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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소리 저항의노래 1강 - 한과 희망이 뒤섞인 저항의 노래 (7/11)
[반란의 소리 저항의 노래] 1강 : 유럽과 러시아/소련의 저항가요
동구와 서구, 한과 희망이 뒤섞인 저항의 노래
한땐 나와 나의 동료들은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땅으로 그들과 함께 했지
그땐 그대들과 난 아름다웠어 비록 미친 세월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꽃다지 ‘노래의 꿈’ 중에서
노래는 변합니다. 수많은 음과 노랫말들이 새로이 나타나 불려 지다가 사그라지고 또 다른 음과 노랫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다가 또 다시 사그라지고. 우리는 매일 새로운 가수들이 새 앨범을 발표하는 음악홍수의 시대에 휩쓸려, 계속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변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촉발된 리메이크 열풍, 명곡의 재발견과 같은 일련의 현상은 노래가 가진 생명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노래를 부르는 젊은 아이돌 가수를 보며 오히려 다시 태어나는 노래를 만납니다. 노래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지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2012 여름강좌 [반란의 소리, 저항의 노래] 의 시작은 유럽과 러시아/소련에서 건너온 우리에겐 상당히 낯선 몇 곡의 노래로 꾸며졌습니다. 박노자 선생님은 이 노래들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요? 선생님의 짧은 질문으로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 강연을 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 (사진=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여는 말 : 우리는 왜 혁명가요를 들을까요?
지난 5월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 앞에서는 <바르샤바 노동자 행진곡>이 울려퍼졌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통령 3선 취임을 반대하는 2만여 명의 시위대가 크렘린 궁 쪽으로 진출하려다 경찰과 대규모 충돌을 빚었고, 치열한 투석전 끝에 250여명이 체포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1993년을 끝으로 사라졌다가 19년 만에 다시 벌어진 격렬한 반정부 저항시위였지만, 사람은 변했고 노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르샤바 노동자 행진곡>은 폴란드 노동운동의 고전적 저항가요로서 100여 년 전 러시아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1940-50년대에는 일본어로도 번역되었으며, 이후 북한에도 전해진 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곡이 100년이 지난 2012년 5월 모스크바의 거리에서 여전히 울려퍼지다니! 박노자 선생님에게는 시위대와 경찰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것이 돌멩이뿐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음악적인 감각차원에서 그 시위가 재밌었다”고 하시네요.
대중가요는 계속 바뀌지만 혁명가요는 놀랍게도 단절성보다 지속성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국 런던에서도 100여년전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부르던 <적기가>가 불려지고 있고, 최근 경제 위기로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남부 유럽에서도 100년 전의 혁명가요를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죠.
이들은 왜 노동운동가요를 불렀을까요?
유럽의 혁명가요(또는 저항가요)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에서 발달하였습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다른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노동조합이 잘 조직되어 있어서 노동가요들이 더욱 많이 나왔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노동조합 조직율이 2배정도 높았던 당시의 독일 노동자들에겐 노동조합에서의 생활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노동조합에서 발행한 소식지와 신문을 읽고, 일이 끝나면 조합에서 만든 노동자 도서관에 모여 서클활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였으며, 노동자 합창회를 만들어 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조직의 단결과 귀속의식 등을 강화했습니다. 독일의 노동자들에게는 단순 반복 작업의 정신적 긴강감을 해소하기 위해 문화생활이 필요했고 합창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1차대전 전까지 독일에서 노동가요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동가요에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민중가요가 있는가 하면, 독일의 사회민주당과 관계된 진보적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노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을 의식화 과정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는데,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가요들은 노동자들의 적이 누구인지, 또한 노동자들의 정체적 계급의식을 딱 짚어 규정하면서 계급전체의 도구로 작동하였고 이러한 과정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갈망했던 의식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요.
<Die Arbeidsmanner>(1870) <노동자들>
Wer schafft das Gold zu Tage? 누가 금을 빛의 세계로 가져오는가?
Wer hämmert Erz und Stein? 누가 광석과 석재를 가공하는가?
Wer webet Tuch und Seide? 누가 방직물들과 비단을 만드는가?
Wer bauet Korn und Wein? 누가 알곡과 양주를 만드는가?
Wer gibt den Reichen all ihr Brot 누가 부자들에게 그 약식을 주면서도
und lebt dabei in bitt’rer Not? 스스로 끔찍한 가난 속에서 사는가?
