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김만권의 정치철학 - 고전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당대편>] 2강. 유르겐 하버마스
지난 3월 19일. 김만권 선생님의 두 번째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독일의 철학자 유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하버마스는 누구인지, 어떤 이론을 주장했는지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르겐 하버마스는 누구인가
하버마스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수장으로 의사소통이론과 공론장이론으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입니다. 아직 생존해 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구순구개열로 인해 선천적으로 언어장애를 앓았는데 이로 인해 나치 치하에서 열등종으로 분류되는 차별의 경험도 겪게 됩니다. 이런 차별의 경험이 후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이론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버마스는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며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지만, 아도르노와의 갈등으로 대학을 옮기고 가다머의 추천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세력과의 갈등으로 학교를 떠나 과학기술세계 생활조건연구소에서 10년간 연구에 매진하여 <의사소통행위이론>(1981)을 완성합니다.
2. 초기 비판이론가 –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
하버마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 대한 설명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비판이론이란 ‘이성에 대한 비판적 신뢰’를 바탕으로 이론과 사회적 실천의 결합을 강조하는,간단히 말해 과학과 철학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이론의 위기 - 계몽의 딜레마, 길 잃은 이성”
초기 비판이론가였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개인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기 위해 시작된 “계몽”이 과학적 지식만을 강조하여 결과적으로 개인의 사유를 제한하고 억압시킨다고 여겼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이성의 도구화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초기 비판이론가인 마르쿠제도 산업사회 속의 인간은 행복만을 추구하는 ‘일차원적 인간’이 되었고 이성을 통한 해방은 불가능하며 문명 이전의 본능인 ‘에로스’에서 해방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하버마스의 사상
하버마스는 초기 비판이론가들이 근대를 ‘도구적 이성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기’라고 인식하여 자기파괴적 논리에 빠진 점을 지적하며 도구화되지 않은, 좀 더 포괄적인 이성관 속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찾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일상언어에서 합리성의 근원을 찾다.”
하버마스는 인간 개인의 의식 안에 머무는 이성의 합리성 한계를 파악하고, 합리성이 생겨나는 근원을 새롭게 마련하고자 했는데, 이런 차원에서 시도된 이론이 바로 ‘의사소통 행위이론’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성은 의식이 아니라 의사소통 속에 존재하며 그 속에는 도덕-실천적 성격이 들어가 있다는 것인데요. 때문에 하버마스는 일상의 의사소통 구조를 분석하여,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의 유효성에서 합리성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소통 합리성의 목적은 바로 ‘상호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는 “어떤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체계와 생활세계”
체계와 생활세계는 하버마스가 이해한 근대사회의 개념입니다. 체계란 경제와 관료적 행정의 합리화가 진행되는 곳이며 이성의 도구·전략적 영역이 중심적으로 자리잡는 근대세계의 영역입니다. 반면에, 생활세계는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 언어의 사용을 통해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상호이해와 합의에 이르기 위한 의사소통이 중심이 되는 사회영역입니다. 생활세계 구성원들은 문화를 통해 세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얻고, 사회를 통해 구성원 간의 연대와 질서를 배우며,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낼 수 있는 인격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번 강의의 부제목이기도 한 “도구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이성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도구화된 세계란 도구·전략적 이성(체계)이 도덕·실천적 이상(생활세계)으로 넘어와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생활세계가 체계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저항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사회운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버마스는 시민사회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버마스가 말하는 시민사회운동은 체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 간에 상호이해와 합의 즉,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강의는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는데 강의 후기를 남기면서 다시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후기를 읽으시는 분들께 이해하기 쉬운 강의록이 되었을지 조금 걱정이 앞서는데요. 다음강의 초반에 질의응답시간과 덧글로 질문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본 강의에 있어서는 이론적이면서도 현실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강의 관련하여 몇 가지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1) 이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체계와 생활세계를 구분했는데요, 생활세계를 시민사회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생활세계를 다른 어떤 것으로 듣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생각에서 생활세계와 시민사회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활세계란 말 그대로 일상생활일 것 같은데요, 일상생활은 시민사회가 다 담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생활세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2) 의사소통행위이론이 이론(theory)이라고 할 때, 적용 범위 수준이 어느 정도에 해당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자연과학에서도 중력 이론이 적용되는 제한된 범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강의를 들으며, 수강하시는 분들이 제기하였던 상대화(?)의 문제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서 그 의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3) 예전에 하버마스가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었고, 한 기자가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지성)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을때, 직접적인 답변을 기대했던 독자로서는 아쉬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을 통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연구를 할 것'이라는 식으로 격려했고, 자신의 이론을 한국사회에 적용한 조언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말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국 사회의 연구를 한국 사람에게 맡겨놓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하버마스가 이런 식으로 말을 했을까 (개인적으로는 많이^^)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 있어 강의정리 내용과 개인적 메모를 살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
근대화의 기술 진보는 인간이성으로 설명됐고 세계대전, 파시즘을 겪으며 다른 인간이성을 찾았으며 어쨌든 인간이성입니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학자로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성을 도구적, 도덕적, 미학적으로 나눠 영역을 두었고 그에 의의가 크다는 말씀입니다.
생활인으로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도구적 이성이 상당할 회사에 효과적, 효율적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하며 소비하고 저축하여 문화를 즐기고 미래를 꿈꾸는 건데요 그리고 이대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일차원적 인간인가 싶어 깜작 놀랐습니다. 체계가 자본과 친해져 문화를 매개로 도구적 이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니 또 깜짝 놀라며 그래도 문화의 숱한 주제는 사랑으로 에로스는 인간이성이 왜 이럴까 회의할 때 이성에 대안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학문적으로 체계상 벗어나서 비껴났고 다른 인간이성이 대안이 됩니다. 제가 꿈꾸는 미래도 되돌아봤습니다. 졸업해서 취직하고 돈벌어 저축하고 좋은 사람만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 건데요 여기 또 행복이 있고 역시 일차원적인가 싶어 낙담했습니다. 그런데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동료, 가족, 친구, 이웃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때 였습니다. 상호이해에 기반하여 협력을 이끌어내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본능 에로스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실은 문화와 미래가 도구적 이성에 포섭돼 정말 우리가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지 인데요 물론 청년실업과 저소득으로 미래는 언제 행복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버마스가 현상에서 생활체계를 찾았을 때 일상생활을 포괄하진 못했지만 시민사회는 쉬운 조정이 아닌 상호 논쟁하고 비판하며 협의하여 그래도 행복해야 할 우리의 일상을 찾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에로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