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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번째 | 아카데미 안 감독의 전반전
느티나무 백인보 열일곱번째 - 간사 정세윤
인터뷰 · 글 : 이은주 수강생
“열정 있는 느티나무 회원들, 정말 대단했다.”
2011년을 끝으로 그간 [느티나무]를 든든히 받쳐 왔던 기둥을 뽑아 [민생희망본부]에 갖다 꽂게 되는 정세윤 간사. 지난 달 중순부터 휴가를 얻어 이란과 터키를 다녀오는 등 안식월을 바삐 보내고 있는 와중에, 그 귀한 시간을 인터뷰를 위해 내주었다. (멋지게 수염도 기르고. ^^) 참여연대는 3년 근속 후 1개월 안식월 휴가, 7년 근속 이후 1년의 안식년이 주어지는 복지 제도가 있다고 한다. 낮은 급여와 긴장도 높은 업무에 대한 보상 때문이리라. 하지만 정세윤 간사는 2006년 참여연대에 들어온 이래 만 6년을 보내고 이번에야 처음 안식월을 썼단다. 뭐가 그리 바쁘셨나요? [참여사회연구소] 3년, [느티나무] 3년. 그러고 보니 6년을 꽉 채워 특별히 참여연대의 ‘연구 교육’ 컨텐츠 분야를 담당했다. 스스로도 ‘안 감독’(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등장인물)이라 칭하였듯이, 그 인자하고 편안한 웃음과 말이 참으로 인상적인 정 간사에게 그간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만나자 마자 “그런데 왜 저를 인터뷰 하시는지... 재미없을걸요. 아니 다른 훌륭한 회원분들을 두시고 왜 저를...”이라며 자신을 낮추는 정 간사. 하지만 정 간사에게도 ‘훌륭한’ 자기만의 이야기가 많았다.
참여연대 정세윤간사
중국 사스(sars)가 없었다면 못 만났을 ‘집의 인문학’
전라도 광주 출신. 학창 시절에는 풍물반과 문학동인 활동을 했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학년 때는 문학 동아리 소속이라 생활 터전이 거의 동아리방이었고, 2학년 때부터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한때 과격한 양상을 띠던 90년대 중후반에 학생 운동을 했던 터라 고민이 많은 학부 시절이었다. 졸업 후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1년을 채우고 돌아올 수 있었는데, 당시 중국에 불었던 ‘사스(sars)' 바람으로 9개월 차에 급히 한국에 들어왔다. ’사스‘ 아니었다면 중국어든 중국 관련 공부를 더 했거나 아무튼 무언가를 더 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정치학을 전공. 우리에겐 참으로 다행인 것 같다. ’사스‘ 덕분에 정세윤 간사는 한국에 들어와 참여연대 간사가 되었고, ’사스‘ 덕분에 우리는 그가 기획한 ’집의 인문학‘과 ’돈의 인문학‘을 수강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정세윤은, 동아리방에 있다가 집회 때 되면 나타나는 사람? ^^ 그러다가 2학년 때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97년 한양대 사건이 있었고요. (한총련 출범식 때 사망 사건을 비롯하여 부상자가 많이 일어났었지요.) 아, 제가 그런 건 좀 장점이었네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혹시 내가 틀리진 않았나 하는 생각. 이때는 학생 운동에서 ‘신념의 강자’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제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 건가를 생각했죠. 학생들이, 그리고 내가 혹시 잘못된 부분은 없는가. 그러면서 길을 찾는 고민을 좀 했었어요. 공부를 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선배들을 찾아가 만난다거나. 사실 지금도 운동을 하다 보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데에 굉장히 ‘신념의 강자’가 되거나 아니면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어떤 오류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오류들이 있을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려 했고, 그래서 항상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좀 회의하는 부분도 있고요.
정 간사는 대학원생 때 참여연대 회원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소개로 김다혜 간사를 만났고, 2006년 [참여사회연구소] 상근직으로 참여연대에 입사하면서 그해 8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스’가 없었다면 김다혜 간사님도 못 만나셨겠어요. 호호.
