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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1/19 철학자 김만권과 함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읽기_두 번째 강의 3장. 노동
생소한 개념으로 가득차 있어 읽고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만 김만권 선생님의 열정 넘치는 강의와 수강생들의 향학열이 어우러져 겨울밤을 빛내고 있는 11월 19일 월요일 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훑어나가는 세 번째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제3장의 주제는 첫머리에 밝히고 있듯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 비판으로 요약하자면 근대세계에 내재된 심각한 문제는 노동과 작업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과 존 로크,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와 같은 석학들조차 이 두 용어를 동일한 것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 근대 : 지적 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둘다 노동이고, 유용하다는 것을 기준으로 노동을 평가하기 때문에 지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하며 그렇게 해서 수입을 얻는다. 생활의 필요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종사하는 활동과는 다르다. 결국 근대에는 공적 영역의 활동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모든 인간의 행위를 노동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노동과 작업의 구별은 저자인 한나 아렌트조차 생소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 구별이 의미가 있음을 뒷받침하는 현상적 증가가 많다고 주장을 하면서 로크의 표현을 빌려 신진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유지 활동으로서 소비와 필연적으로 연계되는 우리 신체의 노동과 창조적 성격을 띠며 세계성을 지니고 있는 활동인 우리 손의 작업으로 설명합니다.
· 작업으로 만들어진 사물 : 세계안에서 고유한 장소를 점하고, 내구성을 지니며, 인간이 보기에 명확한 기능을 갖고 있는 물건 ↕ · 노동으로 만들어 낸 것 : 인간의 생명 유지에 직접 필요한 먹을 것처럼 금방 소비되는 물건, 간단하게 대체될 수 있는 물건 |
고대 폴리스에서는 노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노동은 사적 영역에서 ‘집’에 얽매여 있던 노예의 행위이고, ‘작업’은 공적 영역의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작업인’의 행위였다고 대비하고 있는데, 다만 시민이 ‘노동’에 종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그것이 노예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 유지 행위인 ‘노동’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생명(생명유지)과 노동을 살펴보면 우선 모든 구체적인 사물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지 못한 것은 생명의 과정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들로서 그것들은 생산되자마자 거의 소비되어버리는 일시성을 가지고 있는데 탄생과 죽음 사이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종에 있어서는 순환적 성격을 개인에게는 직선적이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원래 시작과 끝이라는 두 개의 근본사건에 의해 제약받을 수 밖에 없는 생명은 엄격히 직선운동을 따르기는 하지만 이 운동은 자연의 주기적 운동을 영원히 담지하는 생물학적 생명의 원동력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언제나 똑같은 순환 속에서 움직이면서 그 안의 ‘노고와 고통’은 유기체가 죽어야만 끝이 나는데 이 순환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명유지의 관점에서 노동과 소비는 우리의 욕망과 관련되어 물질을 파괴하여 게걸스럽게 삼키는 과정으로 특히 아렌트에게 노동은 어떤 생산적 측면도 갖지 않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로크 이래 아담 스미스를 거쳐 마르크스에 이르러 노동은 인간활동 중 최고이자 가장 상위의 지위로 갑작스럽고도 눈부시게 상승하게 되며 생산성의 원천이자 인간성의 표현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리고 노동도구 엄청난 개선을 통해 이전의 그 어떤 시기보다도 노동이 훨씬 용이하게 되었고 필요에 종속되는 조건이 생생하게 드러나지 않게되므로써 노동과 작업의 구분이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인간 삶으로부터 필요와 필연성에 예속되는 존재의 조건을 제거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by 민동섭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