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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Bravo!!! 아빠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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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글: 박현아 느티나무 시민기자
4월 1일 만우절, 인터뷰를 위해 집을 나선다.
어느덧 봄은 와서 거리엔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약속장소로 가는 차 안, 간만에 영화음악 cd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곡, 마리아 엘레나(Maria Elena)... 빰빠빠빠빠 빠~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오늘이 그 남자가 죽은 지 꼭 8년 째 되는 날이다. 아비정전에서 하얀 런닝과 팬티 차림으로 멋들어지게 맘보를 춰 대던 장국영... 거짓말 같았던 그의 죽음... 매년 만우절이면 영원불멸의 청년이 되어 돌아오는 그...
이렇게 느닷없이 연결되는 심상치 않은 인연과 우연들...
오늘 만나기로 한 인터뷰이가 떠올랐다. 그 또한 거짓말 같은 유쾌함을 지닌 남자다. 보고 있으면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웃게 만드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청년의 눈빛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청춘과 젊다는 것, 그 둘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생각하게 된다. ‘청춘은 단지 피부와 근육의 문제로만 따질 것이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지적질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청춘은, 미숙하고 서툴더라도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 방황하는 마음이라고... 그렇게 고민하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청춘인 거라고... <고민하는 힘>에서 강상중은 말한다. 고민의 함량과 방황의 진정성, 청춘에서 문제되는 건 그것뿐이다.
참여연대 1층 카페 통인에서 박상규 수강생
장국영과 박상규라는 남자와 청춘과 고민하는 힘이라... 여러 갈래의 생각에 잠겨 참여연대로 가는 마지막 터널, 자하문(紫霞門)을 지난다. 그 아래서 도시는 정말 자줏빛 안개라도 만난 듯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빌딩과 가로수와 버스와 행인들이 각각의 윤곽을 잃어가는 이 순간... 빛과 어둠이 서로의 영역을 맞바꾸는... 이성과 감성 혹은 현실과 꿈 때론 이승과 저승... 이런 이분법적인 것들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다는 그 지점...
바야흐로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빛과 어둠이 마구 뒤섞일 때 나타난 저 언덕 위의 실루엣이 내가 키우던 개인지 아니면 나를 해치려 드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프랑스인들이 붙였다는 말. 이 위험천만한 시간에 만나기로 한 그는 과연 어떤 실루엣으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
가벼운 긴장에 손끝이 시리다.
스무 살, 넘버 원을 만나다
약속된 시간에 만나 정말 끼니만을 위한 식사를 소박하게 나누었다. 안 그래도 함바집 같은 식당 분위기였는데 반주까지 시켜놓고 밥을 먹자니 개와 늑대 어쩌구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먼저 24살 대학생의 신분으로 결혼한 이 어메이징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부터 들어보자.
“고3 때, 그러니까 대학 입학시험 보러 가서 지금 제 아내를 봤어요. 논술시험이 있을 땐데 그 시험장에 아내가 와 있던 거죠. 지금 봐도 예쁘지만... (과거 회상 모드) 햐~~ 예뻤죠. 청순하고 예쁘고... 그래서 반했죠.” 그리고는 답변 끝! 하긴, 예쁘면 나머지 조건은 다 부차적인 것들이 되니까... 얼마나 예쁜지 사진이나 보여 달라고 할 걸...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까 아내도 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군대 갔다 와서 3학년 겨울 방학 때 결혼식을 올렸죠.” 주변분들 반응이 좀 싸늘하지 않았어요?
“뭐, 별로... 그 해 저희 누님이 결혼을 하셨는데 그래서 부모님들이 좀 쓸쓸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상견례 준비하며 궁합도 보고 그랬는데 학교 졸업하고 결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하는 게 낫다고.. 그래서 하게 됐죠.” 아니 남자 쪽은 그렇다 치고 처가 쪽에서도 오케이하신 거예요? 사윗감이 직업도 없는 학생인데 뭘 믿고 그렇게 예쁜 딸을 덜컥?
