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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양유경
‘내 생애 첫 사법감시’라니!
처음엔 타이틀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학부 때 산 법전은 몇 년 간 눈이 닿지 않는 책장 아래칸에 꽂혀있는 상태였고, 제목대로라면 감시의 주체가 돼야 할 ‘나’는 법원은커녕 법관도 평생 한 번 만나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누구를? 어떻게? 사실 감시하리란 열의보다 앞섰던 건 궁금함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법농단 사태가 뉴스 헤드라인을 매일같이 갈아치우곤 하던 때였다. 거긴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곳인가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기에 얼른 판결문 읽기 강좌를 신청했다.
첫 날, 가자마자 판결문을 읽는 건 둘째 치고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단 얘길 들었다. 국가법령정보 어플리케이션에 모든 판결이 다 올라오는 줄로 알고 있던 내겐 큰 충격이었다. 어쩐지 과제 하려고 아무리 키워드를 바꿔서 검색해봐도 뭐가 안 나오더라니. 법이란 무엇인지, 국민을 위해야 할 사법부가 어떤 문제점과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강의를 들은 후, 판결문을 검색하고 청구하는 방법 실습까지, 이 모든 게 첫 날에 이뤄졌다. 텍스트와 정보를 얻으러 갔던 수업에서 사법부를 함께 감시해야 한단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 날이었다. 일종의 배신감과 경각심도 함께 느꼈다. 대승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사법부의 불합리성을 체감하게 되면서, 그간 멀게만 느껴지던 사법부와 어떤 식으로든 연을 맺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론 본격적으로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시민으로서 사법부를 감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려 노력했다. 일단 열심히 읽었다. 모르는 부분은 검색해보거나 교수님께 여쭤봤고,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엔 반박하는 메모를 달아보기도 했다. 강의에선 참여자들이 각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들고 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통탄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고, 잘 듣는 사람도 있고, 이걸 다 정리해 기사로 내는 사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수업 중에 제일 자주 나왔던 말은 ‘법원이 이래서 되느냐’는 말이었고, 그 다음이 ‘판결문 문장이 길고 어렵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 수업은 비평하는 수업이었지, 무조건 비난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한 판사 앞으로 배당되는 사건 수가 너무 많단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기도 하고, 판결문의 형태나 문장이 부득이하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교수님이 설명해주시기도 했다(물론 이렇게 어렵게 쓸 필욘 없다고 지적하시던 때도 많았지만.) 덕분에 수업이 끝난 후에 판결문을 쓰는 데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법관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판결문을 꼬고, 또 꼬아서 쓸 수밖에 없다면, 많은 것을 담아내느라 얽히고설킨 말과 논리를 풀어갈 줄 아는 눈을 더 열심히 길러야겠단 생각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을 다룬 판결문들이었다. 회계 얘기가 잔뜩 나오는 통에 단어를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심과 2심을 열심히 읽어 갔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너무 짧고, 부족하며, 부적절한 논지로 뒤집어 엎는 걸 목도했다. 사실판단은 하지 않는다던 대법원은 판결문에 사실상 사실을 판단하는 주장들을 담아냈다. 사건이나 법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였음에도, 원심 판결문을 읽은 상태에선 이 주장들에 여러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마지막 시간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비교적 다행스러운’ 판결문을 읽었지만, 강론을 듣고 토론하면서 좋은 판결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단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색해서 어렵던, 어려워서 어색하던 ‘사법감시’란 말이 익숙해질 때 즈음 강의가 끝났다. 사법부를 감시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듣고, 판결문을 읽으며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또 우리가 감시해야 할 사법부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언제라도 우리 앞에 닥쳐올 수 있는 사건을 다루며, 우리 곁의 누구라도 옭아맬 수 있는 게 바로 사법 권력이었다. 그만큼 사법부가 잘 운용될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 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걸 매번 상기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며, 져야 할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을수록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민의 책임, 그게 바로 사법을 감시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양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