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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2강
안녕하세요. 벚꽃들이 조금씩 움을 트고 있는 가운데 난데없이 눈이 내리는, 그런 기묘한 4월입니다. 저희 <한국근현대사> 수업은 두 번째 강의를 무사히 마쳤답니다.
이번 시간에는 ‘흥선 대원군’과 ‘고종’에 대해서 배웠는데요, 여러분 ‘흥선 대원군’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명성황후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것 같아요.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며느리인 명성황후의 대립은 이미 숱한 사담이나 드라마, 소설들을 통해 익숙한 내용이지요. 하지만 정작 대원군의 아들이자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은 왜 등장하지 않을까요. 고종은 정말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기조차 펴지 못하는 유약한 왕이었을까요?
고종에 대한 가장 뿌리 깊은 오해는 그가 명성황후―또는 민씨 정권에 휘둘린 무능한 왕이라는 인식입니다. 고종에게 민씨들은 처가일 뿐만 아니라 외가이기도 합니다. 여흥 민씨 가문에서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인현황후와 원경황후 등 세 명의 정비를 배출했습니다. 또한 고종의 외할아버지인 남연군과 흥선 대원군 모두 여흥 민씨와 결혼합니다. 대원군에게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찾던 고종에게는 민씨들이 더없이 믿음직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즉 ‘민씨 정권’은 고종 스스로의 신임과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종은 12세에 왕위에 올라 10년이 넘도록 대원군의 그늘 밑에 있었습니다. 그는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의견충돌 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전투 후, 고종의 생각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쇄국정치는 조선의 고립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후 고종은 친정을 결심하고 아버지와 완전히 뜻을 달리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강단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 있는데 바로 ‘영남만인소 사건’입니다. 면암 최익현은 대원군의 탄핵을 요구하게 되고 고종은 친정을 선언하며 대원군을 내쫓습니다. 이에 반발한 남인 유생들이 대원군의 복귀를 요청하며 쓴 만인보를 쓰게 됩니다. 고종은 크게 분노하여 만인보의 주동자를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이르지요.
대원군은 결국 여러 번의 고종 암살계획을 세우며 갑오개혁과 임오군란에 참여합니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가 일어난 을미사변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지요. 결국 고종과 완전히 멀어지게 된 대원군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원군은 끊임없이 아들인 고종을 못미더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권력에서 자신이 멀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가 적당한 때에 물러날 줄 아는 미덕을 아는 아버지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합니다.
저녁시간에 이루어지는 강의라 많이 피곤하실텐데도 조는 분 한분 없는 훌륭한 수업이었습니다^^ 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주진오 교수님의 말씀을 옮겨 적으며 글을 마칩니다.
“누군가가 평생 옳은 길을 걸어 완벽한 위인이 되거나, 평생 악인의 길을 걸어 완벽한 악인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누구든 살면서 꼭 한번쯤은 나쁜 일을 하거나 좋은 일을 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종종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혹시 한순간이라도 실수를 하지 않을까 반성하면서 겸허함을 배우게 되는데. 자신의 인생에 대해 겸허를 배우는 것, 그게 곧 역사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