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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번째 | 저 들에 서서,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리라
저 들에 서서,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리라
인터뷰 글을 쓰기 위해 아이폰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폴더를 열자 수많은 음성녹음 파일들이 한꺼번에 뜬다.
파란 콩나물 대가리만 쭈르륵 디민 채 온통 다 똑같이 생긴 놈들.
그 중에서 필요한 녀석을 찾아내려면 날짜가 적힌 파일명을 확인해야한다.
♪ 20120214 163931
오우~ 날짜와 시간, 초 단위까지 정확히 알려주는 mp3의 놀라운 센스!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 그가 물었다.
“발렌타인 데이인데 괜찮아요?”
너무 괜찮아서 미치겠다, 왜!..... 헌데 나만 괜찮은 건 아니잖아? ㅎㅎ
날짜를 확인하고 더블클릭, 재생버튼 누르고 스피커의 볼륨을 조정하려던 순간이었다.
“우하하하하!...... 푸하하하하......... 히히히히....”
플레이되자마자 터져 나오는 풍부한 성량. 이 파일이 확실하군....
볼륨레벨 27로 재생되는 그의 웃음은 가히 파괴적이다.
소리를 확 낮춘다. 애들 깰라, 이눔아!
김민수 간사...
그를 처음 본 시점을 더듬는다. 그건... 3년 전이다. 간사가 되기 전 까까머리의 성실한 자원활동가였을 때 처음 그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있다 그가 사주는 술 한 잔을 얻어먹고 급격히 친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 그 전에 또 다른 루트로 그를 미리 접하긴 했었다. ‘민수파일’이라는 컴퓨터 파일의 이름으로 말이다. 느티나무 자원활동가였던 우린 그렇게 서로 업무의 파일명으로 먼저 수인사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지금 난 그와의 인연을 마무리 짓는 또 다른 파일 앞에 앉아 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 시작과 끝에 관한 기억을 짚어내고 기록해야한다는 건 내겐 낯선 일이다. 그 기록의 흑백과 명암에 상관없이 그것은 좀 서글픈 작업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빽뮤직으로 깔리는 그의 웃음은 군더더기 없이 맑기만 한데 컴퓨터 화면의 흰 종이를 까만 글자들로 꾹꾹 채워가는 있는 내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세상의 모든 ‘끝’은 그렇게 잿빛이다. 좋았던 일, 나빴던 일들이 끝에 가서는 모두 한 지점에 섞여들어 만들어내는 색...
지나온 모든 기억들이 어두운 빛깔 하나로 뭉뚱그려지기 전, 그 안에서 각자 자신의 목소리로 빛을 발했을 그 이야기들을 떼어내고 추리는 작업... 그 일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빛깔
“색깔이요?”
그래, 색깔... 그의 인생을 시기별로 나누어 색깔로 규정해보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가 선뜻 답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거냐며 초장부터 시비다. 황새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의 답답함과 짜증을 너그러운 황새로서 용서하노라...
“아, 이런...오늘 피곤한데 하필... 컨디션이 좋았으면 색깔이 엄청 맑았을 텐데...(궁시렁 궁시렁)”
으이구, 그거랑 뭔 상관이냐, 녹음분량 늘리지 말고 얼렁 생각이나 해라, 쫌!
“(진짜 한~참 궁리 끝에) 좋아요, 과거는 노랑, 현재는 풀빛의 연두, 미래는 뿌리의 짙은 갈색... 이렇게 하죠!”
대답해줘서 눈물나게 고맙다. 그럼 색깔별로 들여다볼까?
그의 지난날 - 노랑
그는 여유있는 집안의 외동아들로 자랐다. 그래서 가끔 대책 없이 웃어젖힐 때마다 그의 커다란 입속을 바라보며 문득문득 그 계급적 배경(?)을 기억해내곤 했다. 그러나 태생이 그렇다고 해서 그의 지난날이 병아리 날개마냥 매번 노랗게 퍼덕이진 않았을 것이다.
“언제가 가장 좋았냐면, 제가 대학 때 전과했던 거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원래 공대생이었는데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거든요.”
음... 그런 게 왜 가장 좋았던 일일까? 혹 경영학과에 예쁜 여학생이라도?
