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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 1 - 한국 남자는 왜 억울한가
<'한국 남자는 왜 억울해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 중인 최태섭 문화평론가 ⓒ참여연대>
'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 첫 번째 강의로 문화평론가이자 사회학 연구자이신 최태섭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다.
최태섭 작가님은 <한국, 남자>, <잉여사회>, <을들의 당나귀귀> 등 여러 책을 쓰셨다.
강연을 듣기 전에 작가님의 책을 읽고 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 남자>에서 2000년대 남성성을 자세하게 다루신다고 하니 나중에라도 꼭 읽어봐야겠다.
강연은 여성혐오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남성성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 남자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들이 왜 이토록 억울해 하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에 강연을 들으러 갔다.
점점 심해지는 여성혐오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반쯤 포기한 상태였는데, 강연을 듣고 여성혐오가 남성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여성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남성성을 파괴해야 한다.
작가님은 조선 후기부터 90년대까지의 남성성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셨다.
대한민국 남성성의 역사는 조선 말기 사대부와 변강쇠에서 시작된다.
즉, 조선 말기 한국 남자들은 고결한 선비의 모습을 한 사대부와 성적인 매력을 지닌 변강쇠 사이 어딘가에서, 때로는 둘 다를 취하며 존재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남성성에 대한 사상이 전해졌다.
남성성 형성의 핵심은 남성간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여성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즉 여성을 지배하는 것인데,
식민지의 남자들은 이등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에서 온전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 여성에 대한 통제를 제국의 남자들에게 빼앗겼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과 건국 이후에는 남성의 노동력과 군사력을 얻어내기 위해 호주제 등을 통해 남성에게 사회적 권위와 지위를 몰아주려는 시도가 있었고,
군복무는 사회적으로 권리가 주어지는 일등 시민의 조건이자, 후방에 있는 여성을 보호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가 되었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최근 남성들의 잘못이 드러난 데 따른 그들의 피해의식과 억울함에 대한 작가님의 해석이었다.
<남성이 말하는 박탈감은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급해온 비현실적 기대감에서 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참여연대>
작가님은 그들이 박탈감을 운운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들이 박탈당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적 불이익, 경제적 상황 약화는 요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가 어려운 것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취업률이 낮아지는 현실은 모두에게 적용되고, 임금격차가 개선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박탈은 어디에서 온 걸까?
작가님은 이를 남자로서 길러오는 과정에서 오는 문제라고 본다. 남자에게 주어지고, 스스로도 가진 성별화된 기대.
예를 들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예쁜 여자친구가 생긴다'와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성이 마치 리워드인 것처럼 이야기해온 역사가 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 우리는 '그래야 남자지~'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현실은 맨날 학교에서 여자애들한테 진다. 즉, 사회가 그들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어주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무언가 박탈당한 것이 아니다. 잘못 주어진 기대가 현실과 다른 것인데,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는 대신 누군가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태껏 그들의 주 양육자였던 선생님과 어머니, 그들이 생각하는 게임을 막고 있는 여가부 직원들. 여태껏 자신을 통제해온 것은 모두 여성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기대를 충족하는 것을 빼앗는 사람들을 여태껏 자신을 통제해 온 여성들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그들의 여성혐오와 피해의식, 억울함이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본질주의적이라고 믿어온 남성성은 시대와 역사, 문화에 따라 변하고,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성성이 파괴될 때 비로소 여성에 대한 혐오가 근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