“처가에서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아내도 장녀였고 그 때 아내는 학생이 아니었거든요. 아내 친구들도 그때 결혼들 많이 하고 그래서인지 아내도 결혼 맘이 있었던 것 같구요. 그리고 일단 사윗감이 워낙 사람이 좋으니까...”
이렇게 답해 놓곤 그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하하하 웃자, 웃어야지 별 수 있나... 그렇게 웃는 얼굴로 그는 24살에 장가들었다. 인생의 넘버 원을 무지하게 빨리 만나서 정말 무지하게 일찍 결혼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다음이 문제다. 동화의 엔딩처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정리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뭐 먹고 사셨어요? 제발 사랑이라곤 하지 마셔요.
“본가에 들어가서 살았어요. 아내가 일을 하기도 했구요. 대학 졸업하고선 저도 벌었죠.”
나이 어리고 예쁘기까지 한 아내가 심성도 무지 고운... 뭐 이런 대박 행운도 가끔 있어줘야 평범한 이들도 살맛이 나는 법이다. 이랬더니 이 남자, 조용히 듣고 있다 한 마디 덧붙인다. “저도 착해요.^^” 으이구...
참여연대 1층 카페 통인에서 박상규 수강생
이 어리고 사랑스러운 커플이 벌이는 애정행각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스물넷에 결혼한 그들은 결혼과 거의 동시에 아이까지 낳는다. 이 대책 없음에 멋지다고 등을 두드려 줘야할 지 깊은 한숨으로 우려를 표해야할 지 대략 난감이다.
“가족계획 같은 건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었죠. 첫째는 그렇다 치더라도 첫아이 낳고 얼마 후 아내가 또 임신했다고 했을 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영화 늑대와 춤을 보면 인디언들 이름이 무슨 주먹 쥐고 일어서 이렇잖아요.. 물론 우리 딸 너무 착하고 이쁘고 한데.. 그 때는 이름을 아니또로 할까.. 뭐 이런 생각도 했죠.”
푸하하하... 애들이 뭔 잘못이 있나요? 사랑밖엔 난 몰라를 외치는 철없는 부모 만나 하마터면 이름으로 히트칠 뻔 했네요. 박아니또 양...고생 많죠?
그렇게 2년 터울로 태어난 그 두 아이가 벌써 20살의 청년으로 18살의 아가씨로 자랐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그의 나이를 생각할 때 우와 진짜 어메이징이란 말밖엔 안 나온다. 내 자식 둘은 끽해야 10살 6살인데... 그러고 보니 아이들 나이도 꼭 2배다. 평균치보다 2배속 빠르게 살아 온 인생... 그의 시원한 웃음 뒤에 가려진 녹록치 않은 결들이 눈에 박힌다. 우리는 영화처럼 살 지 못하기에, 우리 삶은 사랑 노래의 가사가 아니기에... 그래서 ‘산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는 노래가사도 있는 거다. 그 가사에 입각해서 보면 나도, 그도 위대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민들이다.
젊은 아빠로 산다는 것
20살짜리 장성한 아들을 둔 43세의 젊은 아빠로 산다는 거, 어때요?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독일에 가 있구요, 딸은 풍문여고 2학년이에요. 보통의 아빠들보다 무척 젊죠. 장가가고 애 낳고 그러면서 철이 좀 든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하고서 바로 취업을 해야 했었는데 그게 만만한 일이 아니더라구요.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능력이 있다거나,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전공필수 과목도 3번 정도 듣고... 물론 학문적으로 제가 좋아서 듣긴 했지만... 아니 어떻게 한 번 듣고 그 교수님이 평생 동안 이룩하신 학문적 업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엥? 오늘 큰일났다. 초장부터 이렇게 질문과 대답이 따로 놀면 안 되는데... 그의 농담에 빵 터져서 바보같이 웃기만하다가 또 시민기자 본연의 자세를 놓치고 말았다.
