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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기] 5/4 발달장애 작가들과 함께 한 느티나무 <춤서클 도시의 노마드> 공연을 마치고
5월 4일 양평에서 열리는 '2019 발달장애 작가들의 폐공장 전시'에 도시의 노마드가 초대받았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전시 행사를 여는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장소인 경의선 아신역은 거의가 집에서 2~3시간 걸리는데도 오전 9시 30분, 14명 전원이 집결했다. 서로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
부여에서 올라온 귀정샘의 캠핑카도 대기중이었다. 이 차는 이번 공연에서 의상실과 대기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캠핑카에서 나오는 순간 모두가 화려한 배우로 대변신!
▲전시작품들 사이에서 춤추는 '도시의 노마드 춤서클'. 사진촬영 : 고은경
폐공장은 1960년대에 생사 제조를 시작해서 90년대에 가동을 중단한 곳인데,
천정에 뚫린 구멍으로 햇살이 비쳐들고, 유리창이 드문드문 빠져 있었지만 창 밖으로 샛노란 황매화가 가득 피어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은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독특한 세계를 그려내는 남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 시절 방직기계 앞에 나란히 앉아 실을 잦던 여공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멋진 옷을 차려입고 밝은 햇살, 바람을 맞으며 경쾌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걸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먼지 앉은 실타래가 기계에 걸린 채로 있고 공장 한 켠에 작은 책꽂이가 있었다.
먼지 수북한 채 쌓여있는 몇 권의 책 중에 ‘노동수첩’이 곰팡이 꽃을 피운 채로 섞여 있었다.
‘노동조합가’,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그들이 불렀을까? 노래를 불러 보았다.
‘물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80년대 스크럼을 강고히 하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놓아 불렀던 노래인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우리는 공장 마당의 나무 밑, 소나무 둔덕, 작업장 문 앞, 공장 안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음악이 울려 퍼진다. 빰빠빠빠~~ 마당에 있던 서너명이 넬켄라인 춤을 추며 줄을 지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80년대 가두투쟁을 나갈 때도 그랬다. 곳곳에서 숨죽이고 있던 우리들은 누군가 동을 뜨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구호를 외쳤다. 지금 우리는 음악과 춤으로 외친다.
넬켄라인의 대열은 한 걸음 한 걸음 폐공장 전시실 곳곳을 지나 공연 장소로 향했다.
오랜 시간이 머문 그곳에서 잠시 멈춤.
한강의 노래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가 나올 때 우리는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서로 손끝을 스치기도 하고, 손을 잡고 걸으며 공간의 의미를 새겼다.
이어지는 음악은 ‘까미노’. ‘길’이란 뜻. 장애를 안고 걸어가야 하는 길,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걷고 있는 길,
방직공장을 다니며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여공의 길에는 숱한 고비와 눈물이 있었을 것이다.
발달 장애를 가진 자녀의 어머니들, 누가 얘기해 주기 전에는 몰랐다. 다들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것.
삭발 시위를 하고나서 자라난 머리 길이였다. 두 번째 공연을 할 때 은경샘은 춤을 추며 눈물이 났다고 했다.
우리들은 눈물나게 서럽고 아름다운 인생의 길을 함께 걷고자 한다.
▲전시회장 밖에서는 서클댄스로 참여자들과 춤서클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졌다. 사진촬영 : 고은경
‘까미노’를 마치면서 다시 공장 마당으로 나와 둥그렇게 모여 들며 노래에 맞춰 써클 댄스를 췄다.
구경하시는 분들에게도 자리를 내주어 함께 했다. 함께해서 신나는 ‘쏘 해피 투게더’ 우리 모두의 바람!
흥겨운 분위기가 끓어올랐을 때, 뜬금없는 듯 70년대 가요 ‘님과 함께’가 울려 퍼진다.
그 시절 방직공장을 다니던 여공들도 아마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백년 살고자 하는 부푼 꿈을 안고.
우리는 노래에 맞춰 빠르고 경쾌한 버전의 넬켄라인으로 춤을 추며 줄지어 공장 밖으로 퇴장했다.
우리는 하루종일 춤을 췄다. 심지어 낮 공연을 마치고 식사 후에 카페를 찾아가는 강변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공터에서도 음악과 춤이 있었다. 일상과 춤의 경계가 허물어져 버렸다.
우리의 춤 행렬에 홀려서 뒤따라온 3부자는 촬영을 도와주고 떠났다.
긴급 요청으로 다시 불려간 저녁시간의 앵콜 공연은 조금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더 많았고 카메라 촬영, 드론 촬영이 한창인 듯 싶었다. 은혜씨 이야기를 다룬 다큐 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은혜씨,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인물화 이천여 점을 그린 예술가.
공연 후에 구경꾼으로 남아서 서운할 뻔 했던 은혜씨와 함께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가 춤을 췄다.
은혜씨는 처음 발 박자를 맞추는데는 서툴렀지만, ‘까미노’에 맞춰 미경샘이 이끄는대로
미정샘과 셋이서 조화를 이루는 춤은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공연 후, 오한숙희씨가 듣고 전해준 말에 의하면 우리의 모습이 그 시대 여공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
이리저리 교차하며 옷감을 짜 나가는 실들의 움직임 같이 생생했다고 한다.
어떤 분은 가애샘 손을 잡고 좋은 공연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했다. 은혜씨 어머니인 장차현실씨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정혜신씨는 공감토크 마지막에 청중들에게 노마드를 멋지게 소개해주셨다.
폐허가 되어 버려질 뻔한 공간과 사람들이 재발견되는 아름다운 재생의 공간.
낮 공연에 예정에 없던 저녁공연까지 두 차례나 마치고 떠나려는데 무언가를 남겨둔 것처럼 마음이 아련했다.
폐공장이 되어버린 방직공장의 시간과 역사, 그리고 오늘을 눈물나도록 진실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
정든 무엇과 이별하는 느낌이었다.
노마드의 양평 폐공장 공연. 3월 말 부여 엠티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던 이 여정은
기획, 안무, 음악, 의상 등 모든 면에서, 특히 함께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노마드’다운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 멋지고 아름다운 춤의 길이었다.
도시의 노마드 춤서클이 궁금하신 분은
tothenewworld@gmail.com 김미경 회장님에게로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