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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섹슈얼리티, 민주주의 - 오해와 편견을 넘어 1강 -한채윤 (비온뒤무지개 재단 상임이사)
<섹스의 사기극 : 일단은 머리 속 묵은 ‘신화’ 털어내기>
사람들에게 최근 사회적인 이슈를 몇 가지 물어본다면 다양한 이슈들이 나오겠지만, 빠지지 않고 등장할 것이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일 것입니다. 이는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서점에서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여성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여연대에서는 여성주의 운동과 동성애 운동을 활발히 하고 계신 한채윤 강사님과 함께 젠더와 섹슈얼리티,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5주에 걸쳐 나누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섹스의 사기극 : 일단은 머리 속 묵은 ‘신화’ 털어내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1. 사람을 그려보자
강사님이 첫 번째로 던진 질문은 “사람을 그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열심히 사람을 그려나갔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여성을 그려보세요”였습니다. 수강생들은 어리둥절했지만, 두 번째 종이에 여성을 그려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사님은 “남성을 그려보세요”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 번째 종이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첫 번째 그린 사람을 남성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기본형’을 생각하면 남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입니다. 또한, 그 남성은 포대기에 쌓인 아기이거나 5살 혹은 10살의 남성이 아닌 성인의 남성을 그립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깊이 박혀있는 사람의 ‘기본형’인 겁니다.
2. 성별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사님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성별은 이분화해서 보아 우리가 남성이거나 여성일 때 자신을 “다른 성과 구분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목소리에서 차이가 난다”, “남성은 아니기 때문에 여성인 것이다” 혹은 “임신할 수 있으면 여성이다.” 등등 많은 답변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들은 반박이 가능한 답변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남성의 목소리라고 하는 중 저음을 가진 여성이 과연 없을까요?”, “남성이 아니라면 꼭 여성일까요? 그리고 남성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임신하지 못하는 여성은 여성이 아닌가요?” 등 다양한 반증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별의 차이로 남게되는 답변은 신체적인 차이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생식기관이 다르고 호르몬, 염색체에서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과연 성별에 차이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한채윤 강사님은 자신이 생물학자는 아니지만, 신체적으로 성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 의문을 던지며 독학으로 성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 공부한 결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들은 성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선입견을 하나씩 격파하였습니다. 한채윤 강사님의 구체적인 생물학 논증을 글로 전달하기는 힘들기에 결론적인 부분들만 쓰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성별의 차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염색체는 생식기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또한 호르몬의 차이에 있어서 여성호르몬이나 남성호르몬이 어느 정도로 나와야 여성 혹은 남성이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척도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생식기관의 차이는 정자와 난자 결합 후 4주차에 결정이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최초의 여성생식기관과 남성생식기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즉, 인간에게 타고난 성별은 없고, 그러므로 성별을 명확하게 구분할 차이는 없는 것입니다.
3. 성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별에 차이가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별은 어떻게 주어진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침투해 있는 걸까요? 결국 성별은 사회가 만들어 냅니다. 국가가 성별을 정해서 각각의 번호를 부여해줍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에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은 그것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눈치챈다면 우리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성별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별을 이분법으로 나는 남성 편 혹은 나는 여성 편으로 편 나누기하여 싸우지 말고 사회적으로 주어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별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은 성별의 차이에서 벗어나 개인의 차이로 보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차이는 위에서 보았듯이 알 수 없습니다. 즉, 사람들은 성별의 차이가 아닌 개개인들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보지 말고 한 개인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나 혼자만 개인차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성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차라는 시선을 강요해서는 갈등이 깊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성별의 차이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작동하는지 먼저 이해시키고 개인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성별에 대한 논의가 진전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성별의 차별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남성중심의 사회체제는 자연스럽게 남성중심의 교육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사회에서 사회화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의 목소리는 나오기 힘들 수 밖에 없고, 사회가 이야기하는 여성은 남성이 바라본 여성을 반영하게 됩니다. 또한, 성별을 남성, 여성 이분화하여 나누는 현상도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여기서 벗어난 여성은 저항하는 혹은 공격적인 여성으로 매도되고 일반적이지 않은 여성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동성애의 영역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본형’에서 벗어난 논의들은 사회에서 낙인 찍히고, 비주류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이 끊임없는 논의와 저항만이 기존 체제를 바꿀 수 있는 길입니다. 기존 사회에 머무는 순간 변화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에 대해 저항해야 합니다. 기존체제의 획일성에 대해 다양성으로 대응하며, ‘왜?’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던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형’이란 개념은 없어져야 합니다. 기본형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다양성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