박상규선생님! 정말 이러실 거예욧? 젊은 아빠로 사는 거 물었잖아요.. ㅠㅠ
참여연대 1층 카페 통인에서 박상규 수강생
“아, 질문이 그거였죠, ㅎㅎㅎ... 젊은 아빠로 사는 게 좋냐구요?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 어렸을 때, 가끔 제 아내가 저를 좀 불쌍하게 생각하는 거 같았어요. 일찍 결혼해서 놀지도 못하고 고생한다고.. 자기도 고생하면서. 젊어서 결혼한다는 게 뭔지 그때는 살면서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상황 판단도 잘 안되고, 주위에 비교할 대상도 딱히 없고... 한 가정과 아이들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 제가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 그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무작정 열심히만 살았어요. 아내가 주는 용돈의 80%정도를 쓰지 않고 모아서 차세대종합통장이라는 청약저축을 두 아이 이름으로 들었지요.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아빠가 이렇게 노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들으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나이가 어리고 다른 아빠들보다 젊어도 자식한테 부모는 그냥 부모인거다. 스물넷에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스물일곱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 자신의 삶 깊숙한 곳에서 잉태된 또 다른 이들의 삶을 생각하고 꾸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던 그의 청춘. 그 곁에서 또래 친구들은 그 빛나는 청춘을 탐욕스럽게 누리고 있을 터였다. 인간은 시간이 무르익고 철이 들 적당한 시기가 되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살짝만 둘러봐도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들이 수북할 때...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인간은 그렇게 철이 든다.
그는 누가 봐도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게 생겼다. 아니,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늘 내놓는 말이 진담과 농담의 경계를 흐르고 그래서 진지한 질문이 그의 귀로 들어갔다 해도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늘 장난기 가득한 농담들이다. 인터뷰 자리만 아니었다면 그 농담에 푹 빠져서 한바탕 실컷 헤엄이나 치며 놀고 싶어진다.
참여연대에서 만들어 준 시민기자 명함. 그것만 아니었다면... 에잇!
그의 진지함
어차피 판 접고 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개구쟁이 같은 어른이 어떻게 참여연대라는 묵직한 울타리를 밀고 들어왔는지나 물어야겠다. 99년에 회원으로 가입해 올해로 벌써 12년 차인 근면 성실한 회원. 무슨 계기로 가입하신 거예요?
“제가 그거 물어볼까봐 미리 생각해봤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요.” 아니 사회참여의 욕구 뭐 그런 거라도 있었을 거잖아요, 박선생님?
“아, 사회참여! 예, 뭐 그런 거죠. 대학 때 심하게 운동권은 아니었어도 짱돌은 좀 던졌으니까.” 그럼 어디 다른 단체에 또 회원가입 한 거 있으신가요?
“월드비전 후원할까 하고 한번 알아봤는데 그 당시 제 기준으로 좀 비싸더라구요. 그래서 못했죠.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할려구요... 곧 하겠습니다... 해야죠.” 이렇게 개구지게만 굴던 그의 입에서 갑자기 민란이란 진지한 단어가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민주노동당이나 민란 쪽 후원도 생각해 보고 있어요. 세상이 좀 바뀌어야 하잖아요.” 근데 왜 하필 민란에 꽂히신 거예요?
“민란이라는 말이 좀 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성근도 괜찮고 그 바탕에 깔린 생각도 괜찮은 것 같고... 민란이라는 게 뭐 혁명처럼 완전히 들어 엎는 것은 아닐지라도... 세상이 많이 바뀌어야 하는 건 맞잖아요?” 세상이 변해나가는 속도가 느려터진 것 같아 깝깝하시죠?
“예전에 검찰이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말 한 적 있잖아요. 그 말이 제겐 완전히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 말처럼 들렸어요. 최근에는 무상급식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나랑 많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기득권층에 모여 있다면 그 반대 측에 속한 우리들도 뭔가 뭉쳐야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도 해봤죠.”