Das sind die Arbeitsmänner 이는 노동자들
das Proletariat 무산계급이다.
<노동자들>의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기의 노동가요들은 노동자의 계급적 정체성을 규정합니다. ‘우리’와 ‘적’으로 세계를 분명히 양분화하면서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은 우리이지만 결국 받아먹는 것은 부자들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고난을 겪는가,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빈의 노동자들>이라는 유명한 가요는 1927년 오스트리아의 한 사민주의 시인이 독일어로 작사하여 만든 노래인데, 그 음율은 소련의 초기 혁명가요인 <백군과 흑색 후작>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 또한 “우리”가 곧 찾아올 세계를 만들어갈 건설자, 승리자가 될 것임을 말하여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승리를 확신시켜주는 전투적인 음악, 이것이 노동가요의 인기 비밀 중 하나인 것입니다.
노동가요는 당시의 노동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고급문화였던 오페라 등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이들에게 신분상승의 느낌을 줌으로써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초기 소련의 혁명가요 중 하나인 <우리 모닥불이여 높이 솟아오르라>는 러시아 혁명 5년 후인 1922년에 작곡되어 당시 9-16세 아이들이 속했던 “소년공산당” 조직의 당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는 노동자의 아들, 딸들이며, 전투의 날이 돌아올 것이니 늘 준비되어 있으라’는 전위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재밌는 것은 이 노래가 오페라 <파우스트>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파우스트>를 접할 수 있는, 고급문화세계로의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이 노래의 특징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동원을 유도할 수 있는 전투적이고 유쾌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어서 집단의 귀속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 모닥불이여 높이 솟아오르라>
http://www.youtube.com/v/7M6UoG_T5nM&feature=related
그렇다고 노동가요가 집단의식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혁명가요의 내용은 노동운동 사상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신문이나 잡지, 선전물보다는 노래 하나를 들음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노동운동 사상을 이해했습니다.
특히 <인터내셔널가>는 국가의 억압, 세금에 대하 불만, 노동자 빈민의 권리구제에 대한 내용을 담으면서 후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또는 번안되어 불려졌는데, 이러한 노동가요들이 크게 인기를 끌게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들이 특수한 내용을 보편적인 내용과 잘 결합하여 사람들의 감성적인 동의를 유도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인터내셔널가>의 경우에는 파리코뮨시대의 정신과 더불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중시, 머지않아 자본주의의 타도가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겸비되어 사람들에게 많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인터내셔널가>
http://www.youtube.com/v/kEZhCB8KdWw
(제1절)
Il n’est pas de sauveurs suprêmes 최상위의 구세주는 없다
Ni Dieu, ni César, ni tribun 신도 황제도 호민관도 (소용없다)
Producteurs, sauvons-nous nous-mêmes 생산자여, 자신들을 스스로 구하자!
Décrétons le salut commun 공동의 구제를 법령으로 선포하라
Pour que le voleur rende gorge 도둑들이 없어지게끔
Pour tirer l’esprit du cachot (인류의) 정신이 감옥으로부터 나오게끔
Soufflons nous-mêmes notre forge 스스로 풀무질을 하여
Battons le fer quand il est chaud 철이 뜨거울 때에 망치질하자.
(제3절)
L’État comprime et la loi triche 국가는 탄압하고 법은 (우리를) 속이고
L’impôt saigne le malheureux 세금은 불행한 이들의 피를 빨고
Nul devoir ne s’impose au riche 부자들에게 부과되는 징세는 없다
Le droit du pauvre est un mot creux 빈민들에게 ‘권리’는 빈말일 뿐이다.