뭐 사무실에 같이 있으면 좋으냐, 이런 질문을 자꾸 하시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좋아요. 안 좋은 건, 그런 건 있어요. 사무실 일이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가끔 있죠. ^^ 그런데 좋을 때는 정말 좋죠. 행복해요. 그리고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 … 제가 읽었던 책에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우리가 자격증을 따고 무엇을 성취하려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데, 인생의 굉장히 중요한 결혼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나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요. 그 기간을 늘리기는 어려워도 공부를 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서로 노력하고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결혼 이야기에도 ‘공부’라는 테마를 빠뜨리지 않고 등장시키는 정 간사님. 느티나무는 그간 이런 간사님이 있어서 참, 든든했다.
“느티나무, 참 많이 배웠습니다.”
간사님에게 그간 활동가로서의 자기 평가를 부탁드렸다.
제 평가라.. 그냥 무난했던 것 같아요. 하하. 제 능력은 아닌데, 어쨌든 아카데미 3년이 잘 된 것은 제 운이기도 하니까, 운도 능력이라 치면 잘 한 거죠. ^^ 뭐 잘 해 왔다. 나쁘지 않았다. … 아카데미 3년은 정말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일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배움을 얻었고, 또 사람을 만나는 부분에 있어서도 많이 소중한 경험을 했고. 참 많은 사람들, 다양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느티나무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자기 고민이나 생활 관련한 생각들을 나누는 프로그램들이 좀 있잖아요.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각 연령이나 성별 차이에 따라 또 어떤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죠. 다른 팀 간사들은 다른 단체 활동가들을 많이 만나는 데 비해 아카데미는 다양한 시민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만남들 속에서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점을 느끼고. 하나 기억나는 이야기를 하자면, 남아공까지 조기 유학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송파나 이런 강남 주변에 있는 지역 학부모들이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비용이 덜 드는 남아공으로 자녀를 보낸다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면 좀 더 제가 느끼는 거죠.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라는 게 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또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부분을 좀 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공감할 수 있었고. 제게 많이 도움이 되었죠.
느티나무를 지켜 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
2009년 가을에 ‘생애의 발견’이란 강좌가 있었어요. 아마 그 강좌가 조금 더 아카데미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 프로그램이었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그때 그곳에 와서 이야기하셨던 분들.. 그게 제게는 참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또 보람이었던 건, 참 그럴 일이 아닌데 고마워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참 고맙다’ 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인사를 받을 때 참 보람됐고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아카데미라는 공간 자체가 사람들에게 삶의 전환이 되기도 하고 활력이 되기도 하다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이었고요. 제 인터뷰가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던 부분은, 제가 느끼기에 상근자들이 대단했던 게 아니라 열정적으로 자기 삶에서 시간을 내거나 삶의 어떤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참여해주셨던 분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제가 이 공간에 있을 뿐이지, 제가 수강생들처럼 배움에 있어서 열정적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면... 그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제가 겸허해지고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 저분들 덕에 아카데미가 성장해 왔던 것이고, 그런 분들을 만난 것이 말하자면 ‘운’이죠. 그런 게 아카데미를 만들어 온 동력이지 않았나 싶어요.
나도 ‘이런 강좌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며 댁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을 참 많이 보았다. 그런데 강좌의 내용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정말 수강생들의 배움을 위해 참 많은 배려와 따뜻하고 유려한 진행과 운영을 책임져주신 느티나무의 실무진 세 분의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세 분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고 호흡을 맞추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세 사람의 팀웍이라... 나름대로 잘, 같이 일해 온 것 같아요. 각자 개성들이 다 달라요.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크게 부딪히거나 갈등을 겪지 않고, 자기들이 갖는 장점들로 시너지 효과를 내거나 각기 개성들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아카데미 성장에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그렇게 일하게 되는 것을 배웠던 거죠. 이런 부분이 저에게 많이 도움이 됐고. 이전에 [참여사회연구소] 때는 3년 동안 저 혼자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배 간사로서 후배 간사와 함께 크게 문제 일으키지 않고 (하하) 업무를 같이 잘 진행했던 것만 해도 성과라고 생각해요.