와우~ 이 남자가 이렇게 진지할 때도 있다. 멋지다! 왠지 민란이 일어나면 선봉에 서실 것 같은데요, 박쌤~ 이런 진지함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곳은 또 있다. 느티나무, 그는 그곳에서 공부도 한다.
40대 남자로 사는 법
느티나무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잠시 진지 모드에 있던 박쌤... 답변 도중 또 삼천포 가신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는 인터뷰 녹음을 듣고 있자니 개콘이 따로 없다. 내가 묻고, 그가 답했는데... 잠시 후 둘이 빵 터진다. 한참 웃다 지금 우리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죠? 이런다. 맥락 잡긴 힘들어도 참으로 해피한 인터뷰임엔 틀림없다.
가만 있자.... 아이구, 정신없어라~ 뭐였지? 아! 그동안 느티나무에서 무슨 공부하셨냐고요?
“신영복선생님 강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강의,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강의도 들었고... 작년엔 40대 남자가 사는 법도 들었고 최근에는 에로스의 인문학 수강 중입니다.”
아, 40대 남자가 사는 법... 첫 번째 강의만 듣고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쫓겨난 그 강의... 무척 궁금했는데, 어떠셨어요?
“동년배의 사람들이 모인 강의라 분위기가 무척 좋았어요. 근데 좀 야한 부분을 파헤치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별로 안 파헤쳐져가지고 좀 아쉬웠어요.” 엥? 그 부분 파헤치려고 그 강의 들으신거예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30대는 서른 즈음이라는 노래도 있고 괜찮은데 40대가 되니까 좀 칙칙해지고 우울해지고 그러더라구요. 40대의 남자로 남편으로 아빠로 좀 붕 떠 있다는 느낌... 30대 땐 아이들도 어리고 실제로 일에 파묻혀 사는 시기라 자신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고 그랬죠. 근데 40대에 들어서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 판은 바뀔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 전체적으로 인생이 굳어져버렸다는 생각에 많이 속상했어요.” 그랬구나... 나도 곧 40인데... 그래서 강의 듣고 기분은 좀 나아지셨나요?
“난 40대가 되니 이런 생각들이 드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알고 싶고 궁금하고 또 서로 얘기도 나누고... 그러고 싶었죠. 그래서 강의 끝나고 같이 들었던 사람들과 최근에 한번 만나기도 했어요. 강의 중에도 뒷풀이 참석률이 무지 좋았구요. 앞으로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고 그러면서 지내기로 했죠.”
그 40대 남자들의 모임에서는 어떤 말들이 오갔을까? 이제 어느 정도 자라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 느끼는 쓸쓸함, 더 이상 젊은 날의 뜨거움으로 안아 줄 수 없는 아내와의 관계, 난 정말이지 돈만 버는 사이보그가 아닐까하는 망상... 대강의 밑그림이 그려지지만 염색체의 엄청난 차이 때문이라도 난 그 남자들의 한숨을 다 받아내지 못한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작은 모임이라도 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술잔이라도 부딪쳐가며 짧은 위안과 안식을 얻게 되길... 기도할 뿐이다.
40대 남자 강의에서 그가 좀 미진하다고 느꼈다던 에로스. 그래서 현재 그는 에로스 강의를 수강 중이다. 마냥 장난꾸러기 같다가도 정작 자신의 삶 안에서 뭔가 걸리적거리는 게 나타나면 곧바로 그 뒤를 진지하게 쫓는다.
“실제로 에로스, 성 이런 부분은 남자도 여자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40대 남자 강의 때도 우리끼리 그런 얘기했었는데... 심지어 아내한테마저도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게 쉽지가 않다는 거... 뭐 어렵게 얘기를 꺼냈는데 아내가 뜨악하게 쳐다볼 때도 많고... 그러면 다신 그런 얘기나 혹은 다양한 시도들을 하지 않게 되는 거죠. 에로스는... 제대로 된 교육과 소통의 장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강의를 듣게 된 거죠.”
