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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와 시민불복종 3강 -시민불복종과 직접행동 (5/29)
주권(主權)
〔명사〕내가 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내가 나일 수 있는,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고유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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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며 후기로 쓸 제목을 이리저리 생각했다. 그리곤 전혀 제목답지 않은, 사전의 한 페이지를 닮은 이상한 놈을 하나 골라 떡하니 대문 앞에 걸었다. 심지어 그 사전적 정의의 내용 또한 내 마음대로 지껄여 놓았다. 네이버에서 찾은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맞다. 난 네이버 사전에 개기고 있는 중이다. 뭐?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 주권이라고? 흥! 웃기고 있네. 난 국가의 의사를 한 번도 최종적으로 결정한 기억이 없다. 그 최종적 결정들이 맘에 들지 않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국가는 내게 한겨울의 물대포를 보냈다. 국가 단위는 고사하고, 내 개인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려는 것조차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하기 어려운 세상, 그렇게 내가 사는 세상은 주권 따윈 실현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였을까... 강의를 듣는 내내 유독 이 ‘주권’이라는 단어가 마음 언저리를 맴돌았다. 결국 우리가 불복종을 말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이 모든 몸부림들은, ‘내’가 내 삶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기 위함일 것이다. 해서 이미 나의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래야할, 너무도 당연한 그 권리가 침해받을 때... 난 한없이 개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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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출처 : http://youtu.be/SR8Y7tO8yrI
△ 동영상 출처 : http://youtu.be/hO8jgvglDyc
동영상 하나를 같이 보며 강의가 시작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두워진 강의실에서 화면을 쫓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움츠려든다. 죽어간 이들의 명패가 주르륵 나열된 화면, 단 한 건의 산재도 인정하지 않는 삼성이라는 제국, 자식의 죽음을 부정당한 부모의 절규, 그리고 그런 차가운 현실에 등을 대고 누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함이 한꺼번에 가슴을 때리니 숨을 쉬기도 버겁다. 그 답답함은 강의 내내 지속되었고... 그리고 난 지금도 여전히 답답하다.
우리를 보호하라고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은 정부가 정작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있어야하는 것인가?
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앞세워 폭정의 길을 갈 때 그걸 막아달라고 만들어 놓은 법이, 그 법의 집행자와 해석자들이 정작 정부와 함께 미쳐 날뛰며 되려 우리의 목에 칼날을 들이댄다. 그렇다면 법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나에 의한 정부가 나를 부정하는 어마어마한 모순 앞에, 왜 내겐 그런 정부에 저항할 권리가 법으로 보호 되지 않는가?
더 이상 법이 일반 시민들이 거대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울 때 손에 쥘 수 있는 ‘무기’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그따위 법을 지켜내기 위해 비폭력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폭력적인 국가와 법은 과연 누가, 어떤 정의를 빌어, 어떻게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
꼬리를 무는 수많은 난제들 앞에서 난, 내가 처음 이 강의를 듣고자 했을 때 품었던 의문점들을 천천히 곱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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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조별로 수강생들의 토론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늘 그렇듯,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돌아본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지만 이미 어떻게든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와 세상을 분리시키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존재가 무기력하게 꺼져만 가는 것을 용납지 않는 사람들, 소소한 일상에서의 정치성에 대해 깨어있는 사람들, 남의 상처에 무감각해져만 가는 자신의 심장을 자꾸만 두드려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치란, 지배적인 질서 안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렇게 배제된 자들이 자신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을 정치적 대화와 권력의 행사에서 정당한 파트너로서 당당히 서게 하는 것이다 ........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치안과 질서는 어떤 식으로든 배제와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낸다. 정치는 그 치안에 대한 항구적인 불화의 과정이며 해방의 과정이다.
- 자크 랑시에르
그동안 내가 들어본 정치의 개념 중 제일 맘에 드는 것이다. 완벽한 세상이 오지 않는 한 결국 우린 이 불완전한 세상과 불화하며 끊임없이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곧 정치다. 랑시에르는 멋지고 유식하게 말했지만, 난 짧고 무식하게, 그러나 강렬하고 쉽게 말 할 수 있다.
결국 정치란 엿 같은 세상에 개기는 거라고, 시민정치는 그래서 곧 시민불복종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이다. 자신의 심장을 두드려 깨울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에 제대로 개기는 방법을 고민하는, 실로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글 : 박현아 수강생 (자원활동가)