“처음엔 건설건축학부에 입학했는데 공부를 안 해서 원하던 건축 쪽으로는 가지 못하고 결국 2학년 때 적성에 맞지 않는 건설환경공학과로 가게 됐죠. 근데 사실 첨엔 의대를 가려고 했었거든요, 그게 안 돼서 차선이었던 건축으로 방향을 돌린 건데, 결국 그것도 안 된 거죠. 물론 둘 다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그러던 중 전과공지가 났어요. 그래서 옮겨갈 수 있는 과들 중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지워냈어요. 그랬더니 경영학과가 남더라구요.”
단지 경영학과에 갔다는 사실이 좋았다는 건 아니지 싶은데...
“그게... 제 생애에서 처음으로 제 스스로 결정을 내린 순간이었거든요.....”
의대도 건축공학도 그가 생각해낸 그의 미래는 아니었다. 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그의 아버지의 바람이었을 뿐... 아버진 의사이셨던 할아버지의 소망대로 의사가 되어드리지 못했다.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긴 했지만 그게 마음의 짐으로 평생을 갔을 터였다. 하지만 그 꿈을 대신 짊어졌던 그도 결국은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의 인생에서 다른 이들의 꿈이 쓸쓸히 빠져나갔을 때, 그렇게 혼자 우두커니 남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는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었다.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죠.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내리는 삶...”
전과공지와 상관없이 모든 과로 다 옮길 수 있었다면 어디로 가고 싶었어요?
“없었어요.”엥? 없어?
“솔직히 말하면 그 전까지 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아니, 어떻게 대학생씩이나 돼 가지고 인생에 대해 고민 한 번 안 해 볼 수가 있지?
“그래도 충분히 살 수 있었으니까요... 즐거웠고, 누릴 것도 많았고, 부족한 것도 없었고...”
부족한 게 없어도 하고 싶은 거라든가 꿈은 있었을 텐데... 정말이지 대책 없이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살짝 의심이 간다. 자기가 무슨 시크릿가든의 현빈이야? 가난을 책으로 배우게... ㅋㅋ
“하고 싶은 거? 그런 거 없었어요. 고민해 본 적도 없고...”
쏘우 쿨하게 답변하시는 이 부잣집 도령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좀 어이가 없기도 했고, 그래서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물으니 더더욱 쿨한 답변이 날라온다.
“부잣집 아들놈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요 뭐^^ 푸하하하... ”
이 대목에서 한땀한땀 만들었다는 그 반짝이 츄리닝이 떠오른다. 그한테 어울릴까나...
“그 대신 종교 활동은 열심히 했어요. 기독교동아리 IVF 활동은 진짜 열심히 했다구요.”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섞어 입 안에 가뜩 넣고는 우물거리며 무슨 대단한 변명거리라도 발견한냥 싱글거린다.
“그 전과의 경험이후로는 지금까지 계속 쭉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죠. 진로문제도 그렇고 종교와 신앙 문제도 그렇고... 군대에서의 경험도 제 삶을 변하시키는 계기가 됐죠. 그 전에 제 사고방식은 A가 안되면 그 뒤로 A'가 있고 A''도 있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군대시절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게 바뀌었어요. 어떤 것은 A'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A가 안되면 그걸로 그냥 끝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가장 좋았던 일을 묻고 나서 다시 던진 가장 나빴던 일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군대시절 겪었다던 그 사건, 철부지 부잣집 도령의 A'와 A''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사건... 그것이 알고 싶었지만 그는 곧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어떤 경우엔 그걸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가 나고 자란 옥인동,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의 자식들이었던 친구들, 사업하느라 늘 늦게 들어오시던 아버지, 동네아이들을 집에 모아 놓고 성경을 가르치시던 어머니, 잠옷 바람으로 뛰어 놀던 골목길, 6시 이후엔 밖에 나가 놀지 못했던 규칙, 집에 찾아 왔던 손님이 떠나려 할 때 가지 말라고 울며 떼쓰던 아이....
그의 지난날들의 조각들.... 그 파편들에 그가 이름붙인 빛깔, 노랑....
세상을 향해 발자국을 찍다 - 풀빛의 연두
현빈처럼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도 본 걸일까... 그 잡지책에 참여연대 광고라도 있던가요? 세상과 자신의 앞날에 대해 별다른 고민 한번 안하던 이가 갑자기 웬 시민단체 간사?
지갑 보여주고 ‘나 돈 많아요’ 하면서 면접 통과한 건 아닐 테고...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학사장교로 군대에 갔어요. 군대 제대 후엔... 음, 사실... 남들처럼 직장과 취업에 대한 고민은 크게 안 했어요.... 아 맞다!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사진기자!!”