또한 노동가요들은 노동자의 기원-수난-전투-승리와 낙원이라는 역사의 전개과정을 담아냄으로써 마치 성경의 압축판과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즉, 노동자의 정체성과 수난의 과정, 불만의 확인, 최후의 결전과 승리의 과정을 감성적으로 매우 강하게 호소하면서 세계적 전파성을 과시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 사민당의 당사로 사용했던 노래 <서광을 향하여>는 노선을 달리했던 독일의 사민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패싸움을 하면서도 같이 불렀을 만큼 인기 있는 노래였습니다. 심지어는 독일의 분단 후에도 양진영이 이 노래를 공유했음은 물론, 소련, 일본, 북한 등으로 번역되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이 노래는 오스트리아 지역의 상징적인 노래로, 선택 당한 노동자 대중, 우리가 겪은 끔찍한 아동시절의 경험, 승리에 대한 확신, 그리고 과거의 민족 저항까지 환기시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용이나 전개과정이 성경의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여 찬송가들이 초기의 노동가요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최근의 집회에서도 불려지는 <서광을 향하여>는 1922년 러시아어로 번역되면서 제목을 <젊은 근위대>로 바꾸었고 공산청년당의 비공식적 당가로 사용되었습니다. 멜로디는 같지만 가사는 직역을 하면서 약간은 더 전투적인 내용이 더해졌고, 당시 러시아 민중의 대부분이 농민이었기 때문에 무산계급의 범위도 노동자에서 농민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소련에서는 ‘젊은 친위대’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2차대전중 독일군에 맞서 싸운 소련 지하조직의 이름도 ‘젊은 친위대’였고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서광을 향하여>는 일본어와 조선어로도 번역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 내용이 생략되거나 제목이 바뀌는 등 각 지역의 정치 상황과 문화적 성향에 따라 변화해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서광을 향하여(독일)>
http://www.youtube.com/v/F0ppRf85JjA
Dem Morgenrot entgegen 서광을 향하여
Ihr Kampfgenossen all! 투쟁의 동지들이여!
Bald siegt ihr allerwegen 곧 우리는 완전하게 승리하여
Bald weicht der Feinde Wall! 곧 적의 벽이 무너질 것이다!
Mit Macht heran und haltel Schritt! 힘차게 보조를 맞추라!
Arbeiterjugend? Will sie mit? 노동청년이여, 같이 오지 않을 것이냐?
Wir sind die junge Garde 우리는 무산계급의
Des Proletariats! 젊은 근위대다!
Wir haben selbst erfahren 우리는 스스로도 경험했다
der Arbeit Frontgewalt 노동이란 무엇인지
in düstren Kinderjahren 우리들의 끔찍한 아동시절에
und wurden früh schon alt. 일찍 그렇게 해서 늙게 됐다.
Sie hat an unserm Fuß geklirrt 우리들의 발에 무거워지는
die Kette, die nun schwerer wird 족쇄들이 소리를 낸다.
<서광을 향하여(러시아)>
http://www.youtube.com/v/zNDN3185HEo&list=PLCF3CFD23394EA56C&index=6&feature=plpp_video
<서광을 향하여(일본)>
http://www.youtube.com/v/uCdPfiwQKeE
위로부터의 동원일까, 아래로부터의 경험일까?
동원과 경험은 교묘하게 결부되어 있어서 정확히 구분하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민중들이 그 노래를 애창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율적인 동원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민중가수나 시인들의 노래가 중앙에서 받아들여져 다시 각 지방으로 보급되는 경우도 있었고, 스탈린의 독재가 강해져 가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집권자의 역사의식에 맞추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역사를 보전하면서도 윤색·가공하는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가 <쇳덩어리 수병>의 경우입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인 쇳덩어리 수병은 러시아 혁명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1919년 2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무산계급 출신으로 일찍부터 아나키스트가 된 쇳덩어리 수병은 군대에 징집된 후로는 군대와 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되었고 전쟁을 일으킨 고위층에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제헌국회 해산사건을 통해 수류탄으로 부르주아 의원들을 해산시키면서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고, 볼셰비키의 장교가 되어 교전 중 전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탈린도 제헌국회를 해산시킨 쇳덩어리 수병이 아나키스트라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고 볼셰비키의 업적을 강조하기 위해 그 내용을 각색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아나키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스트들과의 교전 중에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습니다. 볼셰비키 정권은 쇳덩어리 수병의 전사를 형상화함으로써 그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했고 여기에 군사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지면서 특이한 노랫말을 담게 됩니다.
<쇳덩어리 수병>(1936년 유행) - 가사는 ‘진짜’ 혁명영웅이었던 ‘쇳덩어리 수병’과는 무관
B степи под Херсоном - 케르손시 근방의 초원에서 풀이 높이 자란다
Высокие травы, В степи под Херсоном - курган. 그 초원 속에 한 언덕이 있다.
Лежит под куганом, 그 언덕 밑에
Заросшим бурьяном, 우거진 잡초 속에서
Матрос Железняк, партизан. 빨치산인 쇠덩어리 수병이 영면에 들었다.
