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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를 위한 일곱 개의 열쇠 3강 (5/22)
아앗, 2강 후기를 쓰고 나니, 새삼 저번 주에 들은 3강이 왜 상상, 자연과 함께 꾸는 꿈이여야만 했는지 깨달았다.
2강은 직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헌데 막상 2강 후기를 쓰고 나니, 어떻게 직관이란 것은 우리 속에서 피어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3강 제목을 보니, 흠, 상상이 우리의 직관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은 흔히 사람들은 상상을 우리 마음 속 여러 상을 조합해 또 다른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하지만 상상은 우리의 관념에 갇힌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 바슐라르에 따르면 자의식이 느슨해진 상태에서 나의 바깥의 존재를 내 안에서 경험하고,
타자를 나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선생님이 가져오신 꽃을 보고, 그 꽃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셨다.
사실 내 상상이 꽃의 입장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조금 삭막한 교실 바닥에 놓인 꽃 화분이 그 화분을 둘러싼 인간들과 하얀 벽을 보고
매우 어리둥절하면서도, 외로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헌데 그 생각이 내 생각인지 꽃의 생각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강의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대화 나누는 시간에
강의 시간에 나온 이야기인 독수리가 쥐를 물었을 때 육즙의 쾌감은 무엇일까, 무슨 맛일까, 생각하다보니,
새삼 우리 인간이 동물이란 생각을 잊고 있었다는 말도 나오고,
지하철 각 노선마다 우울해지는 노선이 있고, 기분이 좋은 노선이 있고,
그 노선이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재미있어 하기도 했고,
이처럼 상상 속 세상은 좀 더 넓고 풍부한 지도를 갖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걷기 좋아했던 난,
가끔 한시간 반 정도 걸어 집에 오곤 했다.
한적한 길도 있고, 지하 터널도 있고, 작은 강을 다리 위에서 건너기도 하고,
아파트 촌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꽤 다양한 곳을 탐험하듯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새삼 그 때가 떠오르면서
서울의 서쪽 지역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곳이므로 황무지 같고,
우리 집이 있는 곳은 다정하고,
느티나무가 있는 경복궁 역은 조금 따뜻한 섬같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이래저래 생각해 보니 재미있다.
여튼 일주일간 세상 속에 살다가 강의를 듣고나면
조금 에너지가 생긴다.
햇볕을 한 모금 먹었다고 해야하나.
시간이 지나면 스르륵 잊혀질지도 모르지만,
되새김질 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