휴~ 그가 드디어 하고 싶은 걸 찾았다. 참말로, 내가 엄마도 아닌데... 뭐라도 하고 싶은 게 나타났다니 정말 다행스럽기 그지없는 이 마음은 대체 뭔지... 쩝~
그 커피든 아이스크림 좀 그만 먹고 대답 좀 하시죠, 김간님!
“우연한 기회로 사진기자에 대한 꿈이 생겼죠. 그런데 촬영하는 자와 촬영 당하는 자가 갖는 관계의 위계성을 생각하게 됐고, 긴 호흡으로 만나지 않는 대상을 촬영한 사진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죠. 그리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처럼 꼭 직업 사진기자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세상과 사진을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장은 많이 있더라구요. 언론고시라는 거 길게는 2-3년까지 시간을 투자해야하는데 뭐 그러고 싶지도 않고...”
아 진짜, 취업에 대한 절실한 필요가 없으니 이분이 이렇게 헐렁하게... 어쨌든 그 다음은?
“기독교 동아리하면서 한국근현대사에 대해 접할 기회들이 있었어요. 사회학교라는 식으로 강의들이 열려 들으러 다니고 그랬는데... 어쨌든 그때부터 알음알음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해서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주위에 유독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던 친구들한테 영향을 받기도 했구요. 그때 한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충격도 많이 받았죠. 광주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변혁에 동참하는 것... 제 삶의 이유를 그곳에서 찾게 된 거죠.”
그가 ‘드디어’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세상의 뒤편을 본 순간 삶이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사란 이렇게 생의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도가니다. 지나간 일들을 바르게 적어야하는 이유는 여기서 더욱 분명해진다.
“사람마다 본인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시기가 다 다른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그런 것에 관심을 두기도 했었는데, 저한텐 대학 3-4학년 시기가 그런 시기였어요.”
그전까진 집 근처에 참여연대가 있는 지도 몰랐다. 전역하고 여행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여연대를 처음 봤다. 그리고 그 앞에 붙여진 인턴모집 광고...
“인턴을 뽑는다길래 지원했어요. 그리고 자원활동가도 했구요. 첨엔 무슨 토론회가 열리면 찾아가서 듣고, 간사들한테 찾아가 얘기도 나누고 그랬죠.”
타고났다. 김간의 친화력은... 그 이후로도 그의 친화력과 친절함은 느티나무의 레전드가 되었으니... 김간호사라는 별칭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다.
참여연대 느티나무에 배정받아 근무한 3년... 어땠어요?
“전 참여연대에 있으면서 사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사실 근무 부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나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어떤 일을 하냐보다 누구와 일을 하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참여연대에서 좋은 선배들 하고 함께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죠^^”
참여연대에서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선배들... 그 중엔 진심으로 한국사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자신의 삶을 전부 던지는 이들... 그들의 삶은 때때로 거울이 되어 그의 온몸을 비췄다.
“그리고 참여연대 간사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사랑해주신 회원님들, 느티나무 수강생들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죠. 늘 격려해 주시고 지지해주시고, 선물해 주시고...ㅎㅎ”
맞습니다. 저도 돈 좀 썼었죠...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커피 사주고....ㅎㅎ
2년 반 정도 한곳에서 근무하다보면 새롭게 삶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도 할 텐데...
“느티나무에서 일하다 보니까 어느 날 문득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지만 제 눈에는 명보다 암이 더 커보였던 거죠. 대중강좌다 보니 강의를 소비하고 갈 수 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제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이 시대 많은 문제들에 대한 제 나름의 궁극적 대안이 늘 지역 기반의 공동체로 귀결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것도 힘들죠. 생활 안에서 구체적인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부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회의가 들었었죠.”
그래서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물론 그게 다인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변혁시키지 못하는 공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근데 그런 시각이 치기 어린 생각임을 많이 깨달았죠. 다양한 강좌와 수강생, 그들의 경험을 접하며 대중강좌 안에서도 삶의 변화를 위한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죠.”
렌즈에 찍히는 피사체에 대한 번민과 공감이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가, 그 슬픈 이야기들 때문에...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살아가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늘어지는 삶을 다시 한 번 추스르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의 밑바닥을 봐야했던 쓰라린 기억도 있었으나 그 곁엔 그를 아껴주었던 사람들도 늘 함께 있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따라 세상 안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발자국...