정세윤 간사는 어떤 일이든지 ‘형식(form)'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이 체계적으로 순서에 맞게 원활히 진행되고 있는지 관리하고 확인하는 업무를 많이 했다고 한다. 기획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시는 주은경 선생님은 일단 일을 추진해 가면서 형식을 만들어가는 편이시란다. 또 김민수 간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관계 속에서 일을 많이 진행시키고,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적인 부분에 많은 힘을 쏟았다고 한다.
말해놓고 나니 제가 좀 공무원스럽네요. 하하. 그런데 그런 역할 분담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서로 간의 개성이나 생각 차이가 좀 있긴 해요. 그걸 나름 부정하진 않고요. 어떻게 보면 각각의 그런 다른 개성들이 아카데미 3년 동안 굉장히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알게 모르게 서로가 적절하게 자기 역할을 하면서 돕고 했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럼 세 분이 의견 차이는 없으셨을까? 논의 뒤에 결정은 어떻게 하셨을까?
나이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주은경 선생님이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것은 맞는데, 우리 일의 특성이 그렇다 보니 저나 김민수 간사나 충분히 의견을 이야기하고, 또 ‘못 한다’ ‘안 된다’ 이런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의견을 또 나누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의견을 완전히 통일시키지도 않았어요. 만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일을 하면 되고. ‘꼭’ 합의가 ‘꼭’ 안 되더라도 어떻게 하다 보면, 백 프로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도, ‘아 그렇게 하면 되는 구나’ 하고 따라갈 수도 있는 거고... 제 직장관이기도 한데, 너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맨날 뜨거운 동료애로 뭉쳐서 ‘우리는 하나야’라고.. 대단한 동료 의식이나 동료애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적절하게 서로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저와 와이프도 ‘우리는 하나다’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각각의 독립적인 인격체가 각자의 개성과 인격체로서 만나서 사는 것이지, 뭐 이심전심이라든지.. 그런 것, 잘 보지도 못했고. ^^ 하물며 부부 사이도 그런데, 직장 동료들끼리 서로 피해주지 않고 도와주면서 적절하게 잘 하면 되지 하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잘해 온 것 같아요. 내가 그 일이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일을 하는 데 있어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좋겠다’ 하고 조언을 해줄 수도 거고. 상대가 그 부분에서 그 정도의 일을 한다면, 그럼 나는 이 정도라도 부족한 부분이나마 채워가면서 같이 일을 맞춰 가는 거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느티나무를 꿈꾸다
아.. 이런 훌륭한 하모니를 만들어 오신 세 분이 이제 각자의 길로 가신다니, 수강생으로서 좀 아쉽다. 쩝. 주은경 선생님도 알게 모르게 아쉬우시겠다.
음.. 그렇죠. 어떻게 보면 팀웍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는데... 근데 제가 부서를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떤 부분에서는 관성화되는 부분도 없잖아 있을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저도 새로운 경험과 일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거고요. 참여연대가 운영 부서와 사업 부서로 나뉘는데요. 운영 부서에 해당하는 참여사회연구소와 느티나무에서 했던 일들은 출판 편집자 업무와 좀 비슷하다 보고, 새로 옮기는 사업 부서인 ‘민생희망본부’는 기자와 좀 비슷하다고 보거든요. 개인적으로 활동가로서 성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연구소와 느티나무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옮기는 측면이 있어요.
느티나무 초반에 실무자 세 명이 한 인터뷰를 보면, 그때 정세윤 간사는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에는 익숙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답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어떤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럼 참여연대 느티나무는 3년 동안 어떻게 이야기해 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과제가 느티나무를 기다리는 걸까?
