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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독서 서클 땡땡을 마치며
독서 서클 땡땡은 그야말로 공란을 뜻하는 '땡땡 = OO'이라는 말에 맞는 모임이다. 4번의 모임에서 진행자는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정해졌고 두 번 이상 진행을 맡지도 않았다. 진행자에 따라서 모임마다 분위기가 달라졌고, 어느 날은 책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때도 있었다. 땡땡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삶을 윤기 있게 하는 맛있는 음식과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가 더해져서 마법 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에로스의 종말을 말하는 시대에서 오히려 에로틱한 타자를 인식한다면(<에로스의 종말>), 이 시대의 사랑은 여성을 약자로 만들고 있지만(<사랑은 왜 아픈가>), 아픔 따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 삶의 위태로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타자의 위태로움을 깨닫는 방향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에(<위태로운 삶>), 내 안의 소녀가 담대한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당신 안의 소년도 가부장제에 억눌려 자기만의 목소리를 잃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담대한 목소리>)
마지막 모임에서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독서서클이니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단연코 목소리가 필수다. 그 목소리로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하나가 된 느낌을 주었다. <담대한 목소리>의 저자인 캐럴 길리건은 '목소리'라는 단어가 '자아'보다 더 정확하고 구체적이라고 말한다. 목소리는 언어를 통해 심리학을 생물학과 문화에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어느 것도 경시되지 않는다.
<낮은 목소리>라는 다큐의 제목이 주는 커다란 울림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일명 '목소리 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에서도 작은 목소리 하나가 세상을 뒤흔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서를 좋아하고, 함께 목소리를 나누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 서클 땡땡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모임의 회계와 장소 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독서 서클이라고 한다.
땡땡에서의 4번의 만남은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느새 나를 둘러싼 세상이 꽤나 커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만나는 꽤 좋은 방법이 독서라는 걸 살면서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독서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분들의 세상과도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을 독서 모임에서 깨달았다. 참여연대의 여러 독서토론 모임에 같은 시기에 참가했지만, 땡땡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장점이 있었다.
언뜻 보면 보다 치밀하게 책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해야 하는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담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첫 모임이라 책을 너무 어려운 것만 모아놓은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덕분에 정말 내 손으로 집어 들기 쉽지 않은 책들을 접할 수가 있었다. 좀더 페미니즘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가 깊어진다면 나중에 문장마다 감탄을 하며 읽을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페미니즘, 민주주의, 에로스라는 주제에 이제 구분하는 쉼표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서 민주주의를 구해내는 가장 큰 무기이고, 페미니즘은 에로스를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니까.
▲독서 서클 '땡땡'이 열렸던 부암동 산방, 밤하늘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사진:유연진).
봄이 막 시작할 무렵 시작된 땡땡은 여름이 깊어질 무렵에 끝이 났다. 그렇지만 어쩌면, 당연히, 꼭 선선한 바람이 불 때 다시 인왕산자락의 산방에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