그는 호기심이 강하다. 궁금한 건 못 참고 처음 보는 것은 아이처럼 신기해한다. 인터뷰 전 커피를 사기 위해 잠시 들렸던 커피집에서도 그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 거라서요...” 자루에 가득 담긴 커피콩과 로스팅 기계들을 향하는 그의 카메라 렌즈... 초반에 들먹거렸던 개와 늑대의 실루엣 얘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다시 한 번 그 두 가지를 그의 얼굴에 대본다. 지금 그가 내 앞에서 펼쳐 보이는 실루엣은 갈색점이 고운 바둑이의 그것이다. 친근한 얼굴로 온 동네들 들쑤시고 돌아다니는... 그러다가 흥미를 끄는 무언가를 만나면 새까만 눈동자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서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작은 앞발로 세상 모든 것을 가만 가만 만져보다가... 이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데구르 굴러 버리는... 가끔 젊다는 것, 청춘이라는 것, 그게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청년의 눈망울을 한 그...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인생의 실타래를 맹렬히 쫓고 있다면, 내겐 바로 그게 청춘이다.
“감동을 주고 싶었어요, 삶의 보람을 찾고 싶었죠. 나도 뭔가 내 인생에서 이루어내고 싶다는 욕구... 그런 거 생각하다 글을 써 보고 싶어졌어요.” 이런 진지하고도 파릇한 꿈을 꾸는 그는 현재 프레시안에서 글쓰기 수업도 듣고 있다. 그는, 자꾸 꿈꿔서 그렇게 젊은 눈빛을 지닌 건지도 모른다. 고민의 함량과 방황의 진정성에서도, 그는 충분히 젊다.
여전히 청춘이신 박쌤은 대체 뭐 하고 노세요?
너희가 고수를 아느냐?
“술 먹고 놀아요. 혼자서도 술 잘 먹어요.” 에이~ 그건 알콜중독이죠.
“이 세계에 들어오시면 그렇게 생각 안 하실 거예요. 섭외의 어려움을 겪고 나면 혼자서도 잘 먹게 됩니다.” 첨엔 술 먹고 논다는 답이 무척 식상했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들을수록, 와~ 이 세계가 또 장난이 아니구나 싶다. 내가 진작 알지 못했던, 혼자서 술 마시기의 세계... 고수의 생생한 증언을 마저 들어보자.
“혼자서 술 마시면 얼마나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생각보다 많이 먹기 힘듭니다. 뻘쭘하기도 하고... 전 혼자서 소주 한 두병쯤은 마시죠. 첫 몇 잔 마실 땐 좀 창피하지만 그 순간만 넘기면 괜찮아요. 그러면 바로 고수의 길로 가는 거죠. 처음 혼자서 술 마시기엔 참치집이 좋아요, 그런 데는 바도 있고 빈 속으로 가도 참치는 계속 리필이 되니까... 그 다음은 순댓국집. 이런 데는 서민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까 국밥 시켜놓고 반주를 곁들이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혼자 술 먹어도 별로 창피하지 않아요. 제일 난이도가 높은 코스는 삼겹살 집인데... 저도 한두 번 밖에 안 가봤어요. 일단 삼겹살은 일 인분 주문이 안 되는 난점이 있죠. 삼겹살 이 인분 먹어야 되니까 밥은 안 시킵니다.” 와... 입이 안 다물어진다.
사람들 틈에서 혼자 앉아 고기 굽고 그러다가 소주 한 잔 들이켜고...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냥 집에 가면 되잖아요?
“물론 창피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해보면... 혼자 술 먹는 거, 그거 무척 편해요. 섭외의 수고도 필요 없고 신경 쓸 것도 없고... 시작은 예전에 한창 바쁘게 일할 때, 그땐 새벽 12시 1시에 일이 끝나기도 하고 그랬어요. 힘드니까 술 한 잔 먹고 들어가고 싶은데 그 시간이면 불러낼 사람이 마땅치 않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럼 집에 가서 드세요, 괜히 사람 처량하게 그게 뭐예요?