저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느티나무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민주주의라는 게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교체하는 제도와 절차의 문제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떤 가치와 제도적인 운영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제도라 하더라도 그 제도가 가지는 의미가 뭔지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데요. 지난 3년간 그것을 모색하고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시간인 것 같고, ^^ 그간 고민을 해 왔다면, 올해는 이제 그런 고민들을 진행하는 작업들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느티나무가 다른 곳보다 좀 더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잘할 수 있는 부분들,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컨텐츠는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과제인 것 같아요. 사실 참여연대도 지난 18년 가까이 해 온 활동들이 어떤 가치와 어떤 민주주의 원리 속에서 이뤄졌으며, 어떤 방식으로 또 활동을 해 왔는지 자기가 자기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살아 왔는데, 내가 살아 온 방식이 이런 것이었고 내 삶의 철학이 이런 것이었다 라고요. 일정 정도의 단계에 오른 시점에 사람들 앞에서 좀 더 체계적이고 좀 더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런 단계에 있다고 보고, 느티나무도 참여연대와 함께 그런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보면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젠 그런 프로그램들을 정형화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컨텐츠들을 좀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단계이지 않나 싶은 거죠. 그러니까 ‘변주가 가능한’ 어떤 모델과 모형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완전히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양한 상태로 변주가 가능한 거요. 이번엔 거기다 이걸 붙여서 해보고, 다음엔 이걸 빼고 해보고 하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활동가 정세윤’이 마주할 삶의 과제
활동가로서의 영감을 항상 ‘삼라만상’에 촉수를 꽂아 얻으려고 노력한다는 정 간사. 주말엔 <무한도전>을 반드시 본방 사수한다는 정세윤 간사의 요즘 화두는 무얼까?
무엇보다 제가 옮겨 가는 사업 부서와 관련해 주거 문제, 부동산이 가장 큰 화두고요. 음.. 최근에 참여연대에 ‘정년 60세’가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정년이 없었는데요...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약간 고민이 있죠. 5년, 10년 후의 삶에 대해 고민들이 좀 생기는 거죠. 그때에도 계속 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가. 사실상 지금 대한민국에 20대 후반부터 활동가로 시작해 50, 60세까지 일종의 전업 활동가로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는 경우, 그런 롤 모델이 될 만한 케이스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부 명망가들을 활동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전업 활동가’로서 활동하는 케이스는 없어요. 간사로서 50, 60세까지 일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건 또 어떤 모습일까. 외국은 아직도 단체 사무실에서 많이 일한다고 하는데, 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는 고민들이 있어요. 또 한편, ‘귀농’이나 ‘귀촌’ 이런 삶에 대해 어떤 로망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종합적으로 10년, 20년 후에 어떤 삶의 모습을 가질까 하는 고민을 하는 거예요. 제가 뭐 거창한 꿈이 있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하하.
그럼 정세윤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게 있다면?
음... ‘와이프’ 이런 얘기 하면.. 하하. ‘와이프’만 말하면 좀 그렇죠? ^^ 제가 참여연대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데요, 싹이 올라오고 자라는 것을 보면, 심장을 떨리게 까진 아니더라도 좀 신기하죠. 그리고 ‘촛불’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어떤 ‘참여의 에너지’ 같은 것들을 접할 때 정말 심장이 떨리죠. ^^
어떤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지 묻는 질문에는 단박 “그 어떤 누구도 그 어떤 누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답했다. 내가 누구 앞에 서더라도 그 사회가 나로 하여금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만드는 세상. 그 사람이 나의 밥줄을 끊지 않을까? 나중에 뒤에서 해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없이 대할 수 있는, 누구도 나를 지배할 수 없는 세상. 그리고 ‘배제가 없는 세상’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누구나 무엇으로부터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어떤 이유로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말이다.
미래에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요? 글쎄요.. “괜찮다”? 하하. “괜.찮.다.”