그곳에 그가 더한 빛깔.... 풀빛의 연두
새 들에 서서 - 뿌리의 짙은 갈색
그렇다면 그가 지금 참여연대를 나서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많은 애정과 존경하는 선배들과 사랑하는 수강생들이 있는데... 그는 왜 떠나는 것일까?
“지금 이곳이 아니라서 가는 건 아니에요. 지역공동체가 있는 안양으로 이사한지 4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그곳에서의 활동과 참여연대를 잘 병행해나갈 마음과 욕심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지역에서는 저녁에 사람들과 만날 일이 많다보니 저녁에 할 일이 많은 아카데미 간사 입장에서는 곤란함도 많았죠. 그래서 참여연대 내에서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부서로 옮기려 생각한 적도 있죠. 근데, 제 생각엔 활동가가 자신의 삶을 걸고 일할 때 조직의 건강함이라는 것이 유지되고 발전해나가는 건데, 전 활동가이면서도 또 지역 활동에 열정이 있고...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모두 가져가는 게 맞는 건가 하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그러고 있을 때,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위치한 초중고 대안학교 ‘새 들 마을학교’에서 상근 선생님으로 일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이렇게 떠나기로 한 거죠.”
흥! 참여연대보다 지역이 더 중요하다는 거지.... 그지?(갑자기 반말, 성격 나옴)
“그런 건 아니고... 그 전부터 삶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할 때 결국 해답은 하나더라구요. 지역 공동체... 지역에 내려가 지역공동체를 꾸리고 그 안에서 품앗이로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그것이 제가 꿈꾸는 삶이고 세상이에요.”
김간과 알고 나서 엄청 많이 들어왔던 그 지역 공동체 이야기... 한때 그의 삶을 옭아매는 주범이 아닌가 하고 나한테 겁나게 오해받았던 그놈. 하지만 그와 한해 두해 지내다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았을 때, 그리고 누구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칼날에 깊게 베였을 때 그는 그곳을 찾아갔고 그 안에서 상처는 아물었다. 삶과 감정을 종이처럼 흩뿌려대며 비틀대던 시간들 또한 그곳에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지금 이 순간과 더불어 내일을 기약하며 더 많은 꿈들을 품게 해준, 그가 즐겨 쓰는 말처럼, 삶을 변혁시키고 사람과 생명의 가치에 더 가깝게 밀착할 수 있게 해준 이들...
그것이 그가 그리 사랑해마지 않는, 안양의 한 동네에 위치한 지역운동의 실체다.
그는 이번 봄 학기부터 ‘새들 마을학교’에서 미술사와 수학, 기타(악기)와 농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첨엔 마을학교에서 선생님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자신도 없었고... 월급문제도 있고 다른 문제들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나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그곳에는 많은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더 많았죠.”
그가 앞으로 일하게 될 새 직장 ‘새들 마을학교’. 그 곳은, 아이들은 마을이, 사회가, 이 세상이 함께 키우고 가르쳐야한다는 그런 상식적인 꿈을 꾸는 곳이자 그런 소박한 꿈을 삶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곳이다.
마을학교라는 이름은 있지만 아직은 그 무엇 하나도 튼튼하지 않은 공간...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그에게 바보같이 심경을 묻는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들판으로 나가는 느낌이에요. 여기서 쓰러지면 끝이다... 뭐 그런 비장함도 살짝 있구요...”
그즈음 소설 ‘태백산맥’을 읽었다. 폭풍처럼 휘몰아가는 시대에 태어나 그 안에서 자신이 스스로 ‘나’라고 규정한 것을 지켜내고자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 그들의 삶과 행동에서 그는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다른 그 어떤 근사하고 거창한 대의보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것들, 늘상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버리는.... 내가 ‘나’ 안에 ‘내 것’의 일부라고 믿고 싶은 것들... 그것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삶.... 그렇게 살고자 하는, ‘나의 생’을 향한 투지... 그래서 삶은 늘 비릿한 냄새로 숨을 쉰다.
그도 그렇게 살고 싶은 거라고 이해했다. 그러자 노랫말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리라...
그래서 학교 이름이 ‘새 들’인 걸까... 그 들에 서서 그는 무엇을 이루어낼 것인가...
그 들에서 무언가는 일어서고 또 무언가는 사그라지겠지만, 그의 발 밑, 그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흙과 그 흙의 단단함이 오래도록 그를 붙들어 줄 것이다. 그 옛날, 그 들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던 아기 예수와 그 들에 서서 헐벗은 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했던 청년 예수에게 그 들판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교육이라는 건 대안적인 교육기관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교육을 마치고 나서도, 대안학교를 나와서도 삶이 자연스럽게 사회와 연결될 수 있게 지역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필요한 거죠. 그렇게 지역공동체와 그 지역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마을학교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하는 거고... 제가 이제 하려는 일도 그런 구조를 만들어보려는 노력 중 하나인 거죠. ”
이것이 그가 마을학교 선생님으로서 가지고 있는 비전이다. 배움과 삶이 일치되는 세상... 그런 삶을 위하여 언젠가는 농촌으로 이주할 목표도 가지고 있다. 그곳에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놓는다면 아이들 앞에서 좋은 대학으로 대표되는 기존가치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가르치고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경쟁이 아닌 배려를 가르치고 소유가 아닌 공유와 나눔의 삶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모든 것들은 그가 꿈꾸는 ‘생명과 평화가 충만한 세상’을 향해 나가는 묵직한 뿌리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
하여 그가 선택한 꿈의 빛깔.... 뿌리의 짙은 갈색
이별
사실, 그닥,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그와 알고 지낸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머리 맞대고 나눈 이야기들을 우린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또 다시 떠들어댔을 뿐.... 그렇담 평소에 안 하던 얘기도 좀 할까? 혹 이담에 아빠가 되면 아이에게 무슨 얘기 해 주고 싶어요?
“아빠가 되면요? (좋아 죽는다) 으흐흐흐... 어렸을 때는 부모로 만나고 커서는 스승과 제자, 나중에는 친구로서 만나고 싶다고... 그렇게 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는 그렇게 자기에게 온 새로운 생명에게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해 주고 싶은가 보다. 하긴 생명이란 하나의 가치 앞에 우리 모두는 평등하니까... 역쉬 참여연대 간사 출신의 아빠다운 말씀이시군요. 이 아름다운 명언을 끝으로 인터뷰를 끝내려 하는데 그가 다급하게 붙잡는다.
“누나... 그거도 써 주셔야 하는데...” “응, 뭐???”
아.... 그래 후원에 대한 이야기... 마을학교 후원에 혹 도움이라도 될까하여 내 쪽에서 먼저 실어주겠다고 약속한 거였다.
인터뷰 내 공지사항
김민수 간사를 격하게 사랑하시는 느티나무 수강생 여러분들!
그리고 1만 참여연대 회원님들!
아이들은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기특한 청년을 위해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정기후원과 특별후원이 있구요,
자세한 것은 김간에게 문자나 전화 혹은 페북으로 연락바랍니다.
저는 이미 후원 약속했구요... 꼭 동참해주셔요 ^^
인터뷰를 하고 한 주 후에 그를 송별회에서 다시 만났다.
공식적으로 참여연대에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주인지라,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런저런 인연들과 인간관계들을 정리(?)하느라 바빠 보였다. 모여서 술잔을 나누던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간사 몇 명만 남은 늦은 술자리에서... 그는 내내 참여연대 얘기만 했다. 조직이 어떻고 선배가 어떻고 운동이 어떻고 전망이 어떻고... 이제 스쳐지나가야 하는 자의 서글픔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고 새벽이 왔으나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제 당분간 보기도 어려울 것이고 사실상 참여연대 간사로는 마지막 보는 것이니 무슨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야 했으련만... 잘 살아라... 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내내 그냥 시간만 함께 죽이며 앉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쿨하게 보였으려나...
이별은 골백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준비된 만남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별은 준비로 되는 게 아니다. 그냥 때가 돼서 니가 니 갈 길로 가고 나도 내 갈 길로 가고... 그러면 그게 이별이고 그렇게 헤어지면 되는 거지, 뭐.... 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실감이 안 났던 거다.
더는 참여연대 2층에 앉아 미친 듯이 웃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단 사실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장례식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를 한 줌의 땅 밑에 묻고서도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은 그렇게 장례의 예식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늘 그가 머물던 자리가 비어있음을 확인했을 때... 그때가 돼서야 어떤 존재가 ‘부재’한다는 단어의 의미를 처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별의 감정이란 그렇게 시간이 걸려 뒤늦게 올라오는 것임을...
그에게 줄 마지막 선물로 에르네스트 르낭의 ‘예수의 생애’를 고른다.
