 그날 우리 서로 좀 정신이 없었죠... 그동안 강의는 많이 들었나요?
“진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랑 세계경제위기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이렇게 세 개 들었어요.” 뭐가 제일 재밌었어요?
“유쾌한 꼼지락이요!”
그럼 그렇지... 그 강의야말로 주호씨에게 딱 이지. 왜냐고? 이해를 돕고자 느티나무 홈피에 실린 ‘유쾌한 꼼지락’ 강의의 안내 멘트를 덧붙인다.
이 워크숍은 여러 차례 집회에 참여하면서도 뭔가 다 차려진 밥상을 앉아서 받는 것 같은 수동적 느낌이 불편했던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더욱 풍성한 밥상을 차려보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와 행동을 나서서 표현해본 적 없고 엄두도 나지 않는 소심한 우리 시민들이 추상화된 정치를 거부하고 삶과 정치의 주인공으로 나서보는 시간입니다. 시민 개인에게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자 도약이 될 것입니다.
이제 꼼지락 강의도 들었으니 앞으로 집회도 더 창의적이고 혁명적으로 하실 거죠? 그나저나 느티나무에 대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느티나무 강의,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느티나무에서 강의에서 배운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전공에만 치우친 배움이 전부였는데 여기선 다양한 강의를 더 깊고 넓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기억에 남아요. 제가 어디서 이렇게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고 할 기회가 있겠어요. 그래서인지 젊은 사람들이나 대학생들이 더 많이 와서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직접행동 참여 발표 중 2012.12.03
그 뜨거웠던 한 달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그는, 시민운동을 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 일도 하는 사회운동가가 되고 싶었다. 집회현장에 나온 시민들을 향해 일선의 경찰들이 깔보고 무시하는 걸 보며 정말이지 법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저런 경찰들한테 무고한 시민들이 당하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촛불 집회가 열리고 그 현장에서 거의 한 달을 살았다. 덕분에 사시공부는 물 건너갔지만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게 바꾸고 싶은 그의 열정은 아직도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공부를 접고 나가 만난 촛불의 현장에서 그의 꿈은 더 단단해졌다. 책을 파고드는 공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공부였기에 28살 청년의 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쏟아지는 물대포 앞에서도 뒷걸음치지 않았다.
“제 인생에서 제일 뜨거웠던 순간이 아닐까요, 그 한 달이...”
천부인권은 없다. 인권은 정치적이며 실제로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고대사회를 살펴보면, 당시 인간의 권리란 오늘처럼 내가 누누군가에게 얻어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누군가에게 바쳐야 하는 의무를 뜻했다. 천부인권설이니 자연설이니 하는 용어들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인류문명과 인권사상이 함께 존재했던 양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공감’이 없는 한 인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인류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때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공감’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 때 공감이 시작되고, 그 살가운 감정 위에서라야 비로소 우리는 ‘사람답게 살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프니 당연히 나도 아파야 한다. 보름이가 아프니 나도 아파야 한다. 아니, 그런 당위의 굴레를 떠나, 그저 그런 모습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까닭 없이 많이 아팠다. 따뜻함을 지닌 그의 가슴은 이 아픈 세상에서 너무도 쉽게 멍이 들었다. 아파서 청춘인 게 아니라, 따뜻한 피로 가슴이 더운 청춘이라면 아픈 게 맞는 거라고, 그의 삶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비록 꼭 맞지는 않아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大學)』
그가 좋아한다던 이 글귀처럼, 부디 그가 꿈꾸는 세상이 그의 바람대로 멀지 않았기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바라는 세상
비록 꼭 맞지는 않아도
온통 멍으로 푸르른 청춘 따윈 없는 세상
한 시간 남짓, 난 그와 이런 이야기를 했지 싶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
점점 더 고개를 숙여가는 백인보 기자단장 현아님.
그녀는 인터뷰에서
김.주.호 라고 쓰고,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읽는 듯 하다 ^^
올 여름 주호씨를 만나게 되어 참 기뻤습니다. 첫 만남에 느낌이 팍! 오더라고요~
앞으로도 밝은 얼굴 자주 볼 수 있길 빌어요~ :) 화이팅!
역쉬. 많은 부분에서 조은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