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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페미니즘, 그 이로움에 대하여
<'페미니즘, 그 이로움에 대하여'를 주제로 강연 중인 손희정 문화평론가 ⓒ참여연대>
어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최대 이슈인 페미니즘에 대한 강의여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참여연대 건물에 모이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 최태섭 선생님을 통해 한국 남성성의 변천사를 짚어보았다면, 이번 주 강의는 손희정 선생님의 <페미니즘, 그 이로움에 대하여> 강의를 통해, 한국 영화가 성과 사랑을 시대별로 어떻게 표현하였나, 한국 영화에서 '위기의 남성성'이 신화화 되고,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주입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영화를 많이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가는데, 한국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해외 영화만 주로 보는 편이라서, 지금까지는 주변에서 (한국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제가 별종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한국 영화를 안 보시는 분들을 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사라졌다는 도입과 함께, 성과 섹스도 사라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었기에 한국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만, '성과 섹스도 사라졌다'는 부분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어서 왜 그런 것일까 궁금해서 강의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 신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졌을 때, 한참 전의 영화인 <해피 엔딩>이 나왔던 것은 많이 놀라웠습니다. <해피 엔딩>에서 그려진 포스트 IMF, 포스트 IMF 시대의 만들어진 (왜곡된) 여성상과 여자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지고, 어떻게 단죄되었는가 쭉 듣다가, <해피 엔딩>의 감독이 20년 뒤 만든 영화와 비교하면서 두 영화 안에서 여성 캐릭터가 다루어진 방식, 여성 캐릭터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성과 자유를 갈망하는 것으로 비춰진 여성 캐릭터와 같이 등장하는 젊은 남성 캐릭터가 영화 결말에 어떻게 단죄되는가. 주인공 격인 중년 남성 캐릭터는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연민의 대상으로 표현되는가' 듣다보니, 그 동안 한국 영화가 별로라고 뭉뚱그려서 비판만 하고, 해외 영화만 찾아보던 제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강의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다뤄지는 방식에서 중년 남성이 그려지는 방식을 다루면서 이를 '아빠X'이라고 칭합니다. 한국 영화에서 한국의 시대 정신처럼 다뤄지는 중년 남성 가장에 대한 신화를 지적하면서, IMF 이후의 한국 영화의 주된 줄거리가 아버지의 성장 진화, 치유 과정이 한국 영화의 주류가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중년 남성 가장(여기에는 대부분 아내를 잃었다는 설정이 같이 따라오는)의 성장과 치유가 붐을 이룬 이후에는 그 다음 단계로 '유사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사 아버지를 다룬 영화 역시,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가족 형태를 다루지만, 여전히 남성이 중심이 되어 영화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소위 말하는 '아빠뽕'은 IMF이후 영화를 통해 대거 확산/소비 되었다. ⓒ참여연대>
그 다음 한국 남성이 주류를 이룬 영화가 계속 되던 와중에, 90년대에 여성이 중심이 된 영화 (특히 로맨틱 코메디)가 붐이 일었던 현상에 대해 짚어보게 됩니다. 7, 80년대 에로 영화, IMF 때의 중년 남성 가장이 중심인 영화, 요즘 추세인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이렇게 남성이 주류인 영화가 쭉 이어지는 중에 잠깐 여성이 중심이 되었던 영화가 제작이 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이 마저도 진정한 의미의 여성 중심 영화가 아니라,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여성에게 자유가 주어진 듯 보이지만 결국 영화는 여성이 남자 주인공과 결혼하거나 임신하는 상황이 행복한 결말인 것처럼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끝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예전의 전통적인 방식의 가부장제가, 여성에게도 경제적 활동으로 가정을 책임지도록 이끄는 연대 형식의 공적가부장제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새로웠습니다.
그 밖에도 90년대부터 2017, 2018년대까지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그린 방식, 한국 예능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왜 여성혐오 분위기가 미디어에 나타나는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위해 여성혐오가 어떻게 이용되었나, 어떻게 가부장제를 전제로 한 계급갈등이 요즘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젠더갈등의 원인이 되었는가 등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 발표 자료 안에 삽입된 한국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한국 영화가 이렇게 많았던가 새삼 놀라고, 그 영화 중에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얼마나 많았는가 또 놀라고, 영화 안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숨어있다는 것에 경악하고, 강의를 위해 그 영화들을 다 보시느라 고생하셨을 선생님께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의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신 손희정 선생님과, 좋은 강의 들을 수 있는 기회 마련해주신 참여연대 아카데미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