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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부르는 노래" 김동춘 선생님 칼럼
민주주의학교 [되살아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역주행] 강좌 강의를 해 주신 김동춘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던 4.19 혁명 칼럼이 한겨레신문 4월 19일자에 실렸네요.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위협공포를 쏘아도 될 것을 함부로 무차별 사격을 하고, 중학생이 총을 맞아 쓰러진 것을 뛰어들어가 구하려는 사람에게까지 총을 쏘았다.” “소방차를 정차시키지도 않고 일렬로 서서 일제사격을 하였으며 마치 일선에서 공산군을 향해 쏘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 는 국민은 ‘적’이었고, 진압 토벌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풍경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1948년 건국 이후 계속된 일이었고, 그 선봉에는 언제나 일제 식민통치의 주구 노릇을 했던 경찰과 우익 폭력세력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전쟁 발발 직후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자 희생사건 등 그 가혹한 일제 식민통치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해방된 조국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보려 했던 백성들 수십만명이 이승만 정권하에서 좌익, 빨치산, 반정부인사로 몰려 살해되거나 고문당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날치기로 통과되었고, 야당 국회의원은 수사사찰기관의 협박을 받았으며,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은 간첩 혐의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사법부는 정권에 굴종했으며, 비판 신문은 강제폐간되었으며, 선거 때마다 공무원이 정권의 수족이 되었다. 양심과 정의감을 갖고 있었던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은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이보다 심하지 않았다.
그런 암흑천지에서 어린 학생들이 일어나 김수영 시인이 노래했듯이, “전국의 초등학교란 모든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유치원에 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던”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낸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4월혁명은 송건호가 말했듯이 기성세대, 즉 ‘이’(利)의 세대를 부끄럽게 만든 의(義)의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이었다. 4월혁명으로 우리 국민이 얻은 것은 이승만 하야가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독재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으며,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그리고 직접 행동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얻을 수 없다는 엄청난 교훈이었다. 그것은 국가를 진정한 민주국가, 국민의 국가, 인권국가로 만들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었다. 그래서 4월혁명은 폭력국가, 불법 국가, 친일파 국가, 경찰국가, 속임수 국가를 자유와 민주의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의 국가로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 5·16과 군부세력은 절차보다는 목적이, 정의보다는 빵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육법전서’를 달달 외운 사람들은 5·16 자체의 탈법과 불법을 눈감고 ‘혁명재판소’의 요원으로 발탁된 것을 영예롭게 여겼다. 이(利)의 세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온 사회를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 후 20년 동안 한편으로는 군대가 시위대 진압을 하고 다른 편으로는 재벌기업이 국민을 ‘매수’하면서 세상을 지배하였다.
4월혁명이 미완의 혁명이라는 말은 ‘창자가 메마른’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나서지 못했다는 말일 것이다. 배고픈 국민들이 매수되기를 거부하고 진압에도 저항하면서 자유의 노래를 합창할 때 4월혁명은 완수될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