Он шёл на Одессу, 그는 오데사시를 향해 진군했다가
А вышел к Херсону - 케르손시에 잘못 도착했다.
В засаду попался отряд. 그의 부대는 복병을 당했다.
Налево - застава, 왼쪽에는 적의 초소
Махновцы - направо, 오른쪽에 마크노 대장의 부대.
И десять осталось гранат. 그리고 수류탄 10개 밖에 남지 않았다.
중앙에서 각색한 노래가 있는가하면 <계곡 넘어 언덕 넘어>의 경우에는 민중들이 만든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내전이 끝났을 당시 빨치산 중의 한명이 자신들을 묘사하며 지은 노래로서, 기본적으로 공산당이나 소비에트 정권은 언급되지 않고 지역에서 자신들의 삶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주로 드러납니다. 공산당 중앙에서는 1929년부터 군악대에서 이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하였고, 점차 민중들의 기억이 붉은 군대의 레퍼토리에 편입되는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계곡 넘어 언덕 넘어(러시아)> (1922)
http://www.youtube.com/v/TrR3OseNUQk
계곡 넘어 언덕 넘어 사단은 진군했다
백위군의 요새인 연해주를 점령하려고
우리 기빨들은 마지막 부상들의 피로 물들었다.
흑룡강 부근 빨치산들의 기마부대들은 용감하게 진군했다.
이 시절의 명예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빨치산 부대들은 도시들을 속속 점령했다.
<계곡 넘어 언덕 넘어(일본)>
http://www.youtube.com/v/Mk6yk6-DoSk&feature=relmfu
1950,60,70년대에는 스탈린 시대를 넘어 혁명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음에도 혁명가요들은 계속해서 제작되었는데, 이는 집권관료와 민중의 이해가 맞아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권관료들은 통치 명분을 혁명으로 삼아 계속해서 혁명에 대한 기억을 강화하고자 했고, 민중은 국가기관들이 점차 사유화되고 관료들이 사적 재산을 늘려나가자 혁명의 순수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혁명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관료들은 혁명가요를 이용했고 민중들은 혁명가요를 통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고전소설들이 영화화되며 사회주의권의 독특한 고전을 이루었는데, 영화 ≪강철이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주제곡인 <시간이라는 동무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혁명을 수행해야하는 복잡한 감정, 혁명에 대한 충성과 집에 대한 그리움 등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통해 당시 공산당이 원했던 정신적 가치, 즉 보편적 인도주의에서부터 희생정신까지 구성원의 모범적인 형태를 노래를 매개로 만들어내고자 했고 또한 이를 인간적인 동감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군대들이 철도를 만들다가 쉬면서 풍금을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인 <시간이라는 동무여>는 동지애를 강조함으로써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혁명의 세계에 빠져들게끔 하는 비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시간이라는 동무여>
http://www.youtube.com/v/6jVQ_eMdxh8
맺는 말 : 혁명가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무상계급 운동에는 음악, 영화, 신문 등 노동자들만의 문화적 부문이 존재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자의 노래였습니다. 이들은 합창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의식과 귀속의식을 함양하였고, 이를 성경과 유사한 기원-고난-투쟁-승리라는 도식으로 표현해냈던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적 선전선동의 역할이 컸지만 이것만으로는 혁명가요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혁명가요의 상당수가 전투의 참가자들 또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역사의식이 당에 의해 포섭되고 다시 민중으로 퍼져나가는 형태를 띠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혁명가요는 계급이라는 초민족·초국가적 개념을 사용하여 국제성과 전파성이 뛰어난 특징을 보였고, 번역보다는 번안의 형태로 현지의 상황에 맞게 가사가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강한 지속성과 생명력은 노동운동이 약화된 현대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혁명가요가 단순히 위로부터의 선전 도구에 불과했다면 공산당 정권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어야 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불려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국가 공영방송매체에서는 여전히 혁명가요를 방영하고 있고 이러한 방법은 실제로 시청률 상승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기억하고 시위에서 부르곤 합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고 사회가 보수화되면서도 혁명가요들은 여전히 민중들의 감성세계를 표현하고 반영하는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분명히 혁명가요의 역할과 비중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최근 신자유주의의 모순으로 계급투쟁이 재점화되면서 다시 한 번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자원활동가 김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