아, 마지막 답변이 참 좋았다. ‘괜찮다’ 그 넉넉함과 수용의 기운이 느티나무에도 고스란히 담겨 여지껏 우리 수강생들을 지켜준 것 같다. 난 처음엔 무료한 일상의 돌파구가 될까 하여 그냥 와봤다. 그 발걸음이 한 번, 두 번, 그렇게 죽 이어지면서 많은 수강생과 강사님들, 그리고 간사님들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많은 지식을 얻을 욕심에서 느티나무를 계속 찾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배움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느티나무가 적절한 공간과 또 에너지를 나에게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 내 삶의 ‘선물’이었다. ‘괜찮다’ 하며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고 웃고 대화하는 시간이 내게 많은 배움이 일어나게 했다. 그간 느티나무의 세 분은 정말 멋졌고, 참 좋았다.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하고, 정세윤 간사를 포함한 세 분의 앞으로의 활동과 멋진 삶을 위해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말끔한 인상의 안감독이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니 안식월을 이름답게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안식의시간"이었음을...
" 운동을 하다 보면,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데에 굉장히 ‘신념의 강자’가 되거나 아니면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어떤 오류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오류들이 있을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려 했고, 그래서 항상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좀 회의하는 부분도 있고요. "
활동가로서의 삶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속에서 늘 성찰해야 하는 부분이 내가 과연 잘하고 있나? 나만이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해야한다 생각해요. 지난 세월 나름 "신념의 강자"였지만 느티나무를 드나들면 공부하고 귀동냥하다보니 "신념의 약자"가 되더군요. 약자가 보호되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아닐까요.??
안감독님!! 늘 지금처럼...행복하시고 옮겨심은 뿌리가 깊고 튼튼해지길 기원합니다.
세윤간사 수염 기른 거 생각보다 멋진데요^^
가지고 있는 생각도 멋지구요...
안감독님 수강생 자격으로 계속 만나줄꺼죠?
인터뷰 정말 잘 봤어요.
대화하는 방법,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는 방법
그것은 정말 예술이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인터뷰는
느티나무에서 3년 열심히 일한 정세윤씨에게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도
그와 함께 했던 수강생들에게도
큰 선물임다.
인터뷰어, 인터뷰이... 모두 탱큐... ^^
.
정간사입니다.
오늘은 관리자 모드가 아니라 이용자 모드로 로그인했네요.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느티나무를 아껴주신 수강생분들 덕분에 그래도
이런 인터뷰도 하게 되었던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세윤 간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볼건데.. 새삼스럽지만요 ㅎㅎ
첫 느낌은 든든한 듬작한 . 저처럼 팔랑대지 않고 ㅋㅋ
많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단어가 막 섞여 나왔고. 말씀도 잘 하셨어요.
한참후에 함께한 저녁 자리, 사투리 쓰는 모습에선..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 회원을 위해, 세상을 위해 . 애써주는 간사님 을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 대기업 수준 연봉이 제공된다면 그런 마음이 덜 하려나요 ??? ))
회원을 대하는 그 정성과 진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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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샘님.
찬찬히. 조용히 자연스럽게 말해 주셔서 또 고맙습니다.
<정세윤 님> 을 더욱 잘 알게 된 듯 해요.
글 잘 봤습니다 .. ^^
감사합니다. ^^
이번 인터뷰는 하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함께 생각해볼 거리도 많았고요.
얼른 부지런히 뛰어서, 느티나무에 오고가는 분들을 많이 기록해야겠습니다. 호호.
어떤 배움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느티나무가 적절한 공간과 또 에너지를 나에게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 내 삶의 ‘선물’이었다. ‘괜찮다’ 하며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고 웃고 대화하는 시간이 내게 많은 배움이 일어나게 했다. 그간 느티나무의 세 분은 정말 멋졌고, 참 좋았다.
은주샘 말에 동감한표요 ^^
세윤간사님,민수간사님 보고싶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