청년 예수가 살아낸 33년이라는 따뜻한 삶의 기록을 손에 들고서... 고심 끝에 몇 자 적어 넣었다.
‘이제 너도 그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구나... 그가 살아낸 삶이 그토록 아름다웠듯, 이제 그와 함께 가려는 너의 앞날도 그의 얼굴을 닮아 내내 아름다울 거라고.... 난 믿는다’
책 표지에는 머리 위에 가시로 된 관을 얹고, 약간은 슬픈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는 예수가 그려져 있다. 그 눈엔 슬픔 말고도 고뇌가 엿보인다. 그런 그의 얼굴은 그가 신의 아들이기에 앞서, 하느님과 신성을 나누어 가진 자이기에 앞서, 그저 우리 인간의 모습을 한, 고뇌하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한 청년의 얼굴일 뿐이다. 그 서글픈 얼굴에서 때때로 위안을 받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어졌던 남자...
신이 전지전능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신은 예수처럼, 우리처럼 결코 한 번도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예수가 신으로서 위대한 까닭은 그가 한때 인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제 마을로 아이들 곁으로 그리고 주저 없이 그와 많은 걸 함께 하려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는 나의 친구에게... 이 책을 건넨다.
그 새벽... 나는 그와 국수 한 그릇을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김민수 간사
인턴시절에 첨 봤다. 잘 생긴 청년 . 한참후 느티나무 수업 들으러 가니 담당 간사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싹싹하고 친절했다. 자주.크게 웃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때론 오버가 아닐까도 생각했다. 수강생들 챙기고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때면 - 가식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지독한 인간일거구... 맨날 이렇게 좋은 얼굴로만 살기도 힘들텐데...라 생각했다. '공동체'를 선택하고 그 지역 선생님이 되고 자기 선택을 하는 사람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자신 있으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 .. 날 버리고 떠난다니 은근 화가 나기도 하지만..... 느을 행복하기를 ... ^^
단장님 글 잘 읽었습니다 ^^
'날 버리고 떠난다니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지만.....' ?????
아..... 민수 이눔아가 사람 여럿 버리고 떠나는군요.
다음에 만나면, 몇 대 때려줘야할 듯.... ㅎㅎ
그를 보내는 느티나무 사람들의 아쉬움들을 그대로 전달해주신 글.. ^^
멋진 청년 김 간사님, 정말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고 따를 것 같습니다! 즐거우시길!!
지난 인터뷰들보다 읽는 내내 더욱 뭉클함이...
웃음소리로 시작한 인터뷰가 콧끝 찡한 촉촉함으로 마무리되니...이별의 애잔함이 더욱 느껴지네요.
비교적 덜 상처받으며 자라난 한 청년이 삷의 뒷모습들을 알아가며 성숙해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옮긴 삶의 공간에서 튼튼한 뿌리내려 잎도 무성해지길 기원합니다.
놀이정신^^선물한 책에 적어준 글귀^ 정말 감동이야요 !!!
단장님의 헛헛함을 어찌 다독여줘야하나 ㅋㅋㅋ
ㅎㅎ 술로 달래주세요, 쿨한 인생님^^
그러고도, 오늘 새들마을학교에 자동이체 신청했다능....
아, 난 정말 조카를 넘 싸랑하는 이모^^
아, 어느새 두주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전 아이들과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 공부해서 하루 가르치는 일정이 조금 힘들게도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겠지요.
두주 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 가득합니다.
다시 뵐 때 까지 모두 건강하세요.
연구소 간사님께 확인 완룟. 감사하옵니다. 누님. 전화드린다는게 깜빡. ㅎㅎ
잘 지내지?
아이들이 널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노파심에 걱정... ㅎㅎ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는 삶을 위해....
입금했다^^
오잉? 두 주밖에 안됐다고요?
민수씨 못본지 한달도 넘은 것같네요. ㅋ
가르치며 공부하기... 그거이 공부의 진수^^
민수씨를 선생님으로 만나는 아이들은 행복할 거에요.
아이들 교육이 어른들을 만나는 느티나무에서의 교육과 많이 다른 점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교육'은 통하는 만큼, 나중에 우리한테도 한수 가르쳐주시길.
헤헤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네요. ^^
참여연대 들릴 일이 있어서 잠시 사무실 들리려다 너무 금방 찾아뵙는 것 같아서
그냥 집에 왔었네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오래 떠났다 싶을 때 다시 찾아 뵐께요.
느티나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