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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저자와 함께 <미투의 정치학> 읽기 4 - 춘향에겐 성적 자기결정권이 필요했다 (한채윤)
‘권리’와 ‘존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권리 개념의 핵심은 존중이며,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되려 정확한 뜻을 알 수 없거나 제대로 쓰이지 않고요. 그렇다면 이 의미를 어떻게 짚고 넘어가야 할까요? <미투의 정치학> 마지막 시간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크게 3개의 덩어리로 두고 춘향전에 빗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춘향이 진정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18C에 창작 되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춘향전>은 다양한 매체에서 소비되었습니다. 이 고전 소설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이고, 고난을 극복하고 ‘정조’를 지킨 여성은 신분상승을 얻으나, 이를 건드린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담고있죠. 하지만 찬찬히 분석하면 춘향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거나 맺은 언약이 영원할 거라고 믿지않습니다. 위험과 이익을 빠르게 파악하고, 처신까지 치밀하게 판단했습니다. 반면 변학도는 무조건적으로 춘향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으며, 이를 거부하자 공권력을 행사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했죠. 여기서 눈 여겨 봐야할 건 이 두 인물의 대립의 핵심이 ‘정조’가 아니라 위선적인 가부장제 제도를 ‘정조’라는 관념으로 덮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토대로 여성의 삶을 재단했고, 모순을 남겼기 때문이죠.
형법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정조
조선시대 유난히 여성에게만 작동했던 ‘정조’라는 억압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이를 드러낸 것이 2013년에 신고죄 폐지와 경찰의 즉시 조사가능으로 개정 된 형법 297조 (강간과 추행의 죄, 이하 강간죄) 입니다. 우선 형법은 보호법익(어떤 행동이 범죄인지 판단하기 위해 그 법이 보호하려는 이익,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하는 일)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절도죄’의 보호법익은 ‘재산권’인 셈이죠. 그렇다면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무엇일까요? 1953년 생성 당시 강간죄를 다루던 형법 제32조의 명칭은 ‘정조에 관한 죄’였고, 보호법익은 ‘정조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여성의 안전을 비롯 삶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 없으며, 단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또다른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여부 등으로 말이죠. 이를 바꾸려면 보호법익으로 된 정조권을 대체할 새로운 권리 개념이 필요하다고 1980년 말부터 논의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권리개념이 ‘성적자기결정권’이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 명확하게 짚고 이해해야 하는 권리
국내 법조계에서 처음 등장한 건 1990년 간통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때 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 1항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그 후 동성동본금혼법(1997), 혼인빙자간음죄(2009), 간통죄 위헌(2015) 에서 주요한 권리 개념으로 다뤄졌습니다. 위헌 판결 때 국가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있는지,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큰 비중을 두었죠. 그러나 이 개념을 단순히 동의 - 거부의 형태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의와 거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닙니다. 상대의 거부는 의사 표현이자 소통의 과정이며, 피해자는 처음부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 자체를 원한 적이 없으니까요. 더불어 이 개념은 ‘신체에 대한 자기 통제’, ‘몸에 대한 권리’ 정도로 축소하는 일도 있는데, 권리를 잘 지켜서 손해 보지 말라는 형태가 아닌,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 받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가는 자율적 주체임을 존중받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당연히 사랑, 연애, 결혼, 성관계를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할지 혹은 하지 않을지를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적 자기결정권' 이다. (p.131~132)” 기억에 남았던 책 한 줄입니다. 모든 권리의 바탕에는 ‘존중’이 들어갑니다. 과연 우리는 당연한 이 전제를 잘 실천하고 있는 걸까요. 이제는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