“아내가 싫어해요. 아니, 걱정해요. 밖에서도 많이 마시면서 집에서도 술 먹냐고.... 그리고
사실은 가끔 저도 제 자신한테 휴식을 주고 싶어요.” ........잠시 멍했다.
Bravo! My life~
인터뷰가 끝났다. 그리고도 난 쉽게 집에 가지 못했다. 그처럼 용기내어 술을 혼자 먹진 못했지만... 예전에 그가 했다는 것처럼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돌며 술을 마셨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쉬 끝나지 않고 마냥 가늘게 이어지는 것만 같은 인생에서 언제쯤이 내가 나 자신에게 긴 휴식을 주어야 하는 건지... 그렇게 그의 마지막 말은 나를 한참이나 서성이게 했다.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 그건 바로 죽을 때지
- 영화 <아비정전> 中 장국영의 대사
생애 단 한 번뿐인, 발 없는 새의 긴 휴식... 그것 말고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바람 말고도 우리가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산다는 것, 그 하나의 위대함만을 위해 사는 우리 같은 평민들이 모두 같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타인과 깊지 않은 무난한 관계만 맺고, 가능한 위험한 건 피하려 하며, 세상일에 휘말리지 않으려 행동하는 건 젊음이긴 하되 청춘은 아니라고 강상중은 말했다. 내가 흘려보낸 청춘이 그렇게 어렵고도 귀한 것이었던가...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치고, 위험한 것들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세상일에 휘말리는 게 버거울 때도 있는 거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고 술도 혼자 먹고 싶을 수도 있는 거다. 알콜중독이 아니냐는 나의 무심한 말에 왜 산책이나 등산은 혼자 가도 괜찮고 술은 안 되냐고 항의하던 그의 말처럼... 가끔 이렇게 인생에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싶을 때, 그것을 비겁하다하고 청춘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또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청춘은 아니다.
39살의 내가, 43살의 그가,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이 기든 아니든...
지금껏 달려온 너의 그 용기를 위해... 산다는 것 하나만을 실행하는 것도 벅찬 위대한 평민들을 향해... 나는 외친다....
브라보!
비밀스런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진 분을 인터뷰하셨네여^^
참여연대 느티나무아래에는 정말 다양한 인생스토리를 써내려가는 분들이 모여 계시는군요
현장감 넘치는 박기사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나와 다른 그 어떤이도 인류애로 감싸안을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요. 숨겨진 인생의 뒷야그를 알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잖아요...
맞아요, 사람은... 만나서 좀 길게 얘기해보면 다 안쓰러운 존재들인 것 같아요...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힘들고... ㅠㅠ
그래도 혼자 술 먹는 사람이 많지 않기를...
공감 많이 되는 글입니다~
다음번엔 박수석님을 박기자님이 인터뷰 해보시는건 어떨까요? ^^
민수님... 이게 무슨 사적인 대화라고 그러세요???
카페 100일 얘기했는데.. ㅠㅠ
민수님 노래 꼭 듣고 싶은데... 다음주는 제가 좀 바쁠것같네요...
근데 무슨 노래할 건데요??? 이게 더 사적인 대화인가?
아니 이분들이 공적 공간에서 사적인 대화를 ㅋㅋ
카페 100일 오셔야죠. 노래도 한곡 할랍니다.(더 안오실란가)
아... 셀프요... 그건 좀 나중에...
카페가 벌써 100일 이나 되었군요....
그동안 자원활동해주신 분들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제가 혹 참석 못 하더라도 마음만은 함께라는 걸...
진심으로 100일 축하드립니다.^^
음.. 박현아선생님의 셀프인터뷰?
다음주 수요일 저녁에 카페100일 조촐한 모임이 있습니다.
음식 한가지 준비하셔서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기자가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박상규선생님이요? 헷갈려서...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