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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이해] 6강 - 그리스도교 ③ 강의후기
세계 종교의 이해 : 6강 (4/09) 그리스도교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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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선생님의 종교 강의를 들은 것도 벌써 여섯번 째! 이제 겨우 두 번의 수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번 주는 기독교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중세 기독교에서부터 현대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중요 사상가들의 철학과 기독교 신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예정된 시간이 훨씬 넘어서 끝났을만큼 수강생들의 참여도가 유독 높았다^~^/
1. 하나님의 시대, 중세 기독교
중세 유럽은 기독교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유명한 일화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황제가 교황의 승인을 받기 위해 삼일을 무릎 꿇어야 했던 시절이 당시의 유럽이었다.
자연스럽게 신학이 발달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람은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이들은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했으며 스콜라 철학의 지평을 열었다.
사실 두 신학자의 논리는 지금에 와서 다소 엉뚱해 보이기도 한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을 보자. 인간은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그런데 불완전이라는 개념은 완전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의 세계에는 인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존재가 있고, 그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 안셀무스의 주장이다. 말장난 같지만 쉽게 반박하지도 못하겠고 철썩같이 믿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증명은 어떨까. 여기에 A라는 대상이 있다. A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A를 있게하는 B가 있어야한다. 마찬가지로 B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C가 있어야한다. 이렇게 존재의 근원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가장 최초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까? 맞다. 그래서 제1의 원인이 하나님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두는 비슷한 반론을 떠올렸을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서 왔다는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유럽인들에게 이들의 한마디가 어마어마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섭기만 하다.
오강남 교수님께서는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시대 순으로 알려주셨다. 지금부터는 이를 재구성해서 기독교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을 정리하려고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원형을 살펴보는 한편, 기존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되돌아보며 오늘날에 필요한 종교가 무엇일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2. 기독교의 변화를 이야기하다
이분법적 사고의 근원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되었다. 세상에 선과 악이 전재하는 이유는 선신과 악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조로아스터의 해석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은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성향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은 과학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과학의 발전은 성경과의 충돌을 의미했고, 이에 초조함을 느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최초의 반란은 루터의 종교개혁일 것이다. 교회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자 이에 경멸을 느끼고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직접 영국 교회를 설립하고 우두머리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영국 교회의 지도자는 영국의 왕으로 계승되고 있으며, 영국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회로 불리고 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에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종교가 오히려 분열의 소지가 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종교인들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의 협력을 도모하고자 탄생한 운동이 바로 세계교회협의회, 즉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이다. 이들은 하나님은 화해의 신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며 동성애나 공산주의마저도 포용의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20세기에 주목할만한 이는 디트리이 본 회퍼이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만행을 목격한 그는 히틀러 암살단을 조직했다. 그는 도로를 마구잡이로 질주하며 사람들을 치는 버스가 있다면, 기독교가 할 일은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 올라타 운전수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자신의 본분을 이야기했다. 종교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실천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3. 특별한 시선으로 기독교를 말하다
이전까지 신학은 백인 중년 남자의 것이었다. 백인과 중년, 그리고 남자라는 키워드를 잠시 주목해보자. 어딘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20세기 중반부터 기독교 신학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흑인신학, 남미해방신학, 여성신학이 있다. 흑인신학은 억압받은 이들의 해방자에 주목하여 출애굽을 이야기한다. 남미해방신학은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한 반발로써 시작되었으며 막스의 이론을 인용하여 사회를 부정하기도 한다. 여성신학은 성경에서 여성을 위한 메시지를 찾는 데 주목하는 운동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새로운 신학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사회의 다원화가 어떤 형태로 종교의 발전에 기여하는지, 종교는 결코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것은 아닐지, 신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고, 결국 종교란 절대적인 형태가 없는 실체로서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여러가지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다음주부터는 오강남 선생님의 이슬람교 강의가 시작된다. 나에게는 미지의 종교, 신비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한 종교이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자원 활동과 함께 오강남 선생님의 종교 강의를 들으면서 매주 화요일이 아주 즐거워졌다. 지금까지는 전혀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답을 내리는 과정이 재미있다. 나 뿐만 아니라 수강하시는 모